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진주교육대학교 제6회 동기회
 
 
 
 

친구 카페

 
등록된 친구카페가 없습니다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스크랩 진주의 어제와 오늘
박내진 추천 0 조회 50 09.08.05 15:3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진주의 어제와 오늘>

 
■1913년 옛성벽의 일부가 보이는 진주의 경치
1913년 옛성벽의 일부가 보이는 진주의 경치
 
1910년경 진주전경
1910년경 진주전경
 
1913년 진주의 경치
1913년 진주의 경치

왼쪽은 일본인 소학교(지금의 배영초등학교)

진주성지내 영남포정사 앞 전경
진주성지내 영남포정사 앞 전경

정화되기 전의 진주성지내 영남포정사 앞 전경과 정화된 후의 진주성지내 영남포정사 앞 전경

 
진주성지(지금의 박물관 자리)
진주성지(지금의 박물관 자리)

정화작업이 진행중인 진주성지(지금의 박물관 자리)와 정화된 후의 진주성지

 
옛날의 진주교와 현재진주교
옛날의 진주교와 현재진주교
 
1970년대의 진주시가지와 오늘날의 진주시가지
1970년대의 진주시가지와 오늘날의 진주시가지

1970년대의 진주시가지와 오늘날의 진주시가지

 
1970년대의 뒤벼리 도로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1970년대의 뒤벼리 도로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1970년대의 뒤벼리 도로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매립되기 전의 가마못과 오늘날의 가마못
매립되기 전의 가마못과 오늘날의 가마못

매립되기 전의 가마못과 오늘날의 가마못

 
옛 교도소 자리와 오늘날
옛 교도소 자리와 오늘날
 
장대지구 택지조성 공사장
장대지구 택지조성 공사장
 
상평공단 조성전의 전경과 조성후의 전경
상평공단 조성전의 전경과 조성후의 전경

 

촉석루아래 남강의 뱃놀이(1930년대)
촉석루아래 남강의 뱃놀이(1930년대)
 
촉석루와 의기사(1910년대)

6.25전쟁으로 소실되기 전의 촉석루와 뒤쪽에 의기사가 보이며 옆으로 나 있는 문과
오른쪽으로 비각이 보이고 멀리 뒤쪽으로 염남포정사문루가 보인다.

 

6.25전쟁으로 전소된 촉석루의 흔적
6.25전쟁으로 전소된 촉석루의 흔적

촉석루는 1950년 9월 1일 미군이 쏜 소아탄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1960년 5월에 재건되었다.
(촉석루는 없어지고 성벽만 남았다.)

 

단기 4292년(1959년)10월 8일 대들보량식

단기 4292년(1959년) 10월 8일 대들보량식

 

단기 4292년(1959년)11월 20일현재 촉석루 재건상황
단기 4292년(1959년)11월 20일현재 촉석루 재건상황

6.25전쟁으로 소실된 촉석루는 진주시민들의 정성과 진주고적보존회가 주동이 되어
재건사업을 추진하여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으로 1960년 5월에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강과 어우러진 촉석루

남강과 어우러진 촉석루

 

진주시가지(1940년대)
진주시가지(1940년대)

멀리 뒤로 망경산과 진주의 자랑인 촉석루가 보인다.
사진 한가운데 수많은 군중이 운잡한 것으로 보아 진주장날 촬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장대지구복개공사전의 시가지(1970년대)
장대지구복개공사전의 시가지(1970년대)

남강아파트(왼쪽 끝부분 : 1971년 준공)가 들어서고 난 뒤의 시가지 모습이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새로이 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다.

 

장대동 둑길의 벚꽃(1930년대)

장대동 둑길의 벚꽃(1930년대)

 

봉래동 뒷산에서 바라본 진주고와 시가지(1971)
봉래동 뒷산에서 바라본 진주고와 시가지(1971)

오른쪽 멀리 서부지구 구획정리공사(1971~1972)가 진행중이고 사진 왼편에 구 진주법원 건물이 보인다. 지금은 진주문화방송이 들어섰다.

 

빌딩이 들어선 오늘의 시가지

빌딩이 들어선 오늘의 시가지

 

천수교가설전의 남강과 시가지(1970)
천수교가설전의 남강과 시가지(1970)

진주성 정화사업전의 모습과 넓게 펼쳐진 남강 백사장도 보인다.

 

천수교 가설후의 남강과 시가지(1990)
천수교 가설후의 남강과 시가지(1990)

 

천수교 가설후의 남강과 시가지(1990)

대사지와 중안초등 배영초등학교(1940)

대사지와 중안초등, 배영초등학교(1940)

 

조일견직과 시가지(1970년대)
조일견직과 시가지(1970년대)

공장뒤로 서부시장과 봉곡초등학교가 보인다.

 

1910년경 진주 일부
1910년경 진주 일부

비봉산과 봉래동일대 호주선교사사택과 배돈병원 그리고 시원여자학교 건물이 보인다

 

1930년대 진주일부
1930년대 진주일부

오른쪽 끝의 건물은 봉래 초등학교

 

남강신호대에서 선학.옥봉으로 가는길(1970년대)

남강신호대에서 선학.옥봉으로 가는길(1970년대)

 

선학산에서 바라본 시가지(1970년대)

선학산에서 바라본 시가지(1970년대)

 

남강신호대에서 선학산으로 가는길

남강신호대에서 선학산으로 가는길

 
1930년대 진주시가지 일부
1930년대 진주시가지 일부

우측 밑에서부터 옥봉삼거리, 시원여자학교, 진주교회, 진주고등학교가 보인다.

 

진주교회가 새로이 들어서고 난 뒤의 시가지 일부(1930년대)

 진주교회가 새로이 들어서고 난 뒤의 시가지 일부(1930년대)

 

오늘날 시가지 일부

오늘날 시가지 일부

 

1910년경 수정봉 옥봉고분군

이 수정봉과 연이은 옥봉은 현재 금산공원과 경상남도지정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7기의 고분이 있었다. 1910년 일본인 세끼노에 의해 2,3호분과
옥봉 7호분이 발굴조사되었고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은 일본 동경대학 공학부에
수장되어 있다. (일제의 문화침략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진주성에서 바라본 본성동 일대(1910년대)
진주성에서 바라본 본성동 일대(1910년대)

진주성 벽의 일부와 본정대로가 보이는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초가집 일색이다

 

본성동

본성동

 

1950년대 남강과 진주시가지

1950년대 남강과 진주시가지

 

1960년대 남강과 진주시가지

1960년대 남강과 진주시가지

 

구획정리중인 장대동 일대(1971년)

구획정리중인 장대동 일대(1971년)

 

변화발전된 오늘날

변화발전된 오늘날

 

1970년대 시가지

1970년대 시가지

 

촉석문앞의 옛풍경(1970년대)

촉석문앞의 옛풍경(1970년대)

 

1990년대 시가지

1990년대 주약동 한주럭키APT

 

 

♪바닷가의 추억♬

 
다음검색
댓글
  • 09.09.07 04:36

    첫댓글 1970년 경의 사진은 기억에 확실합니다. 많이 변했군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