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안나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흉부외과 전공의 1명인데 이 사람이 출근안하면 흉부외과 업무 대부분이 조만간 마비됩니다. 전공의를 일반직원과 같은 수준으로 보면 안되죠. 또한 전공의가 준법투쟁으로 하루 8시간 근무만 하여도 실제로 병원은 30% 이상이 일주일내로 마비되어 수술과 입원환자를 대폭 축소하여야 합니다. 젊은 교수들은 어떠합니까? 하루 오전에 위내시경을 30명씩 해도 더하라고 하고, 대장내시경을 10명을 더하라고 하는 것이 한국의 병원들입니다. 젊은 교수 한명의 아파서 쉬면 1~2주 동안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능력의 120%, 200% 이상을 부려먹는 구조에서 택도 없는 이야기죠. 말만 교수이지 전공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입니다.
왜 이렇게 전공의와 젊은 교수들에게 업무가 과중되었냐구요? 이는 우리나라 GNP의 20%도 안되는 나라들보다도 낮은 의료수가 때문입니다. 환자를 진료할 수록, 특히나 중증환자를 진료할 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느 병원도 중증환자에 투자를 못하고,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전공의와 교수들이 몸으로 때우도록 지난 10여년간 의료형태가 무너져버린겁니다. 의료사고로 형사소송을 당하면, 개인의 문제이니 알아서 하라고 하는 병원이 태반입니다. 이 또한 수술하면 적자나 만드는 의사들에게 당연한 처분이지요.
저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이 2000년 전공의 파업 때 전공의였거나 학생으로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과거에 누릴 만큼 누려오신 현재의 50대 이상의 의사들과는 생각의 차원이 다릅니다. 저부터 전공의 파업으로 늘어난 업무를 땜빵하지 않을 겁니다. 외래 환자던 입원환자던 모두 밀리도록 둘 수 밖에 없고, 응급실만 커버하기도 벅찹니다. 또한 저부터도 준법근로를 하여 하루 8시간 근무를 할 것입니다.
의사들이 극단적 투쟁까지 하겠다는 원인이 뭐냐구요? 극심한 저수가로 병원이 망할 수 밖에 없고, 전공의와 교수/봉직의에게 타국에서는 병원직원들이 할 일을 전가시키도록 만들어왔습니다. 병원경영자들의 모임인 병협에서는 이를 방관하고 자신들의 돈벌이만 치중해왔고, 국립병원들은 여타의 공기업과 마찬가지로 노조와 기득권만 챙겨주고 만만한 의사 옥죄기만 열을 올렸을 뿐, 건강보험(수가결정구조)개혁에는 관심이 없어왔습니다. 여기에 복지부 장관/공무원들,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와 건강보험공단의 방만경영 등의 문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각종 언론을 통하여 의사를 마녀사냥하며 모면해왔고 이것이 극에 달했습니다.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어봤자, 취직할 곳은 없고 개업하면 망하는 것이 뻔히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들을 과거에 누릴 만큼 누린 분들의 기준으로 '희생과 봉사'를 하라는 것은 착취일 뿐입니다. 또한 병원의 대부분은 대기업과 사학기업들이 소유주이며, 국공립병원은 더 잔혹한 복지부 공무원들의 손발이며, 여기에서 먹고사는 의사(전공의/젊은 교수)는 손톱의 때만도 못한 처지인데, 무엇이 아쉽고 무서워서 개처럼 일하고 무시와 멸시는 있느대로 없는대로 받으며 환자/보호자에게 맞아도 '맞을 만 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겠습니까?
정부는 이러한 저수가에 대한 대책으로 병원들이 알아서 여관업/식당/건강보조식품 판매 등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하여 돈을 벌어 보전하라고 하는 것이죠. 또한 원격진료로 대형병원은 동네의원과 경쟁하여 먹고 살라는 것이구요. 자,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로 대학병원에 경증환자가 넘치는 문제를 공론화할 때는 언제이고, 원격컴퓨터대면진료를 할 경증환자를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라는 것이죠? 지금도 경증환자가 넘쳐나는 대학병원에서 누가 화상진료하며, 이미 고사된 동네의원은 아예 문 닫으란 말이니...즉 의료전달체계를 더 무너트리자는 앞뒤 안맞는 무개념 정책을 정부가 앞장서는거죠.
3월말 한국에서는 2000년 대규모 의사파업과 비슷한 의료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왜냐하면 보복부와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과 협상, 현재 및 미래에 대한 무대책과 무책임을 덮기 위해서 더욱 언론플레이를 할 테고... 이는 더욱더 많은 의사들에게 공분과 의기를 불러일으키도록 기름을 붙는 것일 테니까요.
추신: 이렇게 의료제도가 망가진 책임은 위에 언급한대로 보건복지부와 정치인들이 가장 크게 가지고 있지만, 예방의학/의료관리학 출신 의사들이 정권의 충복들이 되어 왜곡시킨 것 또한 빼 놓을 수 없겠네요.
그리고 학술적 기준도 없이 한방에게 질병분류코드를 허용하고 한림원으로 끌어오시면서, 의료현실 및 사이비의료에는 눈과 귀를 닫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아오신 의대교수/의학회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다들 바쁘고 힘드신 것은 알지만 일제강점기에 스승의 양심을 지키며 한글을 가르치신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을 생각하며... 의대교수들이 자신들의 환자가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들의 제자가 제대로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의료환경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하지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