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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실천하는 지성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CEO 리더십]
잠실/맥(조문희) 추천 0 조회 114 15.01.19 10: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CEO 리더십]

실천하는 지성 장 폴 사르트르

"마음을 얻으려면 주인공으로 대접하라"

 

당신은 지금 복도에 있습니다. 자물쇠 구멍으로 한 방을 들여다보려고 애씁니다. 숨죽이고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이때 복도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서 내가 남의 방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당황한 당신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됩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바로 ‘부끄러움’이죠. 그런데 왜 부끄러울까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 관찰 대상이 되고 만 것이 부끄러운 것이죠.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저 보이는 대상이 된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비밀 누설자 색출 작업이 실패한 이유

 

이런 문제를 잘 설명해 준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즉자적 존재(卽自的 存在), 또 하나는 대자적 존재(對自的 存在)입니다. 즉자적 존재는 쉽게 말해 무생물 같은 존재입니다. 의식할 수 없고 의식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도 없고 삶의 환경에 대해 자유를 행사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 대자적 존재는 의식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대자적 존재입니다. 자신을 대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존재니까요.

그래서 훔쳐보던 당신은, 본래 대자적 존재가 타인의 관찰의 대상이 되어 즉자적 존재로 전락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즉자적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즉자적으로 대해서도 안 됩니다.

한 미국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인수·합병(M&A) 관련 논의를 하는 미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회의 내용이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겁니다. 회장은 진노했습니다. 그렇게 민감한 사안을 신문 기자에게 흘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색출하기로 결심합니다.

회장은 사립 탐정을 고용합니다. 그 사립 탐정은 중역들을 미행하고 e메일을 검색하고 도청 장치를 달고 운전사들을 첩자로 심어 놓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찾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회장이 사립 탐정을 고용해 중역들을 비밀리에 조사했다는 사실이 미디어에 포착되고 말죠. IT 업계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물론 회사 기밀을 외부에 누출한 중역이 잘못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회사를 배신하고 조직에 해를 끼친 것은 당연히 비난 받아 마땅하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 색출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런 방법을 썼더라면 어땠을까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극도로 민감한 사안들이 계속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사안의 민감성도 그렇지만 회의 참석자를 우리 스스로 믿지 못하는 불신의 상태로 빠뜨리는 게 더 심각합니다. 여러분도 모두 공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이런 현상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 같이 논의해 봤으면 합니다.”

이 방법이 훨씬 더 나은 이유는 모든 사람들을 즉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대자적 존재로 인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으로 대우해 주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할 것에 모두 동의를 구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데 모두 동참하도록 만드는 것은 중역들을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대우해 주는 것입니다. 공동으로 논의한다는 자체가 벌써 해결책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남의 방을 엿보다가 들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들키기 전에 이미 스스로에게 들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에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늘 자신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공자님께서 ‘논어’에서 말씀하신 신독(愼獨), 즉 “혼자 있을 때 조심하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남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움찔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마구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마구 행동하는 것을 자신은 보고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남에게 마구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존심도 자부심도 자신감도 없는 이유입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적용할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할 때 지켜야 할 법칙 하나가 있습니다. 규칙의 적용 대상이 되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은 보안을 요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직원들에게 전자태그(RFID) 카드를 나눠주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기 힘들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때 주지해야 할 것은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감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주지하고 그에 대한 동의를 계속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 직원이 자신이 ‘즉자적 존재’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순간 회사에 대한 일말의 충성심조차 날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직원들에게 묻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리더가 “직원들이 반드시 이렇게 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 이유를 설명한 다음 대안을 직접 들어보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직원들이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사르트르가 죽고 난 후 장례식에는 무려 5만 명의 국민들이 운구 행렬을 따랐습니다. 정치가도 연예인도 아니었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존재와 무’, ‘구토’와 같은 책을 쓴 철학자였습니다. 그런데도 프랑스 국민들은 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습니다.

 

 

"직원이 자신이 '즉자적 존재'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순간 회사에 대한 일말의 충성심조차 날아갈 수 있습니다."

 

 

장례식에 프랑스 시민 5만 명 참가

 

왜일까요. 그는 평생 프랑스 공산당과 함께 노동자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고 모택동주의자들의 전단을 길거리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단지 마오이즘을 찬양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한번쯤 들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체 게바라를 면담하기 위해 쿠바까지 찾아갈 정도도 좌경향의 철학자였습니다만 소련이 지상낙원도 아니고 인간의 억압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후 현실에서 사회주의가 가진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용감하고 진실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프랑스 국민들이 존경을 표한 것입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가 남긴 이 말은 여러분도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를 보세요. 의자는 즉자적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없지요.

‘앉는다’는 부여된 목적 하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상에 먼저 존재하고 난 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 나가는 자유를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지지를 보낸 철학자에게서 배울 교훈은 바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자유를 존중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모두가 자유롭지 않으면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경

 

 

 

 

 

쟝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해군장교인 쟝-밥티스트 사르트르(Jean-Baptiste Sartre)였으며, 어머니는 샤를르 슈바이처-알버트 슈바이처의 삼촌이기도 한-의 딸인 안네-마리 슈바이처(Anne-Marie Schweitzer)였다. 그가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사르트르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으로 가서 1916년 어머니가 재혼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그는 어린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독일어를 배우면서 문필과 학문을 숭상하는 명문 슈바이처 가문의 지적 분위기를 익혔다. 1916년 그는 해양기사인 망시와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라로셀(La Rochelle)로 가 의붓아버지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곳에서 지낸 4년 동안의 생활은 의붓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1924년, 그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서 4년 동안 주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1928년, 그는 교수자격 국가시험(Agregation)에 응시했으나 실패했다. 그 이듬해 그는 시몬느 드 보봐르(Simon de Beauvoir)와 만났다. 이때부터 이 두 사람은 세인(世人)의 주목거리가 된 실험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에 두 사람은 교수자격 국가시험에 응시하여 사르트르와 보봐르가 각각 1,2등을 차지함으로써 다시 한 번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1929∼31년까지 군복무를 마친 사르트르는 1931년부터 르 아브르(Le Havre)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그의 소설 『구토』(Nausee)에 나오는 지명인 부비유(Bouville)의 모델이 된 도시였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그의 유학기간이었다. 독일의 베를린 대학과 프라이브르크 대학에서 그는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서 돌아온 그는 파리에 있는 꽁도르세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1939년 그는 전쟁에 동원되지만 1940년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그 이듬해 풀려나자 그는 메를로-뽕티와 함께 지식인 저항그룹을 결성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

 

1945년에는 「Combat」와 「Le Figaro」의 특파원으로 두 번에 걸쳐 미국을 여행하면서 '실존주의와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특히 그 해에 그는 '레종 도뇌르'(La Legion d'Honneur) 훈장의 수여를 거부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1945년은 그가 창간한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가 처음 출판되는 해이기도 하다. 1948년부터 그는 정치문제를 비롯한 현실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탄원서와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64년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여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1974년 꽁도르세 고등학교의 교직생활을 끝으로 철학교수로서 대학 강단에는 더 이상 섰던 적이 없다. 수많은 강연과 인터뷰들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직접 토로하는 것 이외에는 평생을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사르트르가 출판한 최초의 저서는 1936년에 자아에 관한 문제를 다룬 『상상력』(L'imagination : Etude critique)이라는 책이었다. 1938년에는 그의 유명한 소설 『구토』가 출판되었으며, 『정서이론의 스케치』(Esqisse d'une theorie des emotions)와 소설집 『벽』(Le Mur)이 그 이듬해 나왔다. 1940년 그는 독창적인 이마쥬론인 『상상력 : 상상력의 현상학적 심리학』(L'imgination : psychologie phenomenologique de l'imagination)을 출판했다.

 

그가 사병생활 시절 병영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대표적인 철학저서 『존재와 무』(L'etre et le neant : essai d'une ontologie phenomenologique)는 1943년에 출판됐다. 그 해에는 그의 희곡 『파리떼들』(Les mouches)이 Theatre de la Cite에서 공연되었다.

 

1945년에는 두 권으로 된 소설 『자유의 길』(Les chemins de la liberte)과 잘 알려진 희곡 『닫힌 문』(Huis clos)이 나왔다. 그의 유명한 강연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가 행해진 것도 같은 해였다.

 

1947년 그는 『보들레르 연구』(Baudelaire)를 출판했고, 그의 잡지 「현대」에다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erature?)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그간의 논문들을 모아 「상황들」(Situations)이라는 논문집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 논문집은 그 뒤 1948년, 49년, 64년, 65년, 72년, 76년에 걸쳐 10권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전집 가운데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제2권, 1948),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제5권, 1964), 「마르크스주의」(제6권, 1964), 「마르크스주의 2」(제7권, 1965), 「68년을 전후하여」(제8권, 1972), 「정치학과 자서전」(제10권, 1976)등이 실려 있다.

 

1952년 그느 쟝 쥬네(Jean Genet)의 저서에 대한 입문서인 『성 쥬네 : 희극배우와 순교자』(Saint Genet : Comedien et martyr)를 출판했으며, 1950년 이제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 변화는 그로 하여금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결합을 시도케 하여 1960년 그 첫 번째 결실로서 『변증법적 이성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인 제1권을 그는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1964년에는 그의 노벨상 수상작품인 『말』(Les Mots)이 나왔다. 1971년 그는 플로베르에 관한 방대한 연구서인 『가문의 얼간이』(L'idiot de la famille : Gustave Flaubert de 1821 a 1857)의 출판을 시작하여 그 이듬해까지 세 권으로 완성했다.

 

 

사르트르의 문학 (실존주의 문학)

 

1) 2차 대전의 비참함을 경험한 유럽 사람들에게 인간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세계의 어둠에 압도당하고 부단히 위협당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자문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기보다는 우선 행동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레지스탕스 운동에서 말로나 카뮈처럼 눈부신 역할을 하지 못한 대신, 만인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마련해 주고자 한 것이다.

 

실존주의란 원래 철학적 용어로서 키에르케고르, 후설,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철학자들이 발전시켰고, 문학적으로는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특정한 문학적 주의라든가 철학적 사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태도를 나타낸다. 사르트르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나 천부의 인간성은 믿지 않는다. 진리나 인간성은 인간이 각자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색과 행동에 의하여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자기를 형성하고 역사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를 파악하고 상황을 포착해야 하며, 근원적인 문제로서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존재 이유도 종극 목적도 없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태어난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 속에서 모든 행동을 자기 의사에 의하여 결정해나가야 한다.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영웅은 모든 관례주의에서 벗어나 자기를 진정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그의 모든 작품의 테마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인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획득하는가이다. 상황 속에 던져진 인간의 참다운 자유란 역사의 흐름에 구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획득된다. 사르트르는 자기의 철학 사상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 문학적인 방법을 빌고 있는 철학자다.

 

2)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보다 앞서는 것이며, 인간은 자기의 뜻에 의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연히 태어나 그저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극히 자유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이 그 자유를 구사하여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 아무런 본질도 미리 갖추지 못하고 이 세상에 홀로 내던져져 있는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은 타인의 지옥 속에서 그리고 구체적 상황 하에서 자신의 존재에 주체적 의미를 줄 행동을 선택해나가야 하며 이러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존재와 행동을 가로막으려는 세력이나 유혹과 투쟁해나가야 한다는 사상이다. 전쟁이 끝나자 사르트르는 전후 사상의 지도자로 불린다.

실존주의는 모든 기존 가치가 무너진 풍토 밑에서 휴머니즘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원리처럼 대접받았다. 그리하여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운명지워져 있는 존재", "인간은 전 인류의 이름 아래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등의 표현들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좌익과 그리스도교로부터 이중의 맹렬한 비판 속에서, 실존주의는 어려운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가장 영웅적이며 진정한 윤리로 여겨졌다.

 

4) 인격의 문제에서 심리적인 혹은 도덕적인 면에만 관심을 둔 종래의 작가들(초현실주의자들은 제외)과는 달리, 사르트르는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취급했다.

 

<구토> :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보잘것없는 줄거리 위에 던져져 있는 일련의 철학적 명상이고, 신랄한 고찰이며, 풍자적인 장면들이다.

 

<벽> : "벽", "어느 지도자의 어린 시절". "에로스트라트", "방", "친밀함" 등 5편의 중편 소설집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임을 역설했다. 인간은 일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 처해 있으며, 그의 자기 창조의 노력은 자유를 향한 상황의 변혁 즉 사회 혁명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문학은, 적어도 산문 문학은 이러한 자기 창조, 자유, 혁명의 삼위일체를 위해서 바쳐져야 하며 적극적 참여를 통해서만 그 존재 의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5) 행동의 문제 : <자유의 길> : 자유라는 것은 내부의 생명을 모조리 솟아올려 순간의 자극에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검토한 뒤에 정신이 결정한 것을 실행하는 의지적인 행위는 실패한 행위다.

 

소설 기법 :조이스 식의 내적 독백, 영화의 대경(大景)과 명암, 수천 리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서로 전혀 관계 없는 행동들을 단 하나의 문장 속에 섞어놓는 동시적 묘사 등. 작가가 비상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확하고 면밀한 묘사로 가득차 있는 이야기의 밖에 머물려 애쓴다. 그의 학설인 "현상학적 실존주의"는 현상의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아 재능의 방향으로 밀고 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의식은 사물에 부여하는 명칭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작중 인물 : 행동이 우유부단하고 지속성이 없다. 새로운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는데, 거기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는 예측할 수 없다. 이야기의 신빙성이 희박해지고 인생 자체보다도 오히려 인생의 매우 지적인 모조품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생기는 것은 정열의 약동과 지속성이 결여된, 완전히 점묘적이고 단속적인 심리 묘사를 항상 마치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존재에 대한 비뚤어진 개념, 인간 가치에 대한 완고한 경시가 있다. 사르트르의 흥미를 끄는 유일한 인간은 타락한 학생, 탈선한 계집애, 알콜 중독자, 코카인 중독자 등 저열한 사람들이다.

 

물질 : 사르트르는 물질의 가장 추악하고 불쾌한 면에 매혹되어 있는 것 같다. 사르트르의 세계는 무기력과 메스꺼움, 구역의 세계다.

 

문체 : 매우 직접적이고, 문어체이기보다는 구어체인데, 내적 독백에 있어서 통속적이고 곁말 투성이이며, 객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회화적이고 생략적이고 경쾌하다. 하지만 언제나 견고하고 당당한 문체이고 스냅 사진처럼 선명한 의외의 영상들로 가득차 있다.

 

6) 희곡 : 사르트르는 능란한 기교, 등장 인물의 지극히 개성적인 생활, 문제의 강력한 이해력 등 희곡에 훌륭한 자질을 보였다. 그는 현대의 정치적, 도덕적 대문제에 대들고 있다. 즉, 민족주의와 청교도적 위선을 강력한 소묘화로 고발하고 있다.

<무덤 없는 사자(死者)>에서는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 인간은 도덕적, 심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그려져 있다. <더러운 손>은 정치극이 아니라 심리극이다. 공산당 정치국의 변화를 강조하기보다도, 행동에 참여하면서도 마음의 주저로 제지되는 한 지식인의 내면적인 고뇌를 연구해야 한다.

 

정치 : 사르트르는 <현대>지의 창설자이자 주필이었다. 앙가주망의 문학, 즉 정치적인 입장을 뚜렷이 취하는 문학의 지지자였다. 그는 딜레탕티즘에 의해서 지쳐빠진 문학은 전투적이 됨으로써 힘을 되찾으라고 말한다(<상황>, <문학이란 무엇인가?>). 모든 탈출을 비난하고, 현실에서 우리를 떼어내려 하는 모든 것을 불성실한 행위로 고발한다. 이해 관계를 떠난 지적 향략은 죄 많은 도피다.

 

문학 비평 : 사르트르는 분석과 분해에 능숙한 철학자다. 어떤 작품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연구하고 어떤 작품의 기교를 교묘하게 분해했다. 그러나 심미적인 감동에 관하여는 방관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1947년에 있어 작가의 상황을 규정하고, 현대의 문학자는 근로자 계급의 해방을 꾀하여야 한다고 함.

 

 

 

 

사르트르의 사상 전개 과정

 

1)제1기

 

<구토> : 주인공 로캉탱을 통해서 모든 의미가 박탈된 존재의 양태를 그려나간다. 하지만 이 존재 의미의 상실은 단순히 감정적인 혹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단편적인 현재의 순간을 살아가는, 이 정당화될 수 없는 삶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무너진다. 자아와 타인과 사물을 맺어온 관계가 토막토막 끊어지고 그것들은 추하게 그 원초적인 양상을 드러내보일 뿐이다. 이렇게 의미의 사슬에서 풀려나와 공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의 양상을 사르트르는 잉여물이라고 부르는데, <구토>의 많은 부분은 잉여물로서의 본질적인 양상을 모르고 마치 자기의 존재가 이 세계에서 필요하고 의미가 있는 양 행동하는 각성 이전의 인간들에 대한 풍자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구원은? 로캉탱은 음악의 순수성에 빠져들어 사물 그 자체로 환원된 순수한 예술 작품의 창조를 꿈꾼다.

 

<벽> :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자아는 정당화될 수 없는 존재성을 지닌 동시에 타인이 있는 세상에서 산다는 두 가지 조건을 지니고 있는데, 타인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끼여들어 있는 자아는 과연 어떻게 스스로를 정당화시켜 나가기를 시도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몇 가지 경우를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대타관은 존재론적으로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나는 타인이 있는 세계에 산다. 2)나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의 존재를 요청한다. 3)나와 타인의 관계는 적대적이다. 이로써 타인을 사로잡거나 일부러 타인에게 사로잡힘으로써 자기의 존재에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의 희극"이 연출되는데, "타인의 지옥" 속에서의 이러한 자기 기만이 성관계나 죽음의 순간에도 지속되고, 광기, 새디즘, 매저키즘의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보여준다.

 

<파리떼> : 그러면 아무 뜻 없이 타인의 지옥 속에 내던져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르트르는 내던져진 인간의 존재론적 자유의 개념을 역사의 마당에서 인간이 획득해야 할 가치로서의 자유로 전환시킨다. 이때부터 인간은 아무런 속박도 구원도 없이 자유롭다는 인식을 자기의 전 책임 하에 받아들이며 이 근원적 자유의 인식을 가로막는 일체의 허위적 개념 및 자기 기만을 거부하는 것이 윤리적 명제로서 강조되기 시작한다.

 

2)제2기

 

실존 윤리를 천명하거나 그중 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을 이용한 시기다. <자유의 길> : 자유와 주체적 선택을 결부시키지 못한 지식인의 비극을 그림으로써 일정한 역사적 상황 하에서의 결단을 역설적으로 촉구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문학은 자유의 실현을 위한 투쟁이다. 참여 문학의 이론을 제공했다. <악마와 선신> : 절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선악이란 있을 수 없고 모든 행위의 도덕적 의미는 상황과의 관련 하에서 결정된다. <성 주네> : 천대받은 작가가 어떻게 자기의 처지를 넘어서면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신을 정립해 나가느냐를 보여준다.

 

3)정치 참여

 

인간이 진실한 자기 실현의 기초가 될 자유의 획득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큰 장애는 경제적, 사회적, 사상적으로 지배 계급을 형성하면서 대중을 억압하고 있는 부르주아지다. 사르트르는 창작과 비평의 주제를 부르주아지에 대한 고발로 편향, 정치 논설과 실제적 행동을 통하여 직접적인 투쟁을 시도했다. 부르주아로서의 죄책감의 소산이라고 보기도 하나(<말>), 유럽 지식인의 괴로운 양심의 표현이라고 풀이해야 한다. 사르트르는 정치 조직인 '민주 혁명 연합'을 설립했다. 각자가 그 정치적 입장을 바꾸지 않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민주적 혁명의 실현이라는 한 점에서 단결하면 되는 것이며, 공산당에 가맹하지 않은 여러 사회주의의 세력을 모조리 집결하여 미소 양대 진영으로부터 독립된 유럽을 구축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사르트르는 반미적이 되고 다른 간부들은 반공적이 되어, 사르트르는 조직을 탈퇴하였다.

 

<더러운 손> : 사르트르는 이 작품에서, 혁명을 지향하지만 현실적 정책을 채용하고 있는 노동당의 당수와 그를 암살하려는 급진파 당원, 그리고 당수의 암살을 결국 실천하는 프티 부르주아와 인텔리 등 세 사람의 생활 양식을 통하여 공산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중화 인민 공화국이 성립되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미국의 메카시즘이 선풍을 일으키고, 소련에 강제 수용소의 존재가 밝혀지자, 사르트르는 수용소를 비난했으나, 동시에 유럽 자본주의 국가에는 수용소 대신 실업과 식민지주의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비인에서 개최된 평화 옹호 대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공산주의의 동반자라고 선언했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 : 부르주아 계급의 분석적 정신의 오류를 지적하고 전체적인 인간학에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며 스탈린주의의 관료성과 독점성에 의해서 정체되고 불모화된 마르크스주의에 실존주의적 방법을 적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전쟁 : 디엔비엔푸 함락으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했다. 사르트르는 알제리 전쟁에서, "알제리에 있어서의 불복종의 권리에 관한 선언("121인 선언")"의 발기인이 되어 격렬한 반식민지 투쟁을 벌였다. 1968년에는 학생들을 주체로 한 5월 혁명을 지원했다. 소련의 체코 침공에, 소련 작가 동맹과 절교를 했다.

 

4)사르트르와 공산주의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에 대한 인식 하에서 주체적 생성의 가능성을 보장하려는 사르트르의 개인주의와, 유물론에 입각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상으로 삼는 공산주의는 그 철학적 기초에 있어서나 혁명의 목적에 있어서나 타협의 여지가 없는 양극을 이루었다. 1)유물론이라는 공산당의 철학은 인간의 근원적 자유의 인식에서 출발하는 그의 철학과 부합하지 않는다. 2)부르주아지 출신이라는 그의 신분이 공산당의 적이다. 부르주아 지식인은 전적인 비판의 자유를 갖고자 하는데 공산당은 이 자유가 부르주아지 그 자체에 대해서 행사되는 것만을 인정할 뿐이다. 사르트르가 설립한 정당 "민주 혁명 연합"은 좌절을 겪는다. 사르트르는 <유물론과 혁명>에서는 통렬하게 유물론을 공격하고, 헝가리 사태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반소적인 태도를 표명하며,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는 마르크시즘과 실존주의를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모택동을 예찬했다. 근자에는 사회 혁명 수단으로서 문학 활동은 효용이 없다고 선언했다.

 

사르트르 비판

 

1)그에게는 죽음에 대한 집념이 없다. 그가 말하는 미래란 죽음 직전까지의 현세에 있어서 생성의 시간이며 결코 죽음과 죽음을 넘어서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상이다.

 

2)그는 인간을 미래로의 투사로만 파악하므로 과거의 짙고 무거운 그림자를 지녀야 하는 고민을 모른다. 과거를 지니지 않는 인간, 과거와 미래 사이에 찢기지 않는 인간이란 필연성 없는 가공의 인물이며 사르트르의 사상적 괴뢰다.

 

3)독재와 착취와 계급을 부정하는 부단한 혁명이 단독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 사회 혁명은 반드시 일정한 정치 세력과 관계 하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가 지향하는 문학 역시 어느 정당과 결부되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5.카뮈와 사르트르

 

당시 프랑스에서는 개인적 사상과 사회적 현실과의 연관성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게 되어, 레지스탕스 활동이 그들에게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 그들의 사상은 다음의 3단계를 거쳤다.

1)공동체 의식이 싹트기 전의 인간 성찰.

2)양자의 병존.

3)이 양자의 연결 시도.

사르트르가 <구토>로부터 오늘날의 고독하고 열광적인 좌익 운동에 이르는 궤적을 따르는 동안, 카뮈는 <표리>로부터 <페스트>를 거쳐 <전락>으로의 과정을 나타낸다. 대전 후에 그들이 커다란 매력을 끼친 이유는 기독교의 인간관이나 전통적 휴머니즘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듯이 보이는 대전 전부터 그들 특유의 개인관이 가치의 황무지에서 새삼 문제가 되고, 또한 바로 이런 황무지에 대한 철저한 인식 위에 새로운 공동체 윤리를 세우려는 그들의 자세가 영웅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참여 문학, 철학적 문학, 새로운 휴머니즘 또는 실존적 문학 등의 호칭 하에, 사르트르와 카뮈는 쌍생아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1952년 카뮈의 <반항인>을 계기로 두 사람은 정면 충돌하게 된다. 비폭력과 윤리를 내세우는 카뮈에 반해, 사르트르는 피억압 계급의 해방을 초미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부조리란 무엇인가. 사르트르는 외계의 사물은 물론 인간의 존재가 그 자체로서는 뜻이 없다(존재론적 부조리)고 본 반면에, 카뮈는 부조리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설명될 수 없는 관계일 뿐, 주체 그 자체의 존재는 결코 아니라고 보았다. 카뮈는 이성적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주객의 관계를 정열적인 실감을 통해서 회복하려 한 것이다. 카뮈도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등지지 말아야 하는 작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자아의 차원이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인 것으로 옮아간다. 그러나 현실과 대처하는 사상적 근거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1)참여의 문제 : 카뮈는 사르트르처럼 사회 현실에 대한 적극적, 자의적 참여가 작가의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을 위협하는 현실에 대하여 등을 돌리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려는 그의 입장은 징집을 당한 장병이나 노예선에 실린 수인과 같은 강제적인 것이며, 결국 작가 개인의 집념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에 나타난 행복과 비참, 삶과 죽음, 설명을 요구하는 이성과 설명될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갈등이 이제는 자유와 독재, 정의와 부정, 창조와 허무 사이의 갈등으로 옮아가고, 전자를 지키기 위해서 후자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투쟁을 불가피한 당면 과제로서 받아들이려는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 소설 <페스트>, 이론 <반항인>으로 나타났다.

 

2)인간관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역사관 : 카뮈에게 인간이란 결코 부조리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그 자체의 독특한 위엄과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작가의 사명은 그의 속에 깃든 위대성을 지켜나가는 데 있다. 그런데 역사는 이런 인간성을 짓밟는 요소에 대한 투쟁인데, 현대사에 등장한 혁명 이론은 있을 수 없는 절대적 진리의 이름 아래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테로리즘을 내세운다. 따라서 작가는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편에 설 수 없고 역사의 흐름을 저지함으로써 인간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것은 혁명 과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해나가기를 주장하는 사르트르의 견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한국 독자에게 끼친 영향

 

사르트르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해방 공간인 1948년 <신천지> 등의 문학지에 그의 단편 <벽>이 번역되고 실존주의 특집 등이 게재되면서부터다. 그러나 그가 실존주의 문학의 총아로 인식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얻게 된 것은 6.25 이후부터 동족상쟁으로 인한 철저한 파괴 상황 속에서 한국의 문학 청년들은 인간은 "자신이 하는 바에 의해 규정된다"는 실존주의의 어찌보면 영웅주의적이기조차 한 상황 윤리에서 구원을 보았다.

 

"말하는 것이야말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그의 문학관도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동의를 얻었다. 문학 평론가인 김윤식 교수는 "사르트르와 우리 세대"라는 글에서 "사르트르는 우리 세대에게 선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열을 제시해주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따라서 50년대 한국 문단에서 사르트르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장용학은 실존주의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요한시집>을 발표해 인기 작가로 부상했고, 젊은 평론가 이어령은 마치 사르트르의 산문을 방불케하는 수사로 가득찬 평론을 발표해 문명을 떨쳤다. 그러나 60-70년대 사르트르가 보여준 전투적인 정치적 궤적들은 냉전 사고에 젖어 있던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67년 <창작과 비평>에 실린 그의 <현대>지 창간사 등이 "정치화된" 사르트르의 면모를 소개하는 몇 안되는 문헌이었다.

 

80년대 사회 변혁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커지면서, 대학가에서는 그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필독서로 대접받는다. 66년 사르트르의 일본 방문 때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전문 분야에 몸담고 있는 기능적 지식인들은 보편적 진리를 위해 지배 계급에의 봉사를 거부할 때 참된 지식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지식인관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허연의 명저 산책]

장 폴 사르트르 `구토`

 

"인간의 본질은 인간만이 규정할 수 있다"

자아에 눈떠가는 지식인 그려, 실존주의 철학의 토대 된 걸작

 

장 폴 사르트르는 드골 정권으로서는 눈엣가시였다.

1958년 독립을 원하는 알제리 해방전선과 이를 막으려는 프랑스군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알제리 독립을 지지했던 당대 지성 사르트르는 정부에 대한 불복종 선언을 주도하면서 사사건건 드골과 각을 세운다.

2차 대전 영웅인 드골은 지지층이 탄탄한 대통령이었다. 드골 지지자들은 사르트르 아파트에 폭탄테러를 하고, 집회를 열어 반역자 사르트르를 처형하라고 외쳤다. 측근들은 수없이 사르트르를 구속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드골은 "볼테르를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며 그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볼테르가 누구인가. 18세기 사상가였던 볼테르는 프랑스 지성과 양심의 상징적 존재다. 드골은 사르트르를 볼테르와 동급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 때문에 역사는 두 사람 모두를 승자로 기억한다. 끝내 신념 편에 섰던 사르트르와 그 신념을 존중한 호방한 무인 드골 모두 프랑스인들에게 사랑받는 위인으로 남았다.

드골에게 치외법권을 인정받은 사르트르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최초로 발화된 소설이 바로 `구토`다. 1938년에 쓰인 `구토`는 그의 최초 장편소설이자 출세작이다.

로캉탱이라는 한 고독한 지식인이 실존적 자아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일기체로 써 내려간 이 소설은 처음 읽는 사람에겐 난해하게 읽힌다. 기승전결 줄거리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을 써야만 한다.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르트르가 말하는 `존재`와 `본질`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근간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존재(existence)는 규정되기 이전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본질은 규정된 이후다. 본질을 뜻하는 프랑스어 `essence`가 법(法)이나 규칙을 의미하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예를 들어 볼펜이 있다고 치자. 이 볼펜의 본질은 이미 규정되어 있다. 볼펜은 이미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본질이 결정된 다음 생산된다. 즉 볼펜은 본질이 정해진 다음에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다.

종교론자들은 인간 역시 본질이 정해진 다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됐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은 이미 신이 정해 놓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무신론자였던 사르트르는 인간은 존재보다 앞서 본질이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봤다.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며 아무리 무겁고 힘들어도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실존주의 논리다.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 로캉탱은 "물체들,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그것들은 유용하지만 오직 그뿐이다. 그것들이 나를 만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쥐었을 때 그것은 일종의 역겨움, 구토였다"고 말한다.

내가 조약돌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조약돌이 나를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주인공은 구토감을 느낀 것이다. 이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르트르는 소설 속에서 소시민적 권태와 부르주아의 위선을 비판한다. 사르트르는 급진적일 정도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추구했다. 그것이 `신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외부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그렇게 싫었을까. 1964년 그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영예는 싫다"며 노벨문학상을 거부한다. 그는 실존주의 전사였다. 소설 속 한 구절처럼.

"다시 걷는다. 나는 고독하다. 그러나 나는 도시로 가는 군대처럼 행진한다."

/ MK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

‘인간 이해’에 집중한 마지막 철학자

 

ㆍ사르트르(1905~1980)

 

누가 뭐라 하든 20세기는 단연코 ‘사르트르의 세기’였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명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2000년에 사르트르의 평전을 출간하면서 제목을 <사르트르의 세기(Le siecle de Sartre)>라고 붙였다. 물론 사르트르는 1905년에 태어나서 1980년에 세상을 떠나 20세기를 다 살지는 못했다. 또한 지난 세기 후반 20년 동안 세계 철학사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 그에 앞선 80년 동안의 그것보다 더 거셌기 때문에, 지난 세기를 온전히 사르트르의 세기라는 주장의 의미는 어느 정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임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성싶다.

 

“나는 스탕달과 동시에 스피노자가 되고 싶다!”

사르트르의 평생의 지적 기획은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그는 이 기획을 성공적으로 실천에 옮겼는가? 답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구토> <자유의 길> <말>을 썼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다른 한편으론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비판> <도덕을 위한 노트>를 쓴 철학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파리떼> <알토나의 유폐자들> <악마와 선신> 등을 쓴 극작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성자(聖者) 주네 : 희극배우와 순교자> <집안의 천치> 등을 쓴 문학이론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쓴 참여지식인 등으로서의 모습 역시 더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스탕달’과 ‘스피노자’가 동시에 되고자 했던 사르트르의 지적 기획은 재차 이렇게 요약된다. “나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졌다.” 이처럼 사르트르의 모든 기획은 ‘인간’에 대한 이해로 집중된다. 그래서 “마지막 철학자”로 명명되는 사르트르!

 

사르트르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크게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존재와 무>에서 볼 수 있는 현상학적 존재론의 시각에서 시도된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의식의 주체, 무화작용의 주체, 대자존재로서의 인간, 자유와 초월의 주체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그것이다.

물론 <존재와 무>에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그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존재들, 가령 즉자존재로 명명되는 사물들과 대타존재로 명명되는 다른 인간들과 맺는 존재관계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 곧 이 존재들 사이에 정립되는 관계의 ‘직설법(l’indicatif)’이 제시되고 있다. 이 직설법은 후일, 특히 인간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명령법(l’imperatif)’, 즉 ‘도덕론’의 정립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그 다음으로 <존재와 무>에 이어 이른바 “구조적·역사적 인간학”의 정립을 목표로 하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이 있다. <존재와 무>에서 시도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고립된 인간, 사회적 지평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을 거부하는 인간에 대한 것이었다.

반면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는 역사와 사회의 지평에 선 인간,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간, 자기를 둘러싼 물질적 환경 속에서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인간이 겨냥되고 있다.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희소성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맺어지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 이들 개인이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이 시간과 더불어 역사를 형성해가는 과정 등을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유를 빌려 기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르트르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은 ‘폭력’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역사의 ‘가지성(intelligibilite; 可知性)은 폭력 위에서 포착된다고 보고 있다.

 

사르트르는 사후 유고집으로 1983년에 출간된 <도덕을 위한 노트>에서 ‘창조’ 행위를 통한 모든 인간들의 이른바 ‘도덕적 전환’ 위에 그 자신의 도덕론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인간은 누구나 창조 행위의 주체이고, 이 창조 행위는 이 주체의 자유와 초월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이 창조 행위는 결국 타인에 대한 ‘호소(appel)’이자 ‘증여(don)’이며, 또한 이 호소와 증여는 타인의 자유와 초월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 창조 행위를 통해 정립되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그들 모두가 자유와 초월의 자격을 유지하는 가운데 정립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은 인간들의 관계는 서로가 주체의 자리를 놓고 서로 투쟁하면서 갈등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고, 주체 대 주체, 자유 대 자유의 관계 정립은 존재론적으로 보아 불가능하다는 <존재와 무>의 논지를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이와 같은 사유는 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또 직면하고 있다. 가령 <존재와 무>에서 시도된 인간 이해는 인간과 사물 또는 그가 몸담고 있는 세계 사이의 지나친 단절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체의 주체이기도 한 인간은 사르트르의 주장과는 달리 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고공(高空)을 비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인간은 이 세계의 일부이며, 따라서 이 세계와 인간 사이의 경계선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메를로-퐁티의 비판이 그것이다. 또한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정립되고 있는 “구조적·역사적 인간학” 역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역사의 형성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르트르의 주장은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레비스트로스의 강력한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폭력 개념을 바탕으로 한 사르트르의 “구조적·역사적 인간학” 정립의 시도는 그의 친구였던 아롱으로부터 통렬한 비판을 받았다.

아롱은 사르트르를 ‘폭력의 사도(使徒)’로 규정한다. 게다가 인류의 역사를 폭력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주장은 또 한 명의 친구이자 맞수였던 카뮈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리고 <도덕을 위한 노트>에서 시도되고 있는 사르트르의 도덕론 역시 과연 그것이 그의 존재론, 특히 갈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고 한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어떻게 양립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20세기를 자신의 세기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사르트르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혹은 그의 여러 사유들 중 시간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는 사르트르의 현재성 문제에 다름 아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사르트르에게서 아직도 유효하고, 또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는 사유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사르트르의 타자 이론이다. 시선, 신체 이론 등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의 타자 이론은 그 이후에 오는 여러 철학자들, 가령 레비나스, 라캉, 들뢰즈 등의 타자 이론을 아류화(亞流化)시켜 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결합을 위한 사르트르의 노력이다. 지금 프랑스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들뢰즈, 라캉, 지젝 등의 논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탐구라면,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위시해 <성자 주네> <집안의 천치> 등과 같은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사르트르의 노력은 선구자적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사르트르에게서 앞으로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영역은 ‘미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그 연구가 일천한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미학’은 사르트르의 전 사유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하나의 축(軸)이다. 그의 미학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참여문학론으로 대표되는 ‘참여미학’(또는 현실미학; esthetique du reel)’과 ‘비현실미학(esthetique de l’irreel)’이 그것이다. “현실은 추하고, 상상하는 의식에 의해 무화된 현실, 곧 비현실은 아름답다”는 것이 바로 사르트르의 ‘비현실미학’의 핵심이다. 이 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들은 ‘이미지’ ‘상상력’ ‘아날로공(analogon)’ 등이다.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사르트르의 모습이 더욱 풍부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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