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5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참 어렵고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말입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다른 것이 들어있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목숨을 다한다는 것은 내 생명은 모두 하느님의 창조물이니 하느님께 그 생명을 그대로 의탁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다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내 정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무갈황제 아크바가 숲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저녁기도 시간이 되자 그는 말에서 내려와 땅에 자리를 펴고 어디서나 열심 한 회교도들이 하는 방식으로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는데 이때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 때문에 심란해진 한 시골 부인이 실종된 남편을 찾으며 그 옆을 지나쳐 갔습니다. 남편 찾는 일에 몰두해서 그 부인은 황제가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못 보고 그만 걸려 넘어졌다가 일어나면서 사과의 말 한 마디 없이 숲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아크바는 방해를 받아 화가 났지만, 착실한 회교도인 만큼, 기도 중에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는 규칙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났을 무렵, 그 부인은 애타게 찾은 남편과 함께 즐겁게 돌아오고 있었는데 황제와 수행원이 거기에 있는 것을 보자 부인은 깜짝 놀라며 겁을 먹었습니다. 아크바는 부인에게 “너의 그 무례한 행동을 해명하지 못하면 벌을 주리라.” 그러자 부인은 갑자기 겁 없이 돌아서더니, 황제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폐하, 제가 그만 제 남편 생각에 몰두해서 폐하께서 여기 계신 것조차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또한 폐하께 걸려 넘어졌을 때도 폐하를 못보고 말았는데 그 때 폐하께서는 기도 중이셨고, 제 남편보다 한량없이 더 귀중하신 분께 몰두해 계셨는데 어떻게 저를 알아보셨다는 것입니까?”
황제는 부끄러워 그만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의 친구에게 털어놓으면서 학자도 아닌 한 시골 부인이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목숨을 다하여 남편을 사랑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앤소니 드 멜로, 개구리의 기도 1권)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은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죠. 기도할 때에도 분심(分心) 때문에 기도가 되지 않고 마음과 정신이 분산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학문이나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 본뜻이나 목적을 망각하고 지엽적이고, 부수적인 것에 구애를 받게 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느님을 얻고,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오직 하느님께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도 항상 마음이 분산되어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답니다. 매일 건망증이 있는 것처럼 집중되지 않고 잘 잊어버리고, 분심으로 묵주의 기도도 제대로 못한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내 생명을 완전히 의탁하지 못하고, 내가 가르치고 강의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복음말씀대로 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은 잘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고 내가 필요한 것을 그들에게 나눌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웃 사랑도 첫째 계명과 같이 중요하다는 주님의 말씀은 알겠지만 첫째 계명도 둘째 계명도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계명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심각하게 느끼고 체득하게 됩니다.
<나오미는 모압 출신 룻과 함께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
▥ 룻기의 시작입니다. 1,1.3-6.14ㄴ-16.22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축일8월 25일 성 루도비코 (Louis)
신분 : 왕, 3회원
활동 지역 : 프랑스(France)
활동 연도 : 1214-1270년
같은 이름 :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푸아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 4세(Thibaud IV)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왕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43년의 남프랑스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Henry III)를 타유부르(Taillebourg) 전투에서 격퇴하고 프랑스 서부의 푸아투(Poitou)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이집트 북부의 다미에타(Damietta)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이스라엘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와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성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聖王)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맏아들에게 한 유언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켜나가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월 25일 튀니스(Tunis)에서 당시 그의 군대를 휩쓸었던 전염병인 이질에 걸려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프랑스로 옮겨져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을 비롯해 여러 곳의 성당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루도비쿠스는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스스로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의 남자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선종 때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말을 한 후 숨을 거두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프랑스 왕실의 문장인 백합 문장을 들고 있거나 예루살렘 성지에서 가져온 성물인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들거나 쓴 모습으로 주로 그려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쓰셨던 가시관은 성 루도비쿠스가 사라센 사람들에게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석방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동로마 황제가 감사의 선물로 보내준 것이다. 평소 신심이 깊었던 그는 수천 명의 신자와 함께 맨발로 먼 길까지 마중 나와 손수 가시관을 모시고 행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십자가 보목(寶木) 등을 모시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파리에 생트샤펠(Sainte-Chapelle) 왕실 성당을 1248년에 완공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루도비코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