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팔복 중의 일곱 번째 복인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을 보면 “복되도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여,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9절의 “화평하게 하는 자”라는 말은 헬라어 “호이 에이레노포이오이”로서, 신약성경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인데,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 즉 “샬롬을 이루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구약, 신약성경을 보면 “샬롬”에 대한 강조가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예수님과 관련하여서 “샬롬”대한 강조가 두드러집니다. 누가복음 2:14절을 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천사들이 “샬롬”으로 찬양합니다.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성경 기자는 스가랴 9:9절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의 성취로 말씀합니다. 그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누가복음 19:38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왕권을 샬롬으로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왕으로 오셨는데, 샬롬의 왕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2:14~18절을 보면 “화평”이라는 말을 두 번(14, 15절), “평안”이라는 말을 두 번(18절) 사용합니다. 모두 헬라어 “에이레네”가 쓰였습니다. 같은 의미로 번역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목적을 한 단어 “화평”으로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한 모든 사역도, 특이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도 죄로 인하여 깨어진 샬롬을 회복하기 위함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의 샬롬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8~19절을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종과 자유자 사이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신분, 계층, 경계가 무너짐입니다(고린도전서 12:3, 갈라디아사 3:28). 특별히 구약에서는 의의 열매가 “샬롬”입니다(이사야 32:17).
예수님은 이 땅에 “피스메이킹(peacemaking)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오셨습니다. 바로 우리는 그분을 주님으로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유대 문맥에서 “~의 아들”은 어떤 대상의 성품이나 성향을 공유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아들”(헬라어: 휘오스)이란 말은 “아버지를 닮은 자”를 뜻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이유는 평화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피스메이킹(peacemaking)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부르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18~19절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이 창조한 이 샬롬의 땅이 엔샬롬의 상태가 되었습니까? 왜 샬롬이 깨어졌습니까? 에덴을 보면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샬롬이 지켜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에덴에서의 샬롬이 깨진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깨어진 샬롬”, “엔샬롬”인데, 어떻게 “샬롬”으로 회복이 됩니까? “샬롬”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동사형이 “샬렘”입니다. “샬렘”이라는 동사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완성하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갚다”입니다. 고대 아람어에서도 “보상하다”, “물러주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은 완전하고 온전한 상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상태, 즉 죄로 인한 타락이 오기 전, 에덴입니다. 하지만 죄로 인하여 “샬롬”은 “엔샬롬”의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왜곡되고 뒤틀어져 버린 비참한 상태가 됩니다. 구약의 사사기를 보면 정작 “샬롬”의 땅에 들어갔으나 “샬롬”을 누리지 못하고 “엔샬롬”의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엔샬롬”에서 “샬롬”으로의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샬렘”이란 단어가 가지는 두 번째 의미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갚다”의 의미입니다. 샬롬의 상태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샬롬의 상태가 주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값이 지불되어야 합니다. 그 지불한 값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한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그분과의 만남과 교제를 지속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샬롬”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샬롬”의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깨어진 “샬롬”을 회복하는 전도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를 이 모든 관계를 깨는 자가 아니라 회복하고 치유하는 전도자로 삼으심을 깨닫고 온전히 순종하는 모든 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