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은 갖지 말아야 하지만 자부심은 유지되어야 한다. 자존심은 버려야 하지만 자존감은 높아야 한다. 종종 이런 것들의 착각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와 오류는 하나님이 저들을 선택하신 목적을 상실하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예수님 탄생 때에 선민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체성과 사명의 깊은 혼란 가운데 싸여 있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와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을 만민 가운데 선택하신 이유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마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저들은 영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세속적 위대함에 그들의 소망을 고착시켰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였더라면 그들은 저들이 바라던 세속적인 칭찬과 명예도 함께 얻었을 것이지만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부터 이방의 풍습을 좇고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배도 했다. 하여 하나님은 저들을 이방의 포로가 되도록 허락하심으로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 저들의 사명을 성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위대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비천하게 되었고 지혜로운 민족으로 구별되었으나 어리석게 되었다. 원래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찬란했고 밝았지만, 저들의 불성실과 불순종은 결국 그들을 이방 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뒤지는 불행한 민족이 되게 하고 말았다. 가슴에 불만이 넘치고 억울했으나 저들은 먼저 회개하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 필요했다.
(신 4: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신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만했고 빗나간 특권의식으로 교만했다. 자만과 오만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곡해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 유대민족의 영적인 수준은 가장 어둡고 절망적이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율법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하는 외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지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 숭배자들과의 교제에 제한을 가하셨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시는 그릇되게 해석되어왔다. 이것은 그들이 이방 나라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그들과 다른 나라를 사이에 분리의 장벽을 세우는 데 이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그들의 천국으로 바라보았고,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에도 인자하심을 베풀지나 않으실까 시기하였다.”(소망, 29)
마음의 동기가 비뚤어지면 모든 행동이 잘못된다. 가장 거룩하게 보이는 행동도 가장 저급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된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먼저 거듭나지 않으면 사람은 가장 지혜로운 것 같으나 가장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하나님 아버지!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비신앙적이고 성경을 인용하지만, 하나님의 뜻에서는 먼 그런 왜곡된 신앙인이 될 수 있음을 유대의 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살피고 우리 속사람을 살피게 하소서. 자기를 세우고 자기를 살리는 이기심이 우리의 순종의 동기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