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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0. 10. 3. 토요법회
<대종경 신성품>
설 법 : 김제원 교무님
타이핑 : 배성해, 한지훈
오늘은 질문을 다 듣고 나서, 답을 하겠습니다.
<문>
문_ 양도인
신성품이 신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를 많이 하시는데,
그렇다면 신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지요?
저는 스승님이 시키는 대로 하다보면 신심이 커지겠거니 싶은 마음이 들고, 기도를 계속 하다 보면 신심이 커진다 생각하는데, 맞는 생각인가요?
문_ 배성해
중국 선불교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문_ 박희정
신성품 제8장의 자력신 개념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고, 마지막 문장에 “공부가구경처에 이르고 보면 자타의 기한이 없이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한 가지 삼보로 화하나니라”라는 법문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문_ 심하은
신심이라는 마음은 죽어서도 따라가는 지 궁금합니다.
사람 아닌 생물들에게 신심이 있을는지요?
사람 중에서도 공부인에게만 신심이 있을는지요?
문_ 차명섭
신성을 못 받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는지요?
문_ 이도심
이른바 ‘나신교’라고 종교를 안 믿고, 자기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에 대해 뚜렷하게 믿는 사람과 종교를 믿는 사람의 차이가 어떻게 나는지요?
문_ 최도민
나는 나만 믿고 산다는 사람들은, 잘못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 종교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쁜 종교를 믿는 경우에는 신심이 없는 경우만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겠는지요?
<답>
좋은 질문 많이 나왔습니다.
첫째 질문, 신심나는 방법에 대해 여쭈었는데. “나는 왜 이리 신심이 안 나지? 어떻게 해야 신심이 더 날까요?”
둘째 질문, 스승을 죽이라는 법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셋쩨, 신심을 죽어서도 가져가는가,
넷째, 신심은 사람에게만 있는가? 사람 중에도 공부인에게만 있는가?
다섯째, 신성품 8장 자력의 삼법승의 의미가 무엇인가.
여섯째, 자력으로만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과 종교라는 타력을 활용하는 사람은 차이가 어떻게 다른가?
일곱째, 잘못된 종교를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겠는가?
교도님들 생각은 어떠한지요?
[김화중]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부모님께서 설법을 해주시면 신심이 많이 났습니다. 그것을 일상에 적용해서 효과가 잇었을 때, 신심이 났습니다.
즉, 신심이 나기 위해서는 일단 설법을 잘 듣는 게 첫째인 것 같습니다.
[교무님]
또 어떠한지요?
[송밀운]
스승을 죽이라는 말 자체가 무문관에서 나온 말은, 제자가 스승의 법을 이어 받는데, 그 법은 스승의 법이지 자신의 법은 아니기에, 스승의 법이 아니라 자신의 법을 찾으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교무님]
재밌는 법문이네요. 여러분들 저를 다 죽이십시오.
종교와 철학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거의 같긴 한데, 철학은 의문을 가지고 추구해 들어가는 분야라면, 종교는 깨달은 자가 법을 내놓아서 그것을 믿고 그 다음에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기 것화 하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모르고 연구하려면 연구만하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종교는 깨달은 자가 답을 주셨는데, 자기 답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일단 믿고 계문 지키고 활용하면서 지도를 받으니까, 내가 빨리 깨달을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철학적 방법을 활용하지요. 그러나 철학에서는 종교적 방법을 활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 중에 성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철학자 중에서 칸트 같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철학자 중에서 성자 되지 못한 사람이 더 많거든요. 철학은 스승을 죽이는 방법을 씁니다. 스승을 비판하지요. 철학은 스승을 넘어서는 것이 스승이 원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종교는 스승이 깨달은 자리에 나도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어떤 방법이냐 하면, 여기서 ‘죽이라’는 표현은 스승이라는 표현에 얽매이지 말아라, 집착하지 말아라, 스승의 깨달음을 통해 너 또한 깨달으라는 표현입니다.
고려 시대에 어느 스님이 절에서 너무 추웠답디다. 불상을 도끼로 쪼개서 불을 땠다고 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부처님을 어떻게 쪼개냐고 무어라 하겠지만, 사실은 그 불상은 상징일 뿐이지요. 형상화한 이미지일 뿐이지요. 진짜 부처는 자기 부처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 스님이 지혜 있는 것이지요.
스승을 비판하고 죽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철학은 스승을 넘어서는 방법을 씁니다. 그러나 종교에서는 스승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니까 비판을 하는 겁니다. 비판을 하려면 스승보다 높은 자리를 깨달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스승이 깨달은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가 없거든요. 반야심경에서 ‘무상주, 무등등주’라 하잖아요. 위가 없는 주문이요, 같은 게 없는 주문이라는 뜻입니다. 스승이 깨달은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는 없고, 같은 자리를 깨닫는 것일 뿐입니다.
형상에 얽매이는, 집착에 얽매이는 데에서 벗어나라는 뜻으로 ‘스승을 죽이라’는 법문을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종교의 선택”에 대해 이제 답해드리겠습니다.
진리를 ‘제’라고도 표현합니다. 부처님이 ‘사성제’를 내놓으셨지요. 이 세상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고집멸도입니다. 누구나 고통이 있지요. 고통에는 자연적 고통 (생로병사)가 있고, 인위적 고통(애별리고, 구부득고, 오음성고, 원증회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하고, 구하려고 하지만 구할 수 없고, 욕심이 치성한데 이룰 수 없고, 증오하는 사람과 만나야만 하는 고통입니다.
고통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집착입니다. (고집멸도 중 집)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멸)
8가지 방법입니다. (8정도, 도)
8정도는 원불교 용어로 삼학입니다.
원불교에서는 여기서 사은 교리가 추가되지요. 대종사님이 사은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천치 하우자도 인정할 것이라 말씀하셨잖아요. 천지, 부모, 동포, 법률 없이 살수 없음을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래서 진리입니다.
진리는 참 진(眞), 이치 리(理),입니다.
참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참된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 같더라도 몇 년 지나서 틀린 것으로 증명되면 진리가 아닙니다. 공간으로는 지구환경을 떠나도 참되어야하고, 시간적으로는 수천년이 지나도 참된 것이어야 합니다.
나쁜 종교에서 헤매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문제되는 종교는 첫째, 기인취재합니다. 사람을 속이고 재물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종교를 갔더니, 집 팔고 종교 오라고 하면 사이비 종교입니다.
둘째, 혹세무민입니다. 세상을 혹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사람들을 지혜를 계발시키고, 합리적으로 만들고, 더욱 세상에 도움 되게 만들어야지요.
부모에게 오히려 못 가게 하고, 현혹되게 만드는 종교는 사이비 종교지요.
사이비종교 중에 집단 자살하는 종교 있잖아요. 지구가 곧 멸망할 것이라고 기다리는 종교는 사이비 종교지요. 종교가에 와서 처음부터 돈 얘기하는 사람은 교당에서 아웃이지요.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시공간을 떠나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변화하는 것이 불변한다는 것도 진리이지요.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이 진리지요. 이런 게 진리지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용을 설명해야지요. 그렇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습니다. 노예 중에 가장 심한 노예가 관념의 노예거든요.
그래서 정법회상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는 정법회상에 인연을 만들어야 해요. 여러분들도 그러니까 여기 많이 데리고 와야 해요. 그래야지만 여러분이 다음 생애에 여기 다시 올 수 있어요. 원불교 다니는 사람은 첫째는 인연이 있어야 옵니다. 그런데 그 인연만 있으면 안 되고, 법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무 자식 중에도 원불교 안 다닌 사람 많거든요. 지혜가 없으면 이 법을 못 알아봅니다.
여러분들은 인연이 아주 좋고, 대종사님 법이 보편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해서 여기 오지요.
그러니까 김화중 교우님이 설법을 들으며 신심이 나지요.
각산 님이라는 분 법문을 듣고 발심해서, 교당 다니는 사람 많아요. 저는 각산님보다야 못하겠다만, 저의 법문 듣고 발심해서 출가한 사람이 22명입니다.
출가한 사람은 여기에 목숨을 바칠 만 하다는 확신이 들어서 출가하는 거지요. 출가가 장난이겠어요? 인생 최고의 고민 중에, 결혼 대상자를 고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출가하겠느냐, 이지요. 그런 고민 끝에, 내 목숨을 바칠 만한 곳이 원불교 겠구나, 여기서 내가 진정한 행복, 영원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겠다고 나름 판단을 해서 출가하신거지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나름은 ‘저는 법문 듣는 거 싫어해요’ 말은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소 사실은 속으로는 자력의 불, 법, 승 중에 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로 양심이라 하고, 양명학에서 양지라고하고, 불교에서 성품이라고 합니다. 구도심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구도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책을 찾아보시는 거고, 여기 찾아온 거지요. 마음속으로 동의해서 그렇습니다. 그 동의가 확실해지면 특신급입니다.
자력신, 타력신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불교에 불법승이 있지요. 그래서 불교에서 세 번 절하지요. 불법승 삼보에 절하니까요. 부처님, 부처님의 교법, 부처님의 공부를 전력해서 하는 자들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자력의 불법승에서 자력의 불은 자성입니다. 자력의 법은 내 안에 세운 법의 표준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다, 이런 법을 기준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자력의 승은 내 안의 계문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잡고 있는 계문입니다. 그것이 자력적 승입니다.
이해 못하셔도 들어두십시오.
자력과 타력이 만나야 해요. 자력만 강조해도 반이고, 타력만 강조해도 반입니다. 타력만 강조하면 자력이 약해지고, 자력만 강조하면 좋은 타력을 활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만 강조하면 자기 힘의 20%만 쓰게 됩니다. 자타력이 순환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은행에 가니까, 돈을 안 빌려줍디다. 교무님은 돈이 없네요, 하면서 안 빌려줍니다. 경제적으로는 자력이 없어서 그렇지요. 만약에 제가 부동산을 갖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전문직이면 은행장이 알아서 찾아오지요.
사실 은행장이 저한테 찾아오긴 해요, 교당 공금 쓰라고ㅎㅎ
여하튼, 자력이 있어야만 타력이 맞물려져요. 너무 큰 타력은 부담되거든요. 경전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급이 보기엔 보통급 경전으로 보입니다. 여래위가 보기에는 여래위 경전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보통급들은 경전을 읽다가 자 버리잖아요.
어떤 분은 그런데, 원불교 만난 지 1년 반 되었는데 100독 하셨답니다. 그 분은 1000독이 목표랍니다. 그런 사람은 자력이 원래 강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이 경전을 보고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바로 알지요. 이 사람은 영문이 열리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경전 보면 환장하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자력이 아직 그만큼 되지 않으니까, 경전이 그만큼으로 안보이지요.
자력이 올라가면 타력도 올라갑니다.
자력을 키우는 것이 타력을 받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타력 중에서도, 여러분은 부처님의 타력을 입는 사람입니다. 정법회상의 타력을 지금 입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릇이 작으니까 여러분이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지요.
신심은 내 그릇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릇을 비워야하고, 키워야합니다. 그것이 신심입니다.
하지만 몰라서도 그러고, 전생 업력 때문에도 못 그러지요.
정법회상 이라 싶을 때 믿고 따르십시오.
여러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들이 이 법문을 따르고 있습니다. 대산종사님보다 여러분이 아직까지는 못하잖아요. 그런데도 여러분이 그런 사람을 불신하면 누가 손해겠어요? 그런데 못난 사람일수록, 약자일수록, 그릇이 작은 사람일수록 그 타력을 배척합디다.
훌륭한 과학자들은 신앙생활 합니다. 훌륭한 기업가들은 전부 기도생활 합니다. 기업도 운영 안하고, 사업 안하는 사람이 기도를 안 하는 거예요. 기도는 해보지도 않고, 잠이나 자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신심은 그릇을 비우고 그릇을 키워서 타력을 담는 것이지요.
상전급까지는 자기를 믿지 마세요. 속는 줄도 모르고 속거든요.
3살짜리한테 “엄마 나 자력으로 살거야” 라고 말하면 되겠어요? 그러면 죽습니다. 3살 아이는 타력을 활용해야겠지요.
신심을 내는 것은 내가 아직 부족한 사람이고, 나는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음을 인정하겠다는 거지요. 신심이 안 나는 사람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니까 자기보다 쓴 글, 자기가 하는 말, 자기가 하는 행동이 대산종사보다 천분의1보다 안 되는 사람들이 대산종사를 비판하면서 자력만 강조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입니다.
신앙을 통해 내가 바보처럼 남을 의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강자의 타력을 활용해서 나도 강자가 되라는 것이요.
진정한 신심은 깨달음과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신심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일단 믿으십시오. 대산종사께서 ‘속은 폭’ ‘안난 폭’ 잡으라 했습니다.
이대로 하면 부처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한테 속으면 안됩니다. 그럴 때는 강한 타력을 활용하셔야합니다. 나무도 뿌리가 있어야 성장합니다. 뿌리 밑에 흙이 있습니다. 자력은 타력의 근본이 되고, 타력은 자력의 근본이 됩니다. 서로 그렇습니다. 나중에는 자타가 불이입니다. 서가모니께서 자등명 법등명이라 했습니다. 자력과 타력을 모두 최대한 키우라는 뜻입니다. 자타력이 병진해야합니다. 더 들어가면 자 타력이 둘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타력이 더 필요합니다.
자력을 더 키우려면 타력이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 교당 일반교도 이태성 교우님 할아버지가 한산 이은석님입니다. 한산 님이 학교 들어가니까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말하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덜 똑똑한 문산 김정규보다 머리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은 훨씬 더 큰 역할 했습니다. 한산님이 지혜가 좋았지만 복이 없었습니다. 문산 님은 지혜가 적어도 복이 있으니까 일이 잘 풀렸거든요. 사람들이 도와주고 합력해주지요. 문산 님이 복이 왜 많았을까요? 복을 지었으니까 그렇지요.
신심도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연복이 있습니다. 그 복이 있어서 여기 오셨습니다. 지혜가 있어서 자력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은 타력입니다 .주변 인연에게 잘해주고, 주변에 잘해주는 게 내 복이 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고 자기 능력으로만 하려는 사람은 큰일을 못하게 되지요.
신심나는 방법은 가장 좋은 것은 인연입니다. 인연을 놓지 말아야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지혜가 동반되어야합니다. 청법, 경전법규 연습, 독경, 사경, 훈련 나기, 법회보기 등의 타력이 필요하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배우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또한, 안으로 철학적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교무님 중에 “저게 왜 저러지”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종사님도 어릴 때부터 의문이 많았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어떤 게 진짜 행복인가”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원불교였지요. 그 선택을 한지 26, 7년 되었는데, 선택을 정말 잘했구나 싶지요. 내가 이런 판단을 어떻게 다행히 했던고 싶지요. 철학적 사유가 있던 거지요.
저희 아버지가 전생에 제 제자였어요. 그러니까 이생에 저 출가시키도록 기도해주고 지원해주신거지요. 전생에 복을 지어놓으니까, 가능했지요.
저희 교당 청년 중에 출가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말려서 못하는 경우도 만아요. 그것도 자기가 지은 거예요.
원력은 죽어서도 가져갑니다. 형상 있는 것은 가져가지 못합니다. 원력이나 신심 같은 형상 없는 것은 가져갑니다. 인연, 복도 가져갑니다. 악업도 가져갑니다. 악업도 내생에 다 갚아야지요.
원력과 신심은 가져가는 것입니다.
신심은 인연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철학적 사유는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게 진짜 나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게 가치 있는 것인지 생각하고, 이 우주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짜 잘사는 사람인지 의문을 품고요. 어떤 사람이 진짜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지. 스스로 연마하고 스승님께 묻고요.
역대 성자가 구사고행을 했어요. 철학적 사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을 찾으려는 게, 내가 의문이 나는 것을 풀겠다는 뜻이지요.
예전에는 스승을 찾고 경전을 찾으려 목숨을 걸었어요. 경전을 하나 찾아서, 일생 사경하고요.
지금은 인터넷만 좀 치면 경전 다 나오지요. 인도 안가도 인도 경전 다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세상인데도, 사람들이 교당에 안 오지요.
우리 마음속에 자력이 있는 불이, 탐진치 욕심으로 갇혀있습니다. 탐진치 욕심 때문에,
산에 가 보세요. 마음이 편안해지지요. 그런데 강남 시가지 가보세요. 욕심이 다시 솟아오릅니다. “그래 돈 벌어야지” 싶어 하고요.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교당 올 때는 “마음 공부해야 참 부자지 ” 싶다가도 강남가면 “이제 돈 벌어야겠다” 싶고요.
시험공부 한다고 교당 안 나오는 사람들은 대개는 욕심에 속아서 그렇습니다.
본래 신심이 있고 없다는 건 없어요. 인연이 있고 기회가 닿으면 누가나 신심을 낼 수 있습니다. 자력에 불법승 중, 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찾고 있지요. 저는 그 마음을 건들고 싶고요.
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닙니까? 그것도 구도심 때문입니다. 구도심을 해결하기 싶으니까 술도 마셔보고, 여행도 다니고,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인연이 없어서 그러지요.
여러분들은 그 사람들에게 당신이 찾는 것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안내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10,20,30년 지나고 이 영상을 다시 봐보세요. 그때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지금보다 더 많이 느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해요~^^
아하하하하~
이렇게 질문을 앞에 모아놓고
답문을 읽어보니 더 확연해집니다
일반법회보다 질문이 많아 청년 마당은 활기가 굿~!
생각으로만 머물던 질문이 명쾌한 답설로 인하여
더 빛이 납니다
이제 배성해님은 늘~ 당연하고, 한지훈교우는 언제 얼굴 함 봅시다
넘 좋았어요 땡큐ㅡ써 ㅎ
중생의 방황을 구도심이라 표현해주신 교무님이
오늘따라 더욱 고맙습니다
중생은 늘~ 인정받기를 원하고 배려해주며 격려받으면 좋~지요 ㅋㅋ
왜 냐구요?
마음 저~ 한구석에
으음 나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안심하고,
수행인이라는 자부심이 쪼~금 이라도 생기기 때문이지요 ㅎ
사실은 부처님께서 미리 그리 갈파해주셨지만 까먹어서 새롭지요 ~*
다~ 그렇지만
이 말씀이 더 마음으로 들어오는 아침입니다
신심 내는 자 자기 부족함을 알고...더욱 공부하기를 힘쓰는자~*
이 법에 신심이 안나면 죽도록 공부해봐야지요
그래도 안나면?
명답이 생각안나네요
나도 가는 도중이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