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 유(宋愉) ------------------------------------------------------------ |
* 호(戶) : 쌍청당(雙淸堂) -------------------------------------------------------------------- 고려말 사헌부 집단을 지낸 송명의(회덕 입향조)의 손자이며 진사 송극기의 아들이다. 1392년(태조1) 아버지가 개성에서 요절하자 4살난 송유는 어머니 류씨부인 (나이 22세)의 등에 업혀 회덕의 조부댁에 와서 살기 시작했다. 일찍 관례를 치루기도 전에 벼슬하여 호분위 부사정(종7품의 군직)이 되었 으나, 태조의 후비인 신덕왕후 강씨가 태묘에 부해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회덕 백달촌에 내려와 별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마음을 수양하고 자연을 즐 기며 살았다. 이때 지은 별당이 쌍청당이다.
쌍청당의 당호는 중추부사 박연이 지어준 것이고, 당기는 박팽년이 지은 것 인데 '쌍청'은 그의 청정한 성품과 모습을 한마디로 드러내주는 것이라 하겠 다. 송유 때로부터 회덕의 은진 송씨가 창성하였으므로 후인들이 백달촌을 (하)송촌이라 칭했다.
회덕의 은진송씨는 모두 송유의 후손들이다. 청정한 삶을 살다가 58세로 졸하였다. 묘는 판암동 황학산에 있다. 송유의 행장은 송준길이 지었으며, 묘표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다. 그리고 묘 아래의 묘표는 김상헌이 짓고 김집이 썼으며, 두전은 송준길이 썼고, 갈음자손기는 송준길이 짓고 썼다. 숙종 때에 박팽년과 함께 회덕 정절사에 배향되었다.
쌍청당은 중리동 위치해 있는데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유가 남긴 글로는 서간문인 「여박난계연서」와「여금괴애수온서」및 시「제의봉루」등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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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헌은 대덕 역사박물관에서 발췌하여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