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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가는 이들의 시선에서 내가 사라진지 오년 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없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본다 (중략)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내가 산자인지 유령인지 내 살과 내 몸뚱이를 만져보라고 말을 건넨다 나를 좀 만져봐요 (김민수 교수가 2003. 9. 29일 천막농성에 들어가며 쓴 시 '유령의 노래' 일부) 김민수(45) 서울대미대 교수가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527일 동안 자신과 함께했던 농성 천막이 철거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다. 지난 6년 6개월 동안 교수직에서 쫓겨나 '서울대의 유령'으로 떠돌면서 겪었던 수모와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든 것이다. 9일 오후 3시께 천막을 옮길 지게차가 나타나자 천막 안으로 들어간 김 교수는 5분 여 동안 말없이 천막 안을 둘러보다가 눈물을 훔쳤다. 지게차가 대학본부 뒤편으로 천막을 옮기자 천막 귀퉁이를 잡고 따라갔다. 그가 손잡은 천막 귀퉁이에는 '재임용탈락 책임자처벌'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씌어 있었다. '김민수 교수 원직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9일 오후 1시 서울대학본부 앞 김민수 교수 천막농성장 일대에서 교수·학생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복직을 축하하는 집회를 열고 투쟁의 상징물인 천막을 자진 철거했다. 서울대학본부 정문 앞에는 김 교수가 연구실 겸 투쟁장소로 사용하던 2평 규모의 천막, 지난 1월 고법판결을 앞두고 공대위가 설치한 3평 규모의 천막, 재임용 탈락 5주년을 상징해 학생들이 만든 나무 조형물 등이 놓여 있었다. 이날 공대위 천막과 조형물은 철거하고 김 교수의 천막은 대학본부 뒤편으로 옮겼다가 '서울대 기록관'에 보관할 예정이다. 8일 성공회대 관계자가 김 교수의 천막을 성공회대 민주화기념 자료관에 전시하겠다는 의향을 비췄지만, 서울대가 9일 전격적으로 '서울대기록관'에 보관할 뜻을 전해오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비판과 저항정신 증거 하는 대학교수로 살아가길"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는 이렇게 강조하며 비판과 저항의 대학정신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김 교수의 복직은 패거리 문화와 친일문화 등의 집단 공격을 견뎌내고 학문의 자유를 쟁취한 귀중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강남훈(한신대) 교수노조 사무총장은 "김 교수의 승리는 재임용 문제가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례를 뒤집으며 부당하게 재임용 탈락되거나 신분 불안에 시달리는 교수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며 "친일파를 비판하면 쫓겨 난다가 아니라 역사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갖게돼 기쁘다"고 말했다. 정규환(성공회대) 한국비정규직대학교수노조 부위원장은 "패거리에 순응·복종할 때는 자기 편이지만 조금만 어긋나면 철저히 따돌리는 게 대학의 패거리 문화"라며 "패거리 문화를 이기고 새날을 맞은 김민수 교수의 복직이 대학사회의 개혁을 앞당기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영찬(농업경제학과) 서울대교수대책위 총무는 정운찬 총장이 친일논란을 사고 있는 장발 서울대미대 초대학장 기념관(우석홀)을 방문한 것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맞느냐. 동경제대 총장이 아니냐"고 지적하면서 "경성제대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울대에는 친일망령과 유신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김 교수의 소송을 맡았던 안영수(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9일 "재임용 심사는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었던 사법부가 전향적으로 사법심사 대상으로 검토해 준 게 큰 힘이 됐다"며 "우리 사회가 법치주의로 한 단계 나아가는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천막 철거를 앞두고 진행된 고사에서 "서울대 비민주 귀신 물러가라(김수행 서울대교수대책위원장)", "서울대 친일파 귀신 물러가라(이상철 사학국본 정책위원장)", "서울대본부의 무사 안일주의 청산하자(최갑수 서울대교수·전 민교협 의장)"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
첫댓글 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