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살려면 (마태복음 4:1-11)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11월 13일 오후 3시 31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한 북한 병사가 탈출했습니다. 그 북한군 병사는 공동경비구역의 북한군 추격군의 총격을 받아 몸 5∼6군데 총상을 입었습니다. 10일후 11월 23일에 경비사령부가 cctv를 공개하였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자유를 향해 달리는 장면을 온 국민이 보았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이었고 몸에 다섯발의 총알을 맞았습니다. 회복된 그 병사는 소녀시대의의 지 라는 노래를 좋아하고 미국 영화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25세 청년과 다를 바 없는, 이 병사는 왜 목숨을 걸고 총알을 맞으면서 탈출했을까요?
패트릭 헨리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탈출한 북한 병사는 그 말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이 이 영화같은 영상을 보고, 혹은 탄식하고 혹은 걱정하고 혹은 안타까워했습니다. 죽어가던 그 북한 병사를 살려낸, 총을 다섯방이나 맞은 병사를 살려낸 의사는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온 국민에게 한편의 병원 드라마 같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는 것은 영혼의 자유와 참 평화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과 같은 억압과 노예의 세상에서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북한 병사처럼, 죄와 죽음의 노예로 살던 우리들이 영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영혼의 자유세계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나아가 죽음 이후 영원한 안식과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해 두신 것은 생명과 평안, 기쁨과 행복입니다. 북한의 병사가 대한민국의 선의를 믿고 달린 것처럼,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의를 믿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북한 병사가 겪었던 총상과 아픔은 우리에게 오는 고통과 환란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꿈꾸는 소망을 이루는 하나의 단계와 과정이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자유와 평화, 영원한 안식을 위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믿음으로 살려면, 신앙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45분경 포항에서 진도 5.4의 지진이 났습니다. 저도 그 지진을 감지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는데 집이 흔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이 골조가 약한가? 바람에 흔들리네... 이러다 무너지는 것 아냐?
그런데 조금 후에 지진이 일어났단 말을 들었습니다. 포항에서는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건물에 금이 가고 아파트가 피사의 사탑처럼 옆으로 비스듬하여 무너져 내릴 것 같고....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주택과 공장, 상가, 학교등 건물 피해가 2만 5천 건이 신고 되었습니다.
사람이 불안하거나 혼란스럽거나 고통스러울 때, 초조하거나 헤매고 흔들리는 것은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가 허술하고 부실하면 쉽게 흔들리고 금이 가고 부서지는 집과 같습니다.
그런데 포항의 포항제철 건물은 지진의 피해가 전혀 없었습니다. 약 40년전 당시 포스코의 박태준 회장이 건물을 지으면서 천년가도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짓겠다면서 제대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그 건물을 지을때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지을게 뭐 있어? 하는 말도 했습니다만 이번에 지진을 겪으면서 역시 박태준이네... 하는 말을 했습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무너지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성도가 믿음 생활 하면서 돈이나, 욕망이나, 어디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믿음의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태풍에도 잘 견디지만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태풍에 넘어지는 것을 종종 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레드우드라는 미국의 삼나무입니다. 둘레가 30m에 달하고 높이가 100m가 되는 이 나무는 수명이 2-3천년 된 것이 많습니다. 이 나무가 이렇게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것은 그 뿌리가 깊고 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깊이 알고 넓게 알면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사탄의 시험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 는 말씀으로 대적하셨던 것입니다.
한때 구원파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면 구원받았습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예, 구원받았습니다. 하면서 구원의 진리를 알고 있었다면 구원파가 힘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니까 많은 성도가 구원파에 미혹되고 구원파의 리더가 운영하는 세월호 사건이 나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이 나라가 혼란에 빠진 것은 어찌 보면 기독교인들이 말씀의 기초가 부실한 것도 한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외우시기 바랍니다.
둘째, 믿음생활을 잘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만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건성건성 듣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순종하지 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요? 전에 시무하던 교회에 불이 난적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입원하고 있어서 심방을 갔더니 그분이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불이 났는데 너는 잠만 자고 있느냐? 그래서 서둘러 퇴원 수속을 밟고 그날로 퇴원했다고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에 말은 귀로 듣습니다. 몸짓으로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림으로 말을 전하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말씀도 다양한 채널이 잇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이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을 강해한 말씀을 듣다가, 설교를 듣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웨슬리가 그랬습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바울이 그렇습니다.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기드온이 그랬습니다. 주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고넬료가 그랬습니다. 마음속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엘리야가 그렇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동방박사가 그렇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의 주파수... 영파가 맞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이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집에 좋은 TV를 설치합니다.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기계입니다만 전원, 전기가 있어야 하고 안테나나 유선이나 연결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채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 티비 화면이 나오고 볼 수 있습니다. 채널을 맞춰도 고장난 티비는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병들면 고장난 티비와 같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엘리 라는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의 집에 어린아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밤, 그 아이가 자고 있는데, 사무엘아 하고 누가 불렀습니다. 아이는 엘리 제사장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아니다 부른 적이 없다. 조금 있다가 다시 사무엘아.....하나님의 소리를 소년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소리로 알고 달려갔습니다만 엘리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그 소년을 부른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소년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 가문에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날 엘리는 사무엘을 불러 어제 밤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달라고 했고, 소년은 자기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무엘이 들었던 말씀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얼마 전에 어떤 사람, 하나님의 사자가 들려준 말씀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왜 같은 말씀을 다시 들려 주셨을까요? 예, 엘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살길이 열립니다. 니느웨성을 하나님이 멸하시리라 계획하시고, 요나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이 무너지리라. 니느웨성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이 다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그 성을 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길이 열립니다. 엘리는 하나님이 살길을 주셨지만 그 말씀을 제대로 듣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가문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5:25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자는 살아나리라.’ 이 말씀을 꼭 마음에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의 철학, 인생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상이나 이념으로 자신의 신념체계를 형성합니다. 성도들은 그것이 인생관이요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사상이 되고 이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언어, 생각, 행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험하는 자가 시험할 때마다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내게 절하라.... 했을 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을 섬기고 다만 그에게 경배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를 물리쳤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한 성경으로 신앙의 텍스트를 삼고 살아갑니다.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나훔 1장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어떤 성도가 찾다가 내 성경에는 나훔이 없어...했습니다. 내 성경에 있는 말씀이 누구 성경에는 없을까요? 다 그 내용이 있고 꼭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여 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꿈과 희망이 같아야 합니다. 다른 성도와 내가 다르다면 조심해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잘못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늑대를 키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늑대 우리에 늑대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를 늑대 우리에 넣어보았습니다. 싸울까요? 다만 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오줌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다니고... 늑대들은 그저 지켜보고 있는데.. 약간 비웃으며 같잖다는 느낌...그 다음에 늑대개를 넣어 봤습니다. 울프 독은 늑대보다 덩치가 큰 시베리아, 알라스카에 사는 개인데 늑대와 거의 같습니다. 울프 독을 늑대 우리에 넣었더니 서로 혀로 냄새 맡고 핥아주고, 꼬리치고.. 곧장 늑대 무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울프 독은 늑대과요 늑대 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알아보았습니다. 서로 같은 종인 것을 아는 데는 단 몇 초였습니다. 본능적으로 알아봅니다. 그들은 한 형제이자 친구였습니다. 서로 으르렁 거리지 않습니다. 서로 물어뜯고 싸우지 않습니다.
진돗개를 보는 늑대의 모습은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울프독을 대하는 늑대의 모습은 한 가족, 한 형제의 친밀감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피를 나눈 한 형제자매입니다. 같은 과, 같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성경 말씀이 내 뼛속까지 스며들고, 성경말씀을 내 인생관이요, 가치관이요 사상이요, 이념으로 삼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