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7:25~8:9) 나의 것 그리스도의 것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표현을 한다면 그리스도인이란 교회를 다니는 자나, 교회에 어떤 직책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서 유대인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저들이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으나 그를 구원자로 그의 말을 믿자 않아서 즉, 마음 안에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교인이거나 목사 장로의 직을 가졌거나 가 아닌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을 마음 안에 영접해 가지고 있느냐는 것에 대한 확인함이 중요합니다.
본문 8:9절 한 절만 보아도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그랬고 후반부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진리의 성령)을 소유한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조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롬8: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와 자녀가 아닌 자를 구분하고 있는데 자녀 됨의 기준이 유대 혈통이나(모태 신앙인의 가족), 유대교라고 하는 (기독교 종파) 종교를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먼저 믿었다고 하는 육신의 아버지나 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이나, 그 조상에게 물려받은 종교를 가졌거나, 신학을 공부해서 지도자 된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라는 말을 하셨는데, 이는 [육신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기준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 안에 있는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7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육신 적인 것으로 만들어진 생각으로, 이‘생각’을 헬라어로 (토프로네마)라고 하는데 선입견입니다. 이 선입견이란 자기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어떤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선입견을 가진 자는 그 가진 생각에 잡혀서 말고삐를 잡은 자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원문상으로는‘자기 안에 미리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을 말합니다.(생각=선입견=토프로네마) 즉, 세상 적인 것과 종교적인 생각이 그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의 사람을 육신 적인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 생각에 사로 잡인 사람의 기도 생활을 한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의 기도에 내용은 대부분 자신의 육 적인 삶의 문제와 종교적인 것에 대한 선입 견을 가지고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까지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께 원수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께 원수가 되는 것입니까? 이는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 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세상의 법대로 사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 법에 하나님을 굴복시키려 하기 때문에 '원수'라는 것입니다.
또, 롬8: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는 말은, 세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종교를 이용하여 세상의 즐거움으로 만족해하는 사람인데, 이는 영적 위치에서 볼 때 자멸 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펴봤을 때 육의 사람으로 보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목적이 육신을 기쁘게 하는 것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육 적인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 목표를 없애버리는 것으로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5절의“육신의 일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이 말씀에서 사람이 육신적인 것을 목표로 가졌기에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곳을 가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곳을 가려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곳을 갈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가려는 목표 자체를 허물어 버리면 자연히 갈 생각조차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육신 적인 것에 대한 욕구를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롬 7:25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표현하기를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나 자신]이라는 나의 실체는 항상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입니다.
몸은 한 사람인데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그러나 실제적인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나],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연약성(3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어느 정도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시는 이유가 바로 나의 주로써의 구속력 때문인 것입니다.
주(主)의 반대말은 종입니다.
여기서‘종’이란 말은 주인을 따른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 자신을 내가 주관하느냐 아니면 내가 누구에 의해 주관을 받고 있느냐 즉, 내가 나의 주냐 아니면 나의 주가 따로 있느냐입니다.
사도 바울은 25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들의 주가 되심 때문에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분의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되었고,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적용받음으로, 결코 정죄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영의 생각을 하게 되므로 생명과 평안을 가지며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런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되며, 나의 생각도 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이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모르면서 사는 것은 스스로 속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하지만 마귀의 자녀임은 절대 모르고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
암탉이 낳은 계란을 품으면서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닭의 주인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암탉 자신이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암양이 낳은 새끼는 자기 것으로 여겨 젖을 먹이고 돌보지만 어미조차 주인의 것이기에 암양 새끼도 자기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이것을 아는 자 라는 의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을 정리해야 합니다. 즉, 여러분의 주인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는 확인함입니다. 즉, 나 자신에게 따로 주인이 있음을 인정하느냐는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속해 주신 우리 주인이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어야지요?
그리고 나의 가진 것 까지도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혹 마음으로만? 암 닭처럼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라고 여기고 있다면 아직도 나는 주의 것은 아닌 것입니다.
더 나가서 주님의 것조차도 내가 얻어 놓은 내것 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목사가 교회 건물로 울타리를 쳐 놓고 많은 사람을 모아두고는 주님의 양을 자기 양으로 여기는......
그런 생각을 가지면 자기가 목사로 힘들여 만들어 놓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강단에서만 주님의 종이라고 말하고 실제적으로는 주인이라 여겨 교회건물도 헌금도 주님의 양 조차도 자기 것으로 여기기에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양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값을 지불하시고 사셨습니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인정할 때만 내가 주인인지 종인지 관리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종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인식하며 바르게 깨달아 알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사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양이요, 믿는 자요, 거룩한 성도로서 주님의 진정한 가족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주님을 말할 수 있고, 그 말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나 인지요? 나는 지금 누구의 생각의 지배를 받고 사는 나이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나 인지 바르게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삶의 나타남을 볼 때, 자기 생각이 자신을 주장하고 있고, 그 주장함의 방향이 육신 적이라면, 그리고 그러면서 교회를 다니고, 종교 생활하면서 주여를 입으로 부르는 나라면 과연 나는 주님의 것이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피값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여야 합니다. 즉, 나는 내꺼가 아닌 주님의 소유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그런 나이기에 주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찾아와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계시록 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내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입니다. 너는 내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문열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의 문을 열고 영접하여 주님과 하나 된 영적 새 생명의 사람이 되어서 나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영(말씀)으로 반응하며 살 때, 육의 사람이 아닌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존재로 자신을 전부 다 온전히 드려지는 사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