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강소미]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나는 교복을 입은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교복을 입은 나는 사회에서 여전히 어린 존재이기 때문에 실수하더라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범죄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이상,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자’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바람은 고 3이 된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1학기 후반부에 같은 반 친구가 팝송 부르기 대회 사회자로 같이 나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중국인 친구였는데 자신은 중국어를 맡을 테니 나에게 영어를 맡아 같이 진행을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영어에 약해 파워 수시러로 전향한 나한테 다소 무리가 있는 제안이었다(수능 영어에 가망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언제 이런 걸 해볼 수 있겠냐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회자 오디션부터 나에게 큰 고비였다. 자기소개와 함께 팝송 대회의 개회사를 준비하여 영어 선생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완벽한 영어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은 없었지만, 빈약한 영어 문장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뻔뻔함이 있었다. 그런 내 능력을 잘 알았기에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오디션장에 도착하여 첫 순서로 발표하였다. 당연히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나와 중국인 친구, 그리고 처음 만난 1학년 친구와 함께 팝송 대회 사회를 맡게 되었다. 우리 셋은 3주의 시간 동안 대본을 만들고 암기하며 대회를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지만 대회진행은 우리의 생각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 순간이 나의 직관이 가장 많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사회자, 심사위원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에 교장 선생님께서 훈화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정이 생기셔서 참석을 못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 담당 선생님께서는 훈화 순서는 일단 뒤로 넘기고 교장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면 그때 틈을 만들도록 지시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훈화 순서를 뒤로 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본에는 없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냥 웃으며 ‘교장 선생님께서 급한 일정이 생기셔서 조금 늦게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훈화 말씀은 잠시 순서를 미루고 바로 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하며 자연스럽게 순서를 뒤로 미뤘다. 다만 대회를 하는 내내 교장 선생님이 언제 오실지 몰라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부가 끝나기 전 교장 선생님께서 뒷문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빠르게 대본을 수정하며 본래 다음 진행을 해야 하는 친구에게 상황을 알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1부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교장 선생님을 모셔와 훈화 말씀을 진행하였다. 다행히 큰 고비는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대회를 진행하는 내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계속 발생하였다. 대회 중간중간에 응원하러 오거나 구경 온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사회자가 문제를 내서 신호를 주면 학생들이 손을 들고 가장 먼저 든 학생을 지목한다. 그러면 주변에 있던 방송부원들이 빠르게 마이크를 전달하여 지목된 친구가 마이크를 통해 답을 말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움직여야 할 방송부원들이 움직이지 않았고 학생들의 답은 사회자의 자리까지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두 사회자 친구에게 문제를 맡기고 직접 대회장을 뛰어다녔다. 대회장을 뛰어다니며 마이크를 건넸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일일 레크리에이션 강사에 빙의하여 요란한 추임새를 넣으며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물론 추임새는 다 한국말이었다. 영어로 진행해야 했지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빠르게 할 수 있는 멘트를 날리며 다른 발표자를 향하여 죽어라 계단을 오르내렸다. 다행히 참여한 학생들 모두 즐거워했고 숨을 헐떡이며 사회자 자리로 돌아온 나에게 선생님과 친구들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얼마 전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수업 중 교생 실습을 갔다 오신 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수업 지도안은 그저 뼈대일 뿐이다. 그저 내가 수업을 진행할 때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해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일 뿐 그것을 그대로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 3 영어 사회자를 맡았던 나에게도 대본은 그저 뼈대일 뿐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틀일 뿐 그 진행 과정은 나의 직관, 융통성이 필요했다. 나는 상황에 따라 진행 방향을 조정하였고 대본에 없는 멘트를 하기 위하여 짧은 영어 실력과 필요에 따라서 한국어도 적절히 혼용하였다. 재밌는 점은 친구들이 나의 미숙한 영어 실력을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어를 못 하니까 내용이 잘 들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회자로서의 경험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워낙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많이 경험해서 그런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 마인드가 생겼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는 시간이었다.