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늘 육안에 잡히지 않는 이면의 세계를 탐구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감각
(Synesthesia)’이다.
소리에서 색채를 보고, 형상에서 선율을 느끼는 이 독특한 감각은 오랫동안 주관적인 환상이나
착각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신경과학은 이를 뇌 신경망의 유연한 연결이 빚어낸 엄연한 실재로 설명한다.
보이지 않던 감각의 지도가 과학의 언어로 해독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 너머의 감각’을 예술로 승화시킨 선구자가 바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이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들으며 "눈앞에서 선과 색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캔버스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면이 아니라, 악기들이 공명하는 울림판이었다. 색채는
피아노의 건반이었고 눈은 현을 두드리는 망치였으며 영혼은 수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 그 자체였다.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역시 소리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고 믿으며, 연주 시 특정 음에 맞춰 해당
색의 조명을 쏘는 '색채 피아노'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토록 ‘현상 너머’에 매료되는가? 그것은 인간이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를 넘어,
삶의 이면에 숨겨진 질서를 찾으려는 형이상학적 본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칸딘스키가 소리를 색채로 치환한 추상화를 통해 예술의 지평을 넓혔듯, 동양의 선인들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인 기(氣)를 통해 우주와의 연결성을 읽어냈다.
풍수는 바로 그 지혜의 체계화된 결과물이다. 땅의 형세와 기운을 읽는 풍수는 단순한 미신이라기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선인들이 포착한 ‘환경의 에너지’를 사회적 지혜로 정리한 것에 가깝다.
칸딘스키가 소리에서 색의 에너지를 보았듯, 지관(地官)은 산과 물의 배치에서 미세한 기의 흐름을
읽어낸다. 어쩌면 이러한 능력은 인간과 자연의 공명이 만들어낸 ‘고차원적 공감각’일지도 모른다.
물론 공감각은 현대 과학의 영역에 안착한 반면, 기의 세계는 여전히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증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환상으로 여겨졌던 칸딘스키의 감각이 뇌과학으로 입증되었듯,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
또한 언젠가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 안에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현상 너머를 탐구하는 일은 인간의 멈출 수 없는 본능이다. 과학은 그 세계의 실체를 밝히고, 예술과
철학은 그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 끝없는 질문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을 갱신하고, 인간 존재의 지평을 넓혀간다.
<오늘의 칸초네> Milva / Da troppo tempo
Milva(1939~2021)는 이탈리아의 가수 겸 배우다. 5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다.이탈리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가수다.
Da troppo tempo(사랑은 아득히)는 그녀의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다. 1961년 발표됐다. 오지 않는연인을 기
다리는 고통과 비탄을 노래했다. https://youtu.be/pZafAibAhVw
첫댓글
"감각의 지도가 과학의 언어로 해독"
"과학은 그 세계의 실체를 밝히고,
예술과 철학은 그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멋진 생각의 발견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