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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아좋아좋아
1. 권지용
여시는 한 제국의 자작가 차녀임
다섯개로 구분지어진 작위만 두고 따져보자면
그리 높다 할 순 없는 위치지만
중요한 것은 여시가 살고 있는 제국이 전 세계를 제패한 최강대국이라는 것
당연히 일개 자작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이라면 얘기가 달라짐
또한 여시의 아버지인 자작은 제법 뛰어난 수완과 온화하고 자상한 품성으로
영지를 야무지게 잘 꾸려나가 영지민들에게도 그 인기가 좋음
당연히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자란 여시는
제 아비와 가문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그 긍지가 상당히 높음
여시가 꼭 열일곱살이 되는 해였음
황궁이 국내 모든 귀족을 대상으로 하는 무도회를 주최함
황궁이 주관하는 행사라 하면 기껏해야
백작가정도까지만 초대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터라
이 파격적인 무도회를 두고 모두가 말이 많았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이 무도회가 황비간택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
황비간택이고 나발이고 그런 모든 걸 차치하고도 여시는 굉장히 들떴는데
바로 제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즉위했음에도
타고난 지략과 천재적인 감각으로 전 세계를 제 발 아래에 무릎꿇린
젊은 황제를 직접 두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한 것이었음
시작하지.
허나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제국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붙여진 철의 황제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나른한 목소리로 무도회의 시작을 알린 황제는
분명 당당한 풍채와 굳센 인상을 가졌을 거란 여시의 생각과 다르게
퍽 앳되고 곱상한 외모를 가짐
칼이나 제대로 쓰겠나 싶은 외양에 당황한 여시가 사방을 두리번대지만
오직 황제만을 향한 모두의 시선 속 그득 일렁이는 경외감과 찬탄에
결국 저 소년같은 사람이 이 제국을 지배하는 유일무이한 황제임을 알아 고개를 조아림
…….
제게로 쏠린 무수한 눈길에도 아랑곳않고 피곤하단 듯 자리에 앉은 황제는
이따금씩 옆에 놓인 잔만 들이키며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음
분명 이번 행사의 목적이 황비 간택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귀족들의 눈에 슬슬 의심과 함께 실망의 기색이 어리고
분위기가 침울해지거나 말거나 요지부동인 황제 덕에
결국 모든 희망과 기대를 벗어던진 귀족들은 눈치작전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좀 더 탄탄하고 화려한 인맥을 쌓는데에 집중함
여시 역시 은근히 제게로 다가와 말을 거는 사내의 다정한 눈이 싫지 않아
아버지의 표정을 슬쩍 살핀 후 수줍게 내민 사내의 손을 맞잡고
잔잔하고 달콤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함
…….
황제폐하…?
세곡을 연달아 같이 추며 사내와 여시의 사이에 간질간질 묘한 기류가 흐르는데
아까부터 삐죽 찢어져 미운 눈을 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이쪽을 바라보던 여자 하나가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사내에게 척 제 손을 내밂
사내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신사가 여인의 가녀린 손을 욕되게 할수는 없는 법
결국 여자의 손을 살며시 쥐면서도 무언가 애원하듯 저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에
알았다는 듯 살짝 웃어보인 여시는 지친 발을 쉬게 하고 바람도 쐴 겸 연회장을 나감
이미 복도 역시 새롭거나 익숙한 인연들과 그들이 빚어낸 소음 못지 않은 대화로 빼곡했고
그 요란함에 질린 여시는 거침없이 복도를 지나고 수많은 계단을 올라
마침내 한적한 곳을 발견하곤 지친 한숨과 함께 창문 난간에 기대어 경치를 구경함
제 발목에서 부드러이 일렁이던 치맛자락과 맞잡았던 손의 은근한 열기와
꼭 봄바람처럼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했던 사내의 눈빛이 떠올라
여시가 저도 모르게 작게 웃는데 문득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림
화들짝 놀란 여시가 휙휙 고개를 돌리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고
뚜벅뚜벅 단정한 구두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아닌 황제였음
그대는 항상 고개가 늦군.
…아! 송구합니다.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당황해 멀거니 황제를 바라보던 여시가 심드렁히 떨어진 황제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허겁지겁 사과와 함께 인사를 올림
항상이라는 것을 보니 아마도 아까 지용이 황제라는 것을 믿지 못해 주위를 살피다
한박자 늦게 인사했던 것을 기억해둔 모양인 듯
세상에 하필 찍혀도 황제한테 찍히냐ㅠㅠ
안그래도 냉정하기로 유명해 듣기만 해도 피비린내가 물컥 솟는 일화를
귀동냥으로 몇개 얻어들었던 여시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도무지 고개를 들 줄 모르고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는데
문득 제 머리 위에서 피식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림
왜 그렇게 떨지?
감히 황제폐하를 뵙고도 즉시 인사를 올리지 못했으니 그 죄가 하늘같이 큽니다.
부디 하해와 같이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
하늘같이 크진 않아. 하해같이 넓지도 않고.
그댄 과장이 심하군. 아니면 엄살이 심하든가.
아, 둘 다 일수도 있겠군.
…….
고개를 들어.
능글맞게 받아치는 황제의 대꾸에 여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자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황제의 음성이 고개를 들라 명함
머뭇머뭇 고개를 들어 마침내 마주한 황제의 얼굴에는
아까 멀리서 보았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기품이 철철 흐름
이것이 진정 만인지상에 서있는 이의 기상인가 싶은 여시가
방금까지 벌벌 떨던 제 처지도 잊고 또다시 넋을 놓는데
재밌다는 듯 여시의 감탄어린 얼굴을 주의깊게 살피던 지용이 다시금 입술을 열어젖힘
왜 여기 있지?
아, 저…. 조용한 곳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나?
예? 그럴리가요. 아닙니다.
설마 황제인 내게 거짓을 고할 리는 없을 테지?
그럼요. 어찌 감히 황제폐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분명 겉만 살핀다면 장난스런 말투와 비스듬히 치켜올라간 입꼬리로 미루어보아
단순한 질문에 불과했으나 여시는 연이은 물음에서 왠지 모르게
추궁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
근데 뭐 또 황제한테 따질 수도 없고 어쩔거야ㅎㅎ
허리가 부러져라 열심히 굽신굽신대며 비굴함을 온몸으로 과시하던 중
문득 여시는 궁금한 점이 생김
헌데 저, 폐하. 외람되지만 질문 하나 올려도 되겠습니까?
…보기보다 퍽 당돌한 구석이 있군.
아, 죄송합니다.
해보게.
예?
내게 질문을 해도 좋다 말했네.
아, 감사합니다. 저, 그러니까…. 폐하께서는 왜 여기 계십니까?
…위험하기 때문이지.
예?
적들이 가득한 곳에서 우리의 맹수가 되는 것 만큼 위험한 일은 없어.
그렇다면…, 지금 이곳은 안전합니까?
글쎄. 그대는 위험하기엔 지나치게 작고, 약해보이는군.
…….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내 가여운 구경꾼들을 너무 오래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아, 안녕히….
같이 내려가지 않겠나?
저는 조금 더 있다 가겠습니다.
그래.
길다면 길고 짤막하다면 짧은 대화가 끝나고
어정쩡하게 서 저를 배웅하는 여시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인 지용이
미련없이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 사라짐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에
비틀대며 난간에 제 몸을 기댄 여시는 어느샌가 찬바람만 가득한 제 앞과
그 때문에 더더욱 꿈같게만 여겨지는 황제와의 만남을 떠올림
황제의 말을 빌리자면 여시는 방금전까지 맹수와 함께 있었음
능글맞고, 장난스럽고, 웃는 게 사뭇 예뻐서 기억에 또렷이 남는 맹수와.
또 여기있었군.
아,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이제 그 틀에 박힌 인사는 슬슬 지겨워지니 그만 두는 게 좋겠어.
예. 또 너무 위험해서 오신 건가요?
그래, 한없이 안전한 곳으로.
언제부턴가 여시는 틈날때마다 그 날의 발코니로 발걸음을 하게 됨
멍하니 제 발 아래로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다
이제는 꼭 정해진 수순처럼 나지막하게 울리는 발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간질간질 자꾸만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여시는 제가 쉬기 위해 온 것인지 아니면 그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어짐
황제는 그간 여시가 들었던 소문답지 않게 다정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고
비록 얼마 안되는 시간이나마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여시는 몇번이고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함
내일이면, 이곳엔 나밖에 남지 않겠군.
예, 그렇네요.
왜 그리 힘이 없지? 그대답지 않아.
그냥…, 좀 아쉬워서요.
무엇이?
여기서 매일 보던 경치도, 조금 쌀쌀한 바람도, 그리고….
그리고?
폐하를 성가시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폐하와 같이 있던 시간들도요.
그래.
네.
제법 먼 길이 될 테니 일찍 눈을 붙이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아, 작별 인사는 지금 미리 해두는 게 나을까?
아무래도, 내일은 뵈기가 힘들테니까요.
그렇군. 잘 가, 나의….
…….
헤어지기 전에 하나 정정해야 할 말이 생겼군.
예?
내 판단이 틀렸어. 그대가 가장…, 위험한 사람이었네.
시간은 쏜살보다 빠르게 날아가 어느덧 무도회의 마지막날이 되었고
여시는 어쩐지 자꾸만 우울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음
눈치 빠른 황제는 여시의 가라앉은 낯빛을 알아 그 까닭을 물었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풀어졌던지 여시는 저도 모르게
지용과 헤어져야 하는데에 따른 아쉬움을 토로함
물론 같이 섭섭해하길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저와 달리 너무도 덤덤하게 수긍하는 모양에 살짝 서운해하던 것도 잠시,
작별인사를 말하던 지용이 순간 멈칫하더니 여시를 물끄러미 바라봄
곧이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제 귓가에 내려앉은 속삭임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의아한 눈으로 지용과 눈길을 맞대는 것도 잠시,
희미하게 웃어보인 지용이 돌아섬에 따라 마지막 날이 그렇게 저묾
잘 가, 나의….
일주일간의 행사가 그렇게 모두 끝을 맺고 여시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영지로 내려옴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보고 푹신한 침대에 제 몸을 뉘며 빠르게 일상 속에 녹아갔지만
그 어느때라도 문득문득 되살아나는 기억에 여시는 침묵을 지키는 때가 많아짐
정말이지 꿈같이 아득하고 짧기만 한 시간들이었기에
이런 제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없이 고요하나 또한 그 무엇보다 또렷이 제 마음속에 물결치는 이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음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여시는 생각함
허나 한낱 자작가가 황가와 연을 맺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애써 제 마음을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던 여시에게 혼담이 들어옴
무도회에서 첫날 같이 춤을 추었던 사내는 알고보니 유력한 백작가의 막내아들이었고
의외로 신분에 그리 비중을 두지 않던 백작이 아들의 절절한 청을 흔쾌히 허락함으로서
자작가에 인편으로 의사를 물어온 것
당연히 여시의 아버지인 자작은 기쁨에 가득 차 여시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무엇으로라도 덮어 숨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여시는 맥없이 승낙을 말함
당사자들간의 동의가 이뤄졌으니 남은 것이라곤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 뿐
바삐 오고가는 혼담 속에 여시 역시 백작가의 자제와 꽤나 잦은 만남을 가지게 되고
한결같이 상냥한 말투와 속깊은 배려를 보이는 사내의 면모에
여시는 어느덧 쾌활한 낯으로 사내를 맞이하며 새로운 사랑에 빠짐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주어도 아깝지 않겠다며 행복에 겨워 웃는 여시의 마음속에
더 이상 지용의 얼굴이 자리할 곳은 없음
오랜만이군.
폐하…?
아쉬웠던 것은 그대만이 아니야. 그래, 어찌 지냈나?
저…, 결혼준비로 바빴습니다.
결혼준비…?
혼사준비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던 중이었음
그날도 어김없이 저를 집앞까지 데려다준 사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멀어지는 마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웃음짓던 와중
갑작스레 홀홀단신으로 제 앞에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지용에 놀란 여시가 입을 쩍 벌림
한없이 단촐한 차림새를 보니 아마도 암행을 핑계로 나온 듯
여시가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서있거나 말거나 잔뜩 들뜬 지용이 근황을 묻고
여전히 놀라움을 떨치지 못한 여시가 더듬더듬 얼떨떨하게 답을 내놓자
지용의 표정이 꼭 석고인 양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어짐
어디의 누구랑…, 하는 거지?
W 백작가의 A 경입니다.
백작이라면…. 아, 혹시 정략혼인가?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네.
내 지금 당장 W 백작에게….
아뇨, 아닙니다. 전하.
…….
저 또한, A 경을….
그만.
사랑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빳빳이 굳어 황망해하던 지용이
문득 알겠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허둥지둥 꺼내놓는 말들을
여시는 가차없이 잘라내며 제 진심을 밝힘
꼭 어딘가에 홀로 내버려진 아이처럼 망연히 저만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여시는 제가 가졌었던 마음이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에서 죽어 다시는 되살아날 수 없는 것임을 또한 알아 묵묵히 입을 다묾
그래…, 그렇단 말이지.
예.
허나 그대…, 나는 아쉬움을 아쉬움으로만 남기지 않는 법을 알고 있어.
…….
그러니 이별의 말은 필요치 않네.
…….
오늘은 이만 가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침묵의 무게를 더 이상 버틸 수 없겠다고 생각할즈음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어투로 지용의 입술에서 내뱉어진 말들은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것들이었음
날카로이 저를 꿰뚫던 지용의 시선이 생생히 떠올라
여시는 그날밤 수없이 몸을 뒤채며 잠을 설치지만
동이 트고 해가 져 밤이 찾아올 때까지도 별다른 일은 없음
그제야 기우였겠거니 싶은 여시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데
그 날 새벽 사건이 터짐
W 백작가가 역모 혐의에 연루된 것
개국공신으로서 대대로 권세를 떨치며 황가에 충성을 바쳐왔던 W 백작가가
반역을 꾀했다는 사실에 온 나라가 뒤집어지고
여시 역시 그럴리가 없다며 울부짖던 중 문득 깨닫게 됨
그렇게나 대단한 가문이기에 이미 확정된 혼사를 거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라는 것
결혼할 것임을 똑똑히 밝혔음에도 고집스레 이별의 말을 남기지 않고 떠나가던
지용의 뒷모습이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진 여시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채비를 해
황궁으로 찾아감
기다렸어.
…….
분명, 이별의 말은 필요치 않을 거라 했었지.
경황이 없어 무작정 황궁으로 오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고작 자작가의 마차를 순순히 들여보내줄 리 없어 여시가 발을 동동 구르는데
의외로 마부와 여시의 얼굴을 확인한 경비병이 정중한 인사와 함께 마차를 통과시킴
마차를 대놓기가 무섭게 여시는 마중나온 시녀에게 이끌려 황제의 처소로 안내되었고
보기만 해도 기가 죽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문 저편에 여유로이 앉아있는 지용이 보임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여시를 맞이하는 지용에게서,
여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똑똑히 읽어내고 맒
폐하, 폐하 제발…, 살려주십시오.
…….
폐하께서도 W 백작가의 충성됨을 무엇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러니 부디, 제발….
그대로 바닥에 넙죽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애원하는 여시를
지용은 그저 가만히 바라볼 따름
언제부턴가 지용과 여시 사이엔 침묵이 낯설지 않아졌음
눈을 질끈 감고 지용이 마음을 돌리기를 간절하게 비는 여시의 등줄기 위로
어쩐지 애처롭게만 느껴지는 지용의 속삭임이 서럽게 내려앉음
그대를 기다렸어.
…….
허나 나는 또한…, 그대가 오지 않기를 바랐어.
…….
돌아가.
금세라도 깨어질 듯 연약한 목소리로 속살거리던 지용이 축객령을 내리고
가지 않겠다 버티던 여시는 기어이 시종들의 손에 끌려 쫓겨남
이제 가자는 마부의 조심스러운 청을 모두 내친 여시는 그대로 길가에 마차를 세운 채 까무룩 잠이 들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다급하게 저를 불러 깨우는 마부의 목소리에 퍼뜩 몸을 일으킴
이례적으로 빠른 사형집행이었음
황궁의 깃대에 끼워진 것이 무언가 가느스름하게 눈을 좁히고 살피던 여시는
그것이 W 백작과 A경, 그리고 그의 형제들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대로 실신함
오늘은 굉장히 바빴네. 조금도 쉴틈이 없었어.
…….
어찌나 들들 볶아대던지, 정말이지 황제란 것도 할게 못 돼.
…….
깨어났을 땐 황궁이었음
삼엄하게 방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과
마치 원래부터 제게 주어졌던 일인 양 능숙하게 여시의 수발을 드는 시종과 시녀들을 보건대
아마도 이곳에서 나갈 수는 없으리라고, 여시는 짐작함
지용은 매일 밤 정무가 끝나고 여시의 방에 찾아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곤 했음
아예 등을 돌려 외면하는 차가운 태도에도 담담히 이어지는 말들에
여시는 한없이 애잔함을 느끼다가도
곧 뾰족한 장대에 처참히 내걸려있던 제 연인의 머리가 너무도 선연히 떠올라
감히 지용을 동정한 저 자신이 저주스러워 온몸을 발발 떪
날이 제법 춥더군. 아무래도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이제 곧….
폐하.
…….
왜, 접니까…?
…글쎄, 왜 그대일까.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경멸과 혐오로 여시는 나날이 말라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해 쇠약해져가는 여시가 걱정이 되었던지
그날따라 정무도 팽개치고 여시를 찾아온 지용은
그러나 그 어떤 염려의 기색도 내비치지 않은 채 평소와 같이 제 일상을 늘어놓기 시작함
문득, 여시는 묻고 싶어짐
왜 하필 나를 사랑했는지
자신 역시 한때는 가볍게나마 지용을 사랑했기에 염치없다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이미 메마른 제 입술은 멋대로 지용의 말을 가로막고 물음을 던짐
사랑할 것을 몰랐기에,
…….
사랑하지 않는 법 또한 알지 못해.
…….
그래.
마침내 지용의 입술에서 피어난 고백은 그러나
한없이 척박하고 섧기만 한 것이었음
여시 또한 저를 사랑이라 이름하는 지용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고
그런 여시를 가만히 바라보다 힘없이 입술을 터뜨려 웃은 지용이
나즈막이 혼자만의 대화를 이어감
사랑을 말할 수 없다면,
…….
차라리 침묵을 지켜.
…….
다물린 것조차 그대의 입술은 아름다우니,
…….
나는 그것으로 족해.
2. 이수혁 (이혁수)
그간의 고단했던 취준생의 여정을 멋지게 마치고 드디어 취직한 여시
졸업까지 연기해가며 취업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선배들을 봐왔기에
절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각종 스펙쌓기와 셰익스피어 뺨치는 자기소개서 작성에 매진한 여시는
그 노력을 보상받아 국내 최고라는 대기업에 입사하게 됨
첫출근이라고 엄마가 정성스레 다림질 해 놓은 블라우스와 정장을 입고
우리 딸 기죽지 말라며 아빠가 비상금을 탈탈 털어 사온 단정하고 예쁜 구두를 신어
사회로 나가기 위한 무장을 단단히 마친 여시
잘 갔다와라 상사한테는 공손히 대해라 어째 여시보다 더 긴장하는 부모님을 보며
여시는 왠지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곤 애써 밝은 웃음으로 출근길에 나섬
2호선..많다..사람..나..한다..공중부양..
직장인들이 꽉 찬 지하철속에
제 몸을 마구 욱여넣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시간 아침 일곱시
여시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통근지옥에 낑낑대며 버티던 것도 잠시
후끈한 열기와 틈 하나 없이 맞물린 타인의 살결과
그 근원지를 딱히 지적할 순 없으나 존재감만은 충만한 이상한 냄새에
곧 정신줄을 놓아버림
그렇게 한참을 남은 정거장 개수만 중얼중얼 염불외듯 헤아려가며 가고 있는데
? 뭔가 엉덩이가 이상함
톡톡 부딪히는 주인 모를 손에 처음엔
흔들려서 그랬겠거니 사람이 너무 많아 실수였겠거니 했으나
여시가 반응이 없자 점차 대범해져 이제는 아예 떡주무르듯 주무르는 망할 놈의 손가락에
개변태새끼임이 확실한 것으로 판명됨
허나 그간 인터넷잉여의 삶을 살며 익혀놓은 수많은 성범죄 대처 방안과 피해 후기는
수치스러움과 공포로 무용지물이 되고 떨려오는 몸을 감추지 못하던 여시의 눈엔 어느덧 눈물이 고임
아!
아가씨, 같이 내리시죠.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고 있던 와중 별안간 뒤에서 외마디 비명이 울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필시 범인일 게 분명한 중년 남자가 웬 남자의 손에
손목이 꺾여 끙끙대고 있음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여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찰나 문이 열리고
경멸 가득한 얼굴로 억세게 범인의 손을 꺾어쥐고 있던 남자가
느닷없이 여시의 팔을 붙들고 전차에서 내림
자, 여기면 CCTV도 있겠다. 도망갈 생각 마시고.
…….
봅시다. 일단 아가씨, 괜찮아요?
…네?
많이 놀라셨네. 울지 말아요. 죄 지은 건 이놈인데 왜 울어요.
화장 예쁘게 했는데 다 지워지면 어떡해. 자, 눈물 닦아요.
…….
괜찮아요, 괜찮아.
더럽다는 듯 범인을 잡고 있던 손을 탈탈 털곤 야무진 경고마저 잊지 않고 일러준 남자가
여시의 얼굴을 살피더니 안타까운 얼굴을 하며 척 보기에도 값져 보이는 손수건을 건넴
꼭 달래주듯 다정한 목소리에 그제야 긴장이 풀린 여시가 왈칵 눈물을 쏟고
그 와중에도 눈이 부을까 걱정돼 꾹꾹 눈가를 누르듯 닦아내는 여시가 못내 안돼보였던 듯
남자가 살가운 위로를 건넴
다 울었어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이 사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네? 뭘….
아가씨, 아가씨 미안해. 나 한번만 봐줘. 다신 안그럴게!
조용히 하세요. 내가 지금 얘기하고 있으니까.
원한다면 제가 서까지 동행해서 증언 해드릴 수 있어요.
아, 저 오늘 시간 많으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고.
아, 아 그러니까…. 정말 감사한데, 제가 출근해야 되는데….
출근? 이렇게 큰 일 당했는데 전화하면 안되나?
네, 저기, 제가 오늘 첫출근이거든요. 그래서 지각하면 안되는데….
아, 첫출근. 어디 회산데요?
C그룹….
C그룹이요? 무슨 부지?
저기, 경영전략부….
그럼 됐네.
네?
내가 그쪽이랑 잘 알거든요. 갑시다. 나쁜놈은 벌을 줘야지.
그 와중에도 회사가 생각나 경찰서로 가자는 남자의 말에
더듬더듬 여시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답하자
의아한 듯 몇가지 질문을 던지던 남자가
여시가 C그룹 경영전략부 소속이란 것을 듣고 피식 웃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여시와 범인을 끌고 경찰서로 직행함
여시의 진술과 남자의 차분하고 조리있는 증언에
오리발을 내밀던 범인 역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알아 순순히 제 죄를 자백하고
여시와 남자는 오래지 않아 나란히 경찰서를 나섬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정말 괜찮아요.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한테 연락처 좀 주시겠어요?
제가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아! 절대 무슨 사심이 있는 건 아니구요, 그냥 정말 감사해서 그래요.
밥? 밥은 됐고. 회사나 갑시다.
네?
C그룹 다닌다면서요. 가자구요.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남자는 퍽 잘생긴 얼굴과 맵시나는 몸을 가지고 있었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말한 여시는 왠지 아쉬운 기분에 남자의 번호를 물어봤으나
어쩐일인지 남자는 회사나 가자며 여시에게 출발을 재촉함
당황한 여시와 다르게 남자는 여유로운 몸짓으로 여시와 보폭을 맞추고
나긋한 말투로 사소한 몇가지 질문을 던짐
남자의 물음에 열심히 대답하는 동안 어느새 웅장한 C그룹 본사가 보이고
데려다주셔서 고맙다 여시가 인사하려는 순간 남자가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감
?
의아함에 멍하니 서있는 여시를 돌아본 남자가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하고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 경영전략부 사무실 앞까지 도착한 여시는 이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짐
안녕하세요.
아, 이대리 어서 와. 저 뒤에 아가씨가…?
예, 아까 전화드렸었죠. 오늘 새로 들어온 김여시씹니다.
오, 그래. 출근 첫날부터 그런 일 당해서 많이 놀랐겠어요.
아무튼 반가워요. 나 경영전략부 부장 김익한이에요.
아, 안녕하십니까. 김여십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이혁수 대리하고는 이미 인사했겠고.
예…?
아직 안했습니다, 부장님.
인사가 많이 늦었죠. 경영전략부 이혁수 대립니다. 반갑습니다.
자연스럽게 이곳저곳 인사를 건네며 들어간 남자가
사무실 맨 안쪽에 위치해 있는 자리로 쏙 들어가 나이 지긋한 남자에게 여시를 소개함
부장이 남자에게 연락받았다며 간단한 위로와 환영 인사를 건네고
그제야 남자는 웃는 낯으로 자신이 여시와 같은 부서 대리라며 정체를 밝힘
이만 갑시다.
예?
나 밥 사준다면서요.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가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됨
조심조심 책상 정리를 마치고 혹여나 미움 살까
살살 눈치만 살피던 여시에게 어느샌가 다가온 혁수가
아침에 건넸던 말을 상기시키며 여시를 끌고 나옴
그래, 첫출근은 어땠어요?
그냥…,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다 어렵고 복잡하고, 뭐 그렇죠.
그래요.
아, 대리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대리님 아니었으면 바보같이 그냥 당하고만 있을 뻔 했어요.
그러지 않았으니 됐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요.
근처에 괜찮은 곳을 안다며 의기양양하게 혁수가 안내한 곳은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의 한정식집
먹음직스런 모양이 부끄럽지 않게 깔끔한 맛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여시는 한결 편안한 투로 혁수와 대화를 나눔
식사를 마치고 여시가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계산하려는데
어느샌가 구두를 다 신은 혁수가 그 손을 부드럽게 잡아 막고 제 카드를 건넴
대리님, 제가 계산해야 하는데….
됐어요. 원래 상사가 부하직원한테 뭐 얻어먹는 거 아니에요.
도움 받은 사람이 도움 준 사람한테 사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아, 안먹히네.
제가 죄송해서 그래요.
죄송할 거 없어요. 즐거웠으니까. 그럼, 이만 헤어질까요?
…그래도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맛있었다니 기분 좋네요.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봅시다.
계속 신세만 지게 되는 것이 미안해 소심하게나마 항의해보지만
안그렇게 생겨서 혁수는 개썅마이웨이 16차선을 달리는 남자였음
지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현란한 사물놀이를 마친 혁수가
의도치 않게 관람객이 된 여시에게 작별을 고하고 휙 사라짐
왔어요?
안녕하세요.
그 후 여시는 혁수와 급속도로 가까워짐
들이댄다시피 할 정도로 살갑게 구는 혁수가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을 구해준데다 잘생기고 곰살궂기까지 한 남자를 누가 마다하겠어요?
한밤중에 뜬금없이 걸려오는 혁수의 전화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아지고
휴일에도 끊임없이 오고가는 카톡 또한 습관처럼 느껴질 때 즈음
혁수가 퇴근 후 저녁이나 같이 하자며 약속을 잡음
맛있었어요?
네, 진짜 맛있었어요. 역시 이대리님 안목은 최곤 거 같아요.
그래요?
네, 진짜로!
그래요, 나도 내 안목 참 좋은 것 같아요.
아, 지금 잘난척?
여시씨.
그날도 한상 거하게 얻어먹고 잔뜩 들뜬 여시가 마구 칭찬을 늘어놓는데
어린 아이 보듯 마냥 웃는 낯으로 대꾸하던 혁수가 문득 진지한 목소리로 여시를 부름
내 뛰어난 안목으로, 여시씨가 참 예뻐서 그러는데.
…….
우리 만날까요?
저 얼굴로 저 목소리로 저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승낙을 안해
발그레 볼을 붉힌 여시는 잠시 머뭇대다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C그룹 경영전략부 ★사내커플★ 탄생
응, 그래서요.
그래서, 그 아줌마가 글쎄 배를 째라고 막 소리지르는 거 있죠? 어찌나 뻔뻔하던지.
많이 억울했겠네, 여시씨.
근데 왜 웃어요?
그냥, 여시씨는 화내는 것도 어쩜 저렇게 귀엽나 싶어서.
혁수와 연인이 된 후로 둘 사이엔 아주 그냥 꿀이 뚝뚝 떨어짐
깨지기 쉬운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 혁수는 항상 여시를 존중하며
한없이 다정다감한 태도를 고수했고
여시 역시 자신을 아껴주는 혁수에게 애정이 퐁퐁 샘솟음을 느낌
수혁씨, 왜 웃어요?
아, 그냥.
그냥 뭐요?
내가 여시씨한테 너무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설마 질린다는 소린 아니죠?
아니, 그래서 좋다고.
…….
이제 나, 여시씨가 없으면 안될 것 같아요.
팔불출 혁수는 퍽 잦은 빈도로 여시에게 제 마음을 고백함
무엇 하나 감추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마음을 내보이는 혁수의 태도에
민망함으로 얼굴이 화다닥 달아오르지만
허나 또한 제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 것을, 여시는 부정할 수 없음
일은 할만하냐?
그냥 그렇지 뭐.
아버지가 아주 걱정이 말이 아니시다. 그러게 그냥 본부장으로 들어오라니까.
실력 없는 것도 아닌 놈이 고집은 왜 그렇게 부려?
이론이랑 실무랑 같나.
하여간 깐깐하긴. 나와. 밥이나 먹자.
잠깐만 기다려. 이것만 마치고.
혁수가 야근을 하던 날이었음
여시씨 몸 상한다며 같이 남으려는 것을 칼같이 자르고 보낸 탓에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그 넓은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할 혁수 생각을 하니 여시는 마음이 안좋음
그렇게 한참을 뒹굴대다 역시 안되겠다 싶어 대강 옷을 주워입고
샌드위치니 음료수니 바리바리 사들고 회사에 도착한 여시
그러나 혁수의 자리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도란도란 울리는 말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맒
혁수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다름아닌 영업마케팅 본부장 이혁민씨였고
숨죽여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결과 여시는 혁수가 그룹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됨
이 엄청난 사실에 충격을 받은 여시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옴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흔들어가며 열심히 부정해보지만
그럴 수록 아까 보았던 광경이 더더욱 생생히 살아나 여시를 괴롭힘
이런 거대한 배경은 여시가 상상해 본 적도 원해 본 적도 없는 것이었고
때문에 여시는 더더욱 혁수와 저의 관계가 겁이 남
밤이 까마득히 깊어 죽고 새로운 날빛이 움틀때가 되어서도 여시는 잠에 들지 못함
하룻밤을 꼬박 새가며 깨달은 것은 이미 너무도 짙어진 제 마음이고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뤄질 수는 없을 혁수와 자신의 사랑임
여시씨,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전화도 안받고. 걱정했어요.
혁수씨.
네, 여시씨.
우리 그만 만나요.
여시씨, 무슨,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말 그대로예요.
…….
우리 헤어져요.
날이 하얗게 밝자마자 여시는 퀭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출근함
사무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혁수의 시선도 죄다 무시하고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됨
사람들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나가고 어느샌가 여시와 혁수만 남은 사무실이 껄끄러워
재빨리 지갑을 들고 나서는 여시에게
머뭇머뭇 다가온 혁수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으나
여시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함
…….
그 후로 혁수는 눈에 띄게 야위어감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가는 모습에 주변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여시는 동요하는 제 감정을 애써 무시한 채 업무에만 전념함
아무리 피한다고 해도 결국은 같은 사무실을 쓰기에
여시와 혁수는 하루에도 꽤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제게서 시선을 뗄 줄 모르는 혁수의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여우면서도 결국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여시는 고집스레 일그러지려는 제 표정을 다스림
여시씨.
…혁수씨.
미안해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
견딜 수가 없어져서.
…….
나,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모르겠어요. 여시씨가 왜 떠났는지.
…….
염치없지만, 알려주면 안될까요.
내가 다…, 고칠테니까. 여시씨 마음에 들도록 맞출테니까, 알려줄래요.
수도 없이 일렁이는 감정으로 한층 더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여시는
제 집 앞 담벼락앞에 몸을 기대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혁수를 발견함
황급히 몸을 숨기려 돌아선 여시는 그러나
그새 자신을 보고 부르는 처연한 목소리에 결국 혁수와 마주섬
그늘진 눈가와 파리해진 안색으로 그간의 마음고생을 말한 혁수가 내놓은 것은
여시에 대한 원망도, 후회도 아니었음
한없이 연약한 얼굴로 제게 애원하는 혁수에 결국, 여시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름
그런 거 아니에요. 혁수씨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내가 너무 부족해서 그래요.
혁수씨 정말 좋은 사람인데, 내가 너무 못나서….
…부족하지 않아요.
…….
여시씨 부족하지 않아요.
내가 여시씨한테 좋은 사람이었던 것처럼,
여시씨도 나한테 좋은 사람이었어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그거면 된 거 아닌가요.
…….
울음이 차올라 흉하게 떨리는 목소리로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모든 이별의 과정에서 혁수의 책임은 단 한톨도 없다는 것
끝내 뚝뚝 눈물을 떨구며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는 여시의 말에
묵묵히 듣고 있던 혁수가 문득 입을 열어 나지막히 부정함
여시씨, 부탁이에요.
…….
여시씨가 너무 익숙해져서…, 헤어지는 거 못하겠어요.
…….
제발, 나 버리지 말아요….
-
과외학생 골라보기 또 왔자냐 또 신나쟈나!!!!!!!!
과외학생 골라보기 세번째가 왔쟈나 막 신나쟈나!!!!!
기묘한 꿈속의 여시를 사랑하는 남자 고르기 (가로본능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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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잠깐 짬이 나서 이렇게 글 올립니다.
이제 또 눈코뜰새 없이 바빠질테니
정말 연말에야 뵙겠네요.
여름 잘 나시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사실 어제 밤에 열두시 땡 치자마자
히죽대면서 올렸었는데
졸려서 미쳤었나봐요
정신차려보니 삭제돼있었어요..
야밤에 소리지르고 머리 쥐뜯고 하다가
결국 달리 방도가 없어서 잤는데
오늘 혹시나 해서 컴퓨터고 메일이고 다 뒤져보니까
저장해놨던 게ㅠㅠㅠㅠㅠ있었어요!!
귀중한 댓글 남겨주셨던 여시들에게 정말 고맙고
또 정말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다 제가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에요..죄송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망상이에요? 지금껏 계속 고르기 글은 쩌리방에만 올렸던 터라ㅠㅠ이거 쩌리용은 아닌가요?
고르기글은...아마..쩌리일걸?
하...권지용....나 쥬금ㅜㅜㅜㅜㅜ존섹이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왜헤어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안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 나만 허락하면 되는거 아닌가??ㅋㅋㅋ
헐대박..나1번포기할수있는데2번은안되겠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좋아한다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만날수있쒀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이거 망상방에 써야 하는 건가요? 고르기 글이라서 쩌리에 올렸는데..ㅠㅠ공지에 어긋나나요 혹시?
@it must be L.O.V.E 다행이다 걱정했어요ㅠㅠㅠㅠ제가 공지 어긴 걸까봐 고맙습니다!!
2222222222222ㅜㅜㅜㅜㅜㅜㅜㅜㅠ
와.... 111인데 망상으로 가요 언니..
제가 지금껏 고르기 글 전부를 쩌리에 올렸거든요..ㅠㅠ근데 공지에 어긋났던 건가요?
@아좋아좋아 아니아니아니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잘써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망상에서 연재해달라는 식으로 쓴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시 왜케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운의파랑새 ㅠㅠㅠㅠ아 다행이다..공지 어겼을까봐 막 떨렸어요 고맙습니다!!
11111111111111언니 망상으로 가주면 안될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지디는 도대체 왜케 왕족이나 신같은 설정이랑 어울릴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대박...2222
황제는 넘 위험해ㅠㅠㅠㅋㅋㅋㅋ아앙대 망상가면 앙대ㅠㅠㅠ난 망상안간단말야ㅠㅠㅠㅠ 그나저나 언니 필력..bb쩐다!!
와...이런 정성스러운 고르기 글 조으다.. 하.. 아 미치겠다 ㅠㅠㅠㅠ 2를 골라야 하는데 1이 끌리고 1이 끌리는데 2가 날 부르고 ㅠㅠㅠㅠㅠ
글이 너무 찰져서 못고르겠어ㅜㅜㅜ
ㅠㅠㅠㅠ 좋쟈나 다 좋쟈나ㅠㅠㅠ망상쪄줘 엉엉 ㅠㅠ
22222222222222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 존좋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
둘다는 안되나요???????언니ㅠㅠㅠㅠ완전개썅금손이쟈냐...나설렛쟈냐.....집착하는지용이랑 나한테쩔쩔매는 수혁이좋차냐....언니 망상방에 글써줘 둘다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언니사랑해 ㅠㅠㅠㅠ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지용옵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앜!!!!!!!!!!!!!!넘 좋아듀금 핰
와 읽다가 여기가 망상방인지..쩌리인지..ㅎㅎ황홀하다..ㅎ
둘 다는 안되나요 언니ㅠㅠㅠㅠㅠㅠ 어떻게 골라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굳이 골라야한다면.... 11111111111ㅠㅠㅠㅠㅠㅠ 어휴ㅠㅠㅠㅠ 고르면서 행복했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왜....ㅠㅠㅠㅠㅠ 둘다좋은데ㅜㅜㅜㅜㅜ 지용이로 할래.....ㅠㅠㅠㅠ
와...111111 난 황제!!! 집착이 취향입니다만ㅠㅠㅠㅠㅠ
지용이때문에 1 하려했는데 ㅅㅂ무조건2다
22222ㅠ 아 ....심장년아 떨지마 너아니야
헐? 2222222
뭘 골라야되지 아 대박ㅋㅋㅋㅋㅋㅋ 22222
와ㅠㅠㅠㅠㅠㅠ 분명 1번 읽을때는 11111111111111 이었는데 2번 읽으니깐 2222222222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황제는 언제라도 날 죽일 수 있으니께 2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사랑할 것을 몰랐기에 사랑하지 않는 법 또한 모른다는 말 진짜 멋있다 언니ㅠㅠㅠㅠㅠㅠㅠ 금손이네ㅠㅠㅠㅠㅠㅠㅠ
2222222222222222
22222하시ㅓㄹ....ㅠㅠㅠ
둘다!!!!둘다!!!!!는안되나요!!!!
22222
여시 뭐야.. 금손이야..? ㅠㅠ 나완전 몰입햇어... 난 22222222번이랑 사랑할래 1번너무짠내 ㅠㅠ
그치ㅠㅠㅠㅠㅠㅠ댓글쓸려니까 삭재대따구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ㅠㅠㅠ난....지디여...ㅋㅋㅋㅋㅋ
중세물 취항저격......!!!!
22222222222222222 혁수오바ㅠㅠㅠㅠㅠㅠㅠ
222222아 존좋ㅠㅠㅠㅠㅠ개다정해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ㅠㅠ
언니 글 정말....짱이야!!!
크흡 22222222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2ㅠㅠㅠ1은...솔직히 저렇게 매력적이고 맹목적으면 사랑은 하겟는데 그 죄책감과 자괴감에 내가 미쳐버릴꺼같아.
뭐야..나 이 글 뭐 검색하다가 들어온거지..? 암튼 망상방인줄 알았쟈나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쫂!!
아..............제발......2요...................언니.....나 언니 오늘 올린 눈치채지 못했던 사랑고르기에 스토커 절 한다는 여시야...ㅠㅠㅠ 이글 읽고 울뻔함 ㅠㅠ제발 222222222 이거 연재 해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더 절 많이할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