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김병현(22ㆍ애리조나)이 5일(한국시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챔피언'에 올랐다. 광주 수창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 무등중을 거쳐 광주일고ㆍ성균관대까지 '야구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될성 부른 나무' 김병현의 '성장스토리'를 모았다.<편집자주>
▲김연수씨(52ㆍ김병현 아버지)=어릴 적부터 병현이는 지고는 못살았다. 7살 때였다. 하루는 병현이가 식사도 마다한 채 방에서 아령을 들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딱지치기에서 잃은 뒤 팔 근육을 강화시켜 복수의 기회를 노렸던 것.
1주일 뒤 병현이가 소리치며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엄마! 친구들 딱지 다 땄어." 딱지로 가득찬 가방을 들고 엄마 품에 안긴 병현이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큰 아이들과 '주먹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운동을 무척 좋아해 내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매일 살았다. 집에 와서도 꼭 운동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병현이는 '운동병 환자' 같았다.
어릴 적 지능지수가 140이나 돼 하나를 가르치면 뭐든지 소화해내는 똘똘한 아이였다. 험난한 메이저리그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피나는 노력과 함께 타고난 지능의 덕을 본 게 아닌가 싶다.
태권도 공인 2단으로 유연성이 뛰어나 처음에는 체조를 시키려고 했지만 (수창)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어 취미 삼아 야구를 시킨 것이 결국 지금의 병현이가 된 것이다.
▲심재경씨(44ㆍ당시 수창초등학교 감독ㆍ현 전남야구협회 심판장)=라이벌 대결에서 절대 지는 법이 없었다.
병현이와 팀의 3ㆍ4번과 선발을 번갈아 맡던 (김)희상이와의 대결이 기억에 남는다. 희상이가 홈런을 치면 병현이도 꼭 홈런을 치려고 이를 악물었고, 결국은 '목표'를 이뤘다.
희상이가 승리투수가 되면 다음 경기 선발을 자청해 안간힘을 다해 던졌다. 승부근성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국가대표급'이었다.
한때 글러브를 벗어야 할 위기도 있었다. 병현이 아버지가 '외아들은 공부를 시켜야한다'고 했기 때문. 그러나 병현이를 놓칠 수 없어 아버지를 며칠 동안 설득시켰다.
야구를 늦게 배웠지만 센스가 좋고 머리가 뛰어나 금방 따라왔다. 메이저리그에 일찍이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볼배합이 빼어난 것도 병현이의 뛰어난 지능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양식씨(41ㆍ무등중학교 감독)=병현이의 야구인생에 있어서 일대 전환기였다. 투구폼을 바꾼 것.
2학년 여름 수비훈련 때였다. 유격수를 보던 병현이가 3ㆍ유간으로 빠지는 타구를 잡아 2루에 사이드스로로 송구하는 게 무척 부드러웠다.
순간 '대모험'이 생각났다. 키도 더 이상 클 것 같지 않던 병현이에게 사이드스로로 던져볼 것을 권유했다. 병현이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병현이 아버지도 반대하지 않았다. 결국 대성공이었다.
당시 100개를 던지면 1~2개만 벗어났을 만큼 제구력이 뛰어났다. 지독한 '연습벌레'라 특별히 훈련시킬 필요도 없었다.
▲허세환씨(40ㆍ당시 광주일고 감독ㆍ현 충장중학교 감독)=병현이에게 한때 최대위기가 있었다.
3학년 때였다. 대통령배 고교야구가 끝난 뒤 병현이가 팔꿈치부상을 호소했다. 어느 병원에서는 "투수생명이 끝났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5개월 동안 러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에만 집중했다. 그러더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 가을 전국체전에서 보란듯이 팀을 우승시켰다. 정말 '무서운 아이'였다.
신입생 때는 덩치가 작고 순발력이 좋아 유격수를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폼이 부드럽고 손목힘이 뛰어나 생각을 바꿨다. 2학년 때 손목을 이용해 145km까지 뿌려대는 것을 보고 놀랐다. "스피드가 조금씩 늘어나니 재미있다"고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만 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온힘을 다해서 던져 사실 부상이 걱정됐다.
▲홍세완(24ㆍ성균관대 2년 선배ㆍ기아 타이거스)=병현이는 작지만 강했다.
병현이와 1년 동안 룸메이트였다. 병현이는 매일 팔굽혀펴기를 1,000회나 했다. 작아보이지만 벗으면 근육질이었다. 작은 체구에 빠른 볼을 던질 수 있던 것도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이다.
병현이는 대학 시절 '국제대회에서만 통하는 반쪽선수'라는 평을 들었다. 이 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밤낮으로 훈련했다. 정말 '독종'이었다.
엄청난 '잠꾸러기'이기도 했다. 하루에 10시간씩 잤다. 올해도 애리조나의 훈련시간에 가끔 늦는 것을 보면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100m를 11초대에 뛰고 농구와 축구에 능한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야구선수가 아니었어도 다른 종목에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김경훈씨(45ㆍ기아 스카우트)=매우 탐나는 선수였다.
당시 병현이는 고졸 최대어였다. 몸이 유연하고 손목힘이 뛰어나 투수와 야수 모두 가능했다. 마무리로 뛰던 임창용(현 삼성)을 선발로 돌리고 병현이에게 마무리를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계약금으로 3억원을 제시했지만 병현이는 명분을 내세우며 2억원을 제시한 성균관대로 갔다. 당시에는 '대졸 5억, 고졸 3억'이라는 계약금 상한선 규정이 있었다. 이런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구단 고위층에 계약금을 4억원까지 올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묵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