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륭, 「서로 등 돌리고 앉아서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빵을 먹고」 평설 / 박남희
서로 등 돌리고 앉아서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빵을 먹고
김륭
늙었다, 는 문장 위에 앉아 빵을 굽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냄새가 난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여서 누군가는 춥고 누군가는 뜨거울 거야 뒷모습을 취소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게 누구든 거울을 보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어서
우주의 한 구석으로 개미떼처럼 몰린 우리 모두의 기억이 구워낸 빵이다 빵을 뜯어먹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붙어있던 기억이 우걱우걱 씹힌다 그게 누구든 그럴 줄 알았다
우리는 매번 빵에게 당한다
이미 지켜보고 있었던 이야기다 노후는 미래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과거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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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의식주’라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신주의적 특성을 가장 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말은 ‘빵’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우리에게 던져준 바 있는데, 어쩌면 현대는 ‘빵’이 ‘실존’이 되어서 “빵이 본질에 앞선다”는 패러디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성을 감안해 보면, 김륭 시인이 시의 초두에서 “늙었다, 는 문장 위에 앉아 빵을 굽는다”는 구절을 첫 행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은 늙어서 죽을 때까지 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그런데 화자에 의하면 빵을 구울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냄새가 난다”. 즉 우리가 빵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해도 그날이 그날일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로 화자는 우리 사회에 팽만해 있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음을 적시한다. 그리하여 화자는 “누군가는 춥고 누군가는 뜨거”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삶의 불균형성을 들추어낸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빵의 불균형’이다.
“서로 등 돌리고 앉아서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빵을 먹고”라는 이 시의 제목에서 이미 자본의 불균형적 흐름에 따른 계층의 불화가 느껴진다. 우리 사회는 이미 “뒷모습을 취소하고 싶은 사람들” 즉 죽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빵’으로 상징되는 자본에 줄을 서지 않을 수 없는, 물신주의적 사회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의 화자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든 거울을 보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서 ‘거울’이 양심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물신주의 사회에서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지극히 작은 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은 별에는 수십억 명의 인간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살고 있다. 한정된 빵을 차지하기 위한 개미떼의 고투는 눈물겹다. 그러므로 “빵을 뜯어먹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붙어있던 기억이 우걱우걱 씹”힐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극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매번 빵에게 당한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미 지켜보고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쉽게 바뀌기 어려운 난제이다. “노후는 미래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과거에서 온다”는 이 시의 결구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노후’이기 때문에, 이것이 단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뿌리 깊은 관행처럼 지속되었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문학 역시 자본주의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재적 상황에서 김륭의 시가 우리 문단에 던져주는 메시지의 비중은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문단이 가장 빠르게 늙어갈 수도 있는 위험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 시는 간명하게 보여준다. ―《아토포스》 2024년 여름호
박남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