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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天者存 逆天者亡
천명을 따르는 자 존하고, 천명을 거역하는 자 망한다. 명심보감 <천명(天命)> 편을 시작하는 말이다.
붕도는 유학자다. 실제로 (붕도를 포함하여)당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대의라 믿는 것의 근거 혹은 당위성을 '하늘의 뜻', 곧 '천명' 에서 찾았다. 인간의 삶이라는 범위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는 그 주체의 능력에 달린 것이 있는 반면, 개인을 초월하여 결정되는 것들이 있다. 유가에서 그 외부 결정자는 하늘(天)인 동시에 명(命)이다.
천명의 결정자는 하늘이다. 천명이란 곧 하늘의 뜻이며 하늘이 어떤 개인을 향해 낸 목소리인 셈이다. 그러나 하늘은 소리가 없으니 사람이 알 길이 없다. 결국 그들은 그 천명이란 것이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 마음에 있다고 보았으며, 그 천명을 따르는 것이 도(道) 라 여겼다. 하늘의 성품을 물려 타고난 인간이기에 제 마음을 갈고 닦아 스스로 찾아 낸 무언가는 결국 사람의 뜻인 동시에 하늘의 뜻이 되는 셈이고, 그 길대로 행하는 것이 유학자로서 도를 행하는 것이었으리라.
천명은 어쩌면 민암의 파멸과 중전의 복위였을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그 시대의 하늘인 왕의 뜻이기도 했었다. 붕도는 그동안 천명을 위해 살았고 그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 그가 3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에서 제 눈으로 확인했던 것처럼, 천명은 이루어졌다. 그것은 붕도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붕도는 천명을 따르는 삶을 살아왔을 뿐, 붕도의 역량이 천명을 좌지우지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나,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 이에 상통한다.
그러나 붕도는 부적을 사용함으로써 명(命=운명)에 제 칼자욱을 내게 된다. 부적으로 인해 3백 년이라는 긴 시간을 타임워프했고, 그 시간에서 제 눈으로 자신의 최후, 곧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었다. 언제 죽을 지, 어떻게 죽을 지, 인간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명(命)의 결정을 알 수 없고 또 알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천명의 성사는 알더라도 자신의 운명만은 몰라야만 했을 것이었다. 제 운명을 확인해버린 인간은 나약한 죄로 그 운명으로부터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먹어야 할 독을 먹지 않고, 제 손으로 민암을 치기 위해 제주를 탈출한다. 그가 추구했던 正과 義의 상태가 천명이라면, 그 과정에 개입되고야 만 것은 붕도 개인의 운명을 뒤흔드는 사사로운 감정이나 욕망이었을 것이다.
"다른 욕망이 깃들면 화가 된다 했습니다." 윤월이 부적을 얻을 때 염원했던 것은 붕도의 안위와 행복이었다. 그리하여 부적은 붕도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어김없이 목숨을 건져냈었다. 그러나 이제 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천명은 이루어졌으나, 운명이 바뀌어 버렸다. <이틀 뒤 유배지에서 죽었다> 라고 기록되었을 그의 운명은 복직과 생의 지속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금기였다. 부적이 그를 살린 것이 아니라, 그가 부적을 이용해 살았다. 그 댓가로 부적은 잘려나갔고, 그는 기억을 잃었다. 그래서 붕도가 다시 제 목숨, 명을 걸고 시간을 넘어왔을 때 비로소 그는 그 목숨의 대가로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다.
"제가 살고있는 이 곳이 이제 제게는 과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앞으로 여기서 탈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차마 입에도 담기 어려운 역사의 흐름을 다 알아버렸으니, 전 앞으로 예정된 세월을 하루하루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정녕 인간다운 삶일까요? 운명을 아는 자의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우습게도 미래의 시간이 이제 제게는 현재입니다. 그러니 제가 발을 딛고 살아가야할 시간은 이제 곧 그곳이 아닐까 의문이 듭니다."
붕도에게 삶의 이유는 결국, '운명에 대한 무지' 다. 명(命)이 정한 것이 사람의 운명(運命)이며, 이는 전적으로 사람의 이해를 초월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제게 주어진 운명을 모르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현재다. 부적을 통해 시간을 넘나들게 된 붕도로서는 자신의 운명이 활자로 적혀진 과거 기록이 되어버렸다. 희진이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제 운명을 알아버린 삶은 더이상 삶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이는 철저히 유학자였던 붕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론이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하고 후세에 와서 살 각오를 한다.
이 때 붕도의 결정은 대의도, 천명도 아닌 순전히 자신의 행복(幸福) 을 향한 삶이다. 이 때 행(幸)은 '일찍 죽을 요'(夭)와 '거스를 역'(逆) 자에서 착(辶)자가 생략된 자다. 요절을 피하면 행복하다는 뜻이다. 그는 본래 27세의 나이로 요절할 운명이었다. 그는 부적을 통해 제 운명을 알았고 요절을 피했다. 부적을 통해 행(幸)을 얻었으나 동시에 운명을 알게 된 죄로 행복을 잃었다. 이 역설 속에서, 그는 미래에서 사는 것이 이제 부적을 얻은 인(因)에 대해 자신이 행해야 할 과(果)라 여기게 된 것이다.
그는 행복을 좇아 희진이 있는 시간으로 넘어오려 했으나, 이전에 건드려 버린 자신의 운명이 다른 행보를 걷고 있었다. 민암의 계략에 빠져 추문에 휩싸인 것이다. 붕도가 대의(천명)을 이루고 2012년의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붕도는 자신의 살고 죽음, 곧 자신의 운명만이 변했을 뿐 다른 이들의 운명에는 모두 아무런 변함이 없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제 운명을 바꾸기 위해 행했던 일들이 결국 다른 이들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는 결국 천명마저 다시 거스르는 일이 되었다. 다시 천명에 따라 모든 것을 순리대로 돌려놓아야 했고, 제 운명으로 인한 이 뒤틀림의 대가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했다.
<이제야 뒤늦게 깨닫게 된 인과는, 목숨을 구한 인으로 내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것이 과였소.>
목숨을 구한 대가로 붕도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더이상 산 사람이 아니게 되어, '청풍김씨 정오품 홍문관 교리 김붕도' 로서의 미래를 잃었다.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추문에 휩싸여 결백을 주장하다 죽음으로써 신하로서의 명예를 잃었다. 천명을 따르고 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무예가 아닌, 순전한 살의에 따라 자수를 죽임으로써 가치관도 잃었다. 아꼈던 식솔들을, 윤월이와 한동이를 잃었다.
또한 이제 부적의 효력이 다함으로 인해, '당신' 과 '기억' 마저 잃어야 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앞의 네 가지는 부적과 상관 없이 그의 삶에 주어졌었던 것들, 그의 운명이었고, 이후 두 가지, 희진 그 자체와 희진에 대한 기억은 부적을 통해 그가 얻었던 것들, 역시 그의 운명이었다. 붕도는 운명을 거슬러 천명을 거스르게 된 죄로 제 운명을 다 버려야 했다.
그리고 그가 끝내 마지막으로 자결을 택했을 때, 비로소 그는 자신의 세상을 버리고 희진의 세상으로 온전히 이동할 수 있었다. 유학자가 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시차를 적응하거나 삶에 대한 다른 방식을 수용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유학은 단순히 학문이나 벼슬이 아니다. 자신의 자아다. 자기 자신을 그야말로 '완전히' 버리는 거다. 정말 자신의 온 세상을 버리는 것이다. 그가 부적에 기대어 연명했던 목숨을 포함하여, 미래를, 명예를, 가치관을, 내 사람들을, 사랑하는 희진을, 그리고 일말의 희망 혹은 미련으로 붙들고 있던 희진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완전히 포기한 시점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거슬렀던 대가를 모두 치러낸다.
그는 유학자였으나 부적을 만든 이는 불가의 스님이었다. 그 부적을 받아온 이도 불심 깊던 윤월이었다. 결국 이는 불교에서 역설하는 무소유와도 통하는 의미일 거다. 모든 것을 무소유했을 때에 그것이 참으로 소유한 것이라는 것.
불가의 근본 원리는 곧 인연(因緣)이다. 어떠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직접적인 힘은 인(因)이고, 그 인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간접적인 힘이 연(緣)이다. 이러한 인연의 법칙에 의해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이어져 있으며, 모든 인(因)에 필연적으로 과(果)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의 역량을 초월하여 순환되고 맺어지는 인연은 곧, 운명(運命)이다.
붕도가 부적을 사용해 3백 년의 시간을 건너옴으로써 희진을 만난 것이 인이라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 연은 목숨을 걸 만큼의 애타는 사랑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인이라면, 그 연에 의해서 붕도의 멸은 곧 생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인이 두 사람의 과를 낳고, 두 사람이 만들어낸 인이 다시 두 사람만의 과를 낳는다. 이것이 인과이며 그 매카니즘 자체는 곧 다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