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 중 먹는 즐거움만 한 게 또 있을까.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갓 구워 나온 빵 냄새나 커피 향을 맡으면 행복해지는 느낌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맛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 따위를 혀에 댈 때 느끼는 감각'이지만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는 보통 혀와 코로 동시에 맛을 느끼고 판단한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일명 '개코'라 불리며 후각이 뛰어난 이들이 맛도 제일 잘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이들에게도 괴로움이 있다. 음식물을 접할 때 누구보다도 빠르고 강렬하게 나쁜 맛과 악취까지 더 잘 느낀다는 것이다. 불행이자 다행이게도 이렇게 미각이 뛰어난 '슈퍼 테이스터'는 인구의 극소수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맛을 인지할까. 남들보다 혀에 더 많은 미뢰(맛봉)를 갖고 있지 않고 개코도 아닌 우리들은 놀랍게도 오히려 맛을 매우 입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맛에 대한 판단은 우선 눈에서 시작된다. 브랜드 제품은 브랜드를 인식하는 순간 맛에 대한 평가가 절반 이상 결정되기도 한다. 동시에 뇌의 해마체에서는 논리적인 기억을, 변연계에서는 동일한 음식을 먹었던 당시의 감정을 소환해 기억 속 맛과 현재의 맛을 동일시한다.
수년 전 필자가 독일 출장 시 즐겼던 맥주나 프랑스 여행에서 맛본 와인과 동일한 브랜드의 제품은 운반 과정이나 보존 상태와 무관하게 무조건 최고의 맛일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이미 오래전에 뇌에 각인해놓았기 때문에 어떤 브랜드이건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최종적으로 맛을 완성하는 것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인물과 상황이다. 함께하는 사람, 공간과 장소의 분위기, 고급스러움, 전망, 온도, 습도, 종업원의 친절도 등이 영향을 미친다. 누가 돈을 내느냐도 영향을 끼친다. 요리 중에 최고로 맛있는 요리는 '얻어 먹는 요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 어떤 고급 요리라도 내가 다 계산해야 한다면 그 맛은 때론 씁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처럼 무엇을 먹고 맛을 느낀다는 것은 종합예술처럼 매우 총체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맛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인 인간의 감각과 기억은 너무나 개별적인 동시에 통합적이라 인공지능(AI)이나 머신러닝으로는 해석해내기 어렵다. 어떤 음식을 경험하는 순간순간마다 반복적이고, 일관되게,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맛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호감은 배가 된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식욕이나 맛 감각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보장한, 인간의 평등성을 가장 잘 지켜주는 감각이라는 점이다.
맛을 결정짓는 요인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것은 맛있게 사는 방법도 이토록 많이 있다는 것이니,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음식을 어떻게 즐길지와 같이 온전히 나에게 달린 것이다.
자료 : 매일경제 [이영상 투썸플레이스 대표이사] 2021.08.07. 오전 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