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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트 상자 속의 자화상
소허 서동진(1900~1970)
나무 위에 유채 물감
제작연대: 1930년대(초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낡은 나무상자 안에서 빛바랜 팔레트와 함께 엷은 미소를 띤 청년의 얼굴 그림이 나타난다. 수채화 물감 팔레트를 넣는 상자 뚜껑 내면에 유화로 그려진 초상이다. 이런 자화상을 그린 작가라면 무척이나 재기에 넘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소허 서동진은 당시 서른 안팎의 교사요 화가이며 회화 및 판화기술을 전수하는 ‘대구미술사’란 업체를 경영하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1927년과 28년 두 차례 수채화개인전을 시작으로 일약 대구 양화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으며 이때부터 조선미전에 출품하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전 참여 성적은 1932년 제11회까지 네 차례 정도의 입선으로 그친다. 아마도 그가 가르친 이인성과 같은 신예가 연이은 특선과 화려한 입상 행진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자 자신은 더 이상 관전에 의의를 못 찾고 조용히 물러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1930년에 결성했던 ‘향토회’ 활동에 머물면서 35년 6회전까지 이어간 것이 그 후 공식적인 작품 활동의 전부다.
이 작품 ‘팔레트 상자 속의 자화상’은 수채화로 일관했던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유화로 그렸다. 독특하게도 상자의 가장자리가 마치 그림의 액자틀 같아서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선택했던 방식인, 창을 통해 내다보는 모습이 되었다. 사실적인 기법에 의해 환영의 느낌이 더 잘 나타나는데, 구도에 맞춰 약간 기울인 고개며 4분의 3 측면의 안면 각도와 정면을 향하여 응시하는 눈길, 전체 표정에 담긴 엷은 미소까지 초상화의 솜씨가 이미 이 작가의 정상수준에 와 있다. 화가들이 이젤이나 캔버스앞에서 또는 다른 화구와 함께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전문인으로서의 직업의식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함인데 이 그림은 타인의 시선과 무관한 팔레트 상자 안에 봉인된 느낌이 든다.
자화상을 많이 제작하는 화가들은 대상이나 사물을 대하는 관심 못지않게 자신의 내면을 향한 자의식도 강하다. 서동진 역시 다수의 자화상을 남기고 있지만 대개 자기 탐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기 긍정의 시선이 뚜렷하다. 비교적 외향적인 성격일 것 같은 그는 이인성과 김용조 같은 후학들을 발탁해서 그들의 내부에 잠재해 있던d 뛰어난 화재를 도출할 수 있게 도왔지만 정작 자신은 화가로서의 재능을 다했다고 보기엔 너무 일찍 붓을 놓았다.
한때 작가의 재기발랄하던 모습과 아직 팔레트에 남아있는 물감자국에서 수채화로 시작된 대구 서양화단의 전통을 상징하는 역사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식민지 암흑기 신문명의 새벽을 노래하던 작가의 속삭임을 듣는 듯하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저의 친조부이신 서동진화백은 그 당시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물감 박스와 팔레트가 없었던 시절이라 손수 만들어서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펌글
수채화 자화상
24.5×33cm
1927년
유족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