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무과시험이 따로 없고 주로 특채형태 였으며 가장 높이 승진하면 승상장군이 되는데 정3품 정도였다. 시험을 치지 않다보니 글 모르는 장군도 괘 있었다. 반면 문신(文臣)들은 과거시험을 거쳐서 많은 교육을 받다보니 문신과 무신(武臣)간에 지식 차이가 많이 났다고 한다.
나.우리가 아는 유명한 장군은 거의 文臣
우리가 잘 아는 서희 장군,강감찬 장군도 과거를 통해 관직에 입문한 文臣이다. 강감찬이 거란족과 전쟁때 총사령관 이 되는데 무신 출신은 부원수를 맡아서 현장을 지휘한다. 여진정벌로 동북9성을 개척한 윤관장군도 고려사에서는 학문적인 면에서 좋은 평을 내리고 있다. 심지어 묘청의난을 제압할때의 총사령관이 김부식인데 그는 삼국사기를 지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였다. 문신들은 과거시험때 병과를 치기 때문에 기본적인 전략적 지식을 갖고 있어서 총사령관은 대게 문신이 맡았다.
다.김돈중이 정중부 수염을 태우다
1144년 문관들의 회식 장소에 바깥 에서는 무신들이 경계를 서고있었다. 이중 정중부는 (당시대위정도계급) 출중한 외모와 아름다운 수염을 갖고 있었다. 술에 취한 김돈중 (과거에 합격한 김부식의 아들) 이 자기보다 연상인 정중부를 불러 "자네수염이 멋지네"하면서 불에 태웠다.흥분한 정중부가 김돈중을 패대기쳐서 상처를 입혔다. 자기 아들을 나무라야할 당대의 권력자 김부식이 인종임금에게 오히려 정중부를 벌줄 것을 요구했다 이일로 무신들의 가슴속에는 문신들 에 대한 원망이 쌓여 갔다.
라.드디어 무신들 들고 일어나다
정중부사건이 일어난지 정중부는 상장군(대장군)이 되어 있었다. 고려왕 의종이 문신들과 연회를 벌일때 젊은 문신 한뢰란 자가 늙은 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다 이에 사람 흥분한 무신들은 그날밤 그 연회에 있었던 문신들을 거의 죽여 버렸다. 며칠만에 주요문신150여명이 죽었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정중부등 쿠데타 세력은 의종을 폐하고 그 동생을 왕으로 세우니 이가 명종이다.
마.고려 무신정권 100년이 시작되다.
정중부난이 1170년 일어났고 최씨 무신 정권이 대략 1270년경에 끝났으니 약100년의 무신정권이다.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 등이 약 40년 최충헌-최우-최항 최의로 이어 지는 최씨 60년 합하여 대략 100년이다.
처음 40여년은 배신을 거듭하는 혼란기였고 최씨 독재정권이 안정을 보이는듯 했으나 몽골의 칩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40여년 저항했다
(1230~1270) 나중에 원종때 원나라에(몽골)항복하는 조건으로 왕실은 개경으로 돌아왔으나 처벌이 두려운 최씨정권은 귀환을 거부하고 그 사병격인 삼별초가진도 --->제주도로 옮겨 가면서 저항했으나 고려 정부군과 몽골 연합군에 패하여 막을 내 패하면서 막을 내린다.
바.결말 고려중기 문관들이 그들만의 리그에 취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 무신들을 경멸하는 몇몇 사건이 일어나자 무신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지만 국가적 비젼을 제시할 능력이 없었고 자기네들끼리 먹고 먹히는 정변을 격었다.
이와중에 몽고군이 침입하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국토는 황폐화 되갔다 결국 원나라에 항복하여 부마국이 되는 수모를 당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어 고려무신정권 100년은 우리역사의 암흑기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