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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녀의 손을 섬섬옥수(纖纖玉手) 즉 가늘고 가는 옥 같이 고운 손으로
표현하고, 정상적인 남자라면 그런 미녀와 같이 있는 것이 즐겁고 또 그런 미녀
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아 있다면 기분이 좋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평서왕부의 공자 오자성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오자성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곱고 가는 미녀의 손은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
라 무섭기만 한 것이었다.
"공자님, 자 이제 어쩌실 거죠?"
붉고 고운 입술 사이로 잔잔히 흘러나오는 말에는 살기마저 물씬 풍기고 있었
다.
상인의 딸에 불과한 여자였다. 그래서 오자성은 그녀를 납치하려고 부하들을
동원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오자성과 어울려 노는 파락호 여섯은 여기저기 땅바닥에 널브러져 신음을 터
트리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포를 입고 있어 드러난 이 여자
의 늘씬한 허벅지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입을 헤 벌리고 침을 흘리는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난 평서왕부의 공자다. 네가 지금 나를 해한다면 너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
이다."
외진 골목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오자성은 자신의 이런 모습이 소문날까 두려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호호, 평서왕부? 왕부의 권력이 아무리 대단하다해도 지금 공자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지요."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던 그녀 방화련의 얼굴은 일순간 싸늘하게 변해서 말했
다.
"나라를 팔아먹은 배신자의 아들 따위가 감히 나를 노려?!"
"으--윽!"
갑자기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 오자성은 숨이 막혀서 얼굴이 붉게 변
해 갔다.
방화련의 얼굴 위에는 살기가 물씬 풍겨 나오고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쓰레기 같은 인간!"
어느 순간 방화련의 입에서는 그런 일갈이 터져 나오더니, 그대로 몸을 솟구
쳐 지붕을 타고 어디인가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켁 켁---, 콜록 콜록---."
목을 부여잡고 기침을 토해내며 콧물을 흘리며 숨을 가쁘게 내쉬던 오자성은
분노한 얼굴로 멀어지고 있는 방화련의 등을 노려보았다.
청 나라의 황제라 할지라도 평서왕부를 무시하지 못하고 있는대, 일개 상인의
딸이 자신을 능멸한 것이다.
"두---두고 보자------."
이빨을 갈며 중얼거리는 오자성의 말을 떠나버린 방화련은 들을 수 없었다.
자금성의 태화전 안에는 많은 대신들이 있었지만 조용하기만 한 상태였다. 황
제는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감히 황제의 사색을
방해할 신하는 이곳에 없었다.
순치제는 장백산의 중턱에 세워 놓은 오두막에서 그녀와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날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황제가 되면 세상 만사가 내 뜻대로 될 줄 알았더니----, 한 여자의 마음조
차 잡을 수가 없구나----. 아----."
탄식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돌린 순치제는 방실방실 웃고 있는 어린 아기를 바
라보았다.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래, 네가 내 곁에 있으면 그녀는 너를 보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순치제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기를 대리고 자금성으
로 들어왔다.
언젠가 반드시 그녀는 아이를 보기 위해서라도 자금성으로 들어올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미워도 그녀는 자식까지 미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와 헤어지던 날의 일을 회상하던 순치제는 다시 서류더미들로 시선을 돌
렸다.
명(明)의 잔당들이 아직 남아서 반청복명을 외치고 있지만 이제 명의 시대는
가고 청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청에 반항하는 무리 중에 아직 남아 있는 자
들은 광동성에 계왕과 대만의 정성공이라는 자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저들이 지배하는 땅 또한 청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태화전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각지에서 올라온 서류들을 살피고 있던 황
제 순치제는 자신의 심복인 내시 황 태감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 얼굴 가득히 웃음꽃이 벌어진 채 옥좌에서 일어났다.
옥좌 아래에는 많은 조정 대신들이 자신의 하명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은 도
저히 정사를 논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사마저 팽개치고 그녀가 와 있다는 어화원을 향해 달려갔다.
어화원의 입구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내시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그는
그녀가 셋째 왕자인 현엽에게 하는 말을 가만히 어화원의 입구에서 듣기만 했
다.
"--그런 까닭에 명 나라는 청나라에 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망한 것입니다.
민심을 잃은 왕조가 계속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지요. 민심은 천심이라 백성을
보살피지 않는 왕은 왕이 아닌 것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모님."
"세금을 가볍게 하고, 형벌이 공평해야 합니다. 여진족과 한족의 차별을 둔다
면 한족은 반드시 반발할 것이고 청은 다시 산해관 너머 황량한 만주 땅으로 떠
나야 할 것입니다."
거기까지 가만히 뒤에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순치제는 말을 꺼냈다.
"우리 만주의 용사들은 용맹하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한족에 비해 십분의
일도 안돼는 숫자지--, 원래 이 땅의 주인이 한족이니 그들 모두가 떠나라 하면
떠나야겠지만--, 명 나라의 주씨 왕조가 떠나라하면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오."
"그들 역시 한족입니다. 폐하."
"명나라의 주씨의 황조를 떠받드는 자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애국자라 생각하
고 있겠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애국인거요? 명나라의 역사를 보시오. 한족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처럼 잔인하고 포악한 황조가 있었소? 백성을 보살피지 않아
반란이 끊이지 않고 명의 조정은 나라가 망하는 그 순간까지 당쟁만을 거듭하면
서 권력을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을 뿐---, 이곳에 우리 청의 황조가 들어선
것은 천명인 것이오!"
자금성의 어화원 주위에는 삼엄한 감시가 펼쳐지고 이곳에는 단지 그녀와 황
제 그리고 삼황자 현엽만이 있었다.
불과 다섯 살에 불과한 현엽은 겁먹은 표정으로 아버지와 자신을 이모라고 부
르라고 한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서 폐하는 다른 민족이 당신의 여진족을 지배한다면 기분이 좋으시겠군
요?! 백성을 도탄에서 구해냈으니!"
"그만 둡시다. 수련---. 오 년만에 만나서 당신과 언성을 올리고 싶지 않소."
"그래요. 그만 두지요. 현엽을 이렇게 보았으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돌려 어화원의 밖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수련의 모습을 보고 황제는 황급히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수련, 벌써 가려는 게요?"
"그래요. 이곳에 들른 것은 현엽을 보러 온 것이지, 당신을 보러 온 것이 아
니에요."
"나는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가려 하다니--
-."
"오 년 전의 그날 내 남편은 장백산의 오두막에서 죽었어요."
"수련, 정녕 이래야만 하는 것이오?"
"이곳에 내가 머물 곳이 있나요? 당신과 나 현엽이 정말로 가족처럼 살 곳이
있냐구요?!"
"-----."
"한족의 여인을 저들이 황후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
"그리고 설사 내가 청의 황후가 된다해도--, 제가 한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
이 없지요. 그렇게 되면 같은 한족 사이에서 저라는 여자는 무엇이 될까요? 당
신이 신분을 속이고 저에게 접근하는 일만 없었더라면-----아----."
탄식을 토해내며 고개를 떨구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제 다섯 살에 불과한
현엽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황제가 되면 제가 지금 하는 말을 명심하세요. 군주 된 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백성들을 보살피는 일이라는 것을---."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자금성을 떠나버렸다.
순치제는 황제라는 자리가 그 순간만큼 거추장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디를 가고 싶어도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리가 바로 황제라는 지위였다.
오 년 전에 보았던 그대로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선물한 붉은 색의 기포를 입
고 있었다. 오 년이란 세월 동안 그 옷은 낡고 색이 바래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자신이 선물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아직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 일 것이다.
순치제는 아직 어리기만 한 아들 현엽을 바라보았다.
불과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황제라는 지위를 물려받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그녀와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
아가는 거야--.'
순치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엽아, 지금 네가 보고들은 말은 그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돼는 것이다. 이 일
은 우리 부자(父子)만의 비밀로 해야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그래, 그녀가 한 말을 넌 반드시 가슴속에 새겨 넣도록 하거라. 명나라가 망
한 것은 그들이 분열되고 또한 백성을 돌보지 않은 정치를 행했기 때문이다. 우
리 여진이 세운 청(靑)도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명(明)처럼 스스로 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한족(漢族)에게 오랑캐라 불리며 변방의 소국이었던 우리가
이처럼 대륙을 지배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수 많은 선조들의 땀과 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족은 이이제이라는 정책을 말하면서 우리 여진을 분열시키고 무시
하고 자신들만이 최고라는 중화사상이라는 아집에 사로 잡혀 있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지---, 그래서 그들에게 선조 대대로 오랑캐라 불리며 무시를 당하고 살
던 우리 여진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지. 착실하게 힘을 키우고 분열된 부족을
하나로 뭉칠 자금과 시간을 우리는 명에게서 얻어낸 것이다."
긴말을 끝내고 묵묵히 어화원을 산책하던 황제의 귀에 아들이 하는 말이 들려
왔다. 아들은 그가 하는 말을 듣는 대신 내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
다.
"그분이 저의 진짜 어머님인가요?"
"그--, 그것은---, 나중에 네가 자라나면 알게 될 것이다."
현엽은 바로 조금 전 낡은 붉은 기포를 입고 자금성으로 들어왔던 여자가 바
로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대답을 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확신 할 수 있었다.
현엽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를 머리 속에 단단히 기억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붉은 색의 낡은 기포를 입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보기
는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평서왕부의 오자성이라는 자를 아세요?"
"그것은 또 왜 묻는 것이냐?"
"그자가 이모님을 욕보이려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이?!"
"권력을 쥔 자가 백성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백성에게 못된 짓을 하지 못하
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하시면서, 오늘 이곳에 들르기 전에 겪었던 일이라고 제게
말을 해 주셨거든요."
"으----."
황제인 순치제는 분노해서 신음을 흘렸지만 함부로 평서왕부를 건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군사를 일으켜서 평서왕부를 쓰러트리고 싶었지만,
이제 마악 안정기에 접어든 청을 다시 혼란의 도가니에 몰아 넣을 수는 없는 일
이었다. 실제적으로 청의 군사력의 절반 이상은 한족으로 이루어진 상태였고 그
들을 지배하고 있는 한족의 무장들인 평서왕 오삼계, 정남왕 공유덕, 정남왕 경
중명, 평남왕 상가희가 가진 병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오삼계의 평서왕부의 군사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너는 그 이야기 또한 입 밖으로 내지 말거라."
"평서왕부를 이길 만한 힘이 없는 것인가요?"
"그것이 아니라 백성을 생각해서이다. 이제 전쟁은 끝이 났고, 백성들이 안심
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다. 여기서 다시 전쟁이 벌어
지면----, 그러니 너는 입을 다물고 이 일만은 잊도록 하거라."
부자의 대화 또한 그렇게 끝이 나고 정무에 시달리는 황제는 다시 업무를 보
는 태화전으로 가버리고, 어린 황자는 자신의 거처로 가면서 처음 본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속에 새겨 넣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
즐감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