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21-08-10 03:00
‘나는 누구인가’ 묻는 권진규 자소상[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인생은 공(空), 파멸.” 그의 유언이었다. 생애를 마무리하면서 구체적인 부탁 하나를 추가했다. “화장해 모든 흔적을 지워 주세요.” 흔적 지우기. 그는 육신의 깨끗한 정리를 원했다. 인생무상일까. 하지만 그는 처절할 정도로 작품에 몰입했다. 그래서 시류와 타협할 여유가 없었다. 내면세계로 침잠하면서 본질을 추구한 결론, 그것은 바로 공(空)이었다. 사실 이 지구상에 영원한 존재는 없다. 한번 일어선 것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다만 시차(時差)가 있을 뿐이다. 탄생은 곧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파멸은 새로운 탄생을 예고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동의어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가르침의 울림이 크게 온다.
1973년 5월 어느 저녁나절. 51세의 독신남이던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외롭게 이승을 하직했다. 흔적도 남기지 말라 했는데 그의 시신은 망우리공동묘지(지금의 망우묘지공원)에 지금도 남아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전시장에서 그와 인사를 한 바 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 그 무덤 앞에서 침묵으로 망자와 만나게 됐다. 묘비명은 권진규(1922∼1973). 지금 미술계에서 그의 이름은 뜨겁다. 사후에야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권진규는 6·25전쟁 시기 일본 유학을 한 특이한 경력의 작가다. 2009년 그의 모교인 무사시노미술대학은 개교 80주년 기념행사로 권진규를 선정해 재조명했다. 이때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은 회고전을 공동 주최했다. 한일 양국이 함께 권진규를 주목하고 대대적으로 기리는 사업을 펼쳤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권진규의 작품은 흙을 구워 만드는 테라코타. 단순한 형태로 한국적 리얼리즘 정립에 목표를 두었다. 작가는 신라시대 미술을 위대하다고 보았고, 동시대 미술은 외국 작품 모방으로 사실성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본질 추구. 권진규 작품에서 구도자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그는 흉상을 많이 만들었다. 고개를 똑바로 들어 정면을 주시하는 정면상이다. 젊은 여성이 많은데 모델은 평소 가깝게 지낸 지인들이다. 실존인물을 탐구하여 구원(久遠)의 여인상을 만들었다. 이들은 머리카락조차 무겁다는 듯 삭발로 표현됐다. 게다가 어깨의 힘마저 빼 어깨선을 가파르게 처리했다. 그래서 권위의식이 없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한마디로 참선삼매의 선승(禪僧)과 같다. 내면세계를 읽게 한다. 비구니 초상 작품은 물론이고 자신이 승려의 법의를 걸친 모습을 담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自塑像)’도 있다. 구도자의 풍모는 권진규 예술의 특징이다.
권진규는 자신을 모델로 한 자소상을 여럿 만들었다. 이 역시 ‘권진규 스타일’대로 다소 무거운 표정이다. 대개 자존감이 강한 화가들은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내면세계로의 침잠, 사유형 작가의 또 다른 변주라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일까’ 끝없이 되묻는 질문. 자신의 얼굴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고자 한 작업이다. 이 얼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얼을 담는 꼴’, 바로 얼굴, 과연 누구의 것인가. 스스로 경책하는 행위로서의 자화상 그리기. 그는 왜 자소상을 많이 만들었을까. 왜 여성 모델 작품이나 자소상이나 같은 형식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려 했을까. 이는 바로 구도의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근대 조소작가의 선구자는 김복진(1901∼1940)이었다. 그는 1925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예술세계를 펼쳤다. 문예운동과 진보적 사상운동 등으로 20세기 전반부의 빛나는 존재로 우뚝 섰다. 말년의 김복진은 불상 작업을 다수 진행한 바,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도 목록에 포함돼 있다. 당시 요절한 김복진이 남긴 미완의 불상은 뒤에 권진규의 참여 아래 완성됐다. 김복진 계보를 이었다는 점에서 권진규의 미술사적 위상이 평가되기도 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일생에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세기의 기증품 가운데 명품을 선정해 공개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주옥같은 작품 가운데 ‘자소상’(1967년) 등 권진규의 작품 6점도 있다. ‘자소상’은 권진규 특유의 흉상 형식을 갖춘 테라코타 작품이다. 삭발한 두상에 엄숙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손’(1963년)은 왼손을 해부학적 접근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활짝 편 손바닥, 하늘을 향하여 우뚝 세운 손, 상징성이 큰 형상이다. 이외 출품작은 채색 평면의 부조 작품이다. ‘코메디’(1967년)는 해학적 인체 표현으로, ‘곡마단’(1966년)은 전통적 건칠 기법의 작품으로 조형성이 뛰어나 눈길을 끈다. 이번 이건희컬렉션 기증품 1488점 중 권진규 작품은 31점이나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존 소장품 조각 24점과 드로잉을 합친다면 총 60점가량이나 된다. 권진규 개인전을 꾸릴 수 있을 수준이다. 미술관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권진규의 작품은 뜨거운 침묵 속 내면세계와 구원의 구도자를 만날 수 있게 한다. 어깨의 힘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의 무게조차 버거워 내려놓은 모습, 감동적이다. ‘자소상’은 다시 한 번 자문하게 한다. 진정 나는 누구일까.
* 오늘의 묵상 (221118)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이 일화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바로 그날에 이루어집니다. 그만큼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의 메시아 왕권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메시아 예수님의 왕권은 세속적 의미에서 가리키는 지배와 통치를 위한 ‘권력 쟁취’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분의 왕권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를 올바르고 합당하게 섬기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이 구절에서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은 이사야서 56장 7절의 인용입니다. 곧 성전의 본래 기능이 기도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강도들의 소굴’은 예레미야서 7장 11절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사람들이 성전의 본래 기능을 왜곡하여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마침내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상인들을 꾸짖으신 일과 성전에서 가르치신 일이 유다교 지도자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구약과 신약 시대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기도의 집’인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거나, 왜곡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가톨릭신학대성신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