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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작품 : 조선 중기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설시조.
시대 조선
성격 사설시조
창작년도 조선 중기
작가 정철
『송강가사(松江歌辭)』(성주본·이선본·관서본·별집(星州本·李選本·關西本·別集)
「정송강(鄭松江)의 장진주사(將進酒辭) 연구」(홍재휴,『대구교육대학논문집』,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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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주사 將進酒辭 시론 3
2018. 10. 25.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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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주사 將進酒辭 /정철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셈하면서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 인용한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 將進酒辭> 현대어 번역이다.
그런데 유홍준은 이 사설시조의 마지막 구절 가운데 하나인 <원숭이 휘파람>이란 표현이 <아주 못마땅하다>고 시비를 건다. <송강은 원숭이를 본 일도 없었을 뿐더러 동시대 독자인들 그런 이국의 짐승을 알 리 만무한데 왜, 그것도 마지막 구절에 집어넣었는가?>고 나무란다.
그의 분노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송강이 성리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사물을 인식한 것은 그가 넘기 어려운 성벽 안쪽 일이었음을 용인하지만 나는 이 ‘원숭이 정서’만은 이해도 용서도 못한다>고 꾸짖는다. 마지막에 가서는 <행여 지금 내 처신과 글 속엔 그런 ‘원숭이 정서’는 없는가 스스로 되물으며 섬뜩해하곤 한다>고 극언에 가까운 언사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가 스스로 이 시조를 무작정 좋아할만한 풍류도 허무도 없다는 조건부 사설을 전제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원숭이 휘파람>이란 표현을 가지고 비난을 가한 것은 문학이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짓이다.
<청구영언>에 수록된 <장진주사> 원문에서 <원숭이 휘파람 불 때>에 해당되는 부분은 <잰나비 파람 불 제>가 된다.
거기서 중요한 단어는 <파람>이다. 우리말 사전은 그것을 <휘파람>의 고어로 보고 있다. 그런데 <휘파람>은 <입술을 오므려 휘휘 부는 바람소리>이다. 즉 <휘파람>은 <바람>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잰나비 파람>, 즉 <원숭이 휘파람> 또한 <바람>의 일종이 된다.
이백의 시 <최팔장이 물가에 지은 정자를 지나가며 過崔八丈水亭>의 일구 一句인 <원소풍중단 猿嘯風中斷>에서 <원숭이 휘파람>에 해당되는 한자어는 <猿嘯>로 볼 수 있고 <猿嘯風>으로 볼 수도 있다. 전자일 경우, 그것은 그대로 <원숭이 휘파람>이 된다. 후자일 경우, <원숭이 휘파람과 같은 바람>이 된다. 즉 <원숭이 휘파람=바람>의 등식이 성립된다. 거기서 후자를 전자인 <원숭이 휘파람> 또는 <잔나비 바람>으로 간단히 줄여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송강이 우리말 고어체로 쓴 <무덤 우에 잰나비 파람 불 제>의 답이 저절로 나온다. 그것은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같은 바람이 불어 올 때>의 뜻이지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 때>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시의 비유법 가운데 하나인 인유법의 중요한 사례가 된다. 물론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원숭이가 자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 자생하였으며 그것이 조선에 유입된 사례가 희귀하지만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송강은, 찬바람이 휘몰아칠 때 들리는 이상야릇하게 구슬픈 휘파람 소리를 <원숭이 휘파람>으로 형용한다는 사실을, 이백과 두보의 시 (‘등고 登高’의 ‘원소애 猿嘯哀’)를 통해 인지한 것으로 보여진다. 혹은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가 직접 원숭이 소리를 들어보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원숭이 휘파람>은 중국의 고대 시문에서 이미 관용구로 굳어지다시피 한 일종의 토포스로 보아야 한다.
만일 송강이 조선 땅에 있지도 않은 원숭이가 무덤 위에 앉아서 휘파람을 분다고 표현했다면, 그것은 개연적 사실성의 차원을 벗어난 비현실적 상상력이 된다. 그러나 이상야릇하게 구슬픈 휘파람 같은 바람소리를 이백과 두보의 예를 좇아 <원숭이 휘파람>으로 명명했다면, 그것은 모티프의 관습성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시조작품 이해의 본질적 문제가 된다.
우리는 원숭이를 동물원이나 외국의 자연공원에서 직접 보지 않았어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을 오래 전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해왔다. 그가 음산한 소리를 내면서 부는 바람을 보고 옛날 시인들이 말하던대로 <잔나비 휘파람 분다>고 한 것은, 지금 우리가 맑은 대낮에 지나가는 비를 보고 옛날 사람들이 말하던대로 <호랑이 장가 간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종호의 <시란 무엇인가>는, <관습과 모티프>를 통해, 황혼이 없다는 남미 아르헨티나에 황혼을 노래한 현대시가 많다는 사실을 예로 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황혼 없는 고장에서 황혼을 노래하는 시인들의 현실감각을 의심하거나 비웃기 전에 이 삽화에서 시적 관습과 상상의 작동원리를 읽어내는 편이 유익할 것이다.>
그보다 앞서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참다운 시인은 관습의 구속에서 도리어 자유를 경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관습의 굴레를 수락하면서 거기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시적 재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장진주사>의 문학성에 대한 긍정적 찬사의 의미로 인용한 말이 아니다. 문학의 장외에서 문학을 허언 虛言과 동일시하려는 비문학적 음모들에 대한 정당방어적 항변일 뿐이다.
○송강 정철, 장진주사 권주가를 부르며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송강 정철(1536~1593)의 작품은 가사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쉬운 우리말을 아름답게 엮어 자연과 인생무상, 그리고 연인에 대한 애절함을 노래한 작품들은 수 백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그 여운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작품 중 좌천과 유배로 은둔의 시기를 보내며 나온 소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같은 작품이 그러한 예입니다.
송강 정철은 당쟁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부침이 심했던 정치인이었습니다. 순탄치 못한 벼슬살이는 그의 강직한 성품과 타협을 모르는 인품에서 비롯됐다고도 합니다. 대학자이자 선조시대 정3품 벼슬을 지냈던 기대승이 경치 좋은 곳에 놀러 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비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라고 묻는 제자의 질문에 “정철이 그런 사람이다.”라고 서슴없이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매한 인품의 송강 정철이였지만 술 때문에 구설이 잦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반대 세력에게 논핵을 당해 선조가 직접 정철에게 은 술잔을 하사하기도 했는데 허용된 술은 하루 딱 석잔. 그러나 ‘장진주사’ 문장에서 가늠되듯이 조선의 내로라하는 주당이었던 정철이 어찌 석 잔에 만족했겠습니까? 그는 직접 방짜로 늘린 술잔에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임금의 하사품을 함부로 두드려 폈겠느냐며 반대파의 모함이라고 후손들은 펄쩍 뛰었지만 정철이 쓰던 술잔은 지금도 현존하고 있고 그가 술을 즐긴 주당이라는 사실은 엄연해 보입니다.
허균은 정철의 ‘장진주사’를 읽고 ‘절세미인이 화장도 하지 않고, 깊은 밤 촛불을 앞에 두고 앉아 노래를 부르다 끝까지 부르지도 못하고 그만두는 듯하다.’고 평했습니다.
술을 마시며 인생 무상함을 읊조리다 보면 비장함이 이를 데 없기 때문일까요. 꽃 꺾어 술잔의 수를 세어가면서 무진무진 술을 먹자고 하는 정철의 노랫말이 귓가에 스치는 춘삼월입니다.
더바이어 이지혜
[출처] 맛있는 밑줄 긋기 13_송강 정철, 장진주사 권주가를 부르며|작성자 더바이어
撫石 의 전화소리에
가슴 두근거리며 받은 적슨
송강의 장진주사 검색해 보라시는 말씀에
젊은 시절 , 술먹다 한소리 하곤 했던 것을 바로 알자해서
찾아 찾아 수박 겉핥기 식이지만 여기까지 봤습니다
외로운 달빛과 술한잔을 자기 해석 나름의 月下獨酌
將進酒辭의 원숭이를 어찌할 꼬
여기서 ㅡ
범은 대학 1년시절 , 문창성(서울 법대) 친구가 三國志의 공명의 출사표를 외어 낭송하는 것을 보고
마음 다짐을 새롭게 헸다가 , 훗날 다니던 절에서 할머니들이 천수경을 외우는 것을 보고 다시 놀라,
힘내어 천수경 신묘장구대다라니등 , 자꾸 반복하니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소리 듣게 되더라
오늘 무석의 월하독작 其2 외웠다는 소리 , 70 지난 나이에 이러면 撫石은 치매와는 담쌓은 친구가 되네
배워야 할점이 많은 친구.
이 모든 거 가르켜 준 撫石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고운 글 깨우쳐줘 고맙습니다 ,
다시 ,인사드립니다 .
190719 오후 緝穆堂에서 範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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