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하나, 하나님!
요 17:11~23
<관계를 즐기시는 하나님>
지난 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행복은 어디서 올까요?
① 먹고 싶은 음식 찾아서 먹는 일, 행복입니다. <식도락의 행복>
② 가보고 싶은 곳, 찾아가서 마음껏 구경하는 일, 행복입니다. <여행의 행복>
③ 최근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가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 혼자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면서 삽니다.
<세상을 떠난 행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④ 연애하는 행복도 있습니다. 육체의 쾌락을 찾아가는 행복 <쾌락의 행복>
그러고 보니 행복이 참 다양합니다.
<식도락의 행복> <여행의 행복> <속세를 떠난 행복> <쾌락의 행복>
이외에도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은 <책 읽는 행복>
등산이나 운동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하는 행복>
이렇게 행복의 종류가 많고 다양한데, “목사님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이러면요?
행복은 멀리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은 내 안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암튼 우리 온고을교회 성도님들은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요, 행복 중에서 진짜 행복이 있어요! 그게 어떤 행복일까요?
지난 주 주일 설교 제목 기억나십니까?
“관계를 즐기시는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삼위 간에 서로서로 관계를 즐기십니다.
삼위일체의 이 관계에서 “천지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삼위일체의 이 관계에서 “죄인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삼위 간의 관계가 완벽합니다. 조금의 틈도 없습니다.
이 완벽한 관계가 천지창조, 죄인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관계에서 행복을 찾고 관계에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유착>
제가 요즘 병원을 다닙니다.
전립선으로 전북대 병원을 다니고요, 쇄골에 금이 가서 예수 병원을 다닙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좋은 치료를 받고 얼른 회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처방해 준 약을 제때 잘 먹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있습니다.
운동 열심히 해서 <운동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 중요합니다. 그래서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든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관계의 행복>입니다.
누구와의 관계가 중요합니까? ~ 의사와 환자 사이 관계입니다.
의학용어로 이것을 “라뽀”라고 한다지요?
환자가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라뽀가 잘 형성되었을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중요한 줄 모르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이거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어떤 병원을 가든지 그 의사를 신뢰해야 합니다.
제가 지난 주 수요일에 3개월 만에 전북대병원에 갔습니다.
가기 전에 꼭 물어봐야지 하고 메모까지 했습니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요즘 ‘내가 갑자기 죽게 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부쩍 많이 합니다.”
정말입니다. 함께 치료받던 죽마고우가 사망하고, 주변에서 우울한 소식이 들립니다.
아내와도 그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갑자기 데려가시면, 당신은 이것저것을 해야 돼!”
그래서 의사에게 물었던 겁니다. 그때 의사의 대답이 뭔지 아세요?
“그렇게 안 죽으니까 염려 마세요!”
간단명료하게 대답합니다.
저는 그 말을 온전히 접수했습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나를 데려가지 않으신다!”
담당 의사와 나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라뽀” 신뢰가 있어요!
부모가 자녀를 출산하면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신뢰관계입니다.
이것을 특별히 “유착 관계”라고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관계, 유착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간혹 주변에 보면 부모 자식 간에 별로 정이 없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와 자식 간에 “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유착 관계>
환자가 행복하려면 의사와 “라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와 행복하려면 어린 시절 “유착”이 제대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집니다.
부부간에는 피보다 더 진한 끈끈한 정, 유착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일심동체가 무엇입니다. 바로 유착관계입니다. 라뽀입니다.
오늘날 부부간에 이가 나는 것, 신혼 때 유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라뽀, 유착, 이것이 꼭 필요한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우리, 이 관계에서 라뽀, 유착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이 관계에서 라뽀가 이루어지고, 유착이 형성되기를 간구합니다.
제가 오늘 본문으로 11절로 23절까지를 정했습니다.
본문 안에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22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일, 예수님이 이 기도를 간절히 하고 계십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하나, 하나님!”으로 정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하나님!
“하나가 되어야 하는 하나님!”
<하나,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첫째, 거룩해야 합니다. (14절)
둘째, 정결해야 합니다. (15절)
셋째, 영광을 입어야 합니다. (22절)
첫째, 거룩하라. (14절)
거룩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구별되는 것이 거룩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르르 가는 길에 휩싸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었다 함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내가 내 제자들을 거룩하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14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14절)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유착관계를 맺으면 세상이 싫어합니다.
이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을 감수하지 않고는 우리가 하나님과 유착관계를 못 이룹니다.
바로 이것이 거룩입니다. 할렐루야~
둘째, 정결하라. (15절)
(15절)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심은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유착관계를 이루어 하나 되는 일, 지금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이 기도합니다.
악에 빠지지 않는 것, 바로 “정결”입니다.
셋째, 영광을 입으라 (22절)
(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영광은 본래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진정한 영광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영광은 풀의 꽃과 같고, 풀잎에 맺힌 이슬에 불과합니다.
아침에 잠깐 영롱하게 맺혔다가 햇볕에 사라지고 맙니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광이 아니라 진정한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성자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영광으로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할렐루야~
거룩하게 되고, 정결하게 되고, 주님이 주시는 영광을 얻어서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우리는 또 우리가 받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되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관계 속에 있는 행복>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숱한 관계를 맺어나갑니다.
태어나면서 부모와 자녀 관계가 시작됩니다.
부모는 이 때 자녀와의 ‘유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점점 자라면서 이웃과 관계를 맺어나갑니다.
이웃과의 관계 원칙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낮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케노시스’라고 합니다. 그리스 말입니다.
케노시스는 자기 낮춤, 겸손이지만 진솔하고 진정한 겸손입니다.
케노시스의 모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케노시스”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성자 성령 3위가 공히 일체입니다.
어느 한 위격이 더 높거나 더 낮지 않습니다. “동등된 본체”입니다.(빌 2:6)
그런데 피조물 인간으로 자신을 낮춥니다.
성부 성자 성령 3위 간의 관계가 바로 이러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로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성부 성자 성령 3위일체의 관계에 비롯된 걸작품입니다.
관계가 좋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삼위 간의 관계가 완벽했기 때문에 우주만물, 천지가 탄생했습니다. 할렐루야~
관계로서 피워낸 꽃 중에서 최고의 꽃이 우주만물, 천지창조입니다.
<관계로서 행복합시다>
오늘 설교를 듣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무수한 관계들을 점검해 봅시다!
부부관계, 가족관계, 친척 관계, 친구 관계~ 하나하나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하고 깨어진 관계들이 많습니다.
이 관계들을 다시 살릴 수 있으면 살리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관계를 바르게 세울 수 있습니다.
“관계가 행복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 “하나, 하나님”
“나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하나님!”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관계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되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도와주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내용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