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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一代)의 유업
염 상 섭
1
지 주부댁은 서른 셋에 과수가 되었다. 어중된 나이였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지 주부는 재작년 이맘때 이른 봄에 쉰도 못 채우고 마흔 아홉 수를 못 때우느라고 그랬던지 연래의 고질이던 천촉증에 넘어갔다. 아내의 나이 서른셋이니, 열여섯 살이나 층이 지는 내외였었다. 팔자가 세니 재취 자리를 주라는 전내집 마누라의 당부대로 스물셋이나 먹도록 썩이다가 골라잡았다는 것이 마흔을 바라보는 늙은 상처꾼 지 주부이었던 것이지만 첩도 아니요, 나이 너무 든 늙은 남편은 끝끝내 이 지경이라고 부모 탓도 해보고 팔자 한탄도 하였었다.
"……서른 셋……, 한참인데……."
남들이 돌려세워 놓고 하는 말은 귀에 아니 들어왔으나 과수댁 자신도 이대로 홀로 늙어 가려니 하는 자신이 없었기는 하였다. 영감이 살아서도 머리에 흰 털이 늘어가고 어깨가 꾸부정하여 가는 영감의 뒷모양을 보면 자기의 나이가 언제나 머리에 떠오르던 과수댁이었다. 경대를 내어놓고 머리를 빗으면서 주름살 하나 없는 포동포동한 얼굴을 들여다보면 남편 죽은 뒤에 얼굴 가축을 안하던 것이 후회도 났다.
그래도 영감이 여남은 간 되는 집 한 채와 열한 살짜리, 일곱 살짜리의 천둥벌거승이 같은 아들 형제를 남겨 놓고 갔으니 그것을 의지삼아 살려는 생각이었었다. 이 경우에 아들 형제도 영감이 남겨 주고 간 천량(錢糧) 같이 생각이 들었다. 눈만 뜨면 저희끼리 맞붙어서 쌈질어요, 동네에 나가 맙썽을 부리곤 하여 두들겨 패고 법석이 날 때는 이놈의 자식들이나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나다가도, 역시 자식이요, 애비없이 자라는 것이 불쌍하였다. 그러나 집 한 채는 있기로 자고 새면 먹어야지 어린것만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면 앞길이 막막하고 남은 반생이 지루한 생각도 드는 것이다.
원체 지 주부 영감은 남이 대접해서 주부라 할 뿐이지 어엿하게 약제를 벌이고 제법 화제(和劑) 한 장이라도 자기 손으로 내본 일이 있는 것이 아니요, 이 약방 저 약방으로 한 삼십 년 구르면서 죽을 때까지 남에게 얹혀서 약 저울질로 신세를 마친 위인이니 여투어 둔 천량이 있을 리 없고, 집 한 채나마 지닌 것이 무던한 편이었다. 무던의 여부가 아니라 일생을 바쳐서 전전푼푼이 치를 떨고 모아서 이 집 한 채를 장만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 주부로서는 아들 형제를 둔 것 보다도 대견하고, 일생 일대의 큰 사업이나 남기고 가는 듯싶었을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영감은 죽을 미처에 아우를 시켜 이 집의 명의를 큰 놈 기현이에게 변경을 하여 놓고 아우가 후견인이 되었다. 이것을 까맣게 몰랐던 과수댁은 나중에 알고 섭섭하고 야속해 하였다.
"도망꾼이를 붙들어 두었던가, 첩치가를 했던가? 내가 한 쉰 되었더라면 어쨌을꾸……."
재빠른 기현 어머니는 여기서도 대뜸 자기의 젊은 나이부터 생각하여 보는 것이었다.
"설사 딴마음을 먹는 한이 있기루서니 설마 자식을 거리에 내앉히구 집 팔아 들고 서방맞아 갈까……."
워낙 나이가 너무 층이 지니만큼 내외간 재미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법으로, 의리로 살아온 과수댁은 영감이 죽어도 슬픈 줄을 별로 몰랐지마는 그런 요량이면서 자식은 길러내라고 떠맡기고 간 것이 미웠다. 그런 영감을 바라고 아까운 청춘의 젊은 시절을 십 년이나 바친 것이 분하였다.
그러나 어쩌니저쩌니하여도 집 간이나 지닌 덕에 어린것들과 마음을 붙이고 이렇게 들어앉아서 아직은 굶지 않고 사는 것이지 그나마 없었더라면 어느 지경에 갔을지 몰랐다.
약계 친구들 덕에 집문서를 들고 나지 않아도 장사는 지낼 수 있었고, 영감의 월급 만 원이 없어졌지마는 방 넷에서 안방만 빼놓고 전부터 놓아먹는 셋방 셋에서 올려 있는 오천 원이라는 세전이 생활비의 대두리가 되었고, 삯바느질도 맡아다가 하여가며 학생도 치고 하여서 그럭저럭 한 일 년은 세 식구가 굶지 않고 지내왔다.
이 삯바느질이라는 것이 올봄부터 사동집에 들어가 살게 된 한 동기였다고 할지, 그런 연줄이 닿은 것이었지마는 이것도 영감이 길을 터주고 시켜서 용돈을 뜯어 쓰게 하던 것이었다. 큰놈과 작은놈 사이에 없앤 딸년 얼러서 셋을 낳고는 다시 없던 것이 천만다행이거니와 작은놈이 커가니까 영감은,
"낯엔 낮잠이나 자나? 할일없건 바느질품이라도 팔면 어때? 나 죽은 뒤라도 집 한 채하구 재봉틀 한 대만 있으면 굶지 않구 사는 거지."
하고 맡아다가 준 것이 사동집과 이 문안집의 색시들이 몰아 내놓는 저고리였다. 술은 고작해야 다섯 잔이요, 술추렴을 다니는 영감도 아니지만 약계 축과 어울려서 다니는 동안에 이 문안집이 오랜 단골이 되고, 주인 마누라들과도 무관히 지내던 터이라 이러한 연줄로 시내로 일을 맡아다가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일솜씨가 얌전해서 삼사 년래에 이것도 단골이 되었지만, 영감의 생전에야 어디 기현 어머니가 사동집이나 이 문안집이 어디 가서 박혔는지나 알았을까. 심부름은 술집 아이년이 늘 다녔지마는 영감이 돌아간 뒤부터는 연신이 잦지를 못하니까 이편이 아쉬운 때면 일감도 가지러 가고 돈도 받으러 가서 쥔마님과도 친해지고 술집 색시라는 것도 구경을 하게 되었다. 저희가 급한 때는 색시들이 옷감을 끊어 쥐고 가는 길에 일부러 들러서 맡기고 가기도 하여 자연 거래가 잦아갔던 것이다. 오늘 와서는 집 한 채, 재봉틀 한 대면 혼잣손으로도 산다고 하던 영감의 말이 맞았지마는 원체 기현 어머니는 처녀 때부터 바느질이 고왔다. 소학교만 마쳤다는 것, 바느질과 음식 솜씨가 얌전하다는 것이 사철 조선옷만 입던 지주부에게는 더없이 알맞는 조건이었다. 시집 갓온 색시가 재봉틀을 끼고 앉아서 모시 두루마기를 하루면 뚝 떼내는 솜씨였다. 영감이 죽은 뒤에는 이 바느질이 본업이 되어 한 개에 삼백 원씩 하는 저고리를 돈에 몰릴 때는 눈을 까뒤집고 덤비면 두 벌은 넉넉히 지어냈다. 저고리는 한 달에 두어 죽 맡아다가 하면 오륙천 원의 수입이었다. 이 바느질만 가지고도 일가친척이나, 이웃간에도 연래로 얌전하다는 칭찬을 들었지마는 또 사실 외양부터 똑똑하고 얌전한 기현 어머니요, 온순한 성질같으나 해쓱하고 갸름한 얼굴은 선병질(腺病質) 같고 신경질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도 그렇겠지만 영감의 만년 몇 해지간에는 퍽 히스테리가 되고 홀로 된 뒤에는 그 증세가 더하여 갔다.
나날이, 신경이 뾰죽해지고 아이들과 악다구니하는 소리가 높아갈수록 잠이 없어지니 바느질은 더 잽싸지는 편이지만, 그것도 한두 달이지 작년 여름 같은 때에는 노상 밤을 꼬박꼬박 밝히다시피하여 가며 재봉틀을 기껏 휘둘러 냈었다. 그러자니 재봉틀도 사지가 느른해졌겠지만 추풍 머리에는 사람도 널치가 되어 며칠씩 버둥버둥 누워 신음하게까지 되었다. 일을 놓고 한가히 누웠노라니 까닭 모를 울화만 치밀어서 이때부터 담배를 입에 대게도 되었지마는, 일에 지쳐서 앓는다는 말을 듣고 사동집 막누라가 하루는 소일 겸 좀 들여다본다고 찾아왔던 길에, 그렇게 뼛골이 빠지게 벌어야 이것저것 합해서 겨우 만 원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꾸려간다는 말을 듣고,
"그래서 어쩌우, 날도 차차 추워가는데 뭘로 먹는담, 아주 내게루 들어오면 어떻겠소?"하고 자기께로 오면 방 하나는 따로 치워줄 테니 침모겸 찻집겸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자기와 맞붙들고 벌어 보겠느냐고 구수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아주머니뻘 되는 마님과 부엌데기를 데리고 여간 것은 색시들이 거들고 하여 꾸려가지만 그 마나님이 술을 좋아하고 수다스러워 사람이 잘 붙지도 않거니와 일일이 자기가 꼭 매달려 있어야 하니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영감님이 살아 계실 때에 툭하면 우리 마누라 손이 가야 내 비위에 맞는다구 자랑이시던데 어디 아씨 음식 솜씨까지두 좀 뵈어주구려."
사동마누라는 여러 가지로 권하였다. 큰 아이야 다 자랐으니 삼촌이고 외가에 맡기고 작은 것만 데리고 오라는 둥, 그렇게 되면 안방도 세를 놓아 먹을 수 있고, 생활비는 한 푼도 안 들 것이요, 자기는 자기대로 월급을 따로 내마는 것이다. 부려먹기에 알맞기도 하거니와 외양과 낫세가 자기 영업터에는 제격으로 보아서 사동집은 전부터 눈독을 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현 어머니는 한편으로는 귀가 솔깃하면서도 차마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벌이를 하자면 자기 따위는 그밖에 길이 없고, 젊은 과부래서 만만해서 오라는 것이겠지마는 남의 사정은 모르고 으레 바람났다고 돌려낼 것이니 며칠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 아무래도 나설 용기가 아니 났다. 수절이니 자식들 교육이니 하는 것은 오히려 둘째 문제요, 아직은 거기까지 절박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역시 동리에서 권하는 대로 학생이나 쳐다보기로 작정하였다.
2
동리에서들 사글셋방의 세전들을 올리고 나서 기현네는 싸다고 귀띔을 하여주며, 한 집이라도 싸게 받는 집이 있으면 자기네만 인심 사납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올리라고 충동질도 하기에, 기현 어머니는 이달부터 건넌방, 아랫방은 오백 원씩을 올리고 뒷방은 한꺼번에 천 원을 올렸다. 뒷방이란, 영감이 안방 뒤로 터전이 있는 것을 이용해서 방 간 반에 부엌 반 간을 들여서 애초부터 세를 놓아 먹자고 꾸민 것인데, 이때껏 이천 원 하던 것을 삼천 원으로 올리니까 이까짓 것을 삼천 원 낸다면 다른 데로 떠난다고 하여 방이 우선 하나 나게 되었다.
기현 어머니는 바느질품이 고되어서 학생을 칠까 하면서도 사람이 든 방을 박절히 내놓으라기도 안 되었고하여 망설이던 판에 잘되기도 하였지만, 자기네들은 숨겨도 어느 극단의 가수인지 배우인지 한 젊은 남녀가 눈이 맞아서 사랑의 보금자리로 굴러 들어온 것이어서 밤낮 할 것 없이 툭탁치고 기롱을 하며 유행가를 무시로 뽑아내고 하는 것이 바로 안방 머리맡에 벽 하나를 격하고 쏜살같이 들리니, 기현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귀가 아프고 밤잠을 잃고 하여 혼자 은근히 앓던 터인데 떠나준다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사품에 학생을 치기로 결심하고 옆집에 하숙하는 중학생에게 부탁을 하여 두 아이를 데려다 놓았다. 외따르고 명색이라도 부엌이 있어 살림꾼에게는 좋으련만, 건넌방이나 아랫방 사람들도 삼천 원은 힘에 부친다고 옮기려 들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을 길치로 그 방에 넣었다.
네 가구나 사는 집안이라 자나깨나 법적거리는 집안이지만 그래도 어린애들만 데리고 지내다가 동생 같고 조카 자식 같은 선머슴들이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고 따르며 너덜대고 하는 것이 따분하고 쓸쓸한 살림에 적지 않게 활기도 돕고 질번질번히 위안도 되는 것이었다. 또 어쨌든 이삭 두 아이의 밥값 일만 사천 원이 모아서 들어오거니 믿는 곳이 생기니 마음이 든든도 하였다. 여기에 두 방 세전을 보태고, 바느질도 전만은 못하나마 틈틈이 하여 이것저것 모으면 한 이만 원으로 다섯 식구가 사는 셈이라 빠듯이 갈망을 하여 갈 정도였다.
방 하나만 더 났으면 학생을 두엇 더 쳐보겠는데…… 넷만 두면 세 식구는 그런 대로 얻어먹고, 좀 고되기는 하더라도 숨을 돌리겠다고 궁리를 하던 차에 또 마침 건넌방네가 김장 전으로 전세를 얻어 나간다고 방을 내놓게 되기에 동무들 둘만 더 끌어오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하여 들인 것이 지금 뒷방에 있는 『김 선생』이다.
기현 어머니는 학생이 아니요, 젊은 신사라는 데에 호기심이 없지는 않으면서도 거북할 것이요, 남들도 어찌 볼까 싶어서 마다고도 하였으나, 두 끼 먹고 만 원이라는 조건이 그럴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방에 군불 때주면 턱이 닿지 않는다고 거절하였던 것인데, 그 이튿날에는 당자까지 데리고 와서 군불까지도 자기가 장작을 들여다놓고 때겠다는 바람에 조건이 좋아서 들이고 만 것이다. 소개한 학생의 숙항뻘 되는 회사원인가 한 사람인데, 지점에서 본점으로 전근이 되어서 사택이 나기까지 가족을 데려올 동안만 있겠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하회를 기다리고 섰던 김 청년을 학생이 데리고 들어와서 인사를 시킬 때 기현 어머니는 신수가 멀쩡한 삼십 전후의 청년이 마루 앞에 딱 들어서는 데 그만 기가 질렸다. 몇 해를 두고 셋방살이로 드나드는 젊은 남자를 한집 속에서 조석으로 대하고 지낸 기현 어머니건마는 이 청년이 자기 손으로 밥을 지어먹일 한 식구가 되거니 하는 생각에 좀 벅차고 실쭉하기도 하나, 또 그와는 정반대로 수줍은 마음이 들어 고개를 바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어떤 남자인가 자세히 치어다보려고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김 청년은 친구의 집에 끼어 있는데, 하루가 급한 사정이라고 그날로 옮겨 왔다. 그러나 방만은 학생들의 뒷방과 바꾸기로 하였다. 마루 하나를 격해서 건넌방에 젊은 남자를 두기는 싫었다. 떠나오던 날 저녁, 밥상을 차려다가 들이미니까 허리를 잘라맨 만 원 뭉치를 내밀며, 장작을 내일 모레 새에 들여오겠다는데 사려거든 함께 사라고 한다.
기현 어머니는 목이 바짝 마른 판에 만 원 선금에 눈이 번쩍도 했지마는 장작을 싸게 사주마니 반갑기는 하나 첫째는 돈 걱정이요, 초면인 남자를 붙들고 수다를 떨기가 싫어 어름어름해 놓고 나중에 조카 학생을 시켜 물어 보니 가만 있으라는 전갈이었다. 그 후부터는 이런 교섭은 일체 학생을 새에 넣고 하는 것이 편하였다. 자세히 두고 보니 자기와 나이 걸맞는 점잖고 틀거지가 있어 보이는 진중한 청년이니 만만치가 않고 말을 함부로 붙이기도 어려웠다. 아침저녁 밥상을 들고 나가기도 쭈볏쭈볏해지고 늘 성이 가셨다. 손님이 벌떡 일어나서 상을 마주받아 들이는 것이 미안하고 거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까지 조카 애를 시킬 수 없고, 상 하나를 변변히 못 드는 기현이를 내세운다면 내외 없는 세상에 도리어 이상하게만 보일 것이니 그대로 자기가 벙어리처럼 들이밀고, 상이 났나 눈치만 보고서 또 벙어리처럼 내오고 하였다. 이야기가 나온 길이니 말이지만 어제, 오늘 밥상에서 물린 반찬은 학생상에 섞어 주거나 아이들이 먹게 내버려 두었다. 머궁은 물론 조카의 점심으로 남겨 두었다. 첫 서슬이라 너비아니를 한 접시 구워 놓았더니 서너 점 남겼기에 무심코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고는 느글느글한 생각이 났으나 이것만은 유난스럽게 뱉어 버릴 수도 없이 그대로 삼켜 버렸다. 고기 맛은 제맛이건마는 어쩐지 가슴속이 메슥메슥하던 것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돈 만 원이 소리없이 들어온 데에 신바람이 나고 장작을 산다는 데 가만 있으라는 전갈이 어떠면 한 마차 우선 들여오마는 말인가 싶은 터무니없이 바라는 생각으로 차차 살림이 피려나 하는 명랑한 희망에 일이 고된 줄을 모르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학생들이 왔을 때보다도 집안이 더 환해지고 활기가 떠도는 듯이 보였다. 마당을 쓸고 마루 걸레를 치는 것도 누가 보거니싶어 흡더 깨끗이 하려 들었다.
아침을 해치운 뒤에 비를 들고 뒷방으로 간 기현 어머니는 방 임자야 나갔지마는 홀아비의 방을 열고 들어서기가 서먹서먹 하였다. 남향맞이의 환한 아늑한 방안에서 담배와 함께 비듬 냄새와 같은 사내 내가 후루루 끼쳐 나와 코를 찌르는 데도 찔끔하였다. 기현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외면을 하고 냄새가 빠지기를 기다려서 방안에를 들어섰으나 방에 들어와서는 도리어 그 냄새를 다시 맡아 보려는 듯이 코를 두어 번 흥흥 들이마셔 보는 것이었다. 역시 손님 상에서 남은 너비아니를 입에 넣을 때까지 속이 느글느글하면서 손끝 발끝뿐 아니라 전신이 조(燥)한 것 같았다.
삿갓을 씌운 탁상 전등이며, 시계, 잉크 세트, 책꽂이들이 앙그러진 테이블 앞에는 커다란 회전의자가 놓였고, 아랫목에는 방이 식지 말라고 남 보본단 요가 깔려 있는 품이 얌전하고 깨끗하여 치울 데도 없지마는 기현 어머니의 눈을 먼저 끄는 것은 벽에 걸린 양복과 와이셔츠, 넥타이 들이었다. 평생 자기 방 속에 양복이나 와이셔츠나 울긋불긋한 넥타이가 걸린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이 여자의 눈에는 그것이 아주 못보던 것같이 신기하고 반갑기까지 했다. 기현 어머니는 요를 걷어 놓고 방을 쓸려다 말고 양복으로 가서 만져도 보고 후루루한 와이셔츠와 폭신한 털셔츠를 걸린 채 들추어도 보곤 하였다. 고운 때가 묻은 이런 데서 홀아비 냄새가 나겠지마는 무슨 착각인지 향긋한 김이 코끝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공연히 질겁을 하여 돌쳐서다 말고 다시 양복에 얼굴을 들이대어 보고는 제풀에 얼굴이 빨개졌다. 방을 쓸고 걸레질을 하고 요를 다시 깔고 하는 동안에 기현 어머니는 퍽 상기도 되고 숨이 가빠졌었다.
3
생전 조선옷만 입던 늙은 남편을 시아버지 모시듯이 하고 살아온 기현 어머니지만 젊은 양복쟁이를 처음 보는 촌색시는 아니다. 요전에 뒷방에 들었던 배우이던 하이칼라 내외는 그 꼴이 보기 싫어 나가기를 바라던 기현 어머니가 아니던가. 그러나 이번은 다만 자기 집 손님이거니, 한솥의 밥을 먹으며 뒤를 거두어주는 한 식구거니, 하는 생각에 신기해 보이는 것이요, 벗어 놓은 버선짝 하나라도 빨아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사날 지내다가 첫 서슬과 달라서 방을 치우러 들어가면, 그 이상한 냄새만은 여전히 마셔도 차차 심상하여져 가고, 먹던 반찬도 국물은 싫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밤 같은 때도 처음 며칠은 바로 벽 하나를 격해서 젊은 사나이가 있거니 하는 생각에 조심성스럽다기보다도 정신이 그리 쓰이고, 가뜩이나 신경질로 밤잠이 없는 사람이 쓸데없는 잔걱정에 소리도 못 내고 전전 반측하는 때가 많았으나, 요새는 그 증도 웬만큼 누그러져서 반밤은 꿈자리가 뒤숭숭한 속에서도 잘 자는 셈이다.
그러나 손님과 마주치는 것은 싫었다. 어쩌다 군불을 지필 때 들어오다가 보고,
"아, 추우신데 미안합니다. "
하고 말을 붙이면 기현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깜짝 놀라서 일어나며 웃음을 띠어 보이면서 눈은 한데를 보는 것이었다. 여전히 선뜻 말대꾸가 아니 나오고, 밥상을 가지고 가서도 역시 벙어리였다. 김 학생의 아저씨라니 김 선생님이라고 부를 뿐이지 이때껏 이름도 모른다.
4
그러나 김 선생님도 범연히 굴지는 않았다. 원체 인후해서, 젊은 과부라고 동정해서 그랬던지 장작 한 마차를 들여오고도 주인이 반값만 내마는 것을 마다고 할 만큼 후하였다.
"그대루 둡쇼그려. 저 애들 방에는 안 땝니까. 결국 우리가 때는 셈이죠."
숙질이 두 방을 쓰는 터이니까 그렇기도 하고, 장작이 들어올 동안 십여 일은 주인이 푼거리를 사들여서 때어 주었으니 그 값이란 말이겠지만 너무 과하므로 기현 어머니는 도리어 겁이 나고 남자의 속을 몰라서 얼굴이 붉어졌다.
"기현 어머니 수났소, 수났어."
아랫방 젊은네도 놀리며 부러워하며 이상한 낯빛이었다.
"수단 좋은 사람이 공짜 나무로 큰 생색 내는 게지 뭘?"
하고 입을 삐죽하는 동네 마님도 있었다.
기현 어머니는 좋으면서도 걱정이요, 걱정이면서도 비양하는 소리에는 발끈하고 분해하였다.
어느 날 저녁 때인가 기현 어머니가 물통을 들고 들어오려니까 김 선생이 뒤에서,
"거기 놉쇼, 내 들어다 드릴께."
하고 덤비는 데는 얼굴이 빨개지며 한참 씨양이질을 하는 것이 주인댁 편에서 더 괴로웠다. 동네집 여편네들이 볼까 보아서도 겁이 났다. 그러나 예전에 영감이 살아서도(늙은 영감이니까 힘도 없었겠지만) 물통을 들어다주마 하는 말은 못 들어 보았다. 남의 친절이 고맙고 그리웠다.
"피차 젊은 터에 그런 점잖은 손님은 좀 거북할 때가 많을 거야."
"아, 물통을 다 들어다 주는 그런 흉허물 없는 소탈한 양반인데요."
옆집 마나님의 걱정에 기현 어머니보다도 앞질러 아랫방네가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헤에……. "
하고 마누라가 놀라는 것을,
"자기도 먹는 물인데 그런 인사 말씀 으레 하는 게 옳겠죠."
하고 기현 어머니가 이번에는 쏘아주었다. 뒤미처 닥치는 김장도 김 선생 덕을 보았다. 온지가 한 달도 못 된 사람이,
"댁의 김장은 얼마나 하시나요?"
하고 물을 때 기현 어머니는 이 남자의 배짱이 정말 다르구나 하는 지레 짐작에 어리둥절해서 역시 대답을 흐리마리 하였었다. 그러나 결국은 저희 세 식구(학생 둘과)가 상당히 먹어낼 터인즉 회사에서 도거리로 밭을 사서 떼어들이는 것을 한몫 끼어서 이리르 돌려주마는 말이다. 사연을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다. 댓새 지나자 배추 오백 통에 무우 다섯 섬이 회사 트럭으로 배달이 되었다. 돈이야 밥값으로 에끼겠지마는 편안히 앉아서 싸게 사고 회사 트럭이니 운임도 몇 푼 안 들었다.
"미안합니다."
기현 어머니는 입이 벌어지는 것이 부끄러워서 참고 간신히 인사를 하였다.
"무어, 차례에 오는 것을 어디로 가져가겠습니까. 그 대신 우리가 살림 하게 되거든 김치 한 독만 두었다가 줍쇼그려."
하고 김 선생은 웃는 것이었다. 딴은 그러리라는 생각으로 김 선생이 서울 살림을 하면 보내 주려고 김치 두독을 정성껏 따로 담아 놓았다. 그러면서도 기현 어머니는 장차 벌여놀 김 선생님의 서울 살림이 얼마나 풍성풍성하고 재미있을까? 그 색시는 어떻게 생겼길래 팔자가 얼마나 늘어지랴 싶었다. 지금부터 김 선생이 훌쩍 떠난다면 섭섭하고 집안이 쓸쓸하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섭섭한 것은 고사하고 살림을 반이나 거들어 주는 이런 손님을 놓치는 것이 아까워서 약속한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 있어 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해 겨울 방학이 되어 학생들이 집에 내려갔어도 다행히 김 선생은 그대로 있어 주었다. 한 달포는 학생의 밥값도 나올 길이 없으니 이제는 더군다나 태산같이 바라느니 김 선생뿐이다.
"학생이 가니까 일이 없겠구려, 참 뒷방 서방님은 그저요?"
"글쎄, 한 달만 있으면 사택이 난다더니 그럭저럭 삼동을 나려는지요."
"아, 쥔댁 얌전하겠다, 영등겉이 뒤 받들겠다, 아주 늘어붙는 게구려."
요새도 동리 아낙네가 모여 앉으면 『뒷방 서방님』 하며 놀리었다. 기현 어머니는 공연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몸가축을 어떻게 하면, 삼동을 나면서두 손등 하나 안 터지구 분결 같구려." "전부터 그리 터지는 줄 모르겠어요."
"기현 어머니가 거기다가 파마나 하구 뻐기구 가 보슈. 아직도 젖먹이 하나쯤이나 달렸을까말까 한 낫세로밖에 안 뵐걸! "
"젊어 뵈면 무엇한다는 거랍디까."
기현 어머니는 코웃음을 치면서 듣기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였다. 영감이 죽은 뒤에 머리 빗기도 성이 가시다고 비녀를 빼 버리고 쪽지를 잘라서 시체머리를 하였지마는, 파마야 하고 싶어도 돈도 없으려니와 욕할까 보아서 뜻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지내는 터이다. 그래도 뒷방 손님이 온 뒤 자연 머리도 밥 지으러 나오기 전에 곱게 빗고, 옷 한 가지라도 더럽게 입기는 싫었다. 그러나 그런 것도 드나드는 여편네들이 무심히 보지 않는 것 같아서 싫고, 크리임 화장 하나도 마음놓고 하기가 어려웠다.
만 원을 받는 데도 손님 하나쯤 두어서는 셈이 되느니 안 되느니 하고들 떠들더니,
"아무튼지 수단은 좋은 이야. 장작이요, 김장요 하고 쓱쓱 실어들이구……."
하고 하숙집 마나님이 부러운 듯이 새판으로 또 꺼내니까 젊은 수다꾼이 받아서,
"야, 그만큼 신수가 번듯하구서야 무슨 수단은 없을라고!"
하고 깔깔 웃는다.
"무슨 수단?"
"후리는 수단! 놀려대는 수단…… 하하하."
기현 어머니는 귀를 막고 싶었다. 분하여 얼굴이 상기가 되나 탄할 말도 못되었다. 그러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또 이상히 보지나 않을까 애가 씌었다.
『에이 성이 가셔, 어서 떠나 주기나 하였으면……. 』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웃집 아낙네들까지 신수가 좋다고 김 선생을 칭찬하던 말은 언제까지나 귀에 남아 있었다. 그뿐 아니라 밤이 되면 옆방의 부스럭 소리에 처음 왔을 때처럼 잠을 못 이루고 하는 것이 성이 가시고, 제 몸만 곯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훌쩍 떠난 뒤에 얼마나 호젓하랴 싶어 그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을 자기도 잘 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다 들이미는 것도 그날그날 살아가는 한 목표나 보람이 있는 것 같아서, 추운 아침에 부엌에 내려가는 것도 괴로운 줄 을 모르고 반찬거리나 좋으면 신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비를 들고 뒷방을 치우러 들어가는 것도 어느덧 자기 혼자만 느끼는 유쾌한 일과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사실 학생들이 가버리고 집안이 금시로 쓸쓸해지니 더구나 일요일 같은 때 아이들마저 놀러 나가고 하면 안팎이 조용하니 안방 뒷방에 단 두 식구만 사는 것 같아서 한참은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설레어지고, 아랫방에 사람이나 없더라면 곧 대문 밖으로라도 뛰어나가야만 정신을 차릴 것도 같고, 뜰에서 가랑잎만 버스럭 해도 공연히 놀라서 눈이 감아지곤 하는 새 버릇이 요새로 심하여 갔다. 학생이 없는 동안은 그 보충으로 삯 바누질을 좀더 부지런히 할 생각으로 일을 붙들고는 앉았으나, 더구나 요새는 밤잠을 예전처럼 잃어서 낮에는 무엇에 얻어맞고 널치가 된 사람처럼 느른하니 손에 잡히지를 않고 앉았다 누웠다 하기에 한나절을 다 보내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도 돈 걱정에, 쌀 걱정에, 뒤가 달아서 저녁 반찬 걱정까지 하게 되면 오히려 머리가 가뜬하여지
는 것 같으나, 그러노라면 해는 벌써 뉘엿뉘엿해 갈 때다. 그런 밤이 돌아오는 것은 더 어려웠다. 저녁밥만 먹으면 쓰러지는 형제를 재워 놓고 바느질거리를 끼고는 앉았으나, 사방은 죽은 듯하니 옆방의 일거일동이 더구나 쏜살같이 들려온다. 자연히 귀가 그리로만 쏠리고 가다가다 눈앞이 얼밋거려지며, 아뜩하다가는 몇 번이나 훔질하던 바늘끝에 손을 찔릴 뻔하고, 앞섶을 들려대었다 뜯었다 하였는지 몇 해를 바느질을 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내가 미쳤나, 왜 이러는 거야……. "
혼자 화를 내고 정신을 가다듬으려 하여야 별수가 없었다. 하도 지치면 인두판을 내던지고 자리 위에 쓰러지며 벽에 걸린 영감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다가는 눈을 감아 버리고 만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잠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은 쨍쨍한 햇볕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아침이 되어 법상을 보아 들고 뒷방으로 가면 기현 어머니는 눈을 상위로 내리깔고 무엇에 노한 사람처럼 새침하니 돌아서는 것이었다.
오늘은 아침을 치운 뒤에 몸이 더 나른하여 오정이 넘도록 뒤집어쓰고 누웠다가 아들의 점심을 주러 일어난 길에 걸레를 빨아 들고 뒷방을 치우러 갔다. 방에 들어가 보니 곱다란 남 모본단 요가 폭신한 것을 보자 물기 있는 언 손을 녹일 겸 요 밑에 손을 파묻으며, 요 위에 뺨을 대고 잠깐 엎디어 있으려니까 몸이 다시 혼곤히 퍼지며 단잠이라도 다시 올 것 같았다. 포근한 기분에 잠겨 그대로 차마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판인데 밖에서 우중우중 구둣소리가 난다. 기현 어머니는 소스라쳐 일어나며 가슴이 덜렁하였다. 얼떨결에 미닫이를 활짝 열며 나서려니 김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좁다란 툇마루를 격하여 섰다.
"방을 입 때 못 치웠어요."
얼굴부터 취해 오르는 기현 어머니는 엎드려 얼른 걸레질을 치려니까,
"천천히 하세요, 난 곧 나갈 테니까."
하고 구두를 벗고 성큼 들어선다. 기현 어머니는 질겁을 하며 일어서다가 엉덩이로 남자의 외투를 스치자 몸이 오그라붙는 것 같았다. 툇마루로 나서면서도 뒤에서 억센 팔이 껴안는 듯만 싶어 간신히 부르르 떨렸다.
"거기 잠깐 계세요. "
그 소리가 덜미를 짚는 것 같아서 또 눈이 팽 도는 것을 깨달으며 돌아섰다. 그러나 모든 것이 혼자의 무서운 공상이었고 착각이었다. 김 선생은 외투를 입은 채 회전의자에 앉아서 돈을 세고 있다가 한 뭉치를 내밀며,
"전번에 덜 드린 반 달 치입니다. 사택이 마침 나서 오늘 식구를 데리러 가렵니다. 오랫동안 폐두 많이 끼쳤습니다."
모든 공상과 착각에서 깨어진 기현˙ 어머니는 밥장수로 다시 돌아왔다. 제 정신이 든 기현 어머니는 입술이 잠깐 뒤틀리며 잠자코 돈을 받았다. 셈을 따지자면 한 달을 못 채우고 가니 다 받을 수도 없으나 남자의 몹시 냉연한 태도가 미워도 보여서 주는 대로 받아 버리리라 생각하였다.
"불시에 가게 되어서 섭섭합니다. 짐은 며칠 두어 두시죠."
남자의 말은 은근하였으나 기현 어머니는 귓가로 들었다. 자기가 혼자 속으로 그리던 김 선생과는 딴판의 남자가 앉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짐은 언제쯤 찾아가시겠어요?"
기현 어머니는 이제는 부끄럼도 없어지고 또랑또랑한 말솜씨가 쌀쌀해졌다.
"양력 설 안으로 곧 올라옵니다. 건넌방 아이들은 아직도 한 달 후에나 올라올 테지만 내가 데리구 있을까 하니까, 손님을 들이시려거든 짐을 몰아놓고 방을 쓰십쇼."
김 선생은 역시 좋은 낮으로 하는 말이건만 기현 어머니에게는 우박을 끼얹는 듯싶었다. 학생마저 데려간다는 말에는 살 길이 별안간 딱 막히는 것 같아서 정신이 다시 한번 번쩍 들고 이때 꿈속 같은 공상이나 애수에 잠겨서 헤매던 자기 자신이 딴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김 선생을 보내고 안방에 들어와 화로 곁에 앉으며 기현 어머니는 한시름 잊은 것 같으나 시원히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동안 석 달을 두고 공연히 마음이 들떠서 무엇에 씌운 사람같이 들썩이다가 이제야 그 압박 속에서 해방이 된 것처럼 시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석 달 동안에 지낸 일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남에게 말못할 자기 혼자만의 경험이나, 세상 밖에 나와서 처음 제일 아름답고 유쾌하였던 자기만의 딴 세계가 거기에 전개되었던 듯이 감미한 꿈의 뒷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였다. 별안간 간다는 바람에 너무나 서운도 하였고, 당장 닥쳐올 살림 걱정에 얼이 빠져서, 저 갈 테면 가렴 하고 모른체하였거마는 지금 생각하니 문간에라도 배웅을 나가서 웃는 낯으로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도 되었다.
5
기현 어머니가 김 선생을 다시 만난 것은 그 후 십여일 만에 사동집에서 였다.
"아, 이게 웬일인가요!"
반가운 소리를 치며 축대 위로 올라서는 김 선생의 얼굴을 분합 밖으로 나서며 마주보는 기현 어머니도 전신이 부르르 떨리며 반가운 것을 참느라고 두 볼이 발개졌다. 김 선생을 다시 만나서 이렇게 반가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차차 이야기하죠. 좀 올라오세요."
열홀 전까지 보던 기현 어머니가 아니었다. 남편의 대상 전이라고 하얗게만 입던 이 여자가 옥색 하부다에 치마에 남끝동 저고리의 소매를 걷어 입고, 얼굴은 보얗게 분화장을 하였다. 차에서 내리는 길로 짐을 찾을 겸 우선 기현네 집에를 갔다가 아랫방 사람이 일러 주는 대로 와 보니 색주가 집보다는 낫지마는 이러한 숨은 요리집이었다. 김 선생은 불과 십여 일에 상전(桑田)이 벽해(碧海) 된 것같이 하도 놀랐지마는 그것보다도 그렇게 새침하고 숫색시같이 잔부끄러움을 타던 기현 어머니가 대담하고 암팡지게 나서서 이런 장사를 하는 것을 보니 사람이란 주위 환경이 바뀌기로 이렇게도 달라지랴? 고 생각할수록 기이하였다. 김 선생 역시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끌어들이는 대로 안방을 거쳐서 골방으로 들어갔다. 헌 보료 조각이 깔린 아랫목으로 앉으며 방안을 들여다보니 벌써 여기가 기현 어머니의 방이 된 모양이다. 너절하기는 하나 삼충장이 놓이고 머릿장 위에는 얄따란 금침이 쌓였고, 자리옷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품이 색주가집의 갈보 방 같다. 설사 몸이야 팔았으랴 하는 생각이 들자 눈이 찌푸려졌다.
"대관절 어떻게 된 셈이오?"
"우리 아주머니댁에, 섣달은 돼오구 바쁘대서 잠깐 거들러 와 있죠."
기현 어머니는 자기 말은 이렇게 간신히 집어치우고 나서,
"그래 댁은 다 안녕하셔요? 이사 오셨어요?"
하고 물으며 남자의 모자, 외투를 받아 걸랴, 방구석을 치우랴 한참 부산하다가 이제야 마주앉는다. 마주앉고 보니 피차에 전날 한집 속에서 물끄럼말끄럼 보면서도 설면설면히 지내던 생각이 나서 서로 겸연쩍기도 하고 신기도 하며, 마주 쳐다보곤 웃고, 또 눈이 마주치면 웃곤 하였다.
"나도 내려가는 길로 감기로 누워서 사오 일 예정한 것이 늦어졌지만, 가보니 김장도 다 해놓고 이 추위에 어린것과 움직일 수가 있어야죠."
"겨울 이사란 어렵죠. 그래 당장 어떻게 하시겠어요? 사택은 비었죠?"
식구를 안 데려왔다는 것은 반가우나 섣불리 자기께로 또 와 있겠다고 할까 보아 미리 방패막이를 하여 놓으려 하였다. 열흘지간에 이렇게도 형세가 뒤집혔다.
"두어 달 더 있다가 해빙이나 되거든 끌어오기로 했으니까 그동안 아이들 데리구 사택에서 자취를 할까 하는데요."
"그러시는 게 좋으시겠죠!"
기현 어머니는 생글 웃었다. 이렇게도 일이 계획했던 것처럼 될 줄이야 몰랐다고 가슴속에서는 두방망이질을 쳤다.
『내친 걸음이다! 한번 문지방을 나서기가 어려웠지 그 집을 또 누구를 바라고 다시 들어가랴!』
기현 어머니는 이런 생각이었다. 동생은 믿어도 조강지처는 못 믿었던 남편에 대한 보복이라든지, 십 년 동안 그 집 속에서 아깝게 썩은 것이 분하다는 그런 따지는 생각이 아니라, 살기가 어려워서든지 바람이 나서든지 하여간 사동집에 가기까지가 힘이 들었단 말이요, 이 남자를 예서 만난 다음에야 다시는 그 집에 데리고 들어갈 반편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날마다 가서 밥 지어드려두 좋죠?"
하고 지나는 인사처럼 생긋해 보인다.
"그래 주신다면야 고맙습니다마는 이런 좋은 데를 두시구? 하하하."
"좋은 데라뇨? 선생님마저 떠나시구 나니까 먹을 걱정하랴 짐안만 더 쓸쓸하구 어디 마음이 붙어야주. 꼭 옆방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나는 것만 같구, 참 며칠은 쓸쓸했어요……."
이 말은 기현이 어머니도 대담하고 솔직한 고백이었지마는 김 선생도 감동이 된 듯이 말머리를 자르며,
"허허허. 김 선생이 아랑곳이 뭐예요. 내 탓은 마세요."
하고 껄껄 웃는다. 자기도 이 여자의 눈치를 겉짐작이라도 못하였던 것은 아니나, 자식이 둘이나 달린 어려운 과부를 동정은 할지언정 그 이상 더 적극적으로 어찌하는 수가 없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데 나온 것을 보니 집에서 보던 것과 같은 깨끗한 가정부인에 대한 그런 느낌보다는 다른 각도로 터놓고 사귀거나 놀 수 있는 새로운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하여간, 그래서 마음두 들먹거리는 판인데 전부터 말이 있던 이 집에서 또 말을 걸어왔기에 왔지만 남들은 놀아났다구 욕할 것 아녜요. 하지만 내가 술 팔러 온 것도 아니요, 미쳐난 화냥년은 아네요. 여기서도 밥에미로 데려온 것이니까요. "
"술을 팔기루 누가 무슨 욕을 할까요. 그래두 내게만은 술두 밥두 전 같이 파시겠지? 허허허."
하며 김 선생은 농쳐 버렸다.
"참, 정말 김 선생두 이런 데 놀러 오시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두 없지 않았지만 겁두 났었어요."
하고 생글 웃는 기현 어머니는 지금까지 무슨 열에 뜬 사람처럼 거침없이 말을 하던 것과는 또다시 딴판으로 남자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며 어깨를 오싹 흔든다. 며칠 전까지도 이 남자 앞에서 공연히 몸이 부르르 떨리듯이 그런 이성에 대하면 감미한 감정이 회복된 것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그러한 순간적이요, 발작적인 감정을 누르려는 듯이 발갛게 피었던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면서 마치 니코틴(담배) 에 취한 사람같이 아무 말도 없이 살짝 나간다. 김 선생도 따라 일어서려다가 어두워가는데 갈데도 별로 없고 아직 이르지만 이왕이면 아주 여기서 저녁이나 먹고 가리라는 생각으로 나가는 여자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앉았다. 비단 무색 치마를 푸르르 날리고 나가는 상큼한 옷맵시도 전에 못보던 풍경이었다. 새침데기 곬로 빠진다는 말도 있지마는 집 속에서는 눈도 치뜨지 못하던 그때가 인생의 기로(岐路)에서 마지막 바득이던 가장 위험한 시기였던가 하는 짐작도 든다. 그렇다면 자기는 멋도 모르고 그 사품에 뛰어들어서 부채질을 한 셈인지도 모를 거라고 김 선생은 혼자 픽 웃는다. 그러나 어름어름하다가 큰 고질일지 모르겠다는 겁도 든다.
"늙은 영감에게 첫 시집을 갔더라지 않나……."
그러니만큼 이 젊은 과수는 첫사랑에 눈 뜬 처녀처럼 맹렬한 기세로 덤빌까 보아 겁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선생은 그 점으로 유혹도 느끼는 것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어린 색시들과 교잣상을 마주들고 들어왔다. 색시들이 손에 든 상에는 정신이 없이 김 선생의 선을 보기에 얼이 빠졌다.
"색시들 앉지!"
김 선생은 계집애들을 둘러보며 말을 걸었으나 생글생글 웃으며 감히 앉지는 못하고 시중들만 든다. 그 눈치루 보아서 이 집에서 기현 어머니의 지위를 알겠지마는, 인물들은 나이 먹은 기현 어마니가 훨씬 낫다.
"이 집에 와서 저녁상을 차려드릴 줄은 나도 몰랐죠마는 내가 선생님 약주를 치게 될 줄은 더구나 누가 알았겠어요!"
기현 어머니는 술을 치면서 웬일인지 눈물이 글썽해진다. 자기 신세를 생각해서인지, 정열에 북받쳐서인지 알 수 없다.
"이러다가 난봉이 나겠군요."
김 선생은 그 눈물을 못 본 체하고 술잔을 들어 마시고 나서 껄껄 웃는다.
"내 난봉은 뉘 탓이게요."
한참만에 기현 어머니는 웃음의 소리처럼 하고 고개를 숙인다. 김 선생은 못 들은 것은 아니나 잠자코 말았다.
기현 어머니는 『뉘 탓』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심회를 또 한번 호소하려는 간절한 원망이었다. 김 선생을 만나지만 않았던들 마음과 몸을 볶는 듯하던 석 달 동안의 쓰린 고초도 안 겪었을 것이요, 에라 나가자! 하는 결심도 그렇게 쉽사리는 못 하였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래, 아이들은 다 어찌셨나요?"
"삼촌집에 우선 맡겼죠. ……참 그런데 건넌방은 세를 들였습니다. 학생 짐은 안방으루 옮겨 놓구."
이야기가 차차 실제적으로 들어갔다.
"원, 짐은 내 방에다 한데 몰아두시질 않구서?"
"선생님 방을 더럽히기두 싫구 건드리기두 싫어서 세를 달라는 사람이 있어두 참으라 하구 고대루 잠가뒀죠."
김 선생은 가슴이 저릿하였다. 『더럽히기 싫구』, 그 말을 감칠 듯이 씹어 보는 것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손님이 꼬일 판에 바깥일 때문에 오래 붙어 앉았지는 못하였다. 김 선생도 충복이나 하고서 열쇠를 달래 가지고 오늘은 혼자 가서 자기 손으로 불을 때고라도 금침을 둔 기현네에게 가서 잘 작정이었다.
그러나 색시들이 드나들며 대객을 하고, 기현 어머니도 함께 가서 시중을 들 터이니 기다려 달라는 통에 일어나지를 못하고 차츰차츰 술이 취하여 갔다.
"쥔아주머니 한잔 하슈."
기현 어머니가 들어오기 전에 부르던 버릇으로 『쥔아주머니』 에게 술잔을 내민다.
"쥔아주머니가 술 먹는 것 보셨어요?"
하면서도 기현 어머니는 술잔을 받았다. 영감이 살아서 간혹 반주를 자시면 한잔 먹어 보라고 주는 것을 마셔도 보고, 아이를 설 때 비위에 받아서 재강도 먹어 보아 한두 잔 술은 이겨내지만 이 집에 와서는 손님 앞에 나가지도 않거니와 실없이라도 술잔을 입에 대지는 않으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달랐다. 김 선생의 앞에서만은 예외였다.
"어떻게 내가 어서 부자가 되어야 우리 아주머니 같은 침모마님, 찻집마님을 모셔다 두겠는데……."
김 선생은 기현 어머니의 술잔을 받으며 차차 취담이 나왔다.
"아주머니 같은 이쁜 색시를 데려다 두시면 아씨께서 가만 계실까요?"
색시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
"침모마님이 이쁘면 저 이뻤지 우리 마누라가 무슨 아랑곳이람? 같이 살라니 걱정인가!"
"쥔서방님이 같이 살랴니 걱정이지!"
"천만에 우리 아주머니 같은 마님을 그럴 리가 있나!"
혀꼬부라진 소리로 실없는 말이나 옆에서 듣는 기현 어머니는, 자기 나이 김 선생보다 두셋은 위일 것이라는 생각에 고깝게도 들리고 무슨 뜻이 있어 하는 말 같아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부자가 되시면 침모나 찻집이나 밥 두 그릇씩 먹이시려는가? 행랑방 속이라두 어서 데려만 갑쇼그려."
기현 어머니의 눈에는 정열이 뻗치고 혀가 말라 목이 메는 듯이 열심으로 달려드는 최후 단판이었다.
"응! 그야말로 쪽박을 차더라두…… 좋지, 좋아! 하하."
하고 김 선생은 정말 좋은지 허청 나오는 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웃음을 커다랗게 웃고는 졸린다고 쓰러져 버린다. 기현 어머니는 도리어 다행하다고 생각하였다.
6
눈을 떠보니 어제 술먹던 그 방이다. 깨끗한 요 위에 가 누웠고, 얇기는 하나 새로 시친 이불을 덮었다. 기현 어머니의 금침 속에서 잔 모양이다. 김 선생은 좀 당황도 하였으나 팔뚝의 시계를 보니 다섯 시에 들어간다.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올려 따뜻한 속으로 파고 들어가며 기현 어머니가 어디서 자는지 기척을 내서 불러 보고 싶은 생각이 났으나 참아 버렸다. 어떠면 주인 마누라와 안방에서 잘 것이니 장지만 열면 일어날 것이나 그 유혹이 도리어 무섭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이 밝기까지 두어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이 지루하다. 잠을 청하려고 눈을 다시 감았으나, 당장 자기를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여자가 장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편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누웠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면 눈이 보송보송하여졌다.
첫째는 목이 마르고 입이 텁텁해서 담배라도 한 대 붙여야 하겠다고 가만히 일어나면서 보니 머리맡에 자리끼가 놓여 있다. 뚜껑을 벗기고 집어 마시려고 보니 화채다.
"내 그저 대접 이 야단스럽게 번쩍이더라니……."
하며 김 선생은 목을 축인 것보다도 그 마음이 고마웠다.
"깨셨어요? "
장지가 살며시 열리며 웃는 입, 코, 눈이 캄캄한 데서 차례차례 나타난다. 장지 밑에 지키고 앉았던 사람같다. 김 선생은 쳐다보며 소리없이 웃기만 하였다.
"아, 어떻게 깨워서 데려다 주실 일이지. 밤차를 타구 추워서 자지를 못한 데다 술이 들어가니까 그만……."
김 선생은 이상스럽게 오해나 할까 싶어서 변명이었다.
"왜, 어때요. 도리어 춘 밤중에 가서 불때구 하는 것보다 잘됐죠."
기현 어머니는 눈이 깔딱 질린 꼴이 밤을 꼬박 밝힌 모양이다. 새벽녘의 식어가는 방안은 쌀쌀하였다. 그러나 김 선생 앞에 덩그러니 꿇어앉은 기현 어머니는 추운 줄도 몰랐다. 전같이 몸이 떨리지도 않았다.
"추워 뵈는군요. 이 이불이라도 두르시지?"
그러나 기현 어머니가 "아뇨"하고 도리어 장지 밑으로 꽁무니를 빼는 것을 보고 김 선생은 벌떡 얼어나서 못에 걸린 자기 외투를 떼어다가 기현 어머니 등에 걸쳐 두었다. 기현 어머니는 가슴이 덜렁하고 얼굴이 벌개지며 아무 소리 없이 외투를 둘러잡아 들고 일어나서 제자리에 다시 걸며 웃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장지 밖에서 들을까 보아 이를 깨물고 ˙참았다. 이런 것은 화채 한 그릇 대신에 보여주는 친절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어제 취중에 하던 농담이 아무래도 진담 같아서 속에 맺힌 것이 풀리지를 않았다. 남자의 마음도 모르고 앞질러 손을 벌리고 대든 자기의 경솔한 태도가 후회도 나고 부끄러웠다. 김 선생은 자기의 부풀어 오른 기분을 진정하려고 담배를 빨고 앉았다가,
"이따가 한 시쯤 짐을 찾으러 갈 텐데 댁에 가 계시라우?"
하고 이사할 이야기를 꺼낸다.
"사택으로 가시겠어요?"
"그밖에! 댁에서 쫓겨나구 여기까지 쫓아와두 새우 잠이나 재우구, 하하하."
또 실없는 소리로 얼러맞추는 수작이다. 다가설 듯 설 듯하다가도 살짝 몸을 빼 버리는 눈치 같다.
날이 훤해지니까 셈을 치르라고 돈을 맡겨놓고는 김 선생은 회사에 출근한다고 훌쩍 가버렸다. 출근한다는 사람을 그대로 보내기가 안되었으나 온 지 며칠 안 되는 집에서 부산을 떨 수도 없고 너무 허겁지겁하는 꼴을 보이기도 싫어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기현 어머니는 오늘 아주 뒷방에 오려는 셋군을 규정낼 겸 좀 일찍이 집에 돌아왔다. 문전에서부터 너저분하니, 마루는 걸레 맛을 못 보아 부옇고 불과 삼사일인데 주인이 없으면 집 꼴이 이럴 제야 에미 떨어진 자식 꼴은 어떠랴 싶었다. 오는 길에 자식들을 들여다보고 오려 하였지만 길은 외지고 시간이 없어 이리 바로 온 것이다. 아랫방에서 김 선생이 가져온 선물이라고 사과 광주리와 멸치 봉지를 내놓는다. 떠나는 사람이 이런 것을 가지고 온 것을 보면 역시 김 선생은 무던하다고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기현 어머니는 학생들 살림을 내놓고 방마루를 치우려 한참 부산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오다가 일러 놓은 셋방살이꾼이 세전을 치르러 와서, 석 달치 구천 환을 받았다. 기현 어머니는 보증금은 나중에 성이 가시다고 세전만 석 달치를 받는 것이었다. 보증금을 받으면 방 셋에서 육칠만 환 들어올 거니 그걸로 돈놀이를 하면 매삭 근 만 환 뽑아 쓰는 줄도 알지만 그런 것은 떼일까 무서워서 엄두도 못 내는 것이요, 돈에는 담백한 편이기도 하였다.
집을 치우고 나서 아랫방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김 선생을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작은 동서가 기현이 형제를 데리고 달려들었다.
"어떻게들 알구 오나?"
"지금 사동으로 뵈러 갔었죠."
"응, 뭐, 무슨 일루? 아이들이 쌩 이질이나 안 부리는지?"
기현 어머니는 아이들을 사동집에 끌고 갔다는 것이 싫었다. 외투 조각들이라도 입혀 놓고 방한모에 운동화에 그만하면 주제꼴이 사나울 것은 없으나 아이들이 어머니를 안 닮고 찰 친탁을 하여 쫄딱보로 생긴 것들이 얄상스럽기들만 하고 콧물을 질질 흘리는 것이 늘 성화요, 어디를 가서나 말썽이기 때문에 남의 집에를 데리고 다니거나 남의 앞에 내놓기가 싫은 생각이 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사동집 같은 데는 아이들에게 보여서 좋을 것이 없고, 주야장천 음식이 널려 있는 집이기 때문에 끝의 것을 데리고 와서 있으라고까지 하나 애당초부터 못 오게 단단히 일러두었던 것이다.
"뒷방 손님이 올라왔대죠?"
"응, 그건 어떻게 알았나?"
어제 기현이가 장사동 이 근처에 동무를 찾아 놀러 왔던 길에 집에를 들렀다가 알고서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 뒷방을 저희를 주셨으면 하는데요……."
"뭣? 지금 막 세전을 받았는데! 그런데 왜 그래? 누가 들려는 거야?"
누가 들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네가 떠나오겠다는 것이었다.
작은 시아주비란 지금 서른 댓 되는 장사판으로 올려 네 식구를 빌어먹이는 사람인데, 건넌방에는 오만 환 전세를 들였지마는 이번에는 장사 밑천이 달려서 안방마저 십만 환 전세를 주려고 내놓았으니 아무래도 방 한 간을 비워 주어야 하겠다는 사정이다.
기현이 형제를 갖다가 맡길 때에 한 달만 두어주면 물론 먹는 것 땔 것은 대어줄 것이요, 이 월초 개학할 제는 아이 년이라도 하나 얻어 두고 다시 데려가마구 약속을 하였던 터인데, 지금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장사 밑천에 쫄리는 것도 사실이겠지마는, 아이 년을 두느니 방 하나만 주면 저희 식구가 들어와서 살림을 하며 두 아이를 거두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편이 아이들을 위해서는 좋을 듯도 하나 그렇게 쓸어 맡겨 놓으면 김장이니, 장작이니, 간장, 고추장 할 것 없이 헤프게 푹푹 먹고 때고 할 것이요, 살림이 난가가 될까 보아 싫었다.
"글쎄 그랬으면 좋지만 어디 방이 있나. 지금 세전을 내고 이따 떠나오기로 한 것을 물려 달랄 수도 없구……."
"그럼 두 달만 안방을 주실 수 없어요? 저 뒷방을 으레 주실 줄 믿구 저희두 계약금을 엊저녁에 받아 놓았는데요. 암만 해두 십 만 환 있어야 물건을 놓치지 않고 당장 본밑천을 빼내서 다시 전세를 물르겠다구 몸이 달아 야단인데요. 설사 그것이 안 되더라도 집문서를 잡히면 또 도리두 나설 거니까요."
집문서는 잡힌줄 아는데 그건 쓸데없는 소리라고 귓가로 들리나, 아무리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아도 자기의 자식들 뒤를 보아준다는 터에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 달 후에 봇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세들은 방이 나는 대로 안방을 내게 할 수 있으니 안방치 뺏길까보아 못한달 수도 없다.
"내가 지금 가 있는 데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터니까 안방을 내놓구 싶지는 않지만, 우선 그렇게 하구 집이나 잘 봐주게."
마지못해 승낙은 하면서도 기현 어머니는 자기 방까지 내놓고 이제는 이 집과 연이 끊어지려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샐쭉하며 언짢은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기현이 삼촌이란 사람이 바로 영감이 이 집문서를 기현이 명의로 바꿀 제 후견인으로 된 사람이다. 기현 어머니는 여반지 빠른 장사꾼인 시아주비를 총각 때부터 좋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더구나 그 후부터 못마땅히 생각하면서도 기현이를 위하여 좋도록 지내오는 터이다. 무슨 농간을 부리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드나 문서가 있고 어미가 있는데 무슨 재주를 부리랴 싶었다.
아이들에게 김 선생이 가져온 사과를 먹이고 싸주고 하여 마침 동서를 얼른 보내고 나니 김 선생이 트럭을 타고 왔다.
"고단하시지?"'
뒷방으로 가서 문을 열고 짐을 나르러 들어가며 김 선생은 웃어 보인다.
"선생님 덕분에 참 못 자기가 어제 첨이에요! 오밤중까지 주무시지를 않구 버스럭거리시며 남 잠을 자게 하셔야지."
기현 어머니는 그것까지 독백을 하였다.
"잘 압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안 올 사람이 와서 살이 내리시구 바람을 나시게 하구……하하하. 그 덕분에 이번에 승차가 되었으니 이 방이 명당입니다! 허허허."
"정말? 뭘로 승차예요, 과장?"
김 선생은 웃어만 보인다.
"그럼, 김 선생이 아니라 김 과장이시군. 한턱 내구 가세요."
"내죠, 오늘은 가서 정말 쥔아주머니께 한턱 내죠."
오늘 사동으로 또 온다는 말에 기현 어머니는 눈을 반짝 뜨며 생글 웃다가 선사 받은 인사를 비로소 하였다.
그러나 회사 일로 공부하느라고 늦도록 깨어서 버스럭대던 것을 자기와 같이 잠자리가 불편해서 고민하는 줄로만 여긴 자기가 부끄러웠다. 김 선생은 과장 사무취급으로 전근이 되어 와가지고 근실하게 회사 일을 연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구 하여 이번에 과장이 되고, 위로 출장을 갔다오고 한 것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여전히 이름도 똑똑히 모른 채 『김 선생』이었는데 과장이라니 저만치 쳐다보이고 과장 부인 된 사람은 얼마나 복력이 좋을까 샘도 났다.
트럭에는 김치 두 독과 패어 놓은 장작이며,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할 것 없이 우선 아쉰 것을 꼼꼼히 담아서 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부엌에 들어가서 넌지시 김 과장이 먹던 주발 대접과 여벌 도마며, 식칼, 물바께쓰, 대야, 비, 걸레까지 한 봇짐을 쌌다. 아랫방네가 들여다보고 깔깔 웃더니,
"이거, 누가 이사를 가는지 알 수 없구려? 안방까지 내놓구서 도망꾼이 봇짐 싸는구려."
하고 놀려 주었다. '
"내 팔자에 도망갈 데나 있답디까?"
기현 어머니는 웃지도 않고 기가 나서 대꾸를 하였다.
"안 가 보시려우?"
짐을 거의 다 싣는 것을 보고 김 과장은 은근히 귀띔을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따라가서 집 구경도 하고 싶고, 치우고 들여놓고 하는데 거들어주고 싶으나, 남자의 마음을 몰라 말을 내지 못하던 차에 가자고 하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부리나케 옷을 입고 나섰다.
운전대에 기현 어머니가 먼저 들어가 앉고 김 과장이 따라 들어가자니 앞뒷집에서 나와 서서 구경을 하던 아낙네들은,
"됐어! 걸맞는데!"
"아, 온전히 배길 수야 있나. 참 정말 팔자 고쳤다."
"이번엔 그이가 과장이 됐대."
뒷방에서 한 이야기가 벌써 엿들은 아랫방 댁네의 입에서 나왔다.
"엉, 과장 부인이군. ……그래야, 첩 아닌가마는……."
이렇게들 주거니받거니하는 것을 귓가로 들으며 기현 어머니는 얼마쯤 의기양양한 낯빛으로 뚝 떠났다.
새집에는 과장댁이라 회사에서 벌써 젊은애와 사동(使童)이 와서 쓰레질을 하고 불을 때어 놓았다. 많지 않은 세간에 끌어들이는 것은 젊은애들에게 맡기고 과장과 기현 어머니는 방 치장에 골몰하였다. 기현 어머니는 행주치마를 싸 가지고 와서까지 열심으로 일을 하였다. 남자는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이요, 이런 때 자기가 거들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방 치장에 김 과장과 의논을 하여 가며 책상을 이리 놨다 저리 놨다 하고 테이블을 마주 들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 평생에 처음 해보는 일이요, 젊은 내외가 신접살이를 꾸미는 듯한 그런 기분만도 맛보는 것이 좋고 만족하였다.
기현 어머니는 학생방까지 정돈이 되니까 부엌으로 내려왔다. 김칫독을 묻는 동안에 내일부터라도 당장 아쉰 부엌 세간을 김 과장과 의논하여 가며 발기를 적어 사러 보내고 집에서 가지고 온 것들은 탁자에 늘어 놓다가,
"이 주발 대접은 드리구 싶지만 아가씨 오시거든 도루 보내세요."
하고 일렀다.
"왜, 돌아간 영감 것인 게군요?"
"아뇨! 선생님 것으로 장만했던 거예요. 하지만 내가 드렸대서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기현 어머니는 구슬픈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 밥을 짓고 집을 지킨다는 사동에게 부엌일을 자세하게 일러놓고 저의 집 일이 급해서 허둥지둥 나오면서도 오늘 저녁에 오겠느냐고 물으니까 김 과장은 몸이 고단하다고 어름어름하였다.
7
김 과장은 이사를 간 뒤에 십여 일이 되어도 사동집에는 발그림자도 아니하였다. 그동안 저번 일요일에 기현 어머니가 빠져 나갈 수 없는 몸을 빼어 오래간만에 가 보았으나 김 과장은 놀러 나가고 아이놈만 쓸쓸한 집속에 우두커니 지키고 있었다. 생각하면 짐까지 찾아갔으니 자기에게 볼일은 다 보았는데 무엇하자고 돈 들여가며 이런 집에 올 리도 없고, 나 같은 사람을 찾아보랴 싶었다. 시골서 올라오던 날 찾아왔다가 마침 이러한 집이니까 한때 자유스럽게 터놓고 놀다 갔을 뿐이지, 그 역시 짐 내달라고 부탁 왔던 길에 술 팔아 준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 나이에 과장이 되고, 앞으로 출세할 사람이 이런 술집에나 드나들 리 없고, 나이 먹고 무식하고 누구나 만만히 보는 과부쯤 눈가로도 안 보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보았다.
그래도 저번에 찾아갔다가 못 만났으니 혹 지난 결에 잠깐 들여다보기라도 할까 했더니 보름이나 되는데도 모른체한다. 가다가다는 불현듯이 뛰어가고 싶기도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버렸다.
이번 공일에도 대강 안주 마련만 해놓고 나서 보았으나 차마 김 과장 집으로 발길이 나가지를 않았다.
『쉽게 말하면 밥에미거나 술집 더부살이 신센데!』
이런 생각이 버쩍 들자 김 과장이 자기를 얼마나 깎아 볼까 새삼스럽게 어깨에 찬땀이 흐르는 것 같아서 발길을 장사동 집으로 돌리고 말았다. 기현 어머니는 보는 사람만 없으면 그대로 길바닥에서 울고 싶었다.
집에를 들어와 보니 구더기 속에서 네 가구가 사는 것만 같다. 콧물을 흘리며 으르르 떠는 어린것들은 날치고, 장작은 벌써 떨어졌다 하고, 모든 식구가 무어라도 가지고 와서 내놓으라는 낯으로 자기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집 꼬락서니를 보면 공연히 벌이한답시고 나선 것이 후회도 나나, 돈 한 푼이라도 자기 주머니만 노리는 것을 보면 역시 자기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요새는 시아주비도 물건이 팔리지를 않아 벌어 오는 것이 없다 한다.
"아주머니, 내 말 좀 들어 주셔야 할 게 있는데요."
물건이 나가지를 않아서 오늘은 쉬겠다고 들어앉았는 시아주비가 위협하듯이 눈을 말똥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기 좀 보세요. 메리야스를 저렇게 쌓아 놓구만 있습니다. 저래뵈두 이십만 환 값이 나갑니다. 십만 환 들여서 한 삼만 환 빼 썼지만 원체 돈이 마르니 물건이 나가야죠. 그런데 말씀입니다……."
저도 말이 하기 어려운지 뜸을 들여서 한참 있다가 입을 악물고,
"이 집문서 잠깐만 빌립죠! 저것 팔아서 당장 찾아 놀 테니."
하며 턱을 치받치고 형수를 노려본다.
"그건 안 돼요. 없는 셈 치세요. 왜 댁의 것은 어쩌구 하필 이 집문서여요?"
기현 어머니는 눈을 똑바로 뜨고 대어들 듯이 딱 잘라 말하였다.
"집의 것이 있으면 이런 말씀할까요?"
"있거나 없거나 난 모르겠어요. 이 집이 어떤 집이라구 그러세요? 형님이 평생을 바쳐가며 형님의 뼛골로 된 건데, 그래 그걸 손을 대요? 댁의 것을 넣을 제두 곧 찾는다구 넣었지 누가 집 뗄 작정하고 잡혔을까요."
기현 어머니는 가뜩이나 화가 치미는 판이라 수숙지간이 아니면 좀더 들이대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안방차지를 하고 나더니 집문서까지 내놓으라니 기가 막혀 말이 아니 나왔다.
"글쎄, 사정올 들어보세요. 당장에 이십만 환만 있으면 음력설 전에 명태 장사를 하자는 건데 이익은 아주머니하구 반타작하십시다요."
"난 모르는 말예요. 그런 염체없는 말씀 하시려거든 이 방 내놓고 댁으로 다시 들어가슈. 나두 다시 들어 올 테니."
"방을 내놓으라구요……?"
시아주비는 눈을 곤두세우더니,,
"왜, 선화당 같은 과장 사택은 뭘하구요? 흥!"
하고 고개를 위로 꼰다.
"뭐, 어째요?"
하고 기현 어머니는 바르르하였으나 좀 뜨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리가 뒤떠들구 세상에 낯을 들 수가 없는데 언제적부터 우리 형님을 알뜰히 생각하였습니까? 뭐, 형님 뼛골루 세운 집이라구?"
젊은 시숙은 여전히 외면을 하고 앉아서 비꼰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세상에 낯을 못 들 게 뭐예요?"
기현 어머니는 발악을 하고 덤비었다.
"삼년상두 안 마쳤에요! 저것들을 생각하기루 발길이 돌아서요?"
꽁꽁 안간힘을 쓰며 가시가 든 소리로 꼬집는다.
"글쎄, 내가 뭘 어쨌다는 것을 분명히 얘기를 하세요. 사동정에 간 것을 잘못이라면 모르지만 집에 있던 사람이 이사가는 데 따라가서 거들어 준 것이 이씨집 가문 깍일 것이 뭐란 말예요."
"듣기 싫어요. 형님 상청은 없지만 자식 버리구 상청 버리구 나갔으면 남 됐는데 다시 무슨 말이요. 어디를 다시 들어온다는 거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위협을 하는 것이다. 뜰에는 앞뒤 셋방살이의 세 가구 식구들이 모여서 숙덕거리고 동리 집 여편네들이 고무신짝을 거꾸로 뀔듯이 급히 모여들어 바깥은 방안보다 부산하다.
"이젠 더 할 소리 없소? 이 집 한 채 먹자구, 돌아간 형님 식구를 거리루 내몰구, 솔개 까치집 뺏듯 차구 앉아 가지구 흉계를 꾸미구, 있는 소리 없는 소리 그런 더러운 소리를 뒤집어 씌워야 옳단 말야?"
기현 어머니는 마주 소리를 치다가 울음이 탁 터지고 말았다.
"무슨 변명이든지 하슈, 난 기현이의 후견인이요! 내가 집문서를 도둑질을 해내거나 집을 뺏자는 것이 아니라 조카자식 벌어 먹이자는 것이요, 그나마 잠깐 빌리는 것이니까……."
하고 시아주비는 일어서 버린다.
"뭐, 어째요? 집문서 어디 갔니? 네 도장은?"
기현 어머니는 울음이 뚝 끊치고 해쓱한 얼굴로 기현이를 쳐다보며 삼층장 속을 뒤져보려고 일어서려니까 기현이란 놈이,
"작은 아버지 찾아드렸어!"
하고 코를 훌쩍한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일어선 기현 어머니는,
"응?……."
하고 눈이 퀭하게 걷어질리고 백랍 같은 얼굴빛이 파랗게 죽으면서 곤두박이로 쓰러져 버린다. 아이들이 으앗! 소리를 치며 어머니를 부르고 법석이 나는 것을 뒤에 두고 마루끝에서 구두를 신던 기현이 삼촌은 발딱 일어나 나가버린다.
〈1949년〉
2016년 11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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