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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크고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번드르르한 가운데 어떤 허술한 점을 보고, 만나면 더 기분이 나빠지는 나의 고약한 성질머리 때문에, 명동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일은 늘 내겐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미국에서 온 내 동료이며, 같은 회 수녀인 베스와 함께여서 조금 더 마음이 쓰였다. 나는 그에게 명동 성당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다고, 그런데 이젠 더는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성당을 향해 올라갔는데, 정말 더는 아니었다. 대신 성당 앞마당은 온통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열 시가 영어 미사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과연 글로벌 시대의 미사 풍경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은 각각 사진들을 찍으며 웃음을 지었는데, 이제 오늘의 명동 대성당은 글로벌 시대의 성전이고, 여기서 수많은 민족이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더욱 마음에 든 것은 안내해 주시는 분들의 부드러운 태도였다. 자연스럽고, 지나치지 않아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사가 곧 시작되었는데,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주일학교 미사였다. 대성당 한가운데 마련된 주일학교 자리라니! 그들의 곁에는 교사들이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그 선생님들이 얼마나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지가 그대로 다 묻어났다. 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부드럽게 만져 주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의 주일학교 교사 시절을 잠시 떠올렸다. 참 자연스레 학생들을 사랑하던 교사들을 기억했다.
더구나 미사 중, 그 주일학교 학생 한 명이 신자들의 기도를 했는데, 나는 보았다. 그가 얼마나 아름답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행복해 하며, 제대에 올라 기도문을 읽어 내려가는지를. 베스 수녀님도 계속 감동스레 주일학교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베스는 참 좋은 강론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너는 한국어를 모르는데 무슨 강론을 들었느냐고 하니까, 그들이 (Their presence) 가장 훌륭한 강론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성전 앞에 몸을 깊이 구부리고 있던 걸인도 자신에겐 가장 깊은 강론이었다고 덧붙였다. 어린이들이 부른 미사의 특송을 흥얼거리며, 이 성당이 원래 김범우라는 신자의 집이라고 알려 주는데, 갑자기 내가 울컥해졌다. 그 어른도 그때는 자기의 거처가 대성전이 될 줄은 모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 집주인은 오른쪽 모퉁이에 그림이 되어 서 계신다. 그러고 보니 하늘나라는 참 멋진 일이다. 내 거처에서 내가 손님이 되고, 그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며, 더구나 그렇게 하느님의 거처가 되는.
비는 세차게 내리고, 사람들은 서둘러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세계에서 모인 이방인들이 성당 마당을 채운다. 언젠가 민주화 시대, 정의의 성전이었듯, 글로벌 시대, 가난한 이들의 성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정은
이번 한국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여름은 하늘나라에서 위대해지고 있는, 영성이 자라고 있는 거룩한 사람들을 만나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특히 일 년 동안 함께 영성을 공부한 자매들과 한 피정이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고, 푸른 잎새 뒤에 어린 매미가 울음을 시작하는 그런 날, 우리는 함께 아기 예수의 생명 되심을 묵상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한 자매가 자기의 묵상을 나누어 주었는데, 자기는 여관 주인이었다고, 그런데 이미 예약이 다 된 상태라, 자기 힘으로 누구를 나오라 할 처지가 못 되어서 하는 수 없이, 자기 마구간을 내어 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누추한 자기 자리에 예수를 눕히자, 그 초라한 마구간 위로 별이 빛나고, 목동들이 찾아오며, 갑자기 멋진 환대의 공간이 되더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그 자매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곳곳에 숨어 있는 큰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아직은 작은, 하지만 분명히 큰 사람이 되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더 아름답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큰 사람이 되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려는 망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예수님의 영에 사로잡혀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는 주의 멍에는 달고 가볍기 때문이다. 소멸해 가는 부모를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친구의 눈물도 아름답다. 그런 고뇌는 우리를 사람이게 하고 또 일상을 겸허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하늘나라는 그저 사랑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내 초라한 영혼을 대성전이 되게 하고, 그래서 내 영혼은 숨어 있는 귀한 자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토머스 머튼 학회에 가 있었다. 기조 강연을 하는 자리라 긴장도 되었고, 내가 쓴 책에 오류도 많이 발견되어서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학회는 무언가 달랐는데, 가만 보니, 이 느낌은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이 토머스 머튼을 잘 알 뿐 아니라 머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하는 말을 누구보다 잘 알아들었다. 내가 하는 농담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반응했으며, 내가 울컥하는 순간에는 함께 울어 주었다. 그리고 잘나고 똑똑한 머튼 학자들이 아니라, 그저 편안한 영적 이웃으로 친교를 나눠 주었다. 돌아오는 공항에서조차, 에드라는 나의 큰오빠뻘 되는 그분은 다가와 편안하게 나의 앞길을 축복해 주었고, 옆자리에 우연히 앉아 친구가 된 도미니크는 함께 머튼에 대해 책을 써 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서로를 견주고 긴장하는 그런 학회가 아니라, 그저 인간으로 만나고 또 대화를 나누는 이런 학회가 있다는 것이 놀라왔다.
한국의 여름은 푸른 나무다. 그리고 뻐꾹새의 노래로 시작된다. 그 속에서 기도하며, 작은 것, 작은 사랑을 택하는 하늘나라를 배우는 시간이다. ⓒ박정은
나의 여름은 이것으로 마치지 않는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미국 장상 연합회 모임에 가서 신학적 성찰을 나누어 주어야 하고, 또 베트남으로 갈 것이다. 또 거기 가면, 푸릇한 베트남 수사들이 얼마나 하늘나라로 물들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내가 만나는 하늘나라를 사는 사람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 단단히 숨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세속적인 야망과 욕심으로 꽉 채워진다면, 아마 그들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영성적인 것 마저 자본화 되어 가는 이 세상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면, 그들이 세상적인 것에서 얼만큼 떨어져 있는지 보면 될 것 같다. 둘째, 유머 감각이다. 가장 고급스런 유머는 자기를 폄하하는 유머다. 나의 결점에 너그러울 때, 타인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좀 즐거워야 한다. 한번뿐인 우리의 삶에 선물처럼 주어진 우리 신앙 속에서, 우리가 좀 기뻤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은 작은 사람, 작은 물건, 그리고 작은 존재를 선택하는 사랑이다. 작은 것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갓 태어나 울음을 터뜨린 매미, 요즘 자신의 얼굴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사춘기를 시작하는 내 조카의 딸, 그리고 예수님의 눈빛을 보았다고 말하던 떨리는 작은 음성. 베트남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법을 번역하는 어떤 수사의 마음, 하늘나라가 여전히 작은 것, 잘 안 보이는 것, 그래서 숨어 있는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그런 기쁜 작업이라는 걸 새삼 배운다.
여름은 무더울 일이다. 그리고 이 여름에는 사랑을 선택할 일이다. 명동 성당의 학생들 등 뒤로 부채질해 주던 어떤 선생님처럼.
가난한 변두리 동네 담벼락 위의 비둘기처럼, 하늘나라를 꿈꾸는 작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그들의 꿈을 듣고 싶다. ⓒ박정은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인문학"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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