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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행가가 해외 산간 오지 한 가정을 방문해서 가족들의 생활모습을 소개하는 영상이 TV로 방송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과는 단절된 듯 너무나 현대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산간 오지의 생활모습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주선을 우주밖으로 보내 우주탐사를 하고 최첨단 가전제품으로 가정이 무인화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자동차도 스스로 운전하는 이런 시대에 전기도 없고 상수도 하수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수 백년 전의 어느 시골의 집같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자제품이 기본적으로 갖춰진 세상의 많은 집들과 달리 전기로 돌아가는 제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집의 모습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집에서 두 형제가 결혼해서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며 함께 생활하고 있으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식자재도 가공식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조그마한 밭에서 농사지은 옥수수와 소금에 절여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돼지고기 몇 덩어리가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활할까? 얼마나 불편할까? 그래서 얼마나 생활형편을 걱정하며 불만섞인 언행으로 살아갈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TV속 그 사람들은 세상 무슨 걱정이나 근심도 없고 얼굴에 그늘진 모습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평온하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불편한 생활속에서도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산간오지의 이 가족들을 보면서 오히려 정말 이 시대의 수많은 도시인들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 각종 문화혜택을 누리고 차를 몰고 다니며 온갖 먹을 거리가 풍부해서 맘만 먹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사 먹을 수 있고 각종 재료를 손쉽게 구해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 현대 사회의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좋은 환경과 물질적인 부함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오히려 여유는 찾아볼 수 없고 불평과 불만과 시기, 질투, 분노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 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시대 참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자기 자신의 안락함을 핑계로 가족을 돌보지 않은 이 시대 저와 여러분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상 생활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며 참된 기쁨도, 참된 평안도, 참된 자유도 참된 여유도 누리지 못하며 근심과 걱정, 원망과 불평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족이 분열되고 가정이 해체되어 혼자 살아가는 1인 세대가 늘어나는 이 상황의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가치관이 문제일 수도 있고 역사관, 여러 사회문화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경제문제가 이런 상황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시대의 가정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정의 의미를 상실하며 가정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며 인간의 맘대로 가정과 가족을 대하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커졌습니다. 즉 가정의 중요성을 망각함과 동시에 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고 가정에서 제대로 양육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서로 관계가 제대로 서지 못하니 이것이 결국 사회문제가 되고 국가 문제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이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 이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 빨리 해결해야할 문제는 경제문제나 안보문제나 외교문제가 아니라 가정문제라는 사실을 이 나라 정부 요인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결국 가정이 불안하며 전 세계가 큰 혼란에 빠지고 큰 파멸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정행복주일’이라고 정하고 5월 가정의 달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속에서 우리가 정말 가정의 의미를 회복하고 정말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의 가정이 축복된 가정으로 행복이 충만한 가정으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 첫째로는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를 짝지워주시며 인류 최초의 부부를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왜 부부라는 가정의 기본 관계가 생기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혼자 사는 것, 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꼭 부부관계뿐 아니라 무엇을 하더라도 어디에 있더라도 혼자서 지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셨던 것입니다. 성적인 관계, 혼인의 관계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성을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 사회관계에서 이성, 동성을 떠나 혼자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서 벗어난 생각입니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첫째는 부부관계, 둘째는 부모자식의 관계, 셋째는 형제지간의 관계입니다. 이 가정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관계형성을 하고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연습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은 사회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가정에서 한 생명이 태어나고, 그 귀한 생명이 가정에서 부모의 올바른 가르침과 행동을 보면서, 또 부모와 형제자매 간의 올바른 교제 속에서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간다면 가정부터 바람직한 인격훈련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런 가정분위기에서 성장하면 사회속에서도 바른 가치관으로 제대로 분별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혹 학교나 교회나 기타 여러 또래모임에서도 반듯한 가정에서 자란 인격이기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올바른 가정에서 올바른 교육이 나오고 올바른 교육에서 올바른 인격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방금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인 삶을 잘 연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회적 훈련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서고 국가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도 가정이 바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회생활의 기본을 세워나가시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기계도 사용할 줄 모르거나 고장이 나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우리의 가정을 우리가 잘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도록 만들 때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사회생활과 우리의 모든 인생의 일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먼저 가정에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8절을 근거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혼자 살 수 없다고 하신 이유를 발견한 사람이라면 저와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서로 도와주고 서로 도움받고 서로 협력해서 지내야할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에서도 서로 돕고 협력하며 지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삶의 방식으로 서로 돕고 나눠주는 삶을 살 것을 요청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요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귀찮다고 말하며 너 따로, 나 따로 그냥 따로따로 신경쓰지 말고 지내자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본성을 버리는 사탄마귀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목사님, 요즘에 혼자서도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십니까? 또 혼자 살면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에게 얽매이지 않고 얼마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또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러십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문명이 발달해서 혼자서도 다 해결할 수 있고 혼자서도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고 할지라도 일단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는 이 가정의 도움을 기초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까? 누군가 결혼했기에 가정이 이뤄졌고 그렇게 살다 자녀를 낳고 키우며 커가는 자녀들이 형제간의 우애를 배우고 때론 다투고 때론 아프고 때론 슬픈 일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희생하고 양보하며 돕고 위로하며 사랑하였기에 장성한 나이가 되어 다시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나에게 가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생이 성장할 수 있었겠습니까? 가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의 장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정을 정말 소중히 여기며 다른 무엇보다도 가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지켜 나감으로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하여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더욱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주인되심을 인정하며 섬겨야 합니다.
창세기 2장 21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앞에서 인간이 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이 혼자서 뭘 해낼 수 없이 함께 서로 위해주며 서로 도와주며 해결해야한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언자, 협력자,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그 조언자, 협력자, 동역자를 누가 해결해주셨습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전에 인간을 만드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죠. 그 첫 인간인 아담을 위해 조언자, 협력자, 동역자로 하와를 만들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첫 가정이 세워졌습니다. 그럼 가정의 설계자, 가정의 건축자, 가정의 창시자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22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께서 먼저 아담을 만드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에 그 여자를 아담에게 데리고 와서 가정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이 둘을 짝지어 주어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가정을 이루신 하나님의 뜻은 이들이 자녀를 낳고 성장하여 다시 이런 가정을 꾸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만드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널리 선포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가정이 믿음의 도구요, 가정이 전도의 도구요, 가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성전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참된 가정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입니다. 참된 가정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성전입니다. 참 가정은 하나님만이 이 땅의 주인이신 것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을 통하여 생육하며 번성하며, 서로 사랑하고 돕고 하는 관계 속에서 행복과 기쁨과 위로와 평안과 격려와 용기와 안식을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가정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니 예수님이 주인이 되게 해야 하고 예수님이 주인이시니 당연히 예수님의 뜻대로 아름답게 잘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잘 모시고 그 뜻대로 잘 유지하는 가정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영육 간에 풍성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십수년전에 제가 부목사로 사역할 때 심방을 가보면 시중에 파는 액자를 집 식탁에 붙여놓은 집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똑같은 글귀라고 식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참 의미있는 글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집의 머리시오,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오,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라.” 이런 글이 조각된 액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가족으로 모시고 그것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시편 128편 1,2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편 128편은 전체 시의 내용이 가정에 대한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28편 3절과 4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가정이 복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정이 잘 되는 길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복받을 길, 우리의 가정이 정말 행복할 방법은 여호와가 주인이신 것을 인정하고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주인의 다스리심에 민감하며 주인되신 하나님의 통치속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가정을 지켜주시는 분도, 사회를 지켜주시는 분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지켜주시는 분도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인이 우리의 가정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항상 그 분의 임재속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가정이 잘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키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의 주인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가정이 제대로 설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주인으로 모셨다면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가족 간에 오직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도우며 살아갈 때에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사랑과 소망과 안식이 넘쳐나는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 마지막 셋째로는 숨김이 없는 가족들이 되어야 합니다. 투명해야 합니다. 소통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25절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첫 가정인 아담과 하와의 부부는 죄를 짓기전에는 서로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온 몸을 벌거숭이로 나체로 살았어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단들은 이 본문을 육체적인 묘사로 생각하며 성관계적인 측면으로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제 부부는 벌거벗고 지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들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을까요? 죄를 짓기 전의 하나님께서 만드신 부부는 가릴 것이 없이 모두 소통했고 그 소통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 부부간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금전적 문제, 자녀양육의견이나 시댁,처가를 대하는 모습에 대한 갈등, 사회생활속에서 생기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한 갈등... 등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수 있겠죠? 근데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하나로만 꼽으라고 한다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불통입니다. 소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입니다. 부부문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족끼리도 대화가 없습니다. 사회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지 않습니다. 그냥 무시합니다. 그냥 피해버립니다. 싸우기 귀찮습니다. 대화하면 더 싸우는 것같으니 그냥 그러려니하고 말아버립니다. 자녀들에게 한 마디하면 자녀들은 문을 꽝하고 방에 들어가 문을 잠궈 버립니다. 그럴 때에 그냥 내버려둔다든지 아님 그냥 더 다그칩니다. 왜 그럴까요? 차근차근 이해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안 풀릴 것이 전혀 없는데 대화가 단절되는 이 시대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대부분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27절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불행은 난처한 일과 말하지 않은 채로 남겨진 일 때문에 생겼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어떤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모든 일은 서로 대화하며 서로 불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감정이 나눌 때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꿍하고 숨기고 있으니 그냥 모른 척 살아가니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고대 문헌에는 “남자는 자기의 옆구리에서 없어진 갈빗대를 찾기 전까지는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여자 또한 남자의 품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몸부림을 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자기의 아내를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나의 갈빗대, 키티” 부부가 서로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서로 아끼며 상대방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때 그들은 타인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타인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부부가 될 것입니다. 결혼한 이상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어떤 부끄러운 일도, 어떤 감당하기 힘든 문제도, 어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부부간에 해결해야 합니다. 감추고 숨기고 따로 행동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어쩌면 결혼이라는 상태, 부부라는 상태는 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도 성공도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상처도 모두 배우자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만드시고 하나되게 하시고 어떤 치부를 보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만드셨습니다. 부부가 평소에 깊은 대화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도 무난히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과 몸을 당신의 배필에게만 다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결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부부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것입니다. 비밀과 위선이 있어서는 절대 안되는 존재입니다. 요즘 시대 많은 부부들이 “너는 내거고, 나는 내거다”라며 살아갑니다. 즉 뭐든지 자기 우선으로 일이 처리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부부는 “당신은 내 거고 나는 당신거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감추인 것이 없이 서로 공유하고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자녀들에게 까지 연장되어지고 가족전체가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소통되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저는 결혼하고 한 6~7년간 정말 힘들었습니다. 뭐가 힘들었냐? 그 때는 부목사인데 새벽기도회는 담임목사님도 나오시고 결혼 전부터 사역하며 결혼 후 몇 개월동안 있었던 분당에 있는 교회는 제가 새벽차량운행을 했었습니다. 부산에 내려가서 두 교회에서는 기도회전에 각종 음향세팅과 조명등 미리 준비하면서 기도회 참석하든지 어떤 때는 말씀선포까지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종종 사모는 결혼하고 타지에 와서 너무나 외로워서 낮에 혼자 쓸쓸히 지다가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 인도도 해야하는데 새벽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야 했습니다. 경상도 사람이라 대화에 무뚝뚝하다고, 교역자 사역해야니 피곤하다고 한다고 이런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피하면 서로의 관계에 문제의 골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 고주리에 들어와서 장모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통해 알게된 것인데 제 와이프 사모는 항상 어릴 때부터 문제가 있으면 대화로 푸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특히 장모님과 너무나 거리낌없이 깊은 대화를 하며 감정이나 의견차이를 그 자리에서 풀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결혼해서도 그러기를 원했는데 이 남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못하고 무뚝뚝함에 항상 사역핑계대니 얼마나 서로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래도 그 때 참 많은 대화를 나누며 새벽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좁혔던 부부관계가 있었기에 지금도 완전한 소통의 부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나마 다른 어느 부부보다 소통하며 살아가는 부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소통속에서 무엇보다 더욱 저는 감사한 것이 있는데 사모가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고 기도의 제목을 함께 공유하고 영적인 상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코드가 맞아야하는데 영적인 코드가 맞다는 사실만큼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이런 부부의 분위기가 요즘은 저희 애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최근 하빈이,하윤이를 보면서 이 애들이 자기 감정, 자기 일상생활, 신앙적인 궁금함등을 이야기 꺼내서 꽤 오랜시간동안 이야기 나누고 토론하고 서로의 느낌을 나눕니다. 학교생활, 교우관계, 선생님에 대한 느낌등 진로에 대한 문제까지 온갖 이야기를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나누는 집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주변의 분들에게 이야기들으면서 정말 우리 집 애들은 참 소통을 잘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말씀으로 소통하고 말씀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소통이 끊어지지 않아야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세상에는 어두움과 죄악이 가득하고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하며 항상 좌절과 낙담의 상황을 우리에게 안겨다 주지 않습니까? 그런 세상에서 생명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희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능력은 우리 주님의 말씀속에서 나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의 가족이 하나님의 생명가운데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속에 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계속 되새겨질 때 우리는 하나님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소통도 말씀의 소통, 기도의 소통, 은혜의 소통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0절입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가족끼리 거리끼는 것이 없이 서로 부담없는 사랑의 관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부부간의 어떤 벽이나 어떤 갈등이 사라지기를 소망하고 부모 자녀, 형제지간에도 정말 소통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며 화합하는 참 아름다운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행복주일 가정을 축복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기대하는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우리의 가정을 항나님께 올려드리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도록 내어맡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정의 행복 기준을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탈피하고 이제 주님의 가치관으로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가정이 행복해지기 위해 돈이 있어야 하고 권력이 있어야 하고 명예가 있어 하고 자녀들이 출세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등 각종 세상적인 조건이 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주시고 서로 소통이 되어지고 서로 힘을 합칠 수 있으면 그게 복된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가정이 파탄이 나는 것은 절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가정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이 주인되어주신 하나님의 나라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신적 쾌락이 행복이 아니고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이 부어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일에도 만족하고 기뻐하며 항상 감사가 넘치는 삶입니다. 세상풍파가 가정을 흔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형편이 가정을 흔들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가족들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세상의 유혹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참 천국이요, 가정이 참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실천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우리가 외부의 어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도와주고 나눠줘야 하겠지만 우선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으로 가정을 세울 소명을 받았다면 우리 모두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 이런 삶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은 아내를 돕고 아내는 남편을 돕고 부모는 자녀를 돕고 자녀는 부모를 도우며 참 천국을 이뤄가는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받는 것을 먼저 생각하지 마시고 진정 복받는 길 나눠주며 섬겨주며 참 복된 가정, 은혜의 가정, 천국같은 가정생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