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57]
본점부서에서 정기 인사이동으로 구로공단 지점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술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L 과장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L 과장(1950년생)은 지방 명문 목포 상고를 전체 수석으로 나온 수재였다. 한국은행에도 특채될 실력이었던 L 과장은 마산지점의 행원 시절 업무적으로 알게 된 한국은행 마산지점의 여직원과 교제해 결혼했었다. 그런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10여 년 꿈같이 보내다가 불행히도 부인이 암에 걸려 두 딸을 남겨둔 채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L은 그 후 술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중에 고향의 먼 친척 여성과 다시 재혼했지만, 죽은 부인에 대한 그리움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고 술을 찾는 횟수는 점점 늘어 갔다.
L은 오전에 나를 불러내어 근처 구멍가게에서 히야시가 기가 막히게 된 맥주 네다섯 병을 먹었다. 그는 또 점심시간에 반주로 소주를 한두 병 먹는다. 은행 샷다 문이 닫히는 오후 4시가 넘으면 나를 데리고 다시 바깥에 나가 시원한 맥주를 여러 병 먹었다. 퇴근하고 난 후에는 그는 본격적으로 맥주 또는 소주를 다량으로 먹는다. 새벽에도 문득 잠이 깨면 그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마신다고 하였다. L은 나와 같이 술을 먹을 때 술값은 항상 먼저 냈다. 남에게 특히 후배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L의 깨끗한 성품 탓이었다. L은 술을 먹은 다음 날은 노트에 술값 비용과 장소, 같이 합석한 사람 이름을 꼭 기록하는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어쨌든 나도 L을 쫓아다니며 술을 먹다 보니, 술 실력이 늘어갔다. 술을 먹는 횟수도 늘었다.
L은 대출을 담당했는데 대출 거래처며, 레이다 디텍트(교통경찰차 감지장치 시스템)를 만들어 수출하는 S대 공대를 나온 S 중소기업 사장이 은행에 찾아와 급한 자금 사정으로 L에게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담보 등 여러 가지 여건으로 다시는 대출 지원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L이 거절하자 사장은 그의 집에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현금 X백만 원을 내놓으면서 사정했다. 사장은 상황이 급하게 되자 뇌물로 L을 유혹했던 것이다. L은 당시 서울 변두리인 신월동의 가난한 빌라에 살고 있었던 처지고, 가져온 액수도 큰 금액이었다. 따라서 유혹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 대신 사장과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인간적인 얘기를 나누었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장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L의 인간적인 장점이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S전자는 경영악화와 자금 사정으로 마침내 부도가 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L도 폭음으로 인한 건강의 악화로 은행을 퇴직했고 나도 명예퇴직했다. 그리고 그를 두 번을 만났는데, 그의 건강이 좋지 않은 듯 했다. 그는 퇴직한 후 금융기관에 생계수단으로 가입한 주식연동 펀드가 년 말에 손실을 크게 보자 술을 더욱 마시게 되었다. 그는 집에서 TV의 스포츠경기 중계를 보면서 맥주나 소주를 매일 마신다고 하였다. 그 후에 그가 휴양 차 부인과 시골에 가끔 내려간다는 소식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그가 식도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상태였다. 술과 담배에 장사는 없었다. 향후 나에게 있어 L과 같은 인간적인 신사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인생의 밀려오는 외로움과 고독을 술로써 막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두 딸과 재혼한 부인을 남겨둔 채 인생의 무거운 짐을 너무나 일찍 내려놓고 말았다. 나중에 소문을 들어보니 L의 재혼한 부인이 과거 중등학교 선생 경력을 활용해, 방과 후 과외를 하면서 L이 남겨 놓은 두 딸을 잘 공부시키고 있다고 했다.
첫댓글
이런 경우, 애주가는 아니고 폭주가라 할 만한데,
역쉬 술에는 장사가 없군요,
근데 재혼한 부인께서는 남겨진 두 딸과 친생모자의 관계도 아닌데,
그 아이들을 양육하셨다니 참 대단한 분이시네요~~
자기 자녀들도 아닌데, 선배와 재혼한 여성의 책임감이 대단합니다ㅡ
낳은 자식도 자식이지만, 기른 자식도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육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정이 들거든요ㅡ
히야시, 오랜만에 듣는 말입니다. ^^
일본말이겠지만 어린 시절에 듣던 말이라 반갑고 정답네요.
히야시가 잘 된 사이다는 제 성장기의 꿈의 음료였습니다.
술로 명을 재촉한 그분의 삶이 안타깝고, 남편과 사별 후에 전처 소생들을 잘 양육한 그 아내는 존경스럽네요.
남편 잃은 그녀, 아빠도 친모도 잃은 그 딸들..
그 세 모녀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을 날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군요.
항아리 공주님ㅡ 히야시 요즘도 사용되는 단어인가요ㅡ 우리 입에는 많이 사용된 용어라 저도 모르게 나오는 단어입니다ㅡ 그후 세 모녀가 어떻게 된 지는 소식이 끊어졌는데, 아마 두 자녀가 잘 양육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은 신이 돌보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ㅡ
오늘 항아리공주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근사한 생신축일이 되시기 바랍니다ㅡ
@다저스 다저스님 생일 축하 감사합니다. ^^
남편과 딸들에게 축하금 받고 지금은 아주버님 내외분과 이른 저녁 먹으러 포천으로 가고 있어요.
생신, 이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고요ㅎㅎ
공주라시니 재밌긴 했는데 자꾸 공주라시니 면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ㅎㅎ
그냥 달항아리님이나 짧게 달님이라 불러주시길 부탁드려용^^
다저스님의 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접해보니
인간은 참 다양하고 다양하게들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 하는구나..
생각 합니다..
인생이 너무 짧고도 짧아 허무하니..
우리는 평화롭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를
힘써야겠어요..ㅎㅎ
여러 인물들이 저의 글에 등장하고 있죠ㅡ 인간의 삶은 천인 천색, 만인 만색입니다ㅡ
다저스님의 글을 아직 다본것은 아니지만 다양하고 파란만장한 글 을 보며 인생공부 하고 있습니다 ᆢ
선인초님 감사합니다ㅡ
언제나 찾아서 읽는 글입니다
오늘도 감사히 읽었습니다
몸부림님 부족한 제 글을 찾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먼 지난날의 과거사를 어제일 처럼 잘 써주셨네요
술은 고독함을 이기려고
자기 자신을 잊으려고 마시는 경우도 있지요
저도 술 고래소릴 듣기도 했지만
바닷가에서
높은 산에 올랐을 때
맥주 생각 간절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스스로 억제하며 살았습니다
이젠 정말 남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도 챙기시고요
바다님 술을 끊으셨군요ㅡ 저도 이제 술을 잊고 살아갑니다. 술을 끊으니 다른 즐거움을 많이 발굴하고자 노력합니다ㅡ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ㅡ
지금은 메스컴을 통해
건강 상식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가져 그런지 술도
적당히 즐기는 분위기인데
예전엔 직장인들도 회사
끝나고 술로 스트레스 풀고
그러는거 저도 많이 봤어요..
L 분 께서 너무나 일찍
돌아가신 첫부인을 잊지
못하는 애통한 마음 술에
의존하다
결국 당신 삶도 온전하게
살지 못하시고 안타깝게
일찍 가셨지만
그분의 순정과 청렴한 마음을
재혼한 부인께서
알아봐주셔서
끝까지 보살펴 드리고 남은
두자녀까지 뒷바라지 해주셨나봐요..
착하신 부인과
자녀분들이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고 계시길
바래봅니다~^^
선하신 보라님께서 좋은 바램 선물하셨네요ㅡ 인생은 정말 예측불허이고 공식이 없는 삶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타인의 어려운 삶에 위로와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ㅡ보라님 댓글 감사드립니다ㅡ
결국은
술이...
일편단심에 곧은 이를 데블고 갔군요 ㅠ
위.아래로 10살 차인 큰언니와 막내가
술에 의지했다가 좋치않은 말로를 보믄서....쯥
참. 참참
유구무언입니다!!
션한 하루되세여~
아이고ㅡ 귀하신 희수님이 뜻밖에 방문해 주셨군요ㅡ감사드립니다. 우리 팝힐에도 노래 부르러 한번 오시죠ㅡ월드팝만 가시지 마시고ㅡ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