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모트
동반자(Companion)
하프타라 쉐모트는 야아콥이 이집트로 내려간 이야기(파라샤 쉐모트의 시작)를 상기하며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 땅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했습니다. 그들이 주인 나라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결국 이집트인들도 유대인들에게 가한 바로 그 고통을 자신들이 겪게 되었습니다.
그 예로 이집트인들이 바다에서 익사한 사건이 있는데, 이는 나일강에서 유대인 아기들을 익사시킨 것에 대한 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우상을 파괴하고 죄악된 길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적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약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유대인들이 그들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예언자는 이어 열 북부 지파(이스라엘 왕국, 주도 지파 에브라임의 이름을 따 에브라임 왕국으로도 알려짐)의 상태로 주제를 돌립니다. 그 백성들, 특히 엘리트 계층은 물질적 쾌락을 추구하는 데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삶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며, 결국 그들은 유배와 모욕의 운명을 맞이할 것입니다. 유다의 상태는 적어도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형제들만큼 타락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사야(Isaia)는 유다 백성 역시 유혹의 경사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술과 향락에 빠지고, 가장 수치스럽고 불경한 수준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선지자는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들이 누구를 가르치겠느냐?". "젖먹이 아기들을 가르치겠느냐?!“
지혜로운 이가 내리는 계명마다 그들은 따를 다른 '계명'을 가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도덕적 기준의 경계선이 정해질 때마다 그들은 또 다른 잣대로 판단하려 했습니다. 예언자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곧 쇠퇴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해도, 그들은 무의미한 삶을 즐기기 위해 마지막 날들을 보내며 움직임을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심판의 날은 찾아왔습니다. 버려진 계명마다 적들이 또 다른 가혹한 명령을 내렸고, 그 짧은 순간의 얄팍한 쾌락에 대한 대가로 오래지 않아 몰락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다시 한번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유배 생활을 견뎌낸 후, 유대인들은 흩어진 모든 곳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가 올 것입니다. 유대의 거룩한 선조들은 더 이상 자손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주신 자녀들이 그들의 길을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하나하나 모일 것이니라”
키부쯔 갈루요트(קִבּוּץ גָּלֻיּוֹת, 유배자들의 귀환), 즉 우리 하프타라가 말하는 유배자들의 귀환은 토라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입니다: "그때에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 유배자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흩으신 모든 나라에서 다시 모으시리라." (신명기 30:3).
이 구절들은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암시합니다. 우리 백성이 유배지에 깊이 뿌리내릴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유배자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이는 그들이 스스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프타라의 구절도 비슷한 암시를 담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하나 모일 것이니라" 마치 하나님께서 친히 유배지의 각 유대인을 그분의 손으로 직접 모으셔야 한다는 듯이 말입니다. (Rashi ibid).
하사딕(Chassidic) 사상은 다음 구절의 말씀을 통해 이 개념을 더욱 깊이 설명합니다:
"아시리아 땅에서 잃어버린 자들과 이집트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 돌아올 것이니..." 초기 유배의 지리적 위치 외에도, 이 장소들의 이름은 유대인들이 처하게 될 깊은 유배의 상황을 암시하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힘겹게 "끌고 나오셔야" 하는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아시리아(Assyria)의 히브리어 이름은 아슈르(אשור)입니다. 이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은 오쉐르(אֹשֶׁר, osher)로, "행복"을 의미합니다. 이집트의 히브리어 명칭은 미쯔라임(מצרים)으로, '좁은 해협'을 뜻하는 '마이짜르(מֵיצָר)'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두 극단은 두 종류의 유배를 상징합니다.
'미쯔라임'의 유배는 억압과 박해의 유배로, 문자 그대로 이집트 땅에서 겪었던 것과 같습니다. 반면 다른 종류의 유배는 '아쉐르'의 유배입니다. 이는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국가와 시대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 두 상황 모두 유배 상태입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대인의 삶과 경험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유대 역사는 이를 끊임없이 증명해 왔습니다. 억압과 풍요 모두 유대인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잃어버리고" "버려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떤 유대인도 뒤에 남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Likkutei Torah, Rosh Hashanah 60a).
“그 날에 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유대 현자들과 유대교 경전들이 일치하는 바는, 이 비할 데 없는 시대가 바로 메시아의 도래 직전에 해당하는 시기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토라의 현자나 의인이 특정 사건을 "메시아의 시대"의 특정 측면과 연관 지은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위대한 쇼파르의 울림"은 항상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이었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이는 메시아의 오심과 성전 재건 이후에 일어날 "유배자들의 귀환"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위대한 쇼파르"의 일부 측면은 메시아 시대 자체를 위한 준비와 전조로서 먼저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음은 1967년, 이스라엘 6일 전쟁 몇 주 후 루바비처 레베(Lubavitcher Rebbe)의 강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쇼파르의 의미는—이성적인 이유가 없더라도 강력한 각성과 뒤흔듦입니다. 구원의 시대에는 세상과 유대인, 비유대인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근본적이고 초석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므로, 이 변화를 위해 세상을 준비시킬 필요가 존재합니다. 이를 위해 선지자들은 "쇼파르"의 두 가지 측면—세상과 특히 유대 민족을 뒤흔들 사건들—을 알려주는데, 이는 다른 현실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사물을 제자리에서 흔들어 내는 격변이 될 것입니다.’
1. 스가랴 6장의 예언에 따르면, "주 하나님께서 나팔을 불어, 남쪽에서 오는 회오리바람과 함께 오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이사야의 예언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 날에 큰 나팔 소리가 나면, 앗수르 땅에서 잃어버린 자들과 애굽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 예루샬라임의 거룩한 산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리라.“
즉, 스가랴는 민족들 사이에 엄청난 격변과 유대 민족에게 끔찍한 고통이 동반될 '쇼파르'가 울려 퍼질 더 이른 시기를 예언합니다.
반면에 이사야의 말씀은 더 후대의 시대, 즉 메시아가 오실 때에 가까운 시대를 가리킵니다. 그때 “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유대 민족 가운데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영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조차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부르시는 아버지 같은 부름에 감동받고 깨어날 것입니다. 이 변화는 이전의 평온함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며, 결국 유대인들은 “예루샬라임의 거룩한 산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대한 완전한 경외심으로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께 깊이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구절의 궁극적인 의미, 즉 메시아를 통한 유배로부터의 구원과 예루샬라임의 거룩한 산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의 예언이 성취된 시기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이었습니다. 이 전쟁들의 원인은 다소 비논리적이었지만, 분명히 세상을 뒤흔들고 메시아의 도래를 위한 준비를 시킨 격변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대는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모든 유대인의 마음에 큰 떨림을 일으켰고, 이사야가 예언한 "큰 나팔 소리 "의 성취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이 모든 유대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가장 외딴 곳에 있었더라도, 그들은 뿌리부터 깊이 흔들렸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위험에 처했던 때뿐만 아니라, 그 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을 구원하셔서 기쁨과 영적 각성이 일어났던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동요와 각성은 이 세대에 목격된 전례 없는 파괴의 참혹한 사건들(홀로코스트) 당시에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사건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과 관련된 것이었고,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사건들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유대 민족이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아직 진정한 구원의 시작조차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시대, 하나님께서 모든 유대인, 심지어 “길을 잃고 버림받은” 자들까지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신성한 영혼을 부르시고 그들을 일깨우시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 기회를 통해 하나님께 헌신하고 미쯔보트(מִצְווֹת, 계명)을 더욱 굳건히 지키도록 응답하기를 기다리십니다 .
By Rabbi Mendel Dub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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