수락산의 봄날/靑石 전성훈
당고개역에서 수락산 학림사로 올라가는 숲길에는 불암산 방향에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풍성하게 비친다. 메마르고 어두운 대지에 찬란한 아침 햇빛을 베푸는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에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숲길 여기저기 중생을 구제해 줄 듯이 불자를 부르는 사찰 이름이 보인다. 우리나라 불교계를 대표하는 스님으로 불리는 ‘원효’ 스님이 1350년 전에 창건한 학림사(鶴林寺), 절 주위에는 연분홍색과 흰색의 철쭉이 군락을 이룬 채 멋지게 피어 있다. 도봉 문인 카페에 글쓴이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이의 글을 등재한 사람의 행위에 불쾌했던 기분이, 학림사를 찾으면서 밝은 햇살의 따사로움에 저 멀리 사라져 가는 듯하다.
아직 여름이 멀었건만 산길을 오르는데 하루살이 같은 곤충들이 얼굴에 달려들어 곤욕스럽다. 몸에서 땀 냄새가 나기에 날벌레들이 극성을 부리며 달려든다. 아무리 손으로 쫓아보아도 별도리가 없다. 벌레는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지만 얼굴에 달려들어서 정말 힘들다. 잠깐 의자에 앉아서 쉬니까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쉬던 의자에서 일어나 걸을 수밖에 없다. 학림사를 지나서 조선왕조 말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가 잠시 몸을 숨긴 용궁암 갈림길을 맞이한다. 안내문에는 시아버지 대원군을 비난하는 듯한 설명이 보인다. 능선으로 오르자 드문드문 산행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관 좋은 전망대에서 멀리 수락산 철모바위와 도솔봉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산을 오를 때마다 힘들지 않은 때가 없고 힘들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힘이 많이 부친다. 걸으면서 자주 선 채로 숨을 고른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옛사람의 말처럼, 나이를 먹어 어느덧 70대 중반을 향하니, 세월이 이토록 무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땀을 흘리며 힘들게 1시간을 걸어서 정상 부근 쉼터에서 물을 마시며 쉬니까, 또다시 하루살이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든다. 정말 짜증이 날 정도이다. 할 수 없이 쉬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걷는다. 배낭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같은 무게인데, 오늘따라 어깨가 결리고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걷는 게 힘들 때는 눈썹의 무게마저 느낀다는 50년 전 광주 보병학교 시절 유격대 교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4월 초순 도봉산 우이암과 북한산 대동문에 오를 때보다는 몸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닌가 보다. 정상 바로 밑 갈림길에서 청학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부터는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무릎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산에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훨씬 힘들고 괴롭다. 조심스럽게 하산하면서 앞을 바라보니까 레깅스 차림의 젊은이가 날렵한 동작으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있다. 잠시 물끄러미 그 젊은 청춘을 바라보다가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 옛날 한때는 나도 저렇게 움직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늦가을도 아닌데 서리를 듬뿍 뒤집어쓴 웬 볼품없이 초라한 늙은이가 힘겨운 모습으로 서성거린다. 남양주 봉선사의 말사인 작은 사찰 내원암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불자를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깨끗하게 쓸어놓은 절집 마당은 스님의 독송 소리만 들릴 뿐 산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적막하다. 조금 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자, 먼 옛날 한 시절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세상을 등지고 주유천하 할 때 벗으로 삼았다는 옥류폭포가 보인다. 여름철에는 속세의 온갖 허접스러운 협잡 소리를 삼킬 듯이 우렁찬 소리를 냈던 것과는 달리 흐르는 물이 적어서 조용하기만 하다. 숲길 의자에 앉아서 힘들어 쑤시는 다리를 다독이면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산은 온통 초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르고 푸르다.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으며 배낭에서 사과를 꺼내어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봄이 깊어가니 계절은 봄날의 따사로움과 여유를 저버리고, 초조하게 무엇을 쫓아가는 듯이 초여름이 고개를 바짝 들이민다. 녹색의 화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밝은 햇볕을 쬐면서 기쁜 하루를 맞이한다. 이토록 황홀한 자연을 베풀어주신 조물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이제 무사히 하산을 마무리하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밝아지고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