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그릇가게
유 형 진
지금이 언제인지, 무슨 계절인지 삭제하고
순간만 사는 이들이 가는 그릇가게가 있다
푸른색 물감의 데이지가 그려진 접시와
알록달록한 팬지가 그려진 머그잔과
굽 있는 받침 접시에 올려 있는 우아한 홍차잔과
하얗고 차분히 칼 맞을 준비를 하는 도마
똑 떨어지는 사각의 트레이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타원형의 그라탱기
주둥이가 삐죽 튀어나온 저그
참나무 손잡이의 법랑 밀크 팬과
귀족부인의 사이드 테이블에 있을 법한 티포트
앙증맞은 버터용기와
각설탕을 담아두는 설탕용기까지
폴란드 그릇가게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그릇들이 있다
19세기식 모노클 안경을 쓴 점원이 카운터에서 나온다
무슨 그릇이 필요한가요?
그런데 나는 필요한 그릇이 무엇인지 몰라서
어쩌면 그릇이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도 몰라서
물음에 대답도 못하고 우물거리는데
신비와 환상과 모험 들을 꺼내지 않고
호주머니 속에 넣고만 다니는 사람은
저희 가게에선 좀....... 곤란합니다
나는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지고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오늘이 몇 월 며칠 무슨 요일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폴란드 그릇가게를 나왔다
ㅡ《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문예중앙,2015)
.......
지금은 스쳐지나가는 계절인 가을!
가장 화려하고 어쩌면 가장 쓸쓸함을 느끼는 계절인지도~~~
그래서 폴란드 그릇가게를 기웃기웃,
첫댓글 푸른색 접시가 가장 폴란드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