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룡폭포
입춘을 지나자 산천의 자연은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해운대와 다대포에선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로 그동안 코로나에 움츠렸던 시민들을 위로해 주었다. 시냇가 버들개지에 새움이 돋기 시작하고 매화나무 가지에도 꽃망울이 맺혔다. 지난겨울 추위는 유난했다. 북극에서 몰려온 한파까지 덮쳐 국토의 남녘 천성산 홍룡폭포마저 두꺼운 빙벽으로 바뀌었고 그 바닥에 붙은 작은 연못까지 꽁꽁 얼어붙었다. 폭포는 사는 곳에서 10여km 거리나 되지만 봄기운에 빙벽이 녹았는지 궁금하여 찾아 나섰다. 녹아내리던 빙벽 잔해가 폭포 중간에 허옇게 붙어있었지만 이제 그마저도 며칠이면 눈녹듯 사라질 것이다.
3단으로 된 폭포는 사방으로 퍼지는 물보라 사이로 무지개가 나타나는데 그 형상이 용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하여 홍룡폭포란 이름을 붙였단다. 평소 폭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시원한 물줄기와 주변 경관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폭포 왼쪽으론 홍룡사 관음전이 붙어있어 폭포를 카메라에 담으면 자연스레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홍룡사가 절터를 이곳에 잡은 것도 아름다운 폭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천성산을 찾는 등산객들 중에서 폭포코스를 이용하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주차장을 갖춘 주등산로가 내원사 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홍룡사 초입에서 갈라지는 천성산 진입로에 들어섰을 때 사위는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절에서는 저녁예불이라도 준비하는지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징소리가 계곡을 은은하게 흔들고 있었다. 천성산 등산로 중 홍룡사를 물고 있는 코스는 2개로 그중 경사가 급한 코스를 지그재그로 올라 능선에 섰을 때 동행한 아내는 불안감을 드러내며 그만 돌아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진 늦은 시각이라 등산객은 만날 수 없었고 새소리나 바람소리조차 잦아들어 산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산을 내려서는데 계곡 건너편 능선 송전선로 철탑에서 연신 불꽃이 튀었다. 캄캄한 밤중에라도 선로를 쉽게 찾기 위해 만든 조명 같았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로 철탑에 인식조명을 만든 것 말고 염분이나 먼지 등 오염물질이 절연체인 애자에 끼어 발생하는 스파크 불꽃은 전기공학 용어로 ‘코로나현상’이라 부른다. 코로나현상은 선로를 관리하는 사업주체로선 다스리기가 무척 까다로워 애를 먹는다. 지금 눈앞에서 불꽃놀이처럼 철탑 아래위로 번쩍이는 스파크는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식물 생태계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안겨줄 것이다. 또한 이처럼 불필요하게 소비되는 전기 에너지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 글이 송전분야 전문가에까지 전해져 예전에 없던 철탑 스파크형 조명을 설치하게 된 배경이라도 알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천성산엔 내원사처럼 큰 절이 있기 때문인지 사찰과 암자가 여럿이다. 광천사와 보현사 용주사 화엄사가 있고 가사암과 금봉암 노전암 대성암 성물암 안적암 원효암 익성암 조계암도 있다. 암자 중엔 현직 때 매년 추수기가 되면 버스 한 대로 암자 부락을 찾아 대민지원으로 벼 베기를 도운 곳도 있다. 보릿고개는 끝났지만 70~80년대까지만 해도 천수답에서 거두는 추수는 수확량이 시원찮아 짠한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천성산 이름을 언론과 방송에 널리 알린 계기는 1999년 천성산과 금정산 구간 경부고속철도 터널공사였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끝낸 공사가 천성산에서 산지 늪이 발견되는 바람에 중지되었던 것.
당시 이곳 터널은 개발이냐 환경이냐의 문제로 정부와 환경단체 간의 갈등을 빚은 대표적인 국책사업이었다. 결국 습지파괴를 우려하는 환경단체와 일부 종교계의 사업추진 반대로 이 구간 공사에 제동이 걸려 중단되고 말았다. 그랬던 공사는 2005년 11월 30일에야 겨우 재개될 수 있었다. 당시 천성산에는 20여개의 고산 늪지와 도롱뇽을 비롯한 희귀 동식물 30여종이 서식한다고 주장했었다. 환경론자들은 경부고속철이 천성산 구간을 관통하게 되면 이곳 생태계 파괴는 불가피할 것이라 주장했고 그 중심에 내원사 비구니가 있었다.
그는 문제가 되고 있는 천성산 구간 원효터널의 발파공사 중단을 위해 2003년 2월 1차 단식농성을 시작하여 5차까지 100일간 계속하면서 막대한 국고를 낭비하게 만들었다. 퇴임 후 고향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노무현이 부산시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비구니를 찾아 위로한 사건은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 눈엔 한 편의 코미디로 비치기도 했다. 그 비구니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보다 도롱뇽을 더 받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성산 도롱뇽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속철 터널이 준공된 후 지금까지 열차가 오가고 있지만 도룡농 생태계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