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의 하늘과 땅, 내세의 하늘과 땅
베드로후서 3:10-14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본문은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엄청난 정보들을 제시한다.
첫째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라고 말하고 있다. “주의 날”은 12절에서 “하나님의 날”과 같은 날이다. 또한 이 구절에서 베드로의 마음에는 주님의 재림과 우주의 큰 변동이 발생하는 사건은 “같은 날”이라고 말하고 있다. 곧 주님의 재림과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는 같이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 중간에 시간 간격이 있거나 또 다른 시대가 (가령, 천년 왕국) 삽입될 것을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과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 사이에 어떤 중간 과정이 있다는 보는 것은 본문의 내용과 상충된다.
둘째,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내용을 별 생각없이 보면 현재 하늘과 땅이 다 불에 타서 소각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성경이 멸망할 이 세대의 하늘과 땅에 대하여 너무나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곧 베드로는 현세의 하늘과 땅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내세, 곧 새하늘과 새땅의 세대가 임하게 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3절과 14절의 “바라보도다” (프로스도카오) 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기다리는 개념으로서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가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개념이라기 보다 지금 이 세상의 하늘과 땅에 큰 변화 이후에 새롭게 등장하는 하늘과 땅을 기다리는 개념이다.
분명 새로운 것이지만 과거의 것과 완전하게 상관이 없는 그러한 개념이 아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새”하늘과 “새”땅의 “새로운”이란 원어는 “네오스”가 아니라 “카이노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네오스”는 시간 관념으로서 기원에 있어서 새롭다는 뜻인 반면, “카이노스”는 본성이나 질에 있어서 새롭다는 뜻이다. 그래서 보통 “카이노스”는 실재하던 존재가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 “새롭게”되는 개념이며 없던 것이 생기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성경에서 이 개념은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 5:38)고 할 때 앞의 “새” 포도주는 “네오스”를 사용하고 있고 “새” 부대는 “카이노스”를 사용하고 있다. 곧 새로 생긴 포도주는 근본적으로 질이 변화된 가죽 부대가 아니면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아무튼 새하늘과 새땅은 현재 이 땅과 하늘의 새로운 변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새하늘과 새땅은 현재의 하늘과 땅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우주의 출현이 아니며, 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은하수 및 행성으로 우리가 이전되는 것도 아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새하늘과 새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하늘과 새땅이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오는가? 현재 있는 땅과 하늘이 큰 격변을 통하여 하나님의 우주적인 재창조에 의하여 새롭게 되어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는 뜻이다.
이 구절의 불도 멸망의 불보다는 연단의 불을 말한다. 이 창조계가 대격변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이 지구와 하늘들 곧 우주이다. 그 범위가 얼마나 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개념은 불이 마치 여러 불순물이 섞여 있는 금을 도가니에 넣고 제련하여 정제된 금을 얻는 것처럼 이 주님의 날의 연단의 불은 이 세상의 모든 죄의 결과들을 정화시켜 결국 “의의 거하는” 곧 죄가 없는, 죄의 결과인 죽음과 저주가 사라진, 새하늘과 새땅으로 변화된다는 뜻이 되겠다.
베드로의 이 내용은 바울의 로마서 8장과 조화를 이룬다. 로마서 8장은 이 세상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활하여 나타날 것을 기다린다고 주장한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정확하게 피조물의 동물의 세계도 새하늘과 새땅을 기다린다는 점이요 그 새로운 세상은 죄로 인한 결과들이 다 제거된 상태임을 알려 준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회복이요 나아가 피조물을 향하여 가지셨던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됨을 말한다. 곧 우주적인 구속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피조물, 특히 동물의 세계를 포함하는 이 땅을 포함한 구속이라야 로마서 8장은 의미를 가질 수가 있게 된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의 성도의 부활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그리고 부활체로 얻게 될 유업, 곧 새하늘과 새땅이 다 연결되는 것이다.
계시록 21장 1-2절에서도 위의 내용을 증거한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창세기 1장에서 “토브”하였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더라, 선하였더라고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주께서 선포하고 계시다. 곧 이 피조물에게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인간의 죄와 죄로 인한 저주일 뿐이다. 이 저주와 죄의 세력, 그리고 근본적 타락자인 사탄이 완전히 다 제거되고 사라진 곳이 새하늘과 새땅이다. 그곳은 오직 부활한 주의 구원받은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생을 소유한 사람 외에는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갈 수 없으며 또한 내세에서의 영광은 이 현세에서의 주를 위한 수고와 비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작성자: 스데반 황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