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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복음(요 3:1-8)
사중복음은 성결교회의 전도표제요, 신앙의 핵심입니다. 사중복음은 마치 합창에서 소프라노, 앨토, 테너, 베이스의 4가지 화음을 통해 하나의 아름다운 합창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중생, 성결, 신유, 재림, 사중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의 네 가지 측면을 조화롭게 체험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4중복음을 제창한 심프슨목사는 간증하기를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10개월동안 믿음을 가지려고 몸부림을 치며 자신의 죄와 의에 대한 갈등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비로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함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중생의 체험입니다. 그리고 그후 죄의 자각과 함께 죄를 이길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죄를 이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성령체험을 사모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성령세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결체험입니다.
이 때가 중생을 경험한지 15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8년 정도 지날 때 몸에 질병이 생겨 커다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때 우리 예수님은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의 질병으로부터 치유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믿고 기도하다가 신유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에게 남은 마지막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재림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4중복음은 그가 어디서 이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하는 중에 몸으로 체험하면서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의 복음을 듣고 사중복음을 체험한 분이 바로 성결교회를 시작한 미국사람 카우만과 길보른목사였습니다. 이들을 성령충만을 체험한 후 동양선교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와서 일본의 나가다 쥬지목사와 협력하여 동양선교회를 설립하고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이들이 세운 동양성서학원을 졸업한 한국사람 정빈과 김상준씨가 1907년 5월 30일에 서울 종로, 지금의 무교동(염곡)에서 ‘동양선교회 중앙복음 전도관’을 설립한 것이 우리 한국 성결교회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들이 전한 복음이 바로 사중복음이었습니다. 이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교단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영혼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증거하고 전도집회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 사중복음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함을 받은 중생을 체험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다가 성령세례를 체험해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고 각종 병든 자들이 고침받는 신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중복음을 이번 주부터 네 차례에 걸쳐 다시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는 중생의 복음을 통하여 다시 한번 우리가 받은 중생을 확인하고 중생을 체험하고 중생을 증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생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새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겉모양의 변화가 아니라 그 심령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 의지로 선택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거듭남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 속에 예수의 생명이 들어옴으로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1절,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이 사람은 바리새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독선적이며 외식주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당시 바리새인들은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 비추어 말하면 독실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시대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누구보다도 안식일을 잘 지켰고 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도 철저히 드리며 철두철미하게 율법을 수호하고 지키려고 힘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마23:23).
또 이 사람은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개역성경에는 관원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관원이란 지금의 국회의원처럼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 본문 10절에 보시면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절,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선생이라는 말입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율법을 그만큼 잘 아는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또 이 사람은 상당한 구도적 자세를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와 지식에도 불구하고 젊은 예수를 찾아와 신앙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겸손한 구도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랍비여, 선생님이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이런 놀라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일을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부자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는 어느 면으로 보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에게 영적인 갈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것을 다 가졌는데도 그의 영혼의 갈급함을 채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않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 찾아온 목적, 이 사람의 마음속에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꿰뚫어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똑똑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하는 데 거듭남이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스스로 자문자답하여 보십시오.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구원을 받았습니까?"하고 질문을 받을 때에 여러분은 서슴없이 "예, 구원을 받았습니다"하고 대답을 할 수가 있어야지 "나는 교회를 오래다녔습니다" “나는 봉사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헌금도 많이 했습니다" 하는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오셔도 부끄러움 없기에 예수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중생의 필요성
그러면 중생, 즉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거듭남’은 ‘born again’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원어의 뜻은 ‘아노덴’ ‘위로부터 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그런 뜻입니다. 사람은 어머니로부터 한번 태어납니다. 이것은 육적인 탄생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아무리 고상하고 똑똑해도 육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육체(flesh). 정확히 말하면 죄 덩어리입니다. 죄 덩어리 상태로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고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혈과 육의 죄악된 옛사람을 가지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거듭남은 죄악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전 제품을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다 녹여 버리고 신제품으로 다시 찍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거듭남, 이것은 새로운 탄생이요, 새로운 창조요, 영적인 혁명입니다. 오직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같이 다 갖추었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모든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거듭남이 최고의 축복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참석한 여러분 모두에게 거듭남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중생의 방법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4절에 보면 니고데모는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어 어떻게 모태에 두 번 들어갔다 나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보이는 육신의 세계만 알았지 영혼의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똑똑했지만 영적으로는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을 설명해 주십니다.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물세례를 말하기도 하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죄 씻음의 의미로 물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란 죄인을 회개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로마서 10:17에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우리는 자연히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서 믿음으로 내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에게 들려져서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감화하고 계시는데도 그것을 거절한다면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이며 불신인 것입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고전 12:3)에도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감화시켜 예수를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하고 믿게 함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임을 아시고 그를 거절하여 성령을 소멸하고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6-8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어디로 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시원합니다. 토네이도같이 강한 바람은 나무도 뿌리채 뽑아 버립니다.
집도, 차도 들어서 날려 버립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와 같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 없던 죄의 뿌리가 뽑힙니다.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세상적인 놀이가 유치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성령의 바람은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성령의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셔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용광로 속에서 예수와 함께 나의 옛 자아가 죽고 예수와 함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거리에 나가서 담대하게 외칩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고 외쳤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사도베드로에게 찾아와 호소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 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행2:38-3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처럼 자신의 죄에 대하여 깨닫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거듭남을 체험하는 지름길입니다. 회개는 세 단계의 과정이 있습니다. 1)지적으로는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2)감정적으로는 죄를 슬퍼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은 "슬퍼한다" "돌이킨다" "마음을 고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고 말했습니다. 그같이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에 대하여 통회하는 아픈 마음을 가지고 의지적으로 죄를 고백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3)의지적으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죄를 떠나야 합니다. 사실 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면 스스로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이 내안에 거하심으로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생, 거듭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행 3: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했습니다. 죄를 진실되게 회개할 때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이 거듭남의 감격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회개하고 거듭났을 때 아침 햇살이 눈부신 보석처럼 마음에 박혔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회개하고 거듭났을 때 하찮은 풀 한포기도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자신이 거듭났기 때문에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겉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속사람이 변했습니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3. 중생의 결과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그대로 믿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으며 또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승천하시고 장차 나를 위하여 재림하실 것을 의심없이 확신을 갖고 믿는 사람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진실로 받아드리고 말씀대로 믿어 영생과 구원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된다"는 말씀은 우리 기독교인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복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고 영접하는 것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은혜를 받으면 그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첫째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함이 없고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은 것처럼 여러분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용서받는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거듭난 사람은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롬 1:17)"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함같이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께서 여러분 자신들의 죄를 책임져 주시며 의인으로써 인정함과 의롭다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째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는다는 것은 곧 영접하는 것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한다는 말이며 예수를 영접하고 중생한 사람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제까지는 내 뜻, 내 주장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내 육신, 내 소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생활을 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써 말씀대로 순종하고 뜻대로 행하는 것이 구원의 도리와 방법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많은 스펙과 인기와 업적을 쌓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앞에 나아와 회개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심으로 영생을 가진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생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므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