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육대학과 서울교육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아동문학상, 소천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돌아온 진돗개 백구》《주인 없는 구두 가게》《노래하며 우는 새》《제비야 날아라》《하얀 야생마》《아버지가 숨어사는 푸른 기와집》《나는
독수리 솔롱고스》《비밀 족보》《우리 다시 만날 때》《오늘이》등이 있습니다.
그림 : 박세영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고
2012년과 2014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습니다. [벼알 삼 형제], [멧돼지가 쿵쿵, 호박이 둥둥], [우리
집 한바퀴]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창현아! 창현아!” 어머니 소리가 들렸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헤어진 어머니가 논둑길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창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소달구지를 끄는 아저씨도 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소를 세웠습니다. 창현은 소달구지에서 내려 어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어머니의 치마폭은 푹 젖어
있었습니다. 개울이고 논이고 가리지 않고 달려온 게 분명했습니다. --- p.4
진창현은 실망한 마음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그렇게 맥없이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대학 강의까지 마친 창현은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절망스럽고 쓸쓸한 마음을 그렇게 풀고 싶었습니다. 낯선 거리를 어느 정도 걸었을 때입니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진창현은 자기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였습니다. --- p.73
“저
사람 또 왔군그래.” 하도 열심히 다녀서 눈인사를 하는 사람까지 생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얼굴을 익힌 다음 진창현은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바이올린 기술자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준비한...“창현아! 창현아!” 어머니 소리가 들렸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헤어진 어머니가 논둑길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창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소달구지를 끄는 아저씨도
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소를 세웠습니다. 창현은 소달구지에서 내려 어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어머니의 치마폭은 푹 젖어 있었습니다. 개울이고 논이고
가리지 않고 달려온 게 분명했습니다. --- p.4
진창현은 실망한 마음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그렇게 맥없이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대학 강의까지 마친 창현은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절망스럽고 쓸쓸한
마음을 그렇게 풀고 싶었습니다. 낯선 거리를 어느 정도 걸었을 때입니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진창현은 자기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였습니다. --- p.73
“저 사람 또 왔군그래.” 하도 열심히 다녀서
눈인사를 하는 사람까지 생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얼굴을 익힌 다음 진창현은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바이올린 기술자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준비한
선물도 건넨 다음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저도 바이올린을 만들고 싶습니다.”--- p.111-112
1976년 제2회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는 6개 부문 가운데 5개 부문에서 한명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바로 재일 한국인 진창현입니다. 일제강점기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진창현은
공부를 해서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진창현은 교사가 될 수 있는 교원자격증도 땄지만, 한국인이란 이유로 일본에서
선생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운명처럼 만나게 된 바이올린! 세계 제일의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더 뛰어난 바이올린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인에게 바이올린 만드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부딪치지만 계속 거절만 당하는 진창현. 진창현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
진창현 진창현이란 이름은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그의 이름으로 제작된 바이올린은 이제는 일본 내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이 되었다. 그의 바이올린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1976년에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던 것이 시작이
었다. 이후 세계에서 5명 밖에 없는 ‘마스터 메이커’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뒤늦게 2002년 KBS 1TV의 한 프로그램에서 바이올린 장인으로
진창현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많은 언론과 신문을 통해 진창현은 더 많이 알려졌고, 2007년에는 진창현의 자서전이 한국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진창현에게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였다.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 살았던 진창현은
2012년 암을 이기지 못한 채 일본 도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점점 한국인들에게 진창현의 이름은 잊혀져 갔다. [하늘을 울리는
바이올린]의 작가 송재찬은 진창현을 신문 기사를 통해 알고 나서 계속 머리 속에서 그의 삶이 맴돌았다고 한다. 아마도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그의 삶이 주는 커다란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잊혀져 가던 진창현의 삶과 꿈을 다시 어린이들에게 선사하고자
하였다.
꿈을 향한 노력, 그 변치 않는 감동 진창현이 살던 시대에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들겠다는 꿈은 쉽지
않았다. 매우 어려웠다.지금은 그때보다 정보가 넘쳐나고, 그 정보를 쉽게 알 수도 있다. 어떤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도 알려주는
정보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 있고, 좋은 정보가 있다고 해도 직접 바이올린을 많이 만들어보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은 만들
수 없다. 아마도 모든 꿈은 바이올린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꿈을 안다고 해서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접 몸과 마음을 바쳐서
노력해야만 쟁취할 수 있다. 지금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 어느 시대, 어떤 장소에서도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감동을
선사한다. [하늘을 울리는 바이올린]에 담긴 진창현의 이야기가 단순히 옛 이야기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첫댓글 신간 상재를 축하드립니다. ^^*
타국에서 조용히 스러져 간 한 예술가를
살려낸 작품이라
송재찬 선생님의 고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책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와, 두권씩이나~ 축하드립니다. ^^
송재찬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엇, 두 권씩이나!!! 선생님, 두 배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새로운 인물 이야기 발간 축하드립니다.
시간 속에 사라져가는 한 예술가의 영혼을 다시 살려낸 작품- ㅡ송재찬 선생님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힘센 책 소식 여기저기 널리 강추하도록 하지요.
송선생님,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