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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1;8-21 신앙인의 처세는? 2024. 8. 26.
일본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속담 중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하나도 못 잡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뜻을 이루려고 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생활인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전문성을 취득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신앙생활도 잘하고, 세상으로도 머리가 되고, 이름이 창대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ALL IN을 합니다만 왜 이렇게 합니까? 둘 다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쉽게 됩니까요? 험난한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도 잘하면서 그 은혜로 세상 가운데 머리되고 이름이 창대케 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신앙생활 위주로 살다 보면 무엇인가 잘 안될 것 같고 세상 사람들보다 뒤처질 것 같습니다. 또 머리되고 이름이 창대케 되는, 성공 위주의 삶을 추구하면 신앙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영성과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성도님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신앙양심에도 부합이 되고 세상가운데 의뜸이 될까요? 두 마리 토끼 중에서 더욱 요긴하고 더욱 중요하고 더 좋은 것을 먼저 결정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면 결정한 그것을 확실히 잡을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순위가 신앙의 문제라면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하시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부가적인 열매까지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만이라도 더 좋은 것을 결정했기 때문에 하나로 매듭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쉽지만 후회는 없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입니다. 특히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위주로 살다가 신앙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머리가 되고 질서에 의뜸이 되고 이름이 창대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느브갓네살 왕과 바빌로니아의 각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나온 세월 속에서 다 보고 듣고 느끼잖아요? 성공 위주로 살다가 잠시 세상에서 성공을 이루었고 그래서 세상살이가 너무 쉽다고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를 쳤는데 머지않아, 오래지 않아 검은 구름과 폭풍우가 몰려왔고 결국 오래가지 못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인생의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다니엘의 생애를 통하여 그 비결을 가슴에 담고 아무쪼록 신앙에서 승리하고 인생에서도 성공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내용이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1. 현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이라는 시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현재의 나의 위치를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현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까? 다니엘 앞에 있던 두 마리 토끼입니다. 그 두 마리의 토끼가 무엇이었나요? 다니엘은 이스라엘(유대 왕국)의 포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왕족 출신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대제국으로 여러 나라들을 속국으로 지배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많은 속국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교묘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것은 식민지가 된 나라의 백성 중에서 왕족과 귀족 출신의 영재 소년들을 볼모로 잡아갔습니다. 바빌로나아의 중심지로 데려갔습니다. 왜요? 속국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런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들에게 바벨론 교육, 그러니까? 바벨론의 언어와 학문, 문화와 종교와 삶을 위한 모든 적용에서 바빌로니아의 문화와 문명을 주입시켰습니다. 심지여 바빌로니아 형식의 이름으로 창씨개명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모든 의식과 관습을 바벨론화 시킴으로써 바빌로나아의 백성으로 묶어 두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다니엘과 친구는 바로 여러 속국에서 끌려 온 소년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니엘 앞에 정말 놓치기 힘든 매력적인 두 마리의 토끼가 있었습니다. 그 것은 왕실의 특별대우와 관직 등용이었습니다. 5절. 다니엘은 극비 장학생으로 왕의 진미와 포도주가 주어지고, 일용품 일체를 제공받게 됩니다. 더욱이 3년간의 교육을 수료한 후에는 고급 관리로 등용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 말로 출세 길이 환하게 열렸습니다. 시온의 대로이었습니다. 여러분, 대제국의 황제 측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이것이 첫 번째의 토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다니엘은 유다 지파에 속하는 왕족으로서 신앙이 좋은 소년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 역시 이것보다 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의 시대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상속자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은 유대 왕국이 아닙니다. 포로민의 자녀입니다. 갈대아 우르 지방의 바빌로니아입니다. 이런 상황가운데 이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딜레마가 앞에 놓여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려면 바벨론 왕실에서 요구하는 모든 규정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음식 문제였습니다. 당시 바벨론 음식은 몇 가지 이유에서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이 그대로 먹기 어려운 실정과 상황이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율법의 규정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습니다. 레11장에서 부정한 동물의 고기를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켜야 될 항목입니다. 고전10;28. 우상 제물은 먹지 못합니다. 신12;20-25. 고기를 피와 함께 먹지 못합니다. 오늘날도 이스라엘에서는 구약 시대 예법을 그대로 지킵니다. '코쉐르'라는 정결 음식만 먹습니다. 그런 식당이 따로 있고, 심지어 호텔에도 정결음식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담당관(Kosher Food Supervisor)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당시 바벨론 음식은 여러 가지의 부정한 고기가 들어 있고, 우상 신에게 바쳐진 이후에 먹는 음식입니다. 피가 섞인 채로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율법에 기록된 먹지 말아야 될 음식을 매일 먹고 지내야 된다면 다니엘이 얼마나 괴로울 까요? 지금까지 지켜온 신앙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며칠은 먹는 시늉을 하고 모면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3년을 이렇게 지낼 수 있습니까? 다니엘이 얼마나 고민했을까요? 더욱이 신앙을 지킨다고 느브갓네살 왕이 지정한 음식과 교육 과정에 조금이라도 거부한다면 출셋길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됩니다. 느브갓네살 황제의 명령을 어기면 포로 소년 몇 명쯤이야 주저 없이 처형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포로이면서 포로민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앞에 있는 현실입니다. 피해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자신들의 위치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비슷한 상황들이 계속 전개 됩니다. 그래서 고민이 되시죠? 크고 작은 상황일 뿐입니다. 상황과 현실을 인식하지만 현실 너머에 계시면서 나를 향한 눈동자와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로드맵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을 했을까요?
2. 다니엘의 결단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으로 결단을 합니다. 이 결단을 무엇이라 하나요? 거룩한 처세술이라고 합니다.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뜻을 정하는 것, 이것이 거룩한 처세술입니다. 뜻을 정하고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요? 두 마리의 토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거부하려고 작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진미를 먹는 것 자체가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의 우선순위로 인생을 살겠다는 결단과 결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순결성과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신앙을 붙잡겠다는 결심과 결단입니다. 다니엘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미래와 내일을 보고 어려운 결정과 결단하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포로의 입장에서 바벨론의 왕궁에서 살아야 합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도 없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선대를 했습니다. 관직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처럼 살지 않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신앙을 위주로 살겠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더 나아가 목숨과 생명까지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적 태도 때문에 세상을 이기고 바벨론을 이기고 느브갓네살을 이기고 그의 결심과 결단대로 승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이런 신앙적 태도를 가리켜서 거룩한 처세술이라 합니다. 그런데 거룩한 처세술은 다음의 몇 가지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상속자로 배워야지요. 두 마리 토끼가 앞에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야지요. 왜요? 이 세상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두 가지 목적을 다 이루는데 지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뜻을 정하고 결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2-1.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뜻을 정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출세하려면 대개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하게 살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앙 안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면 잘 될 것 같지만 잘 안 된다는 거지요. 왜요? 아무리 힘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능력의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든든한 빽이라도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 보십시오. 정권이 바뀌니까 권력무상입니다. 어제의 약자가 강자가 되고, 어제의 강자가 오늘의 약자가 됩니다. 물론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사는 것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쨌든 그 정도의 인간에게 의지하고 잘 보인다고 인생이 성공합니까? 유지가 될까요?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사람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잘 보이려고 하면 올무에 걸립니다. 올무가 무엇입니까? 이루고자 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안전하게 여호와 닛시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여러분! 인생의 성패의 키(Key)는 누가 가지고 있나요? 하나님 한 분입니다. 왜요? 절대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로힘 입니다.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없는 길을 내시는 분이고 막힌 담을 헐으시는 분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시127:1-2.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나의 집을 세워주셔야 견고한 성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지키셔야 든든한 울타리가 됩니다. 시18:1 나의 힘(=빽)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다윗에게 능력이고 힘이 되어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넘치도록 채우리라. 다니엘과 저와 여러분에게도 넘치도록 채우십니다. 그러면 채우기 위해서 무엇을 하시나요? 어떻게 하시나요?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무엇을 주십니까? 목적어가 무엇입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십니다. 왜요? 하나님을 똑바로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해서 우주가 되었습니다. 그 넓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는 저와 여러분의 우주이기도 합니다. 나의 세계가 우주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담아야 하는 우주입니다. 그 우주는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해서 만들어진 우주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지혜와 계시를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알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골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왕권과 주권이 그렇습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 되었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turning 포인트가 뜹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다니엘과 세친구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게 됩니다. 좋고 나쁜 것이 합력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합력합니다. 만물이 합력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합력합니다. 왕권과 권력이 다니엘과 세 친구레게 합력합니다. 우주가 합력하여 내 자신의 우주를 채우시고 만들어 주십니다. 왜요 선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넘치도록 채우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직관으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야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하여 만들어진 하나님의 우주를 여러분의 작은 세계이지만 가득 채울 수 있는 우주가 되시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베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2. 세상에서의 삶보다 의로운 삶이 우선이기 때문에 여기에 뜻을 세우고 실천을 해야 합니다. 왜요? 선을 위한 삶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출세하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있잖습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동경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꿩 잡는 것이 매를 잡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고, 동기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바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로의 삶일지라도, 해답과 방법이 없는 현실일지라도, 대안이 없는 외통수 일지라도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우주가 합력하기 때문입니다. 합력하여 나의 우주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큰 비전과 큰 소망이 있습니까? 우주를 꿈꾸십니까? 하나님이 만드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더러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살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넘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선하게 살기를 가르칩니다. 의롭게 되기를 말씀합니다. 여러분, 다니엘이라고 출세하기 싫었겠습니까? 다른 소년들 다 앞서 가는데 자기라고 뒤처지고 싶습니까? 다만 그 길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이 아니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보다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이루시는 우주의 삶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시37:1-2 행악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 이로다. 여러분, 의로운 가난도 자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요? 이루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야 하는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잔에 넙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잔은 나의 우주입니다. 잠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다니엘은 출세도 좋지만 그보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결정했습니다. 선한 삶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느브갓네살 왕 앞에서 당당했습니다. 교만한 것이 아니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를 했습니다. 결국에는 선한 삶을 살게 되었는데 이방 나라의 4대 왕을 모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대통령 4분을 가까이 하면서 일생을 보낼 수 있습니까? 네 사람의 왕의 최 측근의 신뢰 받는 사람으로 생을 살았습니다. 다니엘 안에 있는 우주의 무한한 능력으로 왕을 조력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로운 삶에 뜻을 정하시는 그래서 주신 모든 것으로 세상을 리드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3. 현실의 안일보다 영광과 미래에 대한 소망 때문에 뜻을 정하고 그 것에 매진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혼자 약은 것처럼 눈앞의 현실의 이익과 안일과 편리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알게 됩니다. 조금 후에 유라굴로라는 풍랑이 일어 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려고 조금 후라는 표현과 얼마 못가서 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당장 잘 살고 싶어 합니다. 소탐대실을 선정하고 거기에 뜻을 정합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것만 보고 갑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미래를 준비하고 영원에 뜻을 두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려도 미래의 소망에 대하여 아주 똑똑합니다. 당장 편하고, 즐겁고, 잘되는 것보다 나중을 생각했습니다. 잠 11:7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현실의 안일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소망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잠14:32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영광과 미래에 대하여 뜻을 정하는 사람은 죽어도 소망을 놓지 않습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와 내일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눈앞의 안일보다 미래의 영광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항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결단한다고 해서 좌충우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신앙에 뜻을 두고 단호하게 결단했지만 실제 삶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아주 온유하고 부드럽게 처신을 하였습니다. 8절(하). 환관 장에게 구하니.. 환관 장에게 아주 공손하게 부탁을 합니다. 11절 이하. 감독(하급 관리) 에게도 공손하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열흘간만 해봅시다. 속으로는 단호한 결단을 했으나 인간관계에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행동을 합니다. 여러분,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거룩한 처세술대로 결단하고 살아가되 지혜롭게 비둘기 같이 순결하야 합니다. 환관 장을 얻고, 하급관리들을 나의 우주에 끌어들였습니다. 이것에 삶의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이 믿음은 참 좋은데 지혜롭게 행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하신 바로 읽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십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신앙을 결단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을 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이 그 결과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9절. 하나님이 환관 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받게 해 주십니다. 생각하면 처벌을 받았을 텐데 오히려 미안해합니다. 나중에 감독을 통하여 열흘간 채식을 허락받은 것도 다 그의 배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나님의 역사이었습니다. 악인들조차 감동시켜서 호의로 다가 오도록 하셨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15절. 열흘 후에 다른 소년들보다 더 윤택하여 채식이 정식으로 허락됩니다. 3년 후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1등에서 4등을 차지합니다. 고위 관직에 등용이 됩니다. 다니엘은 더 승진하고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냅니다. 단2:46. 바벨론 왕이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하는 광경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세상이 나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는 동전 인생이 아닙니다. 잘못 간직하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인생이 아닙니다. 약속이 있는 백성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해서 만들어진 우주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우주가 나의 우주가 되고 그 우주로 채워지는 사람을 살아가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험한 세상 속에서 거룩한 처세술로 신앙과 인생의 두 가지, 모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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