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관기피(樹冠忌避)란
말 그대로 나무의 맨 꼭대기 부분이 서로 엉키지 않고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서로의 간격 때문에 아름다운 기하학의 패턴이 형성된다.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 여러 나무들에서 관찰된다.
영어 표현이 조금 더 시적이다.
Crown Shyness, 꼭대기의 수줍음.
나무들은 왜 이렇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걸까?
1920년 이래 과학자들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지만
아직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햇빛과 광합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겹쳐지 않고 떨어져 있어야 광합성에 이롭다.
그리고 그 사이로 햇빛이 떨어져 키 작은 관목에게도 도움을 줘
생태계 전체를 이롭게 할 수 있다.
또 일각에서는 빗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겹치지 않고 통로를 만들어야 빗물이 떨어져 골고루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병충해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서로 연결돼 있으면 질병 감염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영양 손실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나무들이 서로 겹쳐져 있으면 바람이 불거나 태풍이 왔을 때
서로 부딪히고 마모돼 가지가 꺾여 나간다.
나무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격을 두는 거라고 말한다.
그 어느 주장이든, 결국엔 나무들이 오랜 진화 과정 속에서
'슬기로운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귀착된다.
또 각자의 생존을 위해 적당한 간격을 두며 형성된 나무들의 '공존 시스템'이
빛, 물, 바람 등의 흐름을 적절히 조절하며
숲 전체의 생태계에 커다란 보탬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신비롭고 슬기로운가.
이 아름다운 하늘 무늬에서 인간도 배울 점이 많다.
적당히 서로 간격을 두는 것,
다 안다고 섣불리 엉키지 말 것,
서로 안다고 착각하지 말 것,
언제나 살랑살랑 수줍수줍 밀당을 할 것.
/폐친 A의 글
[연관 격언]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아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있으며,
참나무나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에서는 잘 자랄 수 없는 것을... ...”
(예언자 / 칼릴 지브란)
[또 다른 시각]
수관기피, 그럴듯한 오해
오늘 페북에선 나무들 사이의 거리마저 사람의 이야기로 번역하려 든다.
숲 위를 올려다보며 나뭇잎들이 서로 닿지 않고 주춤하며 물러선 자리를 두고
‘수관기피’라 이름 붙이더니, 그걸 곧바로 사회적 거리두기니,
경계의 미학이니 하는 단어들로 곱게 포장해 옮겨놓는다.
숲의 생리를 인간의 도덕으로 끌어와,
마치 자연이 먼저 우리가 배워야 할 교양을 실천하고 있는 양 말이다.
마치 나무가 철학자라도 되는 양.
하지만 수관기피는 그렇게 예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나무들이 서로의 몸을 다치지 않기 위해,
또는 곰팡이나 해충이 퍼지지 않게 하려고,
혹은 단순히 햇빛을 좀 더 받기 위해 나름대로 계산한 생리적 조정일 뿐이다.
어떤 연구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서로 부딪치다 보니,
결국 닿지 않는 거리로 생장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건 윤리가 아니라 전략이고, 철학이 아니라 생존이다.
더구나 모든 숲이 그런 것도 아니다.
혼효림이나 다양한 수종이 섞인 숲에서는 수관기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무들이 서로 얽히고 겹치며 살아가는 풍경이 더 보편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수관기피를 ‘질서’라 부르고,
나무 사이의 간격에서 이상적인 관계의 거리를 읽어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또 한 번 자연을 인간의 언어로 갈아입힌다.
자연은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우리가 보는 자연은 점점 우리의 얼굴을 닮아간다.
수관기피는 단지 나무의 몸짓이지만,
사람들은 그 틈에서 자기 확신을 끌어올린다.
그렇게 해서 결국, 자연은 타자가 아니라 비유로만 존재하게 된다.
나는 수관기피가 숲의 본질을 말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숲의 본질은 그 다양함, 혼란, 예측 불가능함 속에 있다.
겹치고, 얽히고, 때로는 쓰러지며 서로 기대는 것.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 간격이 아니라 겹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오래 자연을 닮아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그 자연은 정작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폐친 이상엽 사진작가
소나무, 두릅나무나 맹그로브, 녹나무, 유칼립투스 등에서는
이러한 수관기피(樹冠忌避) 현상이 관찰된다.
하지만 열대우림에 들어가 보면
하늘이 아예 보이지 않고
나무가지와 나무가지가 서로 엉키며 자란다.
관찰자의 시야와 눈높이에 따라,
또는 서식환경에 따라
자연현상에 대한 해석들이 다를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과학은 발전하고
과학의 벽돌 위에서 인류는 발전한다.
/홍슈
간격 /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