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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잔치, 생과 사의 경계에서 탄생과 축하 임장혁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누구나 돌 사진이 있다. 부모가 돌잔치를 하고 사진을 찍어 아이에게 남겨주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돌은 한자어로 초도일初度日, 수일?日, 주년周年이라고도 한다. 돌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아이가 태어나서 7일째인 첫이레를 시작으로 두이레, 세이레와 백일을 거쳐 돌에 이르기까지 치르는 모든 의례적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돌잔치의 새로운 풍속은 현대사회의 가족관, 생명관, 직업관의 변화를 보여주므로 전통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1 돌상 앞의 아이 국립민속박물관 생과 사의 경계에서 출산과 탄생
삼신상은 아이를 낳을 때 산모와 영아의 안전을 위해 차리는데 밥과 미역국을 꼭 올렸다. 오늘날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것도 삼신 신앙과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신과 미역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민속학적으로 명쾌한 해석을 못 하고 있다. 미역은 산모의 피를 맑게 하여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지식을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어촌은
배내옷은 아기의 수명이 길고 장수하라는 뜻으로 긴 무명실을 꼬아 옷고름을 단다. 첫이레에 할아버지와 첫 대면을 하기도 하며, 매 이레마다 수수떡이나 백설기를 만들어 삼신께 올리기도 한다. 3주째인 세이레에는 금줄을 걷고 산실을 개방하며 산모도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후 사당에 아이가 태어났음을 고하고, 이웃들은 산모와 영아의 건강을 축하해준다. 해산한 집은 이웃들에게 수수떡과 백설기를 돌린다.
백일 즈음부터 영아의 배냇머리를 자르는데 정수리 부위의 머리카락 일부를 남겨놓고 깎는다. 고모가 머리를 깎으면 명이 길다고 하며 산에 가서 소나무에 자른 머리카락을 걸어두거나 산에 묻기도 한다. 백일에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밥알을 먹이기도 하는데 쌀의 영력이 아이의 영혼을 강화시킨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다. 2 원반 돌잔치상 국립중앙박물관 3 <평생도> 돌잔치 /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지만 별칭인 아명을 지어준다. 아명은 돌쇠, 개똥이, 바위, 길동이 등과 같은 흔하거나 보잘것없는 호칭으로 부르는데, 악령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여 수명이 길 것을 염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귀한 이름을 부르면 악령이 시샘하여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아명을 사용하는 것은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흔히 있는 주술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아이와 관련된 금기나 의례는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에 불안정한 영아가 인간으로서 무사히 영아에서 아이로 첫 인정받는 돌잔치
남자아이는 저고리와 바지에 조끼·마고자· 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전복戰服을 입는다. 머리에는 호건을 씌우고 타래버선을 신긴다. 가슴에는 돌띠를 두르고 돌 주머니를 찬다. 여자아이는 색동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힌다. 머리에는 조바위나 굴레를 쓰고 발에 타래버선을 신긴다. 가슴에는 돌띠를 매주고 돌 주머니를 채워준다. 돌띠는 장수를 의미하는 붉은 실띠가 많고, 돌 주머니에는 은으로 만든 도끼, 장도, 나비, 물고기 등의 모양을 한 장식물을 달아주기도 한다. 이러한 장식물은 액을 막고 건강하며 장수와 다복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성별에 따른 옷차림의 차이에는 남자답게 또는 여자답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염원이 담겨 있다.
돌떡으로는 송편, 수수팥떡, 백설기, 인절미, 무지개떡 등을 준비한다. 떡은 홀수로 세 종류 또는 다섯 종류를 마련한다. 백설기는 백 사람과 나누어 먹으면 아이에게 좋다고 하며, 수수떡은 콩고물을 묻히지 않고 홀수로 강에 띄우면 액운이 없어진다고 한다. 황해도에서는 메밀로 떡을 만들어 화살 끝에 끼우고 아이 엄마가 키를 쓰고 화살을 쏘면 살풀이 즉 액을 풀어준다고 하는데 수수떡 역시 살풀이의 의미를 지닌다. 돌떡은 함께 나누어 먹는 의미도 있지만 액을 막고 아이가 무사히 성장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크다. 떡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음식을 받은 집에서는 접시를 씻지 않은 채로 실이나 돈, 또는 콩, 조, 팥 등의 곡물을 담아 답례로 보낸다. 실은 아이가 장수하라는 의미가 있으며, 곡물은 이듬해에 파종하면 잘 자란다고 한다.
4 굴레 조선 19세기 말, 비단에 자수. 국립중앙박물관 5 돌띠 조선 19세기 말, 비단에 자수 국립중앙박물관. 허리에 두르는 띠로서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한 바퀴 둘러 맬 수 있도록 길게 제작함 6 돌잔치 풍속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번호 민속029586 아이의 미래를 알아보는 돌잡이 풍속
돌잡이는 돌상에 떡과 과일, 돈 등을 놓고 마음대로 골라잡게 하여 아이의 미래를 알아보는 것이다. 남자 아이는 활, 붓, 종이, 연필 등 문관과 무관을 상징하는 물건을, 여자아이는 가위, 자, 종이 등을 돌상에 놓는다. 성별 구별 없이 돈이나 실, 쌀 등도 돌상에 올린다. 남자아이가 활을 잡으면 훌륭한 장수가 될 것이며 필기 도구를 잡으면 문인으로서 명성을 날릴 것을 기대한다. 여자아이가 바느질 도구를 잡으면 여성의 덕목인 바느질 솜씨가 좋을 것을 기대한다. 쌀이나 떡 같은 음식을 전통사회에서 남자는 성장하여 문관이나 무관으로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자는 여성의 덕목을 갖춘 현모양처로 살기를 바라던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현대 가정에서 돌잔치의 사회적 의미
돌잔치는 돌을 맞이한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와 함께 공동으로 주인공이 되어 축하를 받는 자리로 진화하였다. 요즘 돌잔치는 전문 사회자가 등장하여 재치로 흥을 돋우고 참석자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장이 되고 있다. 돌잔치의 이벤트는 식사와 돌잡이, 비디오 촬영, 축하메시지와 선물 증정, 참석자에 대한 답례, 특별 이벤트 등으로 진행된다. 전통적인 돌잔치와 비교하면 돌잡이가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직업관이 반영된 현대의 돌잡이
대부분의 부모는 모두가 선망하는 직종에 아이가 진출하여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연유로 돌날의 풍속은 변하였지만 돌잡이 전통이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월간문화재 한국문화재재단 ============================================== 돌에서 회갑으로 돌잔치 돌은 아이가 태어난 지 만 1년이 되는 첫 생일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생후 1년을 넘기는 것이 성장의 고비였기 때문에 아이가 무사히 첫 생일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고 장차 잘 자라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날 잔치를 베풀었다. 돌날에는 목욕을 시키고 새옷을 마련하여 입혔는데, 남자 아기는 보통 남색 쾌자에 복건을, 여자 아기는 색동치마저고리에 굴레나 조바위를 씌웠다. 돌복에는 주로 아이의 건강과 장수, 복을 기원하는 ‘수복강녕(壽福康寧)’ 이나‘ 수복다남자(壽福多男子)’등의 길상적인 문구를 새겼다. 그리고 돌상에는 아이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백설기와 실타래 이외에 ‘돌잡이’물건을 놓고 아이의 장래를 점쳤다. 1 1 8 돌잔치 First Birthday Celebration | 평생도 가운데 | 20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안씨가훈(顔氏家訓)』에“(중국의) 강남 풍속에 아이가 출생한지 1년이 되면, 새옷을 마련하고 목욕을 시켜 장식하였다. 남자 아이면 화살ㆍ종이ㆍ붓을, 여자 아이면 가위ㆍ자ㆍ바늘ㆍ실 따위를 놓고, 거기에다 음식물과 보배ㆍ의복ㆍ장난감등을 더하여 아이 앞에 가져다 놓은 뒤, 그 어느 것을 가질 것인가를 관찰하여 장차 탐하거나 청렴할 것과 어리석거나 슬기로울 것을 알아보았다. 이것을 ‘시아(試兒)’라고 하는데, 이날 친가와 외가가 함께 모여서 잔치를 베푼다. 이로부터 이후 부모가 살아계신 동안에는 이날이 될때 마다 항상 술등 음식을 준비하는일이 있다. 이것이 후세 생일잔치의 기원이되었다. 하지만 그 부모가 없는 자도 혹은 술과 음악을 준비하여 즐거워하니 이것이 무슨뜻인가?” 하였다.
1 2 0 실방석 方席 1 2 1 천자문 千字文
1 2 2 호건 虎巾
1 2 3 굴레 兒童帽子
1 2 4 돌띠 兒童帶子
‘수복다남(壽福多男)’ 글자 사이에 자손번창을 상징하는 석류, 장수를 상징하는 학, 꽃등을수놓았다. / 자료 : 국립민속 박물관 전(傳) 김홍도, 돌 잔치(初度弧筵 초도호연), 18세기, 비단에 담채, 53.9×3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당평생도8첩병풍 - 돌잔치 [ 慕堂平生圖8帖屛風 ] 김홍도(金弘道) 굴레 Children's Head Dress I 전체길이 48, 둘레 31.5 I 20세기 I 2417 돌쟁이에서 4~5세까지의 어린이가 사용하는 방한 겸 장식용 쓰개이다. 세 가닥 이상의 비단을 교차하여 모자를 만들고, 정수리에는 꽃모양의 꼭지를 달고 뒤에는 드림을 드리웠다. 남아용은 얼굴을 감싸는 부분과 굴레 허리부분을 남색으로, 여아용은 자색으로 하였다. 봄·여름·가을에는 갑사로 하고, 겨울에는 비단에 솜을 두어 만들었다. 뒤통수 부분에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자(富貴多男子)를 수놓았다.
굴레 Children's Head Dress I 전체길이 54.5, 둘레 33 I 20세기 I 6274 전복 戰服 I Children's Sleeveless Coat I 전체길이 52, 품 36 I 20세기 I 4215 복건 幅巾 I Children's Hood I 전체길이 51.6, 폭 23 I 20세기 I 4216 복주머니노리개 Pendant for Children I 전체길이 16 I 20세기 I 5614 / 국립민속 박물관 . 한민족역사문화도감. |
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