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4:1~19)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 왕은
그의 참모진과 예하 지휘관들을 임명하고
앞으로의 통치를 위한 정치체계를 공고히 구축하는 작업을 한다.
솔로몬의 정치체계 정비를 다루는 오늘 우리나라는,
어제 실시된 총선의 결과가 최종적으로 정리되는 날이다.
정치에 대해서 우리나라처럼 역동적인 곳은 흔치 않을 것 같다.
간단히 다루기 힘들 정도로 굴곡이 많은 역사적 배경을 품고 있다.
아무튼 이념이 양극화되어 있다.
이념은 가치를 신념화한 것이니
목숨과도 바꾸지 않는 매우 공고한 부분이다.
그러니 함부로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
특히 교회에서 매우 금기시되어 있는 대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현실과 관계 없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기준으로 사회의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영적 통찰력과 예언자적 은사를 보유하여
따르는 양들에게 정확하게 지침을 전할 수 있는 목자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그저 대화 주제가 되지 못하게 하는데
급급한 것 같다.
용감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기준으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오히려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난주 설교에서 초대교회 내부의 계파 갈등을
충만한 영적 은혜로 장악했다.
‘장악’이 거친 표현 같지만, 그 수단은 하나님의 사랑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
히브리파가 헬라파에게 7집사 자리 모두를 양보한 파격!
세상적으로는 파격적인 정무적 조처를 행한 것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정치를 늘 따라다닌다.
그것을 피곤하게 여기든, 아니든 간에 그렇다.
교회 내에서도 정치와 정무적 조치가 늘 따라다닌다.
다만 세상과 달라야 하는 것은,
세상에서는 자신의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교회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예전에 다니던 와싱톤 한인교회의
김영복 목사님은 참 좋은 본보기가 된다.
짙은 보수색을 띈 우리나라 이민 1세대들과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이후 세대들이 공존하던 교회.
목사님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득한 영성 깊은 설교와
그와 일치된 여러 행위를 통해,
가만히 두면 이념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할 교회에서
서로 자신들의 이념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정화시키도록
선량하게 장악력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사회의 일에 대해서 예리하게 분석하고
정치나 이념적 계파를 떠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기준으로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분명한 스탠스로 지적했었다.
영적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불행히도,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그런 은사가 없어서인지 복잡하고 시급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아무 판단도 하지 않고 성도들의 입을 막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더 불행하게는, 하나님의 공의와 반대편에 서서 오도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의 미덕이거나 유익함을 주는 존재가 아닌,
무지하고 폭력적이며 해로운 존재로 인식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착한 것이 아닌,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치열한 현실 사회에서 이격되어 있거나
오히려 악한 축에서 똥볼을 차는 교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바르고 야성적이며 사랑이 많은”
교회, 교회 지도자, 성도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이 매우 결핍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왜 그런지, 저와 한국의 교회들은
관념적이고, 특별 계시와 은사에 매몰되어 있으며,
문자적 교리에 치중합니다. 현실에 부적응하며
실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진실되고 필요한 사랑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 영혼들과 괴리되고
이제는 우리가 ‘입’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의 결핍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자꾸 쇠퇴해 가는 복음의 능력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먼저, 우리에게 그 주된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입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살피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진을 단단하고 공고하게 하는 것이
사탄과 대적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 전투수행방법지,
허술함과 허점이 가득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바깥의 적(사탄)과 싸워야 한다고 밖을 떠도는 행위는
결코 적절하지 않은 것임을 인정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