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전시회를 보고, 미술도 진화하는 걸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작년 11월 15일이군요. 그 뒤 PC가 고장 나 꼼짝 못 했습니다. 만 10년이 넘으면서 고장 징조가 한둘씩 나타나더니 드디어 완전히 망가지네요. 사위도 바쁘다고 방학 때나 손봐주겠다고 했으나 2월에 결국 새것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무거운 주제라 나의 능력으로는 해답을 내릴 수 없는 건데 괜히 건드렸다 싶습니다. 작년 11월 9일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효과’라는 기획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백남준과 관련 있는 처남 박이소와 그의 작품 몇 개가 전시되어 개막식에 초청받았지요. 그동안 과천 국립미술관 입구에 전시된 백남준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보면서 그 위압적인 포즈에 일면 꿀리면서 다른 일면 오늘날 세상에서 미술이란 무엇인가는 의문을 계속 가져왔습니다. 1월 말까지 과천 전시장 한 벽면에 이소와 백남준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있었습니다. (사진 1, 상설관에 백남준과 나란히 전시되어있는 이소 작품)
작년 9월 ‘인천 Art Platform’이 주최한 ‘한지로 접은 비행기, Korean Diaspora’에 백남준의 작품이 2개 나왔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 생뚱맞은 기분이 들 정도로, 한국적인 정서가 흠씬 묻어나 색다른 분위기를 주기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었지만 그때 쓴 ‘9월의 마지막 날’에 라는 글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이방인 한국인’이란 주제와는 맞는 것이었지요. ‘금강산 폭포’과 ‘ 청경우독(晴耕雨讀)’이란 그림입니다. 금강산은 한국인이라면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움을 대변하고, 초가집 안에 책을 두고 날이 맑으면 밭을 갈고 비가 오면 책을 읽는다는 건 전형적인 옛 선비의 삶의 방식이겠지요. 외국에서 살던 작가에게는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찾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지붕에 박 같은 게 있고 푸른색 점들은 가을에 날아가는 기러기 모습인가요? 두 작품 모두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담뿍 담긴 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사진 2, 3)
서양화를 기준으로 하다면, 그리스-로마라는 ‘고전 시대’를 거처 중세와 르네상스, 이어 밝은색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근대화를 볼 때만 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하지요. 아니 피카소로 대변되는 현대추상화 계열도 알 듯 모를 듯하지만, 그림다운 맛을 느끼지요. 작가의 내적 심리를 내가 읽는다는 뿌듯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요? 나만의 착각인가요? 1970년대 런던 테이트 갤러리 입구에 전시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볼 때 느꼈던 기분입니다. 집 부근에 있어 자주 갔던 곳입니다.
그러면 백남준은 어떤가요? 그의 ‘그림’이 아닌 ‘작품’들을 보면, 내가 무지하고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해서인지 현대미술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서 이렇게 변해야만 하는지, 그렇다면 그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dynamism)이 무엇인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자괴감 비슷한 감정도 생기구요. 사진기의 발명으로 정밀한 묘사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해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변기통’이 현대미술의 상징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평가된다지만 '이게 뭔가?'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과천 미술관 입구에 우람하게 전시된 백남준의 대표작인 ‘다다익선’이 연신 수백 개의 TV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내뿜어, 그래서 감상할 시간조차 빼앗고 뭐가 뭔지 모른 채 발을 다음 전시장으로 옮기게 만들 때도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원래 미술은 인간의 지적(知的) 표현의 첫걸음입니다. 자기 의사를 전달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라는 표시는 말이 통하지 않은 도시에서도 Information 즉 도시에 관한 정보를 묻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화장실 앞에 있는 남녀 그림은 남자(여자) 화장실이란 걸 쉽게 알 수 있게 합니다. 200만 년, 아니 500만 년 전 인류가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유인원에서 초원으로 나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두뇌가 커지지요. 어린 지그프리트는 냇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본 후에 두꺼비가 물고기의 아비일 수 없듯이 (지금까지 키워준 검은 난쟁이 미메는 아버지가 아니라고 느끼면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자기를 찾아가는 자의식을 갖게 되지요. 이건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거지만 학술적으로도 틀린 건 아닙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황토나 꽃물을 얼굴에 바르고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끼워 목에 걸고 동굴 벽에 사냥하는 동물을 그리는 ‘미술’ 행위를 하면서 인간들은 상호 동질감을 느끼게 되지죠. 이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최초의 지적 활동이라는 겁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는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최근 연구 결과 원시인류들이 사냥한 동물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별자리와 연관 지어 이들이 새끼를 낳는 시기를 알려준 것이라고 해석하더군요. 이 시기에 맞추어 들소나 영양들이 나타날 것이니 사냥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겠지요. 인간이 현실적 필요성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사유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추론하는 지적행위가 미술이며 이것이 인류의 위대한 여정의 첫 발걸음입니다. 그 뒤 문자의 ‘발명’으로 발전하여 인간은 좀 더 구체적인 표현방식을 갖게 되지요. 미술대학의 기원은 모든 학문 중 이같이 가장 오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세태는 젊은 세대들이 미술대학이라면 꼰대같이 들린다느니 학생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 하면서 조형인가 영상인가 등등을 합쳐 젊은 세대에 어필하는 세련되고 매끄러운(polish) 이름을 짓는다고 조형미술대학이라 하던가요? 조형이란 간단히 말해 조각을 통한 미술행위/활동을 의미하겠지요. 그리스 조각작품을 ‘미술’로 간주한 것을 보면 ‘미술대학’만으로도 ‘조형’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요? 다른 곳이면 몰라도 대학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백남준의 전시품들을 둘러보면서 그에 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의 작품 ‘다다익선’이 보여주듯이 TV 등 현대적 기기들을 사용하여 휘황찬란한 기괴한 것들만을 만든 작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다익선’이 주는 의미도 있겠지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군중들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 등등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겁니다. 반면 우리의 무의식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한국적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작품들도 있더군요. ‘말을 탄 김유신’이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토기로 만든 신라인의 기마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데 로봇을 태운 말이 웃고 있네요. 로봇에는 시계가 달려있고 머리에는 안테나가 튀어나온 조그만 TV인가 트랜지스터(transister)라디오가 붙어 있어 요즘 식으로 인공지능(AI)이 말을 조종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건가요? 고대를 상징하는 말과 최신 AI의 조합이 사람이 아닌 말도 웃게 만드는 것인가요? 나도 웃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작품들이 몇 개 더 있더군요. (사진 4, 말을 탄 김유신)
오늘날 우리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갑시다. 2007년 1월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한국 현대미술전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처남 박이소의 작품이 몇 개 전시되어 내가 유족 대표로 참석했지요. 그런데 작품 중에는 6.25 전쟁 다큐에서 뽑아 TV에 비춰주면서 작가의 해설을 붙인 게 있더군요. 유사한 작품들도 몇 개 더 있었고. 비디오와 오디오가 주를 이루고 여기에 작가의 해설이 소리로 합쳐있더군요. 그러나 원래 미술을 의미하는 그림은 없었습니다. 비디오가 그림을 대신하겠지요. 이게 트렌드인가? 6.25 전쟁에서 살상의 잔인함을 부각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어느 쪽이 폭력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전쟁을 통해 스스로 정의(定意)한 정의(正義)를 이루려는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인가? 차라리 다큐를 제작하지, 아니면 논문을 쓸 것이지.... 믈론 미술이 시대의 아픔을 같이 호흡하고 시대상을 적극 반영하려는 노력이기도 하지요. 나는 1980년대 이후 대학 건물들에 걸린 민중예술 작품을 볼 때는 별다른 기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나 한국미술사라는 전시회에서 다른 시대의 그림들과 나란히 걸린 걸개그림을 보면서 ‘아, 이것이 그 시대 우리의 모습이었구나’라는 색다른 감흥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나는 진부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더군요.
원래 학문은 통합적이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주변을 탐구하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등 행위를 통해 지식을 축적할 때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구분은 없었지요.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도 미술작품이라기보다 인간 지적행위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과학 기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연과학이 세분화되고 사회에서 인간의 직업이 다양화되면서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가 생겨난 겁니다. 그런데 최근 웹 망원경은 우리의 우주 외에 다른 우주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지요. 나는 인간이 지난 2천 년, 아니 3만 전부터 축적된 지식이 모두 해체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술도 그런 걸까요? 단순한 소묘(素描, 데상)와 조각에서 시작된 인간의 사유와 행위의 주제가 이제 통합예술이란 이름 아래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일까요? 시작은 장대하나 끝은 보잘것없는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2023.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