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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안나 게르만이 부르는 '스텐카라진', 스텐카라진에 대해서는 용음회 474번(2015.1.4)
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윌리엄 크레이그가 펴낸 동명의 팩션(fact+fiction) 소설 <Enemy at the Gates, The Battle for Stalingrad>를 원작으로 만들었습니다. 크레이그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소련의 전설적인 저격수였던 자이체프의 회고록을 토대로 이 팩션을 썼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이 항복하고, 독일군 저격수 포로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SS저격병학교의 교장이었던 하인츠 토르발트라는 독일의 저격수가 소련군 저격수들을 잡기 위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자이체프는 자신이 사살한 그 특급 독일저격수가 하인츠 토르발트라고 생각하고 회고록을 썼습니다. 크레이그는 바로 이 자이체프의 토르발트 사살 사건을 소설의 주제로 삼았고 영화도 이 방식을 따랐습니다.
유럽영화치고는 보기 드문 대작인 <애너미 앳 더 게이트>는 모처럼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는 소련과 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이에 앞서 90년대에 독일에서 만든 <스탈린그라드>라는 제목의 영화가 국내에 개봉된 적도 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해서 군데군데 빈정대는 부분이 있어 다소 거슬리는 장면이 하지만, 2차대전 중 가장 격렬했던 전투를 배경으로 각 인물들에 촛점을 맞추어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무리없이 이끌어갔다는 평이었습니다.
특히 주인공 바실리라는 저격수를 영웅으로서가 아닌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부각시킨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바실리가 매번 다른 사람의 희생이나 도움 등의 변수로 독일군 특등 저격수 코니그(영화에서 토르발트의 이름)의 총구를 벗어나는 부분이 많은 것은 너무 작위적인 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장미의 이름>, <베어스>, <연인> 등을 만든 프랑스의 거장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출솜씨가 뛰어난 전쟁영화였습니다. 어설픈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배제하고 드라마틱하고 상업적 부문의 비중을 높이 만들면서 효과를 본 작품이기도 합니다. 역시 헐리우드에서 만든 전쟁영화'에 비해서는 영웅화는 적었고, 대신 희생의 전투 장면을 많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
할아버지에게서 사냥을 배우는 목동 소년 바실리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어느덧 성장한 바실리는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는 독일군으로 부터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기 위해 전장에 투입됩니다. 스탈린그라드가 산업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지도자(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기에 소련으로서는 반드시 사수해야만 했습니다.
바실리는 기차에서 우연히 운명의 여인 타냐를 지나치듯 만나기도 하지만, 이내 전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인해전술이 무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전투가 이어집니다. 소총보다 군인들이 더 많이 투입되어, 일부에게만 총을 지급하고, 나머지에겐 총알만 제공한 채 독일군이 이미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곳을 향해 무조건 돌격시킵니다.
앞사람이 죽으면 그 총을 들고 싸우라는 명령, 엄청난 희생에 겁먹은 병사들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후퇴는 없다며 아군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하기도 합니다.
전투는 독일군의 승리로 끝난 듯, 온통 소련 병사들의 시체뿐입니다. 소련 측 하급 선전 장교인 다닐로프는 선전 전단을 뿌리고 다니다가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위기에 처합니다. 그 과정에서 바실리와 만나게 되고, 다닐로프는 순식간에 5명을 저격하는 바실리의 놀라운 저격 솜씨에 놀라게 됩니다.
소련군의 지리멸렬한 모습에 상부에서는 선전 장교들에게 대책을 내놓으라고 닦달합니다. 그 때 다닐로프는 지금은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한다면서 영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냅니다. 그가 내세운 인물이 바로 바실리였습니다.
일반 보병이었던 바실리는 저격 여단으로 옮기게 되고, 다닐로프 또한 승진하여 승승장구합니다. 바실리는 많은 독일군 장교들을 저격함으로써 독일군에겐 악마, 소련인들에게 영웅이 됩니다. 소련인들은 그를 추앙하며 전국 각지에서 펜 레터를 빗발치듯 보냈고,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저격 여단에 지원합니다.
그러던 중 바실리는 의용군으로 싸우던 타냐와 재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닐로프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듯 했기에 자신의 마음을 숨깁니다. 한편, 독일군에서는 바실리를 맞상대하기 위해 자기네 쪽 레전드인 SS 저격병학교 교방인 코니그 대령을 대표선수로 투입합니다.
코니그 대령의 등장에 대해서 전혀 모른 채 저격에 나섰던 바실리는 함정에 빠져 동료를 잃기도 합니다. 전초전은 바실리의 판정패였습니다. 함정에 빠져 고립된 상태에서 숨어있던 건물에 폭격이 시작되자 겁에 질린 동료는 바실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뛰쳐나갔고, 그 자리에서 코니그의 저격으로 즉사합니다.
어찌어찌해서 귀환한 바실리는 다닐로프를 통해 자신이 상대한 인물이 코니그 대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실리와 저격병들은 통신 수리병들도 주요 타겟으로 삼았는데, 이에 코니그 대령은 사로잡은 소련군 포로를 미끼로 이용합니다. 바실리는 독일군이 일부러 죽으라고 보낸 거 같다는 느낌을 받지만 동료는 이를 무시합니다. 결국 그 동료는 자리를 뜨기만 기다리고 있던 코니그 대령의 저격을 받아 사망합니다.
바실리가 먼저 뛰었다면 그가 죽었을 상황이기에 이는 또 다시 그의 씁쓸한 패배였습니다. 소련 상부에서는 바실리와 코니그 대령의 대결이 길어지자 다닐로프를 압박합니다. 다닐로프는 상대가 자신보다 한 수 위라며 침울해하는 바실리에게 첩자가 있으니 다음번에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거라고 독려합니다.
첩자의 정체는 샤샤라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코니 대령이 현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데리고 있는 소년이었는데, 바실리의 팬이기도 한 샤샤는 다닐로프의 말대로 코니그 대령에게 거짓 정보를 흘립니다. 코니그 대령은 샤샤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매복하는데, 바실리가 샤샤가 말 한 곳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공장 파이프 라인을 통해 몰래 뒤에서 접근하는 것을 눈치챕니다. 그리고 오히려 역습을 가하면서 바실리는 또다시 고립됩니다.
그 때 타냐가 바실리를 돕기 위해 나타나고, 그녀가 깨진 유리조각으로 코니 대령의 시야를 어지럽힌 사이 바실리가 코니그 대령을 향해 사격합니다. 은폐 장소만 알고 쏘았기에 승부는 코니그 대령이 손에 관통상을 입는 수준으로 끝났고, 코니그 대령은 샤샤가 첩자임을 의심하게 됩니다.
다닐로프는 바실리에게 타냐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도와달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둘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바실리는 다닐로프에게 당신이 만들어준 영웅이라는 허상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다며, 평범한 병사로 싸우고 싶다면 자신에 대한 기사를 제발 그만 좀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 독일 대표선수 코니그 대령
그 때 샤샤가 나타나고 그제서야 다닐로프가 말하던 첩자가 어린 아이라는 사실을 안 바실리는 어린 아이를 이용하는 다닐로프를 비난하는데, 다닐로프는 자신이 아이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저 아이가 너를 믿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나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바실리는 샤샤가 알려준 장소에 매복하여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만, 매복 중 잠이 드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게 되고, 오히려 역습을 허용합니다. 다행히 시체를 뒤지고 다니던 어떤 병사 덕분에 위기를 넘기게 되고, 그 병사가 죽은척한 바실리의 몸에서 인식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바실리가 전사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니그 대령은 바실리가 살아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샤샤가 첩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를 시험하기도 합니다. 결국 정체를 들킨 샤샤는 코니 대령에게 살해당하고, 다닐로프는 샤샤의 엄마에게 샤샤가 독일군 진영으로 전향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보다는 그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전황은 소련군에게 점점 불리해져만 가고, 소련군은 볼가강 유역까지 밀리게 됩니다.
다닐로프와 타냐는 샤샤의 엄마를 아군 지역으로 피신시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타냐가 유산탄 파편에 맞아 쓰러지게 됩니다. 타냐가 죽었다고 생각한 다닐로프는 절망에 빠져 코니그 대령과 대치중이던 바실리를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고, 결국 둘의 대결은 바실리의 승리로 끝납니다. 하지만 다닐로프의 생각과 달리, 타냐는 중상을 입었으나 죽지는 않았고, 두달 후 독일군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나자 바실리가 그녀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 스탈린그라드의 저격병, 자이체프 ]
* 스탈린그라드 전투 지형도
* 바실리 자이체프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스탈린그라드 전역은 독일군이 자랑하는 기계화부대의 기동이 도저히 불가능할 만큼 거대한 벽돌더미로 변해 버렸고, 그에 따라 전투는 기묘한 양상을 띄어갔습니다. 기관단총과 대검, 수류탄, 날카롭게 날을 세운 야전삽을 든 병사들이 폐허가 된 건물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치열한 난투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고전적인 보병들끼리의 육탄전은 양측의 저격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조성했습니다.
이런 폐허의 정글 속에서 한 사람의 영웅이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우랄 산맥의 사슴사냥꾼 출신으로, 소련군의 천재적인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 중사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1월 초순 열흘 동안 단신으로 40명의 독일군을 사살하는 초인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적과 아군 모두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최대의 사냥감으로 자이체프를 지명하여 숙련된 저격병들을 연거푸 투입했지만 자이체프는 이들을 놀리면서 흡사 사슴을 추적하듯 눈 덮힌 우랄산맥을 넘나들듯 폐허 속을 신출귀몰하며 전과를 올려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독일군은 자이체프를 능가하는 명사수를 특별히 초빙해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바로 베를린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 무장 SS(히틀러 친위대) 저격수 학교의 교장 하인츠 토르발트 대령이었습니다.
이제 스탈린그라드의 폐허 속에서 양군의 자존심을 건 두 사람의 인간 사냥꾼이 벌이는 일대일의 대결이라는 희대의 전쟁드라마가 막 펼쳐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자이체프는 새로운 강적이 전선에 출현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 차렸습니다. 불과 3~4일 사이에 그의 동료 저격수 몇 명이 전사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던 것입니다. 토르발트 역시 그 명성에 걸맞도록 목표물을 놓치는 법이 없는 우수한 인간 사냥꾼이었습니다.
자이체프는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새벽 어둠을 이용하여 동료 저격수 쿨리코프와 전우들이 당했던 그 장소로 은밀하게 잠입했다. 웬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놈이 아직 그곳에 있으리란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토르발트 역시 자이코프가 나타났다는 징후를 발견하기 위해 그곳에서 온몸의 촉각을 칼날처럼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탈린그라드의 11월은 이미 한겨울이고 모든 것이 얼어붙는 러시아 겨울밤의 혹한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자이체프는 벽돌더미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기침소리 한번 없이 하룻밤을 새웠습니다. 따뜻한 아침 햇살이 두 사람의 인간 사냥꾼이 뿜어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공터 위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 상태로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자이체프는 이틀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의 싸움인 것입니다.
자이체프는 다시 한번 눈앞의 풍경을 샅샅이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200여 미터 앞에 부서진 독일군의 전차가 한 대 주저 앉아있고, 오른편에는 토치카가 있다. 놈은 어디 있을까? 전차 속? 아니다. 숙련된 저격수는 결코 저렇게 눈에 잘 띄는 은폐물 뒤에 몸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 토치카? 그것도 아니다. 벽돌더미로 인해 총구 쪽이 막혀 있기 때문에 사격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라면 과연 어디에 숨을 것인가...?
부서진 전차와 토치카 사이에 무너진 벽돌더미가 있고, 그 위에 녹슨 철판 몇 장이 쌓여있었습니다. " 바로 저거다. 철판 밑, 멀지 않은 독일군의 참호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밤에 어둠을 틈타 살짝 기어들기에도 안성마춤이 아닌가? 틀림없이 놈은 저기 있다! "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자이체프는 나무토막 끝에 장갑을 쒸우고 그것을 살짝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순간 한발의 총성과 함께 나무토막이 튀어 올랐습니다. 놈이 걸려들었다! 떨어진 나무토막을 살펴보니 역시 예측대로 탄환은 벽돌더미 쪽에서 날아와서 직선으로 관통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지난 사흘 동안 놈의 버릇을 충분히 파악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절호의 매복위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특징이 있다. 이제 내가 위치를 바꿀 차례다." 해가 지자 자이체프는 사흘 만에 은신처에서 소리없이 기어 나와 문제의 철판더미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위치로 이동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떠오른 아침 해가 자신의 은신처를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습니다.
* 영화에서...
“나는 소총을 거두어들이고 오전 내내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스코프의 렌즈에 비친 햇빛의 반사광은 기가 막힌 조준 목표가 된다는 것쯤은 저격수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일이다.”
오후가 되자 입장이 뒤바뀌었습니다. 햇살은 이제 반대로 그 벽돌더미를 향해 똑바로 비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이체프는 그늘 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모신나강 소총을 오른뺨에 단단히 밀착시키고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었습니다. 순간, 벽돌더미 사이에서 무언가가 반짝하고 빛났습니다. “놈의 조준경일까?
* 영화에서...코니그 대령
아니면 그냥 깨어진 유리조각...?“ 조수 쿨리코프가 철모를 오른손 주먹 위에 씌우고 천천히 들어 올렸습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한발의 총성이 울렸고 구멍 뚫린 철모가 튀어 올랐습니다. 손에 부상을 입은 쿨리코프가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길고 애처로운 외마디 비명이 빈 공터에 가득 울려 퍼지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철판 밑에서 금발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놈의 실수였다. 그는 지만 사흘 동안 겨루어온 나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순간적인 방심이 그로 하여금 조금하게 사냥감을 확인하고자 머리를 내미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했던 것이다.”
* 영화에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이체프에게는 그것은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스코프의 십자선을 꽉 메운 목표물을 향해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총성이 울렸습니다. 금발머리가 뒤쪽으로 확 젖혀지는 것이 똑똑히 보였습니다.
바실리 자이체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모두 242명의 독일병을 사살했고, 그 후 지뢰를 밟아 양 눈이 머는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습니다. 그는 종전 후 소련 연방의 최고 영웅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그가 후배 전우들에게 전수시킨 저격술의 기법들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특수부대 저격수들 사이에서 바이블처럼 통하고 있습니다.
* 전설적인 여자 스나이퍼 로자 샤니아, 그녀는
독일군 54명을 저격했다고 합니다
[ 모신나강 소총 ]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기습 침공한 독일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습니다. 불과 석 달 동안 민스크, 스몰렌스크, 키예프 등에서 놀라운 대승을 거두며 무려 300만에 가까운 소련군을 순식간에 붕괴시켜 버렸습니다. 인류가 벌인 전쟁사상 보기 드문 승전의 기록이었습니다. 독일군 선두부대는 모스크바를 향해 질주했고 소련의 최후는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10월이 되자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독일군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기상대가 그 해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1941년 유럽을 휩쓴 추위는 40년만의 혹한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신나게 달려가던 독일군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혹한은 사람도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무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총이나 대포 같은 화기도 툭하면 작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이틈을 타서 반격에 나선 소련군은 쉬지 않고 사격을 가해 왔다. 그들의 무기는 바로 모신나강(Mosin-Nagant) 소총이었습니다. 그 동안 구닥다리라고 폄하하던 소련군의 소총이 모든 것이 얼어붙은 혹한에도 문제없이 불을 뿜어대자 독일군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 영화에서...
제1차 대전 당시 제정 러시아군이 사용한 모신나강 소총은 구식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군을 놀라게 했습니다.
모신나강은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 시절에 제작된 소총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군 보병이 주력 화기로 사용하던 Kar98k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하였습니다. 물론 처음 제작된 당시의 소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형과 발전이 있어왔습니다. M2 중기관총이나 M1911 권총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총기는 단지 오래 전에 탄생했다고 구식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 영화에서...코이그 대령
모신나강은 독일군의 Kar98k에 비해 무게도 많이 나가고 더 길어 외관은 투박해 보였습니다. 1차대전에서의 교전 경험과 독소전 초반의 어마어마한 승리 덕분에 일선의 독일군은 소련군의 능력과 무기를 은연중 폄하했습니다. 더구나 슬라브족이 열등한 인종이라고 세뇌 당하다시피 한 보통의 독일군 병사들은 소련군이 좋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지금까지 독일군이 거둔 승리는 무기보다는 작전의 탁월함과 소련군 지휘부의 무능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독일군의 생각과 달리 소련군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 그 중에서도 최전선 병사들이 직접 사용하는 무기의 품질은 상당히 우수했습니다. 모신나강 소총도 그러한 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 영화에서...
* 모신나강 소총의 탄생
1877년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제국은 또 다시 전쟁을 벌였습니다. 꾸준히 남방으로 진출하려던 러시아와 러시아 남방의 길목을 막아선 오스만 투르크제국은 1770년대에 처음 충돌한 후 무려 100년 동안 싸움을 벌여 왔는데, 이것이 벌써 여섯 번째였습니다.
대체로 러시아가 승리했지만 이번에는 최신식 윈체스터 소총으로 무장한 투르크군의 공격에 러시아의 피해가 컸습니다. 전후 러시아는 이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소총을 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1차 세계대전 당시 모신나강 소총으로 무장한 러시아군
러시아군의 세르게이 모신 대위는 벨기에 출신의 총기 엔지니어인 레옹 나강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소총 제작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30구경 탄을 탄창이나 클립을 이용하여 장탄하는 방식으로 연사력을 높이려 했다. 이렇게 제작한 소총을 곧바로 군 당국에 보내 실험에 들어갔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아 즉시 제식화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모델이 M1891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모신나강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외관은 당시까지 러시아군이 사용하던 베르단 소총과 유사했지만 성능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볼트액션 방식이어서 단발로 쏘아야 했지만 5발을 장탄할 수 있어 숙련된 사수는 빠르게 연사 할 수도 있었습니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7.62×54mm탄을 사용하여 유효사거리가 550미터로 길었고(조준경 사용 시 750미터 이상) 파괴력도 양호했습니다. 비록 기다란 총신 때문에 휴대가 불편했지만, 총검을 장착했을 때는 마치 창과 같아 백병전에 상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1899년 중국에서 발생한 의화단운동을 진압하려 8개국 연합군이 결성되었을 때 러시아는 M1891을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했고, 이후 1905년 발발한 러일전쟁 당시에 많은 수의 모신나강 소총을 투입했습니다. 이처럼 탄생과 동시에 실전을 거친 모신나강 소총은 조준기, 노리쇠, 방아쇠 등에 개량이 이루어졌고 곧이어 발발한 1차대전과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일선 장병들의 기본 화기로 애용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타 소총과 비교하여 많은 종류의 파생형이 등장했습니다. 특히 1907년에 등장한 기병용 M1907 카빈은 총신이 28.9센티미터나 짧아졌습니다. 하지만 초기에 모신나강은 의미 있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사실 소련군조차도 이 총의 장점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신나강은 간단한 구조 덕분에 신뢰성이 좋아 악조건에서도 쉽게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혹한의 날씨에도 무난히 작동했습니다.
*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로 바뀌었습니다)의 마마예프 고지의 기념탑
한마디로 모신나강은 러시아 환경에 가장 잘 맞는 소총이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에 소련군 보병의 기본무장이었던 M1891/30은 전쟁 전인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생산되었는데, 현존하는 대부분의 모신나강은 바로 이 모델입니다. 전후에 총기사의 명품인 AK-47이 기존 소총과 기관단총을 일거에 대체하며 기본화기로 채택되면서 일선에서 퇴장했지만 누가 뭐래도 모신나강은 역사상 가장 컸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소총이었습니다.
* 영화에서...코니그 대령
* 저격수의 전설을 만든 모신나강
모신나강은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좋다 보니 저격용으로도 좋았습니다. 대규모 기동전에서는 이런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전선이 교착되거나 엄폐물이 많은 시가전 등에서 저격수의 역할은 컸습니다. 흔히 ‘원샷 원킬(One shot, One kill)’이라는 말로 설명할 만큼 저격용 총은 정확도와 파괴력이 생명인 무기입니다. 2차대전 당시에 소련군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저격수를 배출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애용한 총이 바로 모신나강 소총이었습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소련군과 독일군 저격병의 숨 막히는 대결을 묘사했습니다. 이 영화 주인공의 모델인 실존 인물 바실리 자이체프가 사용한 무기가 바로 모신나강 소총이었습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242명을 저격했다고 하는데, 이때 사용한 탄환은 불과 243발이었다고 전해집니다.
*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자이체프 부부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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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바실리가 지뢰를 밟아 눈이 머는군요,, 영화에선 해피 엔딩이던데..
너무나 좋아하는 멋진 영화입니다 주인공 쥬드로 무척 좋아하죠
아주 깊은 정보 잘 숙지했읍니다
변대감이 이 영화를 봤구먼유. 본 사람이 많지 않을텐데...이 영화의 감독 장 자크 아노(프랑스 인)
를 제가 좋아하죠. <태양은 가득히>의 르네 클레망하고...<장미의 이름>,<베어스> 그리고 포르노
가까운 영화 <연인>이 생각나고...실제로 바실리가 243발을 쏘았는데 242명을 죽였다고 하니...이런
걸 두고 '원샷 원킬'이라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나중에 독일 영화 <스탈린그라드> 얘기할 때 보
다 상세히 정리하려고 해요. 독자들 모두 근하신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