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는 중국집에서나 먹는 줄 알았어요”
최저생계비 한달나기 체험단, 노천 욕실·재래식 화장실에 ‘뜨악’
서울 지하철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와 탄 03번 마을버스. 참여연대 담당자의 설명에 따라 마을버스 종착역인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이 차를 타고 등산을 하는 기분이랄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 길의 정상에 낙산공원이 있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공원 입구에 선 기분은 상쾌하고 시원했다. 하지만 옆으로 조금 눈을 돌리는 순간, 가슴에 먹먹함만이 가득 차올랐다. 저 멀리 내다보이는 고층의 빌딩과는 상반되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단층 슬레이트 지붕의 가옥들이 낙산공원의 수려한 외곽 한 켠에 초라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 이렇게 높은 곳에도 집이 있구나…”
참여연대 손대규 간사의 안내로 들어선 서울 종로구 장수마을. 낙산공원의 성곽을 따라 들어선 장수마을 골목. 왼편에는 낙산공원이 오른편에는 장수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성인 두 명이 근근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꼬불꼬불한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간 후에야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캠페인 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체험단은 매일의 지출을 기입하고, 남은 잔액으로 최대한 알차게 생활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하나 둘씩 참가자들이 본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하는 인원은 모두 11명. 이 가운데 3명은 직장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대학생이다. 직장인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아침식사 후 모여 그날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7월 21일. 한 끼 식비 2100원으로 생활한지 벌써 20일이 지났다. 그동안 다이어트 아닌 다이어트로 참가자들의 몸무게도 많이 줄었다. 김만철씨(상지대 3년)는 20일 만에 5kg이나 줄었다. 육식을 좋아하던 그가 할당받은 식비로 육식은 어림도 없다. 그나마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달걀만큼은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 달걀 후라이에 달걀 찜, 달걀말이 등 달걀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에 자신 있단다. 김 씨는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모두 30개들이 달걀 한판씩을 샀다”면서 “헐값에 주시길래 횡재했다며 사갔지만, 싼게 비지떡이라고 상하기 일보직전의 달걀이었다”며 씁쓸해 했다.
체험 20일만에 체중 줄어··· 뜻하지 않은 다이어트
현재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50만4340원, 이 가운데 8만 7000원은 주거비, 휴대폰 등 표준보유물품비로 3만8800원이 빠진다.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가 50만원이면 4인 가구면 200만원은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돼, 4인 가구는 136만3090원이 책정돼 있다.
이번 체험단은 1인 가구 2가구와 2·3·4인 가구 각 1가구씩이다. 3인 가구와 4인 가구는 동네 주민의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프로그램은 도시락 배달 및 쪽방 방문, 거리 캠페인, 무료진료 등 다양한 활동들을 펼친다. 4인 가구에 참여하고 있는 김만철 씨와 박은지 씨(동덕여대 3년)는 오늘 늦게 일어난 바람에 아침식사는 빵으로 대체했다.
박 씨는 “단무지는 자장면 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반 가정집에서 반찬으로도 먹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뿐 아니라 한 달 동안 살게 될 집을 방문하고도 처음엔 적응이 안 돼 고생이 많았단다. 할머니 혼자서 생활하는 집에 3명의 체험단이 들어가던 날. 수세식 화장실은 고사하고 볼일을 본 후 바가지로 물을 퍼 날라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직면했던 것.
난생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20여일이 넘어서며 어느새 익숙해 졌다고 한다. 욕실도 마찬가지다. 변변한 욕실이라기보다는 보일러실을 개조, 거의 노천샤워를 하다시피하며 뜨거운 여름을 맞고 있었다. 그는 “먹는 것도 먹는 것이지만,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에 대한 적응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며“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계속 살라고 한다면 당연히 ‘노’ ”라고 말했다.
▲ 오전 11시, 도시락을 기다리는 독거노인을 위해 한 사람당 6가구의 할아버지·할머니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2인 가구 체험단인 이소영(동덕여대 3년)씨는 박씨와 대학동기. 평소 빈민쪽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이번 체험을 통해서 이론의 빈곤과 현실의 빈곤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단다. 이씨는 “같이 체험하는 언니가 6년전 이 체험캠페인에 참여를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최저생계비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하더라”며 “물가는 많이 오른 반면, 최저생계비는 최소한의 생활도 영위할 수 없을 정도 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기와서 비누가격이 천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며 “누구는 가방 하나에 40~50만원 주고 사는데, 이 돈이 누구에게는 한 달 생활비라는 사실이 씁쓸하고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는 또 체험하면서 있었던 씁쓸한 일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샴푸나 린스 뭐 이런 생필품도 쓰면 안되는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매일 쓰는 수기에 샴푸이야기를 썼더니, 댓글에 무슨 샴푸를 쓰느냐, 사치 아니냐, 비누나 써라는 등 온갖 글들이 올라와 놀랐다”고 했다.
일반적인 생필품이, 저소득층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충격과 실망이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시원한 집에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며 편안한 방학을 보낼 수도 있지만,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사회복지현장을 알고 싶어 뛰어든 체험활동을 통해 느끼고 배우는 바가 크다.
박소영씨는 “처음에는 아예 친구들한테도 캠페인에 참여한다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고 친구들이 전화와서는 그런 걸 왜 하느냐고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어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나홀로 노인가구··· 폐지수집으로 생활
전 날 있었던 일들에 대한 간단한 수다와 오늘 일정 확인을 위해 모인 자리는 1시간 남짓 이어졌고, 바로 다음 일정인 도시락 배달로 넘어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한 달간 지원을 받아 실시하고 있는 도시락 배달은 30명의 독거노인들에게 점심을 배달하는 것. 마을 주민들과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도시락 배달은 20여일이 넘어서며,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 체험단은 한달간 한시적으로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지만, 받는 독거노인들은 이 또한 감사 하다며 인사말을 빼놓지 않는다.
참가자당 6개의 도시락을 들고 각자가 할당받은 집으로 향했다. 소영씨가 가야할 집은 할아버지 2가구와 할머니 4가구다. 대부분이 낮에는 폐휴지라도 줍기 위해 나가는 바람에 빈집이 많았다. 그 가운데 한 할아버지집에서는 노인요양보호사와 함께 운동을 다녀온 할아버지가 샤워를 끝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기는 모습이 손녀를 맞는 듯해 보였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그동안 바깥 구경 못하고 살다가 오늘 처음으로 운동을 나갔다 왔더니 너무 기분 좋다”며 김소월의 ‘못잊어’라는 시구절을 읊어 주기도 했다. 박씨는 “할아버지가 치매가 조금 있으셔서, 항상 도시락을 갖다드리면 김소월 시 이야기를 하신다”며 “이제 할아버지가 읊어 주는 김소월 시를 들을 수 있는 날도 몇일 남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뜨거운 뙤약볕아래 층계를 오르내리며 도시락배달을 마친 이들은 2100원의 식단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출처 - 복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