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악산 구름길, 25년 전 한북정맥 10m 직벽의 기억
산은 하나지만 사람마다 품고 있는 운악산은 저마다 다르다.
산꾼에게 운악산은 한북정맥 남진길이요, 북진길이다.
버섯꾼에게는 가을이면 능이를 비롯해 온갖 버섯을 찾아 헤매는 산이다.
또 세상이 어려울수록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렸던 미륵신앙은
민간의 생명, 다산 신앙과 뒤섞이며 남근석 숭배 같은 형태와도 맞닿았으니, 아이를 점지해 달라,
아들을 낳게 해 달라며 운악산 남근바위에 치성을 드리던 여인들의 간절함은
예전 제일병원이나 요즘 차병원, ‘메디’자 들어가는 난임 전문병원 찾는 마음보다 더하면 더하시겠다. ^^
관광객에게 운악산은 천년고찰 현등사가 있는 산이다.
그렇게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기억되던 운악산에 이번에는 하나가 더 생겼다.
나만 뉴스를 늦게 봤나?
또~잉, ‘운악산 구름길!!’
포천시는 운악산 해발 약 800m 암릉에 출렁다리 41m와 잔도 88m, 모두 129m의 구름길을 조성하고
지난 9월 7일부터 개방했다. 능선계단 127m와 전망대도 함께 설치됐다.
정식 개방 하루 전인 6일에는 백영현 포천시장과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아 안전상태를 점검했다고 한다.
기사에 실린 포천시 제공 ‘운악산 구름길’ 전경 이미지를 처음 보니
“속을 사람을 속여야지? 이거 그림 아녀?”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히다.
실제 현장의 전체 모습을 그대로 담은 사진인지, 일부 가공된 이미지인지는 사진만 보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한탄강 잔도 못지않게 얼마나 멋진 그림인가.
요즘 지자체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려고 저마다 홈런 한 방 날리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판인데
이번에는 포천이 제대로 한 방 친 듯하다.
다만 여기는 차에서 내려 바로 걷는 관광지가 아니라 해발 800m 고지까지 두 발로 올라와야 하니
연세 많은 분들에게는 아무래도 만만치 않으시겠다.
이 소식을 며칠 늦게 접하니 25년 전 일이 떠오른다.
2001년 한북정맥 남진 때, 말로만 듣던 약 10m 직벽을 만났다.
지금처럼 GPX를 휴대전화에 띄워놓고 걷던 시절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산꾼들은 이 직벽을 피해 서쪽 사면으로 우회한다.
지금 노채고개에서 운악산으로 이어지는 등산객들의 GPX 궤적을 보아도
이 지점에서 한북정맥 마루금을 벗어나 서쪽으로 크게 휘었다가 다시 능선으로 붙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시겠다.
그날 우리는 우회하지 않았다.
‘썩어도준치’, ‘청계산’, ‘천석고황’, SBB(송재설) 등과 함께
불쌍도 하지? 빌려온 하네스를 돌려가며 약 10m 직벽을 직접 하강했다.
한북정맥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보겠다고 선택한 길이되시겠다.
당시는 이 몸이 암벽을 하기 전이라 10m라는 높이가 결코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먼저 내려간 천석고황님 하는 것을 눈동냥해 두고 로프에 몸을 맡겼지만
막상 발밑 절벽을 내려다보는 순간,
“에공, 왜 일케 높찌?”
제법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런데 이후 인수봉을 오르내리며 암벽을 해보니
묘하게도 이 몸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하강에 특화된 체질이었던 것이었따. ^^
그때 내려섰던 직벽 위치를 옛 지형도와 현재 GPX 궤적을 대조해 다시 잡아보니 대략 이쯤이다.
N 37.882789
E 127.324264
N자, E자 없이
37.882789, 127.324264
이렇게 좌표만 복사해 네이버, 카카오, 구글지도 검색창에 넣어도 위치를 찾아볼 수 있으시겠따.
운악산 서봉 북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25년 전 GPS로 직접 찍어둔 좌표가 아니라 현재 지형도와 GPX 궤적을 대조해 추정한 것이므로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2001년에는 로프와 하강장비를 빌려 내려가야 했던 운악산 암릉에
이제는 출렁다리와 잔도가 놓였다.
산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산을 건너는 방법은 참 많이도 변했다.
포천시에서 제공한 구름길 전경 이미지를 바라보니 더더욱 격세지감이 든다.
다만 이 이미지와 지형도만으로 25년 전 우리가 내려섰던 10m 직벽과
이번 출렁다리, 잔도의 정확한 위치 관계까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척 보면 앱니다." ^^
그래서 더 궁금하다.
한번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새로 놓인 구름길도 직접 걸어보고, 지형도에 붉은 원으로 표시한 그 자리에 다시 서서
2001년 로프를 걸고 내려섰던 직벽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내 눈으로 다시 확인해 보고 싶다.
더구나 이제 가을 단풍철이다.
새로 문을 연 구름길에 출렁다리, 잔도까지 알려졌으니 이번 추석 연휴에는 수도권은 물론
전국의 등산객들이 운악산으로 엄청 몰려드시겠따.
25년 전에는 몇몇 산꾼이 로프를 걸고 지나던 암릉이
이제는 운악산의 새로운 명소가 된 셈이다.
‘그때 그 자리’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게 괜히 궁금하다.
871.5봉에서 잔도공사가 끝나고 출렁다리가 시작됩니다.
한북정맥 남진이라면,
약 10m 직벽 → x871.5 암봉 → 애기바위 일대 → 운악산 서봉(△934.7) → 운악산 동봉(x934.6)으로 진행됩니다.
N 37.882789, E 127.324264 이 좌표는 10m 직벽 쪽이 아니고 x871.5봉의 북쪽 암릉입니다.
뒤돌아서서 하강하지 못한 직벽절벽을 돌아보는 곳이죠.
운악산 서봉 △934.7m
운악산 동봉 x934.6m
동봉은 서봉에서 대체로 남쪽, 정확히는 남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봉우리죠.
다만 현장 정상석이나 관광자료에는 서봉을 935.5m, 동봉을 937.5m로 적은 경우가 많지만
산림청 100대 명산 자료는 운악산 높이를 934.7m로 명시했어요.
즉 ‘지형도 표고’와 ‘정상석, 관광자료 표고’가 서로 다르다는 점 참고.
포천시 공식 자료에서도 이번 구름길을 ‘애기봉~사라키바위 구간’이라고 부르면서
“단절됐던 운악산 한북정맥 구간을 연결한다”고 설명하는 거 보면
x871.5 봉 주변을 애기봉~사라키바위 구간이라고 부르며 험준한 한북정맥 암릉에
출렁다리를 만들었다고 보면 되겠네요.
결국 잔도의 완결점은 x871.5 봉이고, 다시 출렁다리의 시작점이기도 한 겁니다.
첫댓글 딱 1년 전 운악산에 올라서 원통산 쪽을 바라보니 저런 공사 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게 개통이 되었군
아무튼 공 세우기 좋아하는 지자체장들이 너도나도 남들이 하는 것 따라하기,
오래 전 둘레 길부터 시작해서 출렁 다리 잔도 .... 다음엔 뭐가 생겨나서 따라하기가 이어질까
광인님 말씀처럼
요즘 지자체마다 둘레길, 출렁다리, 잔도를 경쟁적으로 만드는 모습은 분명 있습니다.
저도 산속 시설물이 무조건 많아지는 것을 반기는 쪽은 아닙니다.
양주도 감악산 임꺽정봉에 잔도계단과 전망대를 만들었지만, 워낙 고지대라 노약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관광객을 대규모로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세금 들어간 만큼 본전 생각이 나는 시설도 분명 있고요.
그런데 이번 운악산 구름길은 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출렁다리를 하나 더 만들어 관광상품 하나 보태자는 발상보다, 먼저 ‘끊기고 우회하던 한북정맥 마루금을 다시 잇는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산꾼에게 마루금은 그냥 등산로 하나가 아니라 산경표의 맥을 몸으로 이어가는 길이지요.
2001년 10m 직벽을 우회하지 않고 로프를 타고 내려선 것도 결국 그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GPX를 봐도 대부분 그 직벽을 피해 서쪽으로 크게 휘었다가 다시 능선으로 붙습니다.
그런 곳에 출렁다리를 걸어 실제 보행선으로 한북정맥의 맥을 이어놓겠다는 발상을 누군가 공무원 조직 안에서 했고,
그걸 사업으로 현실화했다는 점은 저는 꽤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잔도는 오히려 그 다음 문제였다고 봅니다.
마루금을 출렁다리로 연결하고 나니 주변 험한 암릉을 안전하게 통과시키기 위해 잔도와 계단, 전망시설이 뒤따라 붙은 성격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단순히 “남들도 출렁다리 놓으니 우리도 하나 놓자”였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찌 보면 난개발로 잘려나간 백두대간을 에코브릿지로 다시 이어주는 것과 비슷한 생각도 듭니다.
물론 에코브릿지는 생태축을 잇는 것이고 이번 것은 사람이 걷는 산줄기를 잇는 것이니 성격은 다르지만,
‘끊어진 맥을 다시 연결한다’는 발상에서는 통하는 부분이 있지요.
게다가 운악산은 포천과 가평 조종면의 경계에 걸친 산입니다.
애써 포천시가 돈 들여 길을 만들어 놓고도 산행 뒤 막걸리 한잔, 밥 한 끼는 가평 현리 쪽에서 먹을 수도 있겠지요.
관광객 지갑이 꼭 포천에서만 열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작은 콩고물 계산에 매달리지 않고 한북정맥이라는 큰 산줄기 자체를 살려냈다면, 저는 그게 오히려 대승적인 산림행정이라고 봅니다.
노약자가 쉽게 올라갈 수 없는 해발 800m 산중 시설이라 관광객 숫자만 놓고 보면 효율을 따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산 시설물이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는 관광객을 위한 것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산꾼이 수십 년 동안 ‘마루금’이라고 부르며 이어오던 길을 행정이 알아보고, 끊어진 곳을 실제 다리로 이어놓았다.
저는 이번 운악산 구름길에서 출렁다리의 화려함보다 그 점이 더 반갑습니다.
광인님 말씀처럼 다음에는 또 어떤 지자체가 뭘 따라 만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운악산만큼은 ‘출렁다리 하나 더 생겼다’보다
‘한북정맥의 끊어진 마루금 하나를 다시 이었다’고 기억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