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7월 18일 수요일 맑음
새벽 다섯 시. 아산의 일이 시작됐다.
복합비료 네 푸대를 싣고 출발했다. “아이구 이 뜨거운 날에 어떻기 한다니 ?” 엄마가 쫓아나오시며 걱정을 하신다. ‘내 몸만 괜찮으면 내가 해줄 텐데...’ 하시며 안타까움으로 전송을 하실테지. “걱정마요 엄마. 이 보다 더 한 일도 얼마든지 해냈어요” 그러나 마음은 가볍지가 않다. 들깨에 비료주는 일이 처음인데 잘못주면 죽을수도 있다니까....
시골 들녁에는 새벽부터 밭에 나와 계신 분들이 여럿 계셨다. 폭염이 바꿔놓은 풍경이지. 비료푸대를 뜯어 목에 거는 통에 반을 쏟고 목에 걸고 일어서니 10kg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한 주먹 비료로 한 포기에 두 군데, 두 포기를 주라고 했지’ 몇 번을 연습을 했지. 내가 원하는 자리 포기에서 한 뼘 떨어진 곳에 정확하게 떨어트리기가 쉽지 않았다. 허리를 바짝 구부리고 해야 하겠는데 목에 건 비료통 무게 때문에 몇 번 만에 허리가 아파 온다. 못 할 일이엇다. ‘에라 안 되겠다. 약간은 부정확하겠지만 허리를 세우고 팔을 펴서 비료를 조금씩 떨어트렸지. 정확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조금씩 나아지더라.
한 고랑을 겨우 끝내고 밭 전체를 둘러보니 지금까지 흘린 땀은 새발에 피네.
고개가 푹하고 떨어진다. 이 걸 언제 다하나 ?
1000평의 밭이라는데 밖에서 바라보면 아담하니 작아보이는데, 막상 일을 하러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부터는 바다처럼 넓어 보인다. 작은 밭에서 일하기가 훨씬 쉬운 거 있지. 밭이 넓으면 미리 질려버리고 일 할 의욕도 꺾어지더라.
그 때부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밭고랑 끝은 쳐다 보질 않고 발 밑만 바라봐야지. 뚜벅뚜벅 인고의 시간이다. 유일한 낙은 한 푸대를 다 뿌리고 그늘에 앉아 들이키는 얼음물과 담배 한 대. 내 뿜는 담배 연기에 속의 열기까지 담아 뿜어내는 거지, 엄마가 싸주신 간식 보따리에는 음료수, 두유 참외 벗긴 것 얼음 물 등 다양하다. 다 먹을 수 없을 정돈데 남겨가면 서운해 하신다.
열 시까지 겨우 일을 마쳤지.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하기까지 하다.
“아이구 우리 아들 딱해서 어쩐다냐 ?” “여기 쉬원한 거, 이거, 이거, 먹어라”
“샤워부터 해야죠” “그려 그려 얼른 나와” 연신 뭐라도 멕이려는 엄마. 내입에 들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실 때가 제일 환해지시는 거 있지.
“세상에 에미와 자식 사랑보다 더 한 게 있을래나 ? 자식은 모르겄지만....” 엄마 말에 가슴이 꽉 막힌다. ‘엄마 미안해요’ 이것 저것 멕여놓고는 또 밥상을 들이미신다. 삼계탕에 불고기에.... “엄마 나 배 불러요” “그래두 쬐끔만 더 먹어” 실갱이가 길어진다. 그 다음 때부턴 자는 거지. 왜 그리 졸린 건지....
참 힘들다. 작년에도 38도까지 올라가는 더위가 힘들었다지만 올 해와 비교하면 이빨도 안 난 것 같다. 눕자마자 골아떨어져서 네 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자 또 나가야지. 이젠 제초제다.’ 아산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야 한다‘ “얘, 조금 더 있다가 나가. 저렇기 더운디....”
들깨 포기 사이로 뽀족뾰쪽 돋아나는 어린 풀들이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사람이나 짐승, 식물들도 새끼때는 다 예쁜 법인데 이 잡초들은 왜 그리 미운지...
한 말 들이 통 열통을 준비했지. 제초제를 탄 후 메고 일어섰다. 약이 들깨에 닿지 않게 조심해서 뿌리자니 시간도 더디고 힘도 더 든다. 조금만 잘못하면 잡초를 죽인다는 것이 들깨를 죽이느라 고생하는 꼴이 된다. ‘천천히 천천히’하면서 분무기 페달을 서서히 눌러대려 노력하지만 얼마 후에는 최고 속도로 눌러대는 거 있지.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는 거다.
서 너 통 후부터는 어깨가 결리고 페달을 굴러대는 팔도 아파 온다. 게다가 극도로 억제하며 조심하다보니 휘휘 휘둘러대는 속 쉬원함도 없어 답답하다.
넓은 밭 한 가운데 뙤약볕 아래서 인내도 한계가 있더라. 그래도 내일 정산에서 할 일이 있으니 무한정 시간을 보낼 수도 없으니....
해가 넘어가고 어두워지니 들깨, 잡초의 구별이 어려우니 일을 접었지. 오늘 총 일곱 통. 그러나 아직 반도 못 했다. 내일 하루 더 해도 끝내기 어렵다. 너무 힘들다. 이런 날은 잠도 잘 오지 않을 거다. 한 잔 해야지.
낙진이를 불러냈지. “얘 이 멍청아. 잎이 넓은 것은 안 죽이고, 뾰죽한 것만 죽이는 제초제가 있어. 휘휘 뿌려도 들깨는 안 죽고 풀만 죽이는 거야. 그 거 타서 휘휘 뿌리면 금방 끝나지. 내가 한 병 줄테니까 낼 새벽부터 뿌려 봐”
‘허 그래 ?’ 제 집까지 데려가더니 농약 한 병을 쥐어 준다.
제초제가 들깨에 묻을까봐 조심조심, 바람 한 점 불어와도 약이 날릴까 봐 멈추다가 휙휙 뿌릴 수 있다니 얼마나 속이 쉬원한가.
술 한 잔 했겠다 마음까지 편해지니 잠자리까지 편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