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철강기업 포스코가 최근 '디자인'을 접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난해 1월 '디자인 솔루션 태스크포스(TF)'가 발족하면서 고객에게 포스코의 고급 소재와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을 제공하고 있다. 제품과 기술에 고객을 위한 가치를 함께 제공하고, 고객과의 소통 강화로 상생을 추구하는 이른바 '솔루션 마케팅'을 통해 철강 공급과잉의 위기와 새로이 급변하는 미래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고객이 쓰기 가장 좋은 형태, 원하는 형태로 고객이 고민하는 바를 '패키지'로 해결해 제공한다는 포스코의 '솔루션 마케팅'의 맥락에서 디자인 솔루션은 철강재 고유의 특성에 표면처리, 형태, 색상 디자인을 융·복합해 작게는 제품에서 크게는 건축물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다수의 글로벌 기업은 창조적 혁신을 꾀하기 위해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을 활용하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에 주목하면서 이를 핵심 경영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디자인이 트렌드에 민감한 IT기업이나 가전, 자동차사와 같은 B2C 기업의 영역으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B2B 기업인 포스코가 철강 소재에 디자인을 접목해 고객사의 니즈 파악부터 제품 양산화까지 고려한 새로운 방식의 '디자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포스코가 '디자인'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혁신적 사례들을 매일경제 더비즈타임스에서 살펴봤다.
▶ 디자인 아이디어를 통한 고객사 제품 고급화
다양한 요철 모양의 단면을 가진 건축 외장재 표면에 세로 방향으로 다양한 색상이 그려져 있다. 포스코가 디자인하고 계열사(포스코C&C), 강건재 고객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제품을 보면 으레 요철을 먼저 가공한 후 선에 맞춰 별도의 도장을 했으리라 짐작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먼저 각 간격 사이에 대한 정확한 치수 계산과 색상 디자인을 거친 고내식 컬러 강판이 고객사로 넘어간 후 성형 가공(롤 포밍)만 거쳐 완성된 제품이다. 바로 포스코C&C가 가진 고유의 도장 기술에 포스코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융합한 사례다.
포스코에서는 해당 도장 기술이 고객이 원하는 색상을 강판 위에 줄무늬처럼 입힐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 착안해 두 개의 다른 색상 줄무늬가 등 간격으로 번갈아 그려진 강판을 종이 부채처럼 접으면 어느 한쪽과 반대쪽에서 바라볼 때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패턴이 생겨날 것으로 구상했다. 마침 고객사에서도 단조로운 외장 벽체 디자인을 탈피할 수 있는 신제품 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포스코는 고객사가 보유한 요철형 단색 외장재 제품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요철 구간의 치수를 세밀하게 측정해 외관의 디자인 요소를 살릴 수 있는 색상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C&C에 테스트 생산을 의뢰하고 고객사에서는 성형 설비를 통해 최종 제품을 제작했다. 시범 생산·제작 결과 기술적인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생산과 동시에 건축물에 적용했다.
포스코가 해마다 지원하는 스틸하우스 '사랑의 집'(포스코 환경사회공헌실 주관 화재피해가정 지원사업 일환) 16호 외장에 적용한 것이다. 실제 시공성과 제품으로서의 디자인 가치가 우수한 점을 안팎으로 인정받아 포스코에서는 해마다 2채씩 지원하던 스틸하우스 사업을 올해는 해당 제품을 적용한 주택 5채를 시공하기로 했다.
▶ 철강, 친환경 에너지 산업과 조우
포스코는 기존의 단순한 모듈 방식 태양광 구조물에서 벗어나 디자인 요소와 에너지 자가발전에 의한 시민편의 시설을 결합한 기능성 구조물을 개발했다. 지난달 시공이 완료된 인천 청라 국제도시 한 공원에는 솔방울 형상을 닮아 이름 붙은 '솔라 파인(Solar Pine)' 1기와 태양광 에너지로 모바일기기 충전이 가능한 가로시설물 '스트리트 차저(Street Charger)' 3기가 들어섰다. 해안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모든 구조물에는 고내식 포스맥 강판이 적용됐다.
솔라 파인은 태양광 발전, 파고라 쉼터와 벤치의 기능을 더한 구조물로 디지털 건축기법을 활용해 디자인됐다. 주간에는 상부 구조에 의해 기하학적 그림자 패턴이 연출되는 쉼터를 제공하고, 일몰 후에는 주간에 태양광 발전으로 축적된 전력을 경관 조명에 활용한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설치된 '스트리트 차저'는 상부의 태양광 모듈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만으로 유·무선 모바일기기 충전이 가능하고 야간에는 가로등과 경관조명 역할을 하게 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일반 가로등은 전력 공급을 위해 지중 선로 공사 등 비용과 기간 면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데 반해 스트리트 차저는 태양광 자체 전력 수급이 가능하므로 어떤 곳이든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다"며 "기존 제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된 디자인 덕분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 제품으로도 강재 적용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2015년 세계시장에서 전년 대비 2배인 25만대가 판매되는 등 매년 50% 이상 성장률을 기록하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각 민간사업 추진 기업들은 전기차 충전 서비스 유료화에 대비해 제품 및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고자 다각도의 차별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 포스코ICT와 전기차 충전 서비스 디자인 협업을 통해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 시장에서의 철강 수요 가능성을 확인하고 기존 시장 제품 고급화에 나섰다. 월드 프리미엄(포스코 생산 강재 중 특히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제품) 스테인리스 강재 '포스에스디(PossSD)'를 적용하고 벽걸이 타입과 스탠드 타입을 결합한 복합형 완속 충전기 제품을 디자인한 것이다.
▶ '잉크젯 프린트 강판' 아파트 조경
최근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안 분리수거 시설 천장에는 디자인 패턴으로 인쇄된 '잉크젯 프린트 강판'이, 기본 구조에는 고내식 강판이 적용됐다. 포스코가 최근 자체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한 고해상도 잉크젯 프린트 강판의 이미지 패턴을 디자인해 시범 적용한 것이다. 이번에 개발한 잉크젯 프린트 강판은 완벽한 풀 컬러(full color) 인쇄가 가능하고 해상도도 기존 프린트 강판 대비 4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동일 패턴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거나 대형 미술작품을 분할해 표현하는 등의 정밀한 디자인이 가능하다.
기존에 롤 프린트나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됐던 프린트 강판은 해상도가 낮고 구현 가능한 색상이 최대 5개로 한정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기와 습기 등에 약해 색상이 쉽게 변하고, 밀착성도 부족해 코팅이 잘 벗겨졌다. 이에 포스코는 고유의 기술로 고내식성과 가공성을 가진 잉크용액을 적용해 잉크젯 방식의 프린트 강판을 개발했다. 이렇게 제작된 잉크젯 프린트 강판은 기존의 프린트 강판에 비해 선명한 색을 구현하고 작업 공정도 단축시켜 원가 절감 효과가 컸다.
▶ 파형강판의 새로운 변신, 어린이 놀이시설
올해 10월 준공을 앞두고 있는 인천 동구 화수동의 어린이 놀이시설 '플레이룸(Playroom)'은 철강 소재로 만든 건축물 다섯 개가 모여 거대한 꽃잎을 이루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 놀이시설 건축물의 겉과 속은 모두 '파형강판'의 이중 구조다. 파형강판이란 일정 크기의 구조용 강재를 정해진 규격의 파형 모양으로 성형해 성형 전의 평평한 강판의 강성을 증가시킨 건설부재로 일반적으로 교량, 터널, 격납고 등의 토목 구조물에 활용된다.
그런데 포스코 디자인 솔루션 TF는 토목용으로 쓰이며 '숨어 있던' 파형강판에 디자인을 입혀 '드러나는' 건축 구조물의 역할을 제안했다. 파형강판의 구조적 강성 덕분에 층고가 높으면서 기둥이 필요없는 공간 구현이 용이하다는 점에 착안해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시설을 제안한 것이다. 건축가, 지자체, 파형강판 제조 고객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철강 소재 본연의 가치에 디자인을 덧입혀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는 공간을 구현해냈다.
포스코 관계자는 "때마침 파형강판을 제조하는 고객사에서 용도를 다양화하고 소재와 디자인을 고급화함으로써 토목시장뿐 아니라 건축시장 분야로 확대를 모색하던 차에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확실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