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강범주(春江泛舟)> 봄날 강에 배를 띄우고
- 김충렬(金忠烈, 조선 중종, 명종 때 활약, 군수 때는 성정을 베풀고
강직한 성품으로 관의 규율을 세웠다.)
'청렴출고행화촌(靑帘出高杏花村)
주막에 표지로 세운 푸른 기는 행화촌에 높이 솟고
고주귀래일이혼(沽酒歸來日已昏)
술을 사서 돌아오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취와봉창춘수온(醉臥蓬窓春睡穩)
술 취해 배의 창문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니 봄잠이 평온하여
부지풍우만강문(不知風雨滿江門)
강 어귀에 비바람 그득함을 알지 못했다'
위 시의 배경을 추정해보면,
1552년(명종 7) 제주 목사 시절
연해의 민가를 약탈하고 있던
왜적 100여 인을 사로잡아서 목을 베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왜적이 아니라 명나라 사람을 죽였다고 무고하여
평안도의 방산진(方山鎭)에 충군(充軍)되었다.
* 충군(充軍): 조선시대 형벌의 하나.
다른 역을 지고 있었거나 역이 없는 사람에게 군역을 지운다는 뜻으로 썼으나
형제(刑制)에서는 변방의 군역에 충당하는 형벌을 말한다.
1555년 제주의 백성들이
이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온 명나라 사신들을
안내하고 영송하기 위해 온 선위사(宣慰使)에게
김충렬이 무고하다고 호소하여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군 직첩(職牒)이 환급되고 서반(西班)에 제수되어 오위장(五衛將)을 겸임하였다.
이어서 삭녕군수가 되었으나 곧 죽었다.
* 직첩(職牒): 예전에,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 사령서를 이르던 말
* 오위장(五衛將): 조선 시대,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딸려
오위의 군사를 거느리던 장수.
12명으로, 품계는 초기에는 종이품(從二品)이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한 등급 상위인 정삼품(正三品)이 되었다.
김충렬은 무고죄가 밝혀져 충군이 환급되고
오위장에 오른 후 삭녕군수가 되는 과정과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급환속에서
본인의 심사를 이 시에 빗대어 토로한 것 같다.
정의로운 조선
조선의 관료로서 정의와 대의로 살아가는 본인
자신은 이렇게 정의와 대의로만 채워져 있는데
저 밖은 음모가 나를 위험에 빠뜨릴 태세구나.
이제 평온하게 살 만 한데 예기치 않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