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사40:21-31)
갈등
1. 오늘은 이사야 40장을 나눕니다. 예언서의 구성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검사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을 해요.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심판)하실 것을 경고합니다. 검사가 피고의 죄를 고발하고 형량을 재판장에게 요구하듯이요. 예언서는 이렇게 끝나지 않고, 후반에는 반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나라와 성전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예언하며 마칩니다. 성경만의 특징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항상 두 가지 회복을 강조합니다. 예루살렘 성의 회복(재건)과 성전 재건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나라와 성전은 항상 뗄 수 없는 관계에요. 이사야의 경우는 39장까지 이스라엘의 죄 고발과 하나님의 징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사야는 워낙 긴 분량이라(전체가 66장) 39장 안에도, 메시야의 탄생과 보내심(7장)부터 종말론적 비전(11장-이리와 어린 양이, 송아지가 사자와 함께 노는)도 나옵니다. 오늘 본문 40장부터 대전환이 됩니다. 1절,“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스라엘을 책망하고 경고했던 메시지가 사라졌어요.
2.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라는 선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메시야(히브리어)-그리스도(헬라어)께서 오시는 길을 예비하라는 선언이 이어졌어요.(3-5절) 오늘 본문의 분기점인 18절,“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은 장인이 주물로 만들고 금은을 입힌 것이라고 하며 21절,“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이사야 40장-55장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징계(심판)하신 때의 일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마땅히 벌을 받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어요. 우상숭배와 온갖 불의를 행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한 쌍입니다. 우상숭배자들(무당을 의지하는 자들)은 성공만을 추구해요.(기복주의-세속주의-성공주의, 이것이 또 한 쌍)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을 오래 참으셨습니다.(인내-북이스라엘 멸망하기까지 200여 년을 인내, 다시 남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까지 130년을 또 인내하심)
3. 하나님은 이렇게 오래 참으시지만, 끝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어요.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에게, 남유다를 바벨론에게 내어주셨습니다. 멸망하며 살육당하고(대학살, 홀로코스트) 포로로 붙잡혀 가게 하셨습니다. 심판(징계)가 이렇게 무서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매를 맞고 확실하게 깨닫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나라를 잃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적절한 예언의 말씀을 이사야를 통해서 선포하셨어요.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요. 그러면서 고통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에게 우상들과 비교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4.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창조의 하나님과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작은가를 말씀하셨습니다. 22절,“그는 땅 위 궁창(하늘)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하나님은 하늘을 차일(햇빛 가리개) 같이 천막같이 치셨는데 반해 사람은 메뚜기 같다고 선언했어요. 하나님의 광대하심(위대하고 크심)에 비해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잘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23절, 귀인들을 폐하시고 세상의 사사들(판관들-재판관들)을 헛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세상 고관들의 운명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말합니다. 세상 권세자들이 힘이 있고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24절,“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면 세상 그 어떤 권력자-권세자도 풀처럼 말라버려요.
5. 하나님은 침묵하실 때는 세상을 방관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움직이시면 이렇게 놀랍고 무섭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아요.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기다리십니다. 끝내 생각과 마음을 바꾸지 않고 악을 행하면, 순간 역사에 개입하세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기가 누구이신지를 깨닫기를 기다리시며, 끝내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29-31절,“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고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고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아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창조의 주이심을 선언하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그들이 곤비하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실마리
6. 이스라엘 멸망사의 근원은 우상숭배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 적은 외부-외세에 있지 않았어요. 이스라엘의 위기는 내부에 있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며 이스라엘 전역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한 이들입니다. 언제나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문제가 발생해서 고통을 느끼면, 왜 내가(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합니다. 유행가 가사처럼,‘때는 늦으리.’입니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 음~ 때는 늦으리.”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매를 맞기 전에 죄에서 떠나야 했는데, 매를 맞고서야 깨닫고 말았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매를 맺으면서라도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에게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지 않았어요.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히12:8, 내 자식이기에 징계를, 참 사람이 되라고)
7.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이시기에,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시작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위로를 선포하셨습니다.“내 백성을 위로하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이 70년간 바벨론에서 죄의 값을 치를 것을 아셨어요. 부모가 자식의 죄는 미워하지만, 자식은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18절 이하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우상과 비교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셨어요. 십계명을 비롯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우선적으로 경계하도록 가르치신 것이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고 금은으로 입힌 것이 아니냐, 너희들이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지 않았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기가 누구이신지를 선언하셨어요. 내가 땅의 기초를 놓고, 하늘을 만들지 않았느냐. 내가 세상의 권세자들을 폐하지 않느냐. 너희는 광대한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조각에 불과한 헛된 것이고, 너희는 메뚜기에 불과한 존재이다.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셨겠습니까? 25절,“거룩하신 이가 이르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8. 해서는 안 될 일-큰 실수를 이스라엘이 했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고통스러운 포로 기간을 보내며, 우상과 다른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깨달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다시 말씀하셨어요. 28절,“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창조의 하나님은 피곤함과 곤비함을 알지 못하십니다. 명절-지혜에도 제한이 없으세요.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고 참 신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지혜에서 무한하시기에,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십니다. 피조물인 연약한 우리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앙망한다는 말을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린다는 말이에요. 다니엘이 좋은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자굴에 던질 것이라며 자기 생명을 위협해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힘의 근원이 여호와를 앙망한 것입니다.
복음 제시
9. 하나님을 끝까지 앙망한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사자 굴에서도 보호해주셨어요. 하나님은 배고픈 사자의 입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주셨습니다. 다리오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갔어요. 다니엘이 생존해 있는지 물었습니다.“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으냐?”다니엘이 답했어요.“왕은 만수무강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박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단6:20-22)
이 일 후에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시가하여 무고한 이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졌어요.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배고픈 사자들이 그들 모두를 움켜서 그들의 뼈까지 부서뜨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포로 가운데 있던 자들을 위로하시고, 창조의 주님을 믿고 앙망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이 복음을 믿고 그대로 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욜2:32를 인용하여,“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복음은 시대를 넘어서 적용되는 복음 진리입니다.
기대
10.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바벨론 포로 가운데 살았던 이스라엘과 같이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삶이 극도로 좋지 않아요. 피곤하고 곤비하고 힘이 빠집니다. 우리 삶의 질이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감히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던 것처럼요. 우상숭배는 탐심입니다. 내가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입니다.
우리에게서 우상이 되는 것-하나님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미 우상이 된 것을 포기하는 것-버리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오늘 저녁 이것을 놓고 진실하게 고백하며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앙망할 때-바라고 기다릴 때-우리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아요. 우리 형편이 피곤하고 곤비하고 힘이 빠질지라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고,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도록 이 시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