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고리 이야기
진녹의 하늘바다에 깔린 신묘한 구름그림을 사색할 줄 아는 사람은
한없이 행복을 머리에 이고 산다고 할까?
'관조적인 인생'이라해도 되리라
시간의 여백을 바탕으로 자신의 당당한 행복을 채색해가는
주인의 삶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스콜레'(한가로움)이다
한가로운 여백은 시간을 머금고 조금씩
그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느 한가한 휴일
산자락길을 함께 소요하다가 (장자 흉내내며?)
친구가 걸음을 멈추고 땅에 떨어진 빈 캔을 집어
캔고리를 두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좌우로 젖히더니
고리를 똑 따내어 호주머니에 넣는다.
뭐할려고? 물었더니
캔고리를 일만 개를 수집해 어디에 보내면 거기서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한 대를 준단다.
그 일을 해서 누군지도 모른 어느 장애인에게 한 대를 기증했단다. 그리고 또 계속 모은단다.
그 고리는 캔 몸체의 알루미늄과는 다른 특수 비철금속이라서
아주 중요한 첨단 기계 부품제작에 쓰인단다.
고가품질의 자원을 알루미늄과 함께 녹여버리지 않고 특수하게 쓰이니 좋고
장애인을 도와서 좋고,
그래서 자원 재창출이란 생각이 들어 나도 길에 구르는 빈 캔을 주워 고리를 따모아
그 친구에게 갖다주었다. 열 개 스무 개 모임 참석 때마다 주었다.
헌데 우리동네 폐휴지를 수집하는 노인이 pc방이나 노래방 게임방 야간술집 등에서
빈 캔을 한보따리씩 수집해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 노인께 사정이야기를 했다.
여차저차해서 내가 캔고리를 수집하고 있으니 저 많은 캔에서 고리만 따가면 안되냐 했더니
좋은일 한다며 쾌히 승낙해주셨다.
(고리 하나의 무게 준다고 별 손해는 없을거라는 주름웃음과 함께)
그래서 뒷날 아침 나가니 빈캔이 큰 보따리로 둘이나,
난 그많은 빈캔이 무슨 횡재나 만난 것처럼 흥분되어
그 할아버지가 가기 전에 다 떼어낼 욕심으로 쉬지않고 손가락 놀림을 했다
300몇 개까지 세다가 잊었다. 집에 와서 보니 집개손가락이 찢어졌다.
그래도 한두 개씩 모으다가 한꺼번에 삼백 개를 모았으니
그 흐뭇함은, 아~ 이 고소한 행복, 진정 행복이었다.
찢어진 손가락 쌈박거림이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당장 공구점에 가서 손 안에 알맞은 입이 좁은 작은 팬치를 하나 샀다.
다음날 부터는 팬치로 고리를 땄다. 왼손에 고무장갑 오른손은 면장갑을 끼고
남은 음료액 상한 냄새, 담배 냄새, 종류에 따른 각종 냄새와 함께
하루아침에 100개 또는 350개도 땄다.
친구에게 100개를 갖다주니 눈이 휘둥그래 놀랬다.
난 욕심이 생겼다. 친구에게 갖다주지 않고 내가 모으기 시작했다.
고리를 모으면 세숫대야에 붓고 세제를 풀어 담뱃재, 끈적액체를 씻어 햇볕에
고실고실 말린다음 건조시킨 큰 생수 페트병에 담았다.
황금은 아니지만 은銀 보석병처럼 반짝반짝 참 보기도 좋았다.
드물지만 어떤 캔에 달린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고리들이 무늬를 만들어 귀엽다.
페트병 한개에 약 2000개 이상이 들어갔다.
지금은 병 두 개를 채웠으니 4000개를 모은 셈이다.
그 이야기를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지인들에게 말했더니
다음 모임에 가면 캔고리를 한 주먹씩 갖고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어디를 가던지 내 눈은 좌우를 살피며 빈캔을 찾는 버릇이다.
비닐봉지를 호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빈캔을 발견(?)하면
캔 중앙을 살짝 밟은 후 양쪽을 밟아 오징어처럼 납짝하게 한 다음
비닐봉지에 넣거나 봉지가 없으면 고리만 따서 종이에 싼 후 호주머니에 넣는다.
아무리 조심해도 그짓을 하면 캔 속에 남은 액체가 흘러
손이 끈적거려지거나 옷을 버린다.
누가 보고 천박이라 눈낮춤해도 좋다. 혼자 흐뭇하니까.
그래도 길을 가다가 고리 하나를 따면 어찌 그리 옹골진지 이상한 만족감을 느낀다.
캔도 외제, 국산, 각종 음료수 등 그 종류 많음에 놀랐고 고리의 모양 색깔도 다양했다.
제일 흔한 은색, 희귀한 초록색 빨강색 노랑색 파랑색 등 등.......
고리, 문고리, 열쇠고리..............
고리는 닫는 일 보다는 여는 행위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닫힌 문을 열고, 폐쇠된 상자를 열고, 자물통을 열고,
열면 뭔가 어둠에 빛이 들어가 밝아지는 희망.
'열다' 열매가 열다. 가장 큰 수 열(10),
세상의 닫힌 모든 것, 닫힌 모두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열지 않으면 상하고 썩어요.
마음도 열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병 도저요.
갈비뼈 고리를 잡아당겨 마음의 천국문을 열어야 해요.
아무리 갈증이 심해도 고리가 열어줘야 캔맥주를 따서 마실 수 있으니
고리는 얼마나 중요한가.
내가 모은 캔고리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어두운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고
가고싶은 데로 갈 수 있는 길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 계속 모으고 모아 휠체어를 여러 대 장애인들에게 보내고 싶다.
땅에 구르는 빈 캔은 휠체어가 되어 구르고 싶다고 외친다.
"내 목과 같은 고리를 따요. 그래서 휠체어 바퀴를 달아주세요."
고리는 암울한 마음이 밝게 열리고
불편한 몸이 세상 어디든지 갈 수 있게하는
세상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리라.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