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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월)부터 12일(목)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 가족들의 제주 방문이 있었다.
추석 때 올라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그리고 지난 8월 16일 대학 졸업한 딸래미 축하 여행겸.
은경이 졸업식 때도 한창 바쁠 때라 참석하지 못해 그간 무척이나 섭섭하고 미안했는데 다행히 모두가 시간을 맞췄다.
내가 지난 5월 7일 제주에 내려왔으니 4개월여만의 가족들의 제주 방문. 물론 지난 6월말 집에 한번 올라간 적이 있어 4개월만에 두번째의 만남이다.
함께 살 땐 몰랐는데 따로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가족간 애틋한 그리움도 생기고 가족의 의미를 새삼스레 곱씹게 되는 요즘이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불후의 명언인 듯.^^
여기 3박 4일간의 일정을 정리하며 가족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되돌아 보고자 한다.
9월 9일 저녁 5시 10분 제주공항에 도착, 두달여만에 네 가족 모두 상봉을 하다. 아니 우리 은경이 우측 어깨에 맨 가방에 있는 아롱이까지 다섯 가족이네. 울 강쥐 아롱이도 아빠를 보기 위해 비행기 타고 제주에 왔다. 아롱이는 올해 14살 된 시츄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컸는데 노화에 골육종까지 겹쳐 최근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그간 병원도 많이 다녔으나 이젠 암이 너무 많이 퍼져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수의사들의 말. 주변 사람들이 안락사 시키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목숨 그럴 수는 없기에 우리가 끝까지 보살피고자 제주까지 데려왔다.
공항에서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원룸으로 와서는 짐을 풀고 신제주에 있는 횟집 모살물로 저녁식사를 하러가다. 이 집은 가격도 저렴하면서 그 때 그 때 잡히는 자연산 회를 내놓는 집으로 관광객 상대 보다는 제주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숨은 맛집인데 모살물이란 모래가 비춰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한 물을 말한다. 고등어와 갈치회는 이 집에서 기본적으로 나오는 회.
갈치와 고등어에 이어 나온 본회. 객주리(쥐치)와 따치, 우럭, 어랭이(놀래미)가 주를 이룬다.
우리는 생선회와 더불어 한치회 한 접시를 추가로 시켰다. 회를 다 먹고 난 후에 내오는 제주산 미역을 넣고 끓인 생선 맑은 탕 맛도 깔끔하니 맛있다.
하룻밤을 자고 둘째날인 9월 10일 본격적인 제주여행 시작. 오늘은 서귀포를 비롯한 남쪽을 둘러보기로 하고 첫번째로 외돌개를 찾았다.
이 곳 외돌개는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중국관광객들은 빠뜨리지 않고 찾는 명소. 그리고 제주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는 7코스의 구간이다. 울 아들 재호는 이제 대학 2학년인데 키가 너무 큰 것 같다.ㅎㅎ
지나가는 관광객에 어렵게 부탁해서 네 가족 함께 찍은 사진인데 뒷배경이 밝아 아쉽게도 어둡게 나왔다. 이 때 우리 아롱이는 차 안에 놔두고. 외돌개 구경을 하고 차로 돌아오니 아롱이는 차 문앞에까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라는.
외돌개 다음으로 찾은 천지연폭포, 이 곳을 둘러보고 우리는 서귀포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아롱이 상태가 심상치 않았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 암튼 유람선을 탄 후에는 가까운 동물병원에 들러 영양제라도 맞히기로 한다.
은경이 날씬해서 좋은데 아빠 생각으론 조금 더 살좀 찌워야 할 것 같다.ㅎㅎ
서귀포 유람선을 타기 전 서귀포항과 새섬을 잇는 새연교를 건너가 본다. 새연교 위에서 바라본 서귀포항 일대의 아름다운 모습.
새연교 위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울 재호, 이제 제법 의젓한게 군대에 가도 좋을 듯 싶다. 올해 아님 내년 봄에 군대에 갈 예정이라고.
어젯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곧 숨이 넘어갈 듯 하며 잠을 못잔 울 아롱이, 아무 것도 못먹고 똑바로 앉기조차 힘들 정로라 1시간 소요되는 유람선을 탈 수 있을까 해서 첨엔 차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래도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유람선이 날 거라 판단하고 함께 동승한다.
그런데 첨부터 문제가 생겼다. 아롱이가 정신을 못차리고 자꾸 고개를 떨쿤다. 집사람과 은경이는 깜짝 놀라 계속 정신차리라고 소리지르고 굳어가는 몸을 어루만져줬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더니 유람선이 서귀포항으로 돌아와 사람들이 내리는 순간 아롱이는 이제 숨을 쉬지 않는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하며 부리나케 차를 몰아 서귀포의 한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의사의 말은 이미 숨진 뒤라고.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고 또 아직 몸도 따듯한데 죽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집사람과 아이들은 울기에 바빴고 여행이고 뭐고 오늘은 그만 끝이라는.
아롱이의 죽음이 실감나진 않았지만 최근 몇년 너무 고통스런 삶을 살아온 탓에 어찌보면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그 것도 우리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몸부림 치지 않고 편안한 모습으로 마치 잠든 듯 숨을 거두었으니.
동물 병원에 알아보니 제주에는 동물 화장시설이 따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롱이를 육지까지 데려가 화장을 할까 하다가 그 것도 마땅치 않아 제주에 묻어주기로 한다.(사진은 한 두 달전 아롱이의 모습. 이 때도 암덩어리가 목에까지 퍼져 밤에 잘 때면 숨 넘어가려는 순간이 참 많았다 한다.)
바다가 보이고 양지바른 곳에 아롱이를 묻다. 울 은경이 너무 많이 울어 눈시울이 붉고 눈물이 마를 틈이 없다.
2000년도에 태어나자마자 우리 집에 와서 14년째 한 가족으로 살았던 아롱이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간 골육종과 노쇠화로 심한 고생을 해 언제 죽을지 모를 상황이었는데 그 고통 참고 이 곳 제주까지 비행기 타고 와서 저까지 만나고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잠들었습니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영면의 쉼터를 마련해줬지만 이젠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부를 수도 없음에 목이 메이고 마음이 저려옵니다.
그간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고 추억을 만들어준 예쁜 아롱이, 부디 고통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거라.
안녕! 아롱아 영원히 너를 잊지 않을께.
이 날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 네 가족은 아롱이를 떠올리며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첨엔 너무 슬펐지만 자꾸 얘기하다 보니 마치 영화처럼 네 가족 모두 만나고 자신이 죽을 곳을 찾아 제주에 온 아롱이,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고 운명, 결국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그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돌개에서 차에 놔두었을 때 죽지 않고 문앞에까지 나와있던 건 아마도 우리 네 가족 곁에서 죽기 위해 죽음을 뛰어 넘었던 건 아니었을까?
살아생전 그리 착하고 순하더니 마지막까지 참 좋은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나가네요. 우리 가족과는 정말 아름다운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행 세쨋날인 9월 11일. 오늘은 서쪽을 둘러보기로 하고 아침 일찍 아롱이 무덤에 다녀와 협재에 있는 한림공원에 오다.
이구아나가 모여서 함께 해바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ㅎㅎ
사진을 보니 내 얼굴이 참으로 많이 탄 것을 알겠습니다. 먹는 것도 잘 먹는 편인데 이상하게 제주와서 몸 무게도 많이 빠지고.^^
아버지, 어머니 아래로 우리 집안에 유일한 사내인 재호. 얼굴에 어리광이 덕지덕지 묻어있더니 어느새 이리 훌쩍 컸는지.
한림공원내의 야자수
어린 시절엔 종종 토닥토닥 다투기도 하더만 지금은 참으로 정겨운 오누이 사이라는.
울 마나님도 이젠 많이 늙고. 젊은 시절엔 참으로 예뻤는데 내가 잘 못해준 탓인거 같아 마음이 짠하다.
역시 한림공원에서
수련에 이런 보라색 꽃이 있는 줄은 이번에 첨 알았다.
한림공원에서 나와선 바로 맞은 편의 협재해수욕장을 찾다. 협재해수욕장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하얀 산호 모래와 신비스런 물빛, 그리고 뒷편의 비양도 모습까지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해수욕장은 이미 폐장했지만 한낮엔 날씨가 아직 더운 탓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있더라는.
햇살에 눈이 부셔선가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다.ㅎㅎ
협재해수욕장에서 나와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산방산이 있는 안덕면의 용머리해안으로 오다.
벌써 수학여행온 고등학생들이 몰려와 한적한 용머리해안을 상상했는데 조금 아쉬움이 생기더라는. 그래도 만조 때가 아니어서 이렇게 둘러보는 것만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곳에서 수월봉과 차귀포구를 둘러보고는 우리 네식구는 하귀에 있는 펜션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펜션에서 우리 네 식구만의 오붓한 바베큐 파티.
저녁식사와 술 한 잔 함께 하며 우리 네 식구는 서로 마음을 열고 참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아롱이 얘기 빠질 수 없고. 가족이란 정말 좋은 것임을 새삼 실감한 저녁. 가족이 함께 있어 행복하고 한편으론 이런 가족과 내일이면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함께 교차하던.
조용하고 넓은 펜션에서 잠을 푸욱자고 맞이한 제주에서의 네째날인 9월 12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다시 제주를 떠나는 날. 오늘은 동쪽을 여행하고자 첫번째로 섭지코지에 왔다. 이 곳은 드라마 ALL IN의 촬영지로 역시나 중국관광객들이 빠뜨리지 않는 곳. 멀리 보이는 성당은 드라마 촬영 당시 세트로 지금은 촬영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섭지코지에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딸래미와 사진 한 장. 대학전공인 경영학과 달리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은경이 모쪼록 바라는 바 꼭 이루기를.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울 아들 재호. 가족의 기대가 큰 만큼 자신의 앞길 알아서 잘 헤쳐나가길.
점심식사 후 찾은 에코랜드. 기차를 타며 제주 곶자왈을 살펴본다. 에코랜드는 아마도 제주 사설 관광지로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제주에도 기차가 있다는 사실 아실란가 몰라.ㅎㅎ
오늘 헤어짐을 의식한 탓일까 모두의 표정이 밝지 않다.^^
에코랜드는 기차를 타고 각 역에 내려 그 곳의 테마공원을 즐길 수 있다. 돈 키호테와 풍차 앞에서
화산 지질 특성상 물이 고일 수 없는 제주. 에코랜드에는 유일하게 인공적으로 조성한 호수와 시냇물이 있는데 그 크기와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
곶자왈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에코 로드도 직접 걸어보고. 바닥에 붉은 것은 화산재인 송이를 깔아놓은 것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서로 뒤엉켜 함께 양분과 수분을 주고 받으며 자라고 있다. 연리지 보다도 더욱 견고한 공생과 동침의 관계.ㅎㅎ
에코 로드 걷기 후 발의 피로를 풀기 위해 족욕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 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족욕 후엔 정말 상쾌하더라는.
이번 제주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절물자연휴양림. 아름드리 삼나무가 장엄한 풍경을 연출하고 많은 양의 피튼치톤으로 코가 다 행복한 곳.
이 곳까지 둘러보고 우리는 공항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그야말로 '공항의 이별' 을 맞는다.
이로서 행복했던 3박 4일간의 제주 가족 여행을 마무리짓다.
가족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온 나.
마치 꿈을 꾼 듯 혹은 아주 오랜 시간이었던 듯도 한 가족들과의 3박 4일
많은 추억을 만들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온 가족을 만나고 자신의 영원한 쉴 자리를 찾아온 아롱이의 죽음이 무엇보다 마음 아팠지만 그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역시나 가족은 삶의 의미이자 살아가는 힘의 가장 큰 원천임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깨닫기도 하고.
은경 엄마, 은경아 그리고 재호야 우리 모두 건강하자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도록 하자.
우리 가족 모두를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 2013년 9월 14일에 아빠가.
첫댓글 아롱이 얘기가 눈물나네요...이제사 글을 읽엇읍니다. 모처럼 가족 상봉하셨는데 그짧은 시간에 드라마가 있네요.. 계속 힘내시고 화이팅 하세요^^.
훈장님 정말 많이 타셨다..
아롱이 더 이상 볼 수 없음이 마음 아프지만 우리 네 식구가 바라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잠들어 그나마 안심입니다. 제 얼굴은 가을지나 겨울 오면 원상태로 돌아올까요? ㅎㅎ
저도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으로 훈장님의 글을 읽어가는데 어찌나 먹먹하던지요.^^;;;
그나마 다행인것은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죽음을 맞았으니...
아롱이가 훈장님 보고싶어서 생명의 끈을 놓지않은것은 아니었는지 싶네요.
식구 모두 기운차리시고요....
우체국님 저도 그리 생각이 들어요. 화정 집에서 또 제주 와서도 버스 안에서 홀로 죽었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끝까지도 우리 가족과 아름다운 인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