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량통신19. 국보법 위반 압수목록 제68호 ‘아이들의 통일편지’
- 법률적 가치가 교육적 가치의 위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통신에는 압수목록 68번, 69번, 70번 ‘아이들의 통일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이 북녘의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를 시작한 것은 2002년 5월부터였습니다.
그해 3월 초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후,
관촌중 학생들은 나름대로 소박한 반전평화운동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반전 버튼 운동, 미국상품 불매운동, 인터넷 반전카페 개설 등으로 미국에 저항한 셈이지요.
4월 말경 이라크가 완전히 점령을 당하자,
학생들은 한반도 전쟁을 우려하며 그것을 막기 위해 통일운동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통일운동의 방법을 모색하던 차에 당시 2학년이던 김신철과 이해상 학생이
인터넷에서 떠돌아 다니는 북녘 학생들의 편지를 모아 와서 ‘통일편지 쓰기’를 제안했습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가상공간에 익숙하지도, 허용적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상의 소통행위가 갖는 익명성 한계를 우려하는 기성세대들은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미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는 새 세대들입니다.
당시 나는 며칠 망설임 끝에
아이들의 자발성을 최대로 존중하고 키워야 한다는 교육자의 자세로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통일편지는 이미 만 천통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중학생 8,924통 cafe.daum.net/nowar1, 고등학생 2,448통 cafe.daum.net/nowar2)
구체적 대상을 정하고 쓰는 ‘통일편지 쓰기’ 운동은 학생들에게 지속성과 흥미를 유발했고,
그 안에 교육조건을 개입시킨 나는 학생생활의 내면적이고 실체적인 이해뿐 아니라
논리력 창의력 성취감 등 교육목표를 모두 다 신장시키는 계기로 잡아내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편지를 10통 이상 쓰면서 스스로 ‘국가보안법’의 실체도 알았습니다.
지구 반대편 미국도 실시간 통신이 가능한 시대에 왜 편지 한통 못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관촌중 재직 당시 나는 한번도 ‘국가보안법’을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주제가 어린 중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울 것 같고, 또 좋은 생각만 하고 살기도 부족한
꿈 많은 성장의 날들에 분단의 장벽으로 기생하는 음흉한 힘과 기재를 가르쳐 주기 싫었던 까닭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인터넷 등 열린 조건에 익숙하기 때문에 분단장벽의 실체를 쉽게 알았습니다.
이 것이 학생들의 집약된 의사 표현은 이렇습니다.
‘편지 한통 못 가게 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편지를 쓰는 학생 수가 늘어나고 문화중, 신흥고, 해성고 등 이 학교 저 학교로 퍼지자,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요구하는 바가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편지 쓸 대상의 학생들을 늘려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이렇게 과제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북한 교육기관을 방문할 기회가 왔습니다.
전북 교육청에서 북한 학생 종이 돕기 모금액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 방북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 대표단으로 내가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북에 가서 여러 교육기관을 둘러보다가
북측 교육 관계자들에게 학생들의 편지를 받아갈 수 있겠느냐고 의견을 물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소년궁전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직접 간단한 편지를 써 달라고 주문을 하였습니다.
김복신, 김지해 두 명의 학생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소중히 메모장에 담아 남으로 돌아 왔습니다.
현재 이 편지 원본이 이번 국가보안법 압수목록이 되어 검찰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다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어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나는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 공동체의 교사로 충실하도록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늘 성찰하며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를 교육을 통해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어디에서든 살아있는 수업교재를 확보해야 하고,
또 내가 받아온 아이들의 편지가 국가보안법 위반 대상이 된다면,
그런 법은 반인간적 파렴치한 교육 탄압의 법이기 때문에 격렬하게 저항을 해야 합니다.
법률적 가치가 교육적 가치의 위에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2007년 5월 3일 김형근 씀
◐ 가고 싶어 갈 수 없는 마음들...(남에서)
☞ ♨♡♨
평양 광복거리중학교 3학년3반 김복신에게 띄우는 편지
안녕? 복신아
나는 동고에 재학 중인 이형수라고해
편지를 자주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이 너무 아프단다.
사실은 얼마 전에 쓰고는 누구에게 썼는지도 잊어버렸어 ㅋ~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교생활 때문이야.
우리가 기계도 아닌데 정말 너무한 것 같아..
나라가 분단된 탓에 우리는 같은 한 동포인데도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구나.
빨리 통일이 되어서 이 편지 답장도 하루 빨리 받고만 싶은데..
무너질 듯 말듯 통일의 벽이 여전히 높은 것 같아
우리는 따스한 봄을 맞아 봄이 되면 벚꽃 축제를 하는데
너희는 지금 이런 축제들이 있는지도 무얼 하는지도 잘 몰라서
많이 궁금하기도 해
우리는 곧 있음 수학여행을 일본으로 가는데
많이 기대가 되어.
일본은 과거에 우리에게 잘못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본받을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
그곳에는 한국의 문화와 많이 닮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지만 일본의 좋은 점만 배워서
남과 북이 통일되고 잘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해
더 쓰고 싶은데 수업시간이 다 되어서 이만 마칠게
다음에 또 소식 전할게.
2006년 11월 4일
군산동고등학교 2학년3반 이형수가
우
리
민 통
족 일
끼
리
☞ ♨♥♨
평양 문수중학교 4학년 3반 김지해 에게
지해야 안녕~ 나 너 찍었어.
앞으로 계속 너에게 편지를 쓸 테니깐 ㅋ
우리 선생님이 작년에 교육청사람들과 함께 평양 방문을 했는데
너의 글을 받아 오셨더라.
"군산동고학생들에게" 로 시작한 너의 글이 신기하기도 하고 오래 기억이 남네...
그래서 너에게 편지쓰기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오래전인데
이제야 편지를 쓴다. 그래도 앞으로 열심히 쓸 테니까 ㅋㅋ
나는 군산동고등학교에 다니는 김상정이라고 해
지금 한창 벚꽃이 피어 아름다운데 거기는 어떠니
4월 16일 수학여행을 앞둔 시점이라서 학업에 너무 게을러 진 것 같아
약간 행복한 고민이야
그곳은 수학여행이란 게 있는지도 궁금하구나.
이 편지를 쓰면서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런데 38선 때문에 갈 수 없겠지...
이 편지도 못 가겠구나. 이게 뭐람~ 지척에 두고서...
국가를 뛰어넘어 채팅도 하고 여행도 가는 국제화 시대에
같은 민족끼리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
하루 빨리 통일의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
편지도 보내고 놀러도 가고...
더 이상 우리들의 마음이 슬퍼지지 않도록
우리 함께 통일의 그날을 위하여 작은 노력이라도 무엇이든 하자
통일이 되면 너를 한번 꼭 만나보고 싶어 하는
상정이가 지해에게 쓰는 첫번째 편지야
잘 있어
2007년 1월 7일 군산동고 2학년 3반 김상정이 보낸다.
◑ 가고 싶어 갈 수 없는 마음들...(북에서)
첫댓글 효량님이 관촌중 재직 당시 ‘국가보안법’을 제대로 가르친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통일쟁이들은 알고 있지요..그래서 어른도 아이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점심시간이면 양지바른 곳에 모여앉아 미국과 소련에 대해 토론하고 선배들을 따라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데모를 하던 사춘기 시절을 40년이 넘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효량님 같은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통일교육이 뒷걸음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